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정부, 폭염 사망자 집계 기준 변경...이전보다 4배 늘어

2021년 07월 16일 14시 52분

폭염으로 인한 인명 피해 규모를 축소·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온 정부가 폭염 사망자에 대한 공식 집계 기준을 변경했다.
새 기준을 반영하면 지난 9년간 발생한 폭염 사망자는 134명이 아니라 518명으로 4배 가까이 늘어난다.  이는 같은 기간 집중호우(95명)와 태풍(42명)에 의한 사망자 수보다 압도적으로 많아 폭염에 대한 경각심이 더 커질 전망이다.  
행정안전부는 자연재해 피해 현황을 공식 기록하는 재해연보의 2019년 폭염 사망자 수를 질병관리청이 '응급실 온열질환 감시체계'를 통해 집계한 11명 대신 통계청의 '사망원인 통계'에 나온 30명으로 반영했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는 앞으로 폭염 대책기간 동안에는 질병관리청이 집계하는 '응급실 온열질환 감시체계'의 사망자 수를 활용하고, 재해연보에 공식 기록하는 폭염 사망자 수는 이듬해 9월쯤 나오는 통계청의 사망원인 통계 수치를 사용하기로 했다. 
행안부 기후재난대응과 관계자는 "기관별로 다양한 통계로 인한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관계기관과 협의를 거쳐 2019년 통계부터 집계 기준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행안부는 또 기존의 질병관리청 자료를 토대로 작성된 2018년 폭염 사망자 수는 올해 발간하는 재해연보에서 수정할 계획이다.

논란 많았던 '반쪽짜리' 폭염 사망자 통계

그동안 행정안전부는 질병관리청의 응급실 온열질환 감시체계 통계를 폭염 사망자 수로 공식 집계했다. 온열질환 감시체계는 온열질환자 발생 현황을 최대한 신속하게 공유해 국민들이 피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경보 시스템'으로 지난 2011년 7월 도입됐다. 
하지만 온열질환 감시체계는 병원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의 정보를 기반으로 의료진의 '자발적 참여'로 운영되는 특성상 누락되는 온열질환자가 생길 수 있다. 게다가 병원 밖에서 숨진 뒤 이송된 온열질환자는 이 감시체계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되는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질병관리청이 "온열질환 발생 전체를 의미하지 않는다"며 자료 해석에 주의를 기울여 줄 것을 당부했을 정도다.
그러나 행정안전부는 이 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온열질환 감시체계를 그동안 폭염 사상자에 대한 국가 공식 통계 기준으로 활용해 왔다. 온열질환 감시체계를 통해 집계된 폭염 사망자는 2011년 6명을 시작으로 지난 9년 총 134명. 기상청 관측 역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기록된 2018년에는 48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행정안전부는 재해연보에 이 수치를 그대로 인용했고, 대다수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썼다. 
그러나 지난해 뉴스타파 취재 결과(프로젝트 1.5℃ _폭염, 삶과 죽음의 체감온도), 행정안전부는 2018년 폭염 사망자 62명의 유가족에게 폭염인명피해 지원금을 지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행안부가 공식 집계한 폭염 사망자 48명보다 14명 더 많은 사망자 가족들에게 정부 지원금을 지급한 것. '폭염 사망자 축소' 논란이 벌어졌고, 결국 행안부는 집계 기준을 변경하게 됐다. 

폭염 사망자, 집중호우와 태풍보다 압도적으로 많아

폭염 사망자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된 통계청의 사망원인 통계는 지방자치단체와 건강보험공단 등 다수 기관이 수집한 개인 정보를 종합해 작성된다. 사람이 사망한 경우 친족이나 병원, 교도소 등의 시설 관계자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기초자치단체에 신고해야 한다. 통계청은 이 때 지자체가 제출받는 사망신고서와 사망진단서 또는 시체검안서 내용 등을 토대로 모든 국민의 사망원인을 분류한다. 행정안전부는 이 가운데 과다한 자연열에 노출되거나, 일광에 노출돼 사망한 사람 중에 열사병 등 온열질환 진단을 받은 이들을 폭염 사망자로 집계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질병관리청의 온열질환 감시체계를 통해 집계한 2011년부터 2019년까지 폭염 사망자 수는 134명이지만 새 기준으로 도입된 통계청의 사망원인 통계는 같은 기간 폭염 사망자 수를 518명으로 집계했다. 
뉴스타파는 행정안전부로부터 새 기준을 적용한 폭염 사망자 통계를 입수했다. 서울 39.6도, 강원도 홍천 41도 등 기상청 100여년 역사상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한 2018년(8월 1일 기준) 여름에는 무려 162명이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당시 폭염으로 인해 48명이 숨져 사상 최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지만,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던 것이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폭염 사망자수가 실제보다 매년 평균 4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됐다. 
행정안전부는 2018년 하반기 국회에서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이 개정된 후 공식 집계를 시작했다. 이 때문에 2011~2017년 기간 동안 폭염으로 숨진 사망자는 아직까지도 국가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고 있다. 그 숫자만 무려 326명에 달한다. 집중호우나 태풍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이미 압도적으로 많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011년부터 2019년까지 호우 때문에 숨진 국민은 95명, 태풍으로 인해 숨진 국민은 42명인 반면 새 기준을 적용한 폭염 사망자 수는 518명으로 다른 자연 재난에 비해 사망자수가 압도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위험한 여름...2021년은?

폭염으로 인한 위험은 뚜렷이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12일 기상청은 최근 10년 동안 과거보다 폭염 일수가 크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기상청은 일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일 경우 폭염 일수로 집계하는데, 과거 48년(1973~2020년) 동안 한 해 평균 폭염 일수는 10.1일이었지만 최근 10년(2011~2020년) 동안 14.0일로 크게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연도별 폭염 일수는 1위인 2018년(31.0일)에 이어 1994년(29.6일), 2016년(22.0일), 2013년(16.6일), 1990년(16.4일) 순으로 갈수록 여름철 폭염이 빈발하고 있어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올해 여름 또한 심상치 않다.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한반도 주변 대기 상황을 고려했을 때 2018년 폭염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18년을 비롯해 우리나라에 기록적인 폭염이 찾아왔던 1994년, 2016년의 공통점은 지상 5km 상공의 북태평양 고기압과, 지상 10km 상공의 티베트 고기압이 동시에 한반도 상공에 장시간 머물었다는 점이다. 여름철 강한 일사량으로 데워진 지표면 위로 뜨거운 공기가 겹겹이 덮고 있는 이른바 '열돔' 현상이 나타났다. 우진규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지난 13일 기자 브리핑을 통해 "평년과 비교해 현재 북태평양 고기압과 티베트 고기압 세력이 강한 건 맞다"며 "대기 상층부로 열기가 쌓이는 전개 양상은 비슷해 보이지만 (2018년 경우처럼)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밝혔다. 

학계 "사망자 기준 변경 환영하지만, 추가 개선 필요"

학계에서는 뒤늦게나마 정부가 폭염 사망자 집계 방식을 변경한 것을 환영하면서도, 시일이 오래 걸리는 통계청 공식 발표 특성을 감안해 선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새 기준은 응급실을 방문하지 못한 열사병 사망자나 응급실 방문 당시에는 확인할 수 없었다가 추후 열사병으로 확인된 사망자를 집계할 수 없었던 한계를 보완했다는 의의가 있다”면서도 “통계청과의 협약을 통해 폭염 시기에는 주기적으로 사망신고 집계 자료를 행정안전부가 공유해 선제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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