상임감사들의 일탈...회장 단체와 모교에 '셀프 기부'

2021년 07월 22일 10시 00분

전체 공공기관·공기업 350곳이 한해 쓰는 기부·후원 예산은 수천억 원이다. 주로 저소득·소외·취약 계층을 지원하는 데 쓴다. 그런데 이 예산이 정치권 낙하산들의 잇속을 챙기는 데 쓰이고 있다. 곧 대선이다. 다음 대통령이 누구든, '국폐'인 낙하산 인사와 공공예산 사익추구를 바로잡아야 한다. - 편집자 설명  
공공기관 낙하산 상임감사들의 공공예산 사유화와 오·남용 사례가 추가로 확인되고 있다. 본인과 특수한 이해관계가 있는 단체 또는 모교에 공공 기부금을 퍼주는 이른바 ‘셀프 후원’ 비위다. 공공기관의 상임감사는 국민을 대신해 공공기관장의 경영을 감시하는 막중한 자리다. 기관 규모에 따라, 대통령 또는 기재부 장관이 임명권을 쥐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 낙하산으로 인해 상임감사 제도가 변질되고 있다. 올해 1월, '공공기관 감사 낙하산 방지법'을 만들었지만, 별 소용이 없다. 오히려 '1년 이상의 정당·시민단체 근무 경력’이 있으면 공공기관 상임감사가 될 수 있도록 했다. ‘낙하산 보장법’이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비리의 온상인 공공기관 낙하산의 폐해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그 사이, 낙하산의 병폐가 공공예산의 사익추구로까지 번지고 있다.
전남 나주에 있는 한전KDN 본사
전남 광역의원 출신의 문상옥 국민의힘 광주시당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5월, 발전 공기업인 한전KDN 상임감사에 임명됐다. 취임 당시 문 위원장은 새누리당 광주남구당원협의회 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그의 공직 경력 중 에너지 분야 전문성을 입증할 만한 이력은 찾기 어렵다.  
문상옥 전 한전KDN 상임감사, 사진 출처는 공공기관감사포럼(현 한국공공기관감사협회) 홈페이지
문상옥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에도 준정부기관인 한국소방산업기술원 감사에 올랐다. 당시 문 위원장은 한나라당 부대변인을 거쳐 중앙위원회 당직을 맡고 있었다. 전문 경력이 없는데도 정치권 연줄로 두 차례 공공기관 상임감사를 차지한 것이다. 그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광주광역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문 위원장이 한전KDN 감사로 재직 중이던 2015년 12월, 한전KDN은 ‘공공기관감사포럼’(현 공공기관감사협회)이란 곳에 700만 원을 기부했다. 한전KDN이 공공기관감사포럼에 기부금을 낸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기부 명목은 ‘2016년 사업수행 특별회비’였다. 특별회비?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 사유다.
‘공공기관감사포럼’은 2015년 1월 사단법인으로 설립됐다. 전국 100여 개 공공기관의 상임감사들이 포럼의 회원이다. 홈페이지엔 ‘공공기관 감사의 이해와 인식의 폭 확충 및 정보 교류’가 설립 목적이라고 적어놨다. 공공기관 감사들을 위한 이익단체인 것이다.
초대 회장은 정송학 당시 한국자산관리공사 상임감사다. 정송학 씨는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낙하산 인사다. 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광진갑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경력이 있다. 정 씨의 뒤를 이어 공공기관감사포럼 2대 회장이 된 이가 문상옥 위원장이다. 3대 회장은 자민련 대변인 출신의 유운영 전 대한석탄공사 상임감사다. 
2016년 1월 공공기관감사포럼 신년하례식에서 문상옥 당시 한전KDN 감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출처는 공공기관감사포럼(현 한국공공기관감사협회) 홈페이지
문상옥 위원장이 한전KDN 감사로 재직하던 2015년 10월, 그는 공공기관감사포럼 2대 회장에 선출됐고 그해 12월, 한전KDN은 공공기관감사포럼에 700만 원을 기부했다. 문 위원장이 회장으로 있는 단체에 공적 예산을 집행한 것이다. 
