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재벌집 막내 아들'이 계열사 지분 쓸어담는 법

2023년 02월 10일 18시 10분

드라마 <재벌집 막내 아들>은 재벌가 자녀들이 계열사 지분을 차지하기 위한 암투를 그려 큰 인기를 끌었다. 뉴스타파는 효성그룹에서 비상장 알짜 계열사인 '더클래스효성' 지분을 두고 벌어진 비슷한 일을 포착했다. 

10년 전, 시민 제보로 드러난 효성 계열사 2대 주주

지난 2013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이하 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의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조세도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VI)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300여 명을 추적했다. 
취재진이 정체를 밝혀내지 못한 한국인들은 크라우드소싱을 통한 시민 제보를 받았다. 이를 통해 '디베스트인베스트먼트'(D-Best Investments Limited)라는 페이퍼컴퍼니 주인인 김재훈이 효성그룹의 수입차 계열사 ‘더클래스효성’의 2대 주주란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 보도: 의문의 2대주주, 유령회사까지)
▲뉴스타파는 '조세도피처의 한국인들 2013'를 통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페이퍼컴퍼니 '디베스트인베스트먼트' 주인 김재훈이 효성그룹의 수입차 계열사 ‘더클래스효성’의 2대 주주란 사실이 드러났다.
추가 취재 결과 김재훈 씨는 BVI 회사와 동일한 이름의 국내 페이퍼컴퍼니 '디베스트파트너스'를 통해 지난 2007년 더클래스효성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2대 주주가 된 인물이었다. 그는 2007년 12월 더클래스효성 상환 전환 우선주 31.54%를 23억 원에 취득하며 조석래 당시 회장의 세 아들을 제치고 단숨에 전체 지분 31.54%를 가진 2대 주주 자리에 올랐다. 주당 5500원에, 보통주 전환, 이자 9%대가 보장되는 파격적 조건이었다. 
▲2013년 뉴스타파의 질의에 김재훈 씨는 한 로펌을 통해 투자 기회를 소개받고 더클래스효성 투자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당시 뉴스타파는 김재훈 씨에게 페이퍼컴퍼니와 더클래스효성 투자금의 관계는 무엇인지, 효성그룹 오너일가와의 친분 덕에 특혜를 받은 건 아닌지 질의했다. 김 씨는 로펌을 통해 투자기회를 소개받았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효성그룹 측에서도 재무적 투자자에게 9% 이자는 일반적인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김씨가 특혜를 받은 배경, 효성과의 관계, 주식 인수 자금 출처 등은 더 이상 확인이 불가능했다. 이 부분을 규명하는 일은 조세당국의 몫으로 남겨두며 취재를 접어야 했다. 

익명 제보자 “김재훈 지분 실소유자는 조현상 효성 부회장”

보도 이후 10년 가까이 지난 최근, 뉴스타파는 익명을 요구한 전직 내부 관계자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제보자는 당시 더클래스효성 2대 주주 김재훈 씨가 효성 오너일가의 차명주주였다고 주장했다. 
뉴스타파는 이를 입증하는 합의각서를 입수했다. 2007년 12월 26일 김재훈 디베스트파트너스 대표가 더클래스효성의 우선주를 인수한 직후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셋째 아들인 조현상 효성그룹 부회장과 체결한 문건이었다. 
▲ 2007년 12월 26일 김재훈 디베스트파트너스 대표가 더클래스효성의 우선주를 인수한 직후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셋째 아들인 조현상 효성그룹 부회장과 체결한 문건을 재구성.
합의서에는 조현상은 갑, 김재훈은 을로, 을은 '본건 주식의 소유권은 대외적으로 회사가 인수했음에도 대내적으로는 갑에게 있음을 확인하며 갑의 지시에 따라 보관하고 처리한다’고 적혀있다. 김재훈은 이름만 빌려준 가짜 주주이고, 겉으로는 이 주식의 소유권이 김 씨의 회사에 있지만 이 주식의 실제 주인은 조현상이라는 내용이다.

수입차 판매권, 다른 재벌들도 탐내는 매출 성장 보장된 알짜 사업

효성그룹과 오너일가는 IMF 이후 내수경제가 회복되며 국내에도 수입차 인기가 많아질 것으로 보고 2003년 메르세데스-벤츠 판매사 더클래스효성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비상장 계열사로 설립 당시 주식회사 효성이 지분 55%를 가지고 조석래 당시 회장의 세 아들 조현준, 조현문, 조현상이 각각 15%씩 보유했다. 
인기 수입차인 메르세데스-벤츠 국내 공식 판매권 사업은 지속적인 성장이 보장되는 사업으로 여겨졌다. 당시 효성그룹 뿐만 아니라 SK, GS, 두산 등 다른 재벌 그룹도 뛰어들만큼 알짜 비즈니스였다. 
그러나 당시 국내 벤츠 판매 시장은 외국계 기업인 한성자동차가 50% 넘게 장악하고 있었다. 후발주자로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이 때문에 사업 초기였던 2005년 실적 저조로 한 차례의 감자와 한 차례의 유상증자를 진행했다. 이 유상증자에는 주식회사 효성만 참여했다. 이로 인해 오너일가 삼형제의 지분은 크게 줄어들었다. 주식회사 효성은 더클래스효성 지분을 84.76%, 삼형제는 각각 5.08%씩 보유하게 됐다.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는 2007년 12월 보고서에서 이때 유상증자 예를 들며, 주식회사 효성과 사업연관성이 부족하며 오너일가가 아닌 회사에 리스크를 떠넘기는 행위라며 투자 적절성 여부를 지적한 바 있다. 
▲김재훈 씨의 디베스트파트너스가 외부 투자자로 참여하기 이전의 더클래스효성 지분 구도

재벌집 사업에 외부 투자자가 들어오게 된 이유

2007년 12월, 전시장 투자를 위해 또 한 차례 유상증자가 필요했다. 효성그룹 내부에서는 오너일가인 삼형제의 개인 지분율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그러나 주식회사 효성과 삼형제가 다같이 균등한 비율로 증자에 참여하자니 개인의 지분이 점점 줄어들게 되고, 효성만 빼고 삼형제만 증자에 들어가자니 지분은 회복할 수 있지만 효성의 수익 취득 기회를 빼앗는 배임 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는 법률자문을 받았다. 회사 실적이 본격적으로 좋아지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2007년 당시 더클래스효성의 연매출은 1000억 원이 넘어갔다. 
삼형제는 지분 회복은 미루기로 하고 외부의 재무적 투자자에게서 자금을 조달하기로 합의했다. 투자자로는 막내 조현상의 친구 김재훈을 선정했다.
김 씨는 23억 원을 투자하며 유상증자에 참여해 상환 전환 우선주 41만여 주를 주당 5500원에 배정받으며 더클래스효성 2대 주주가 됐다. 2007년 12월 26일자로 작성된 신주인수 계약서에 따르면 이 우선주는 7년 후인 2014년 말에 보통주로 전환할지 말지 선택하도록 돼 있다. 이 날부터 더클래스효성 지분은 주식회사 효성 58.02%, 디베스트파트너스 31.54%, 오너일가 삼형제가 각각 3.48% 가지게 됐다.
▲2007년 12월 말 김재훈 씨의 디베스트파트너스가 유상증자에 참여해 2대 주주가 된 이후 더클래스효성 지분 구도
직후인 12월 28일 조현상과 김재훈은 차명 주식 이면 계약을 맺었다. 제보자에 따르면 조현상의 형제들은 이면 계약의 존재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제보자는 "3명 공동으로 이 건에 대한 향후에 주식 인수 기회가 있을 거라는 그런 기본적인 신뢰가 있었다"며 "차명 주식의 발생 및 존재에 대해서는 다른 두 명의 주주(조현준, 조현문)는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현상, 2014년 김재훈 회사를 인수하며 헐값에 차명주식 되찾아와