취재진이 당시 기부 경위를 묻자, 한전KDN 측은 “협회(포럼)에서 먼저 협조 요청이 왔고, 현금이 아닌 사무실 집기를 특별회비 형태로 후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지금은 특별회비 등에 대해선 기부금 처리를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상옥 위원장은 “당시 회비 납부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문 위원장은 뉴스타파와 통화에서 “(당시) 협회 형편이 어려워 우리가 회장사로서 특별회비를 낸 것이고, 그 회비가 특정인을 위해 쓰인 것도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또 “당시 특별회비가 회사(한전KDN) 결재 라인을 통해, 정상적 회계 처리로 법적 문제없이 집행되었다”고 주장했다. 
문 위원장은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단체에 대한 기부금 집행은 '회계 처리상 실수'라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회사 재무팀에서 특별회비로 처리해야 될 것을 기부금으로 처리하면서 착오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문 위원장의 주장처럼 공공기관감사포럼에 특별회비 형태로 기부금을 지출한 공공기관은 한전KDN이 유일하다. 
충남 보령시에 있는 한국중부발전 본사
또 다른 발전 공기업인 한국중부발전에서도 낙하산 상임감사의 ‘셀프 기부’가 확인됐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 캠프 출신의 김선우 전 한국중부발전 상임감사가 그 당사자다. 김 전 감사는 자신의 모교에 기부금을 ‘셀프 집행’했다.
김선우 전 감사는 '친박' 인사다.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직능총괄본부 미래희망중앙부위원장, 박정희 대통령 애국정신선양회 중앙대외협력위원장 등을 지냈다. 2016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은 김 씨를 중부발전 상임감사에 임명했다. 
2017년 4월 김선우 당시 한국중부발전 상임감사가 한국전력기술과 '청렴·감사업무 교류 및 지원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사진은 중부발전 자료 재가공.<br>
김 감사의 임기 중인 2018년 2월, 중부발전은 ‘보문고등학교 총동창회 장학 재단’에 200만 원을 기부했다. 명목은 ‘설 사회 공헌 활동’이다. 보문고등학교는 대전광역시에 있는 사립학교다. 중부발전이 2015년부터 2020년까지 특정 사립학교 총동창회 또는 특정 사립학교 장학 재단에 기부금을 지출한 것은 이때가 유일하다. 중부발전 본사는 충남 보령시에 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당시 보문고등학교 총동창회에 대한 기부를 결정한 곳은 중부발전 감사실로 확인됐다. 김선우 상임감사가 해당 기부를 승인한 것이다. 그런데, 김선우 상임감사는 보문고 출신이다. 즉, 김 감사는 공공기관 기부금을 모교에 집행한 것이다. 공공기관 예산을 '사유화'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중부발전은 서면 답변에서 “대전·충청지역 장학재단인 <꿈나무 장학회>의 후원 요청에 따라, 후원금만 지원하였고, 지원 대상 학교 선정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다시 말해, 감사의 모교인 특정 학교를 염두에 두고 기부금을 집행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보문고 총동창회 장학재단에 한국중부발전이 기부한 것은 2018년이 처음이자 마지믹이다. 사진은 보문고 총동창회 홈페이지
하지만 뉴스타파 확인 결과, 김선우 감사 취임 이전(2015년)과 퇴임 이후(2019년) 보문고등학교 총동창회는 중부발전으로부터 기부금을 단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중부발전은 “보문고등학교 총동창회가 더는 <꿈나무 장학회>에 후원 요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취재진은 보문고등학교 총동창회에 기부를 받은 경위를 물었다. 보문고 총동창회 측은 “김선우 전 감사가 동문은 맞다. 하지만 (기부금은) 감사가 직접 준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중부발전에서 (우리에게) 기부를 하겠다고 해서 받은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총동창회 측은 “누가 (기부금을) 요청했는지 정확하게 모르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한국중부발전은 “(기부금은) 대전·충청 지역의 저소득 취약 가정을 지원했던 사업으로 당시 기부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다”는 입장을 서면으로 보내왔다. 뉴스타파는 김선우 전 감사의 해명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다. 하지만 7월 22일 현재까지, 김 전 감사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제작진
취재강현석, 임선응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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