예상대로 외제차 붐이 일며 더클래스효성 실적도 해가 거듭할수록 좋아졌다. 김 씨의 디베스트파트너스가 인수했던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할지 말지 결정할 시기도 도래했다.
더클래스효성에 따르면 효성 측은 2014년에 디베스트를 인수했다고 말했다. 차명주식 합의서에는 지분을 되찾아올때 조현상이 원하는 가격으로 매도해야한다고 적혀있다.
제보자는 조현상이 디베스트가 갖고 있던 부채에 약간의 웃돈을 얹은 33억 원, 주당 7900원 정도에 찾아왔다고 말했다. 김재훈이 차명주주가 아닌 진짜 재무적 투자자였다면 큰 손해를 보고 지분을 팔아치운 셈이다. 
▲디베스트파트너스가 유상증자에 참여하기 이전인 2006년부터 조현상 부회장이 디베스트파트너스 인수 시점인 2014년까지의 더클래스효성 실적
2014년 더클래스효성의 매출은 5226억 7700만 원, 당기순이익 2014년 112억 1500만 원으로 2007년 말 디베스트가 우선주를 인수할 당시의 매출 1187억 6천만 원, 당기순이익 15억 8백만 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세에 있었다. 
차명주식을 되산 방법도 평범하지 않았다. 디베스트에서 더클래스효성 주식을 매입하지 않고 디베스트라는 회사 자체를 인수했다. 인수 당시 디베스트는 자본잠식 상태였다. 
▲조현상 부회장이 디베스트파트너스를 인수할 당시 이 회사는 자본잠식 상태였다.
자본잠식 상태임에도 디베스트를 인수한 이유가 있냐는 뉴스타파 질의에 더클래스효성 측은 “디베스트의 더클래스효성 지분과 부채 등을 종합평가하여 매입한 것으로 안다”고만 답변했습니다. 
제보자는 디베스트가 보유했던 더클래스효성 주식만 매입했다면 다른 주주, 형제들과 경쟁해서 더 비싸게 사왔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경쟁을 피하기 위해 디베스트 자체를 인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클래스효성 주식을 직접 매입을 하게 되면 기존에 있는 다른 주주 이해관계인으로 표시되어져 있는 특수관계인(조현준, 조현문)인 다른 주주의 동의를 받거나 그들의 우선 매수권 이슈와 경합을 벌이게 되어 있었거든요. 그걸 피하기 위한 방법은 그냥 디베스트파트너스의 소유권을 아무도 모르게 가져오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전 효성그룹 직원

조현상, 2014년 김재훈 회사 인수 사실 2016년에야 공개

차명으로 돼있던 주식을 되찾아온지 1년 뒤인 2015년 11월 23일, 조현상은 주식회사 효성의 지분 전량을 446억 원에 사들이며 최대주주가 됐다. 이날 지분 변동으로 조현상은 61.5%, 디베스트파트너스 31.54%, 장남 조현준과 차남 조현문은 각각 3.48%를 보유하게 됐다.
▲2015년 주식회사 효성 지분 전량을 인수하며 조현상 부회장은 더클래스효성 대주주가 되었다.
2015년 당시 더클래스효성의 기존 주주였던 효성그룹과 장남 조현준은 당시 배임,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차남 조현문은 2013년부터 그룹 내 불법 행위 정황들에 대한 검찰 고발을 이어오며 일가로부터 축출된 상태였다.
제보자는 이 때문에 메르세데스-벤츠 측에서 판매사의 도덕적, 법적 적격성을 이유로 효성과 조현준 지분 매각을 요구했고, 자연스럽게 막내 조현상이 효성 지분을 인수할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제보자는 실제 조현상의 인수가 가능했던 것은 그가 디베스트를 인수했다는 사실을 다른 주주들이 인지하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고 강조했다.
조현상이 효성이 보유한 58.02% 지분을 다 혼자서 가지고 오려면 다른 주주(조현준, 조현문)가 그걸 허용하고 동의해야만 되는 일이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조현상이 디베스트파트너스의 지분을 이미 인수한 채였다라는 게 알려지면 그건 분명히 견제가 되거나 이의 제기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효성으로부터의 58%를 가져오는 게 완성되기 전까지는 디베스트파트너스 지분 인수를 외부에 알릴 수 없었던 겁니다.

-전 효성그룹 직원
조현상이 대주주가 된 후, 디베스트파트너스는 2016년이 돼서야 효성그룹 계열사로 공시됐다. 이때 공시로 조현상이 사실상 90% 넘는 더클래스효성 지분 소유자라는 사실이 공개됐다. 
벤츠 판매 사업권을 준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에 주주변경 승인을 받는 과정도 2016년 연초에야 시작했다. 더클래스효성 2대 주주 회사의 주인이 바뀐 사실을 2년 가까이 지나서야 공개한 것이다. 
더클래스효성 측은 조 부회장의 차명지분 설정에 대한 내용을 인지하고 있냐는 질의에 “금시초문이며, 디베스트파트너스는 당사의 사업 초기에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하였던 것으로 알고있다”고 답했다.
같은 질의에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측은 당시 “더클래스효성에 요청하여 주주에 대한 정보, 지분 구조 변경 등에 대한 필요 정보 및 관련 서류를 확인”했고 독일 본사와 검토를 거쳐 주주 변경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조현상, 차명주주 덕에 돈 얼마나 아꼈을까 

제보자는 만약 김재훈이 차명주주가 아니라 일반적인 재무적 투자자였다면 2014년 말 조현상이 훨씬 더 비싼 가격으로 지분을 인수했어야 했을 거라고 말했다. 당시 회사 실적을 기초로 산정한 가격에 지분을 인수했다면 아무리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최소 주당 2만8천원은 넘게 줘야했다는 것이다. 차명으로 해둔 덕분에 시세보다 90억 원 넘게 아낀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11개월 뒤인 2015년 11월, 조현상은 주식회사 효성이 보유했던 58.02% 지분을 주당 58,063원, 총 446억 원에 샀다. 불과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이루어진 거래인데, 주당 가격이 8배 가까이 차이나는 것이다.
(차명 지분을) 우선주 기간이 끝나기 전에 찾아왔어야 됐고요. 그리고 이 수입차업이 굉장히 활황이었고 성장세였고 수익 가치가 올라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2014년 12월에 가져오지 못하면 그야말로 2배 3배 5배 10배 이상의 가격으로 이걸 매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전 효성그룹 직원
싼 값에 주식을 되사옴으로써 양도 소득세도 절감됐다고 제보자는 말했다. 김재훈은 그저 차명주주였던 만큼 양도 차익을 얻었다면 그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실소유주인 조현상이 부담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짜 주주의 양도소득세 문제를 결국 이 거래의 실질적인 이해관계자(조현상)가 부담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결국은 비용의 발생이 없이 가장 헐값으로 가장 자연스럽고 아무도 모르게 가져올 수 있는 방법과 시점이...

-전 효성그룹 직원

'수입차 판매 지주 회사'로 탈바꿈한 차명 소유 회사... 수백 억 원 배당 

조현상 효성그룹 부회장은 2017년 디베스트파트너스 사명을 에이에스씨로 바꿨다. 이후 이 회사는 효성그룹 수입차 사업 지주사 역할을 하게 됐다. 이런 방식으로 다양한 인기 수입차 판매사를 거느리고 있다.
조 부회장은 에이에스씨를 통해 더클래스효성과 또 다른 벤츠 판매사 신성자동차를 소유하고, 자신의 또다른 개인회사 신동진을 매개로 렉서스 판매사 더프리미엄효성, 재규어와 랜드로버 판매사 효성프리미어모터스를 지배하고 있다. 
더클래스효성은 2018년부터 매출 1조 원을 돌파하며 국내 벤츠 판매시장 2위 업체로 떠올랐다. 2021년 기준 더클래스효성은 매출 1조 3848억 원, 당기순이익 441억 6800억 원을 기록했다.
같은 해 조 부회장은 에이에스씨에서만 배당금 388억원을 받아갔다.

차명지분 통한 불법 행위 없었는지 조사 필요해

전문가들은 주식 차명 보유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보통 불법적인 거래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이상훈 금융경제연구소·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변호사는 "세금, 주가 거래, 분식회계, 공시규정이라든지 다른 여러 가지 규제를 회피할 목적으로 참여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회피 목적이 불법인 경우에는 여러 가지 규제가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차명 지분을 시세보다 헐값으로 되찾아오는 과정에서 덜 내고 지나간 양도소득세 등 세금은 없는지, 차명 뒤에 숨어서 한 다른 위법 행위는 없었는지, 당국의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제작진
영상취재신영철 오준식
CG, 디자인정동우
출판박종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