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박물관 만찬, MB정부의 천박한 문화관

2012년 03월 31일 04시 05분

<기자>

며칠 전 만찬이 열렸던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입니다. 만찬 식탁이 전시실 안쪽에 길게 놓였고 그 주변에는 국보급 청자와 분청사기를 비롯한 수십 점의 유물들이 보기 좋게 배치돼 있습니다. 지난 26일 만찬 때 모습 그대로입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음식물 반입이 철저히 금지되는 일반 전시실과는 다른 곳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음식물을 준비해 갔습니다.

예상대로 직원들은 음식물을 반입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박물관 직원]
(여기는 먹을 것 가지고 들어가도 되나요?)
“원래 식음료는 반입 금지입니다.”

음식물 반입 금지의 이유는 유물 보호였습니다.

[박물관 직원]
“음식물 반입하면 (유물에) 손상이 갈 수도 있으니까....”

행사용 연회장이 따로 있다는 설명도 합니다.

[박물관 직원]
“연회장은 또 따로 있습니다. 따로 있습니다.”

좀 더 책임있는 설명을 듣기 위해 박물관 간부들을 만나 전시실에서 식사 등을 허용한 전례가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박물관 과장]
(그런 적이 있었나요? 과거에? 음식물 여기(전시실)안에서 드시고 하는...)
“뭐, 예전에는 없었죠.”

이들은 취재의 의도를 경계하는 듯 입장이 오락가락 합니다.

[박물관 직원]

“요건 상관없습니다.”
(음식물 반입해도 됩니까?)
“네. 이 정도야 뭐 괜찮죠. 콜라 정도야...”
(콜라하고 햄버거 정도 괜찮습니까?)
“일부러 이렇게 테스트 해보시려고 그러는 거예요?”
(뭐 하여튼 여쭤보는 겁니다.)
“그러면, 음식이 안 되죠.”

규정을 따져 묻자 갑자기 취재 중단을 요구합니다.

[박물관 직원]
(규정이 있습니까? 음식물에 대한 규정?)
“ 뭘 가지고 따지시려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네. 뭐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 그만 하시고...”

[박물관 과장]
“시간이 넘었으니까 퇴장을 좀 해 주시죠.”

<앵커 멘트>

유물이 전시된 박물관은 조명을 이용한 사진촬영도 엄격히 금지됩니다. 빛이 유물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전시실 조도까지 과학적으로 관리합니다. 기자들이 동행하는 국제행사 만찬이 유물 앞에서 열려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지난 26일 박물관 만찬은 어땠는지 화면으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박물관 곳곳에 설치된 표지판에는 음식물 반입 금지와 함께 플래시 사진 촬영도 금지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26일 유물을 전시해 둔 채로 열린 만찬 때는 플래시가 수도 없이 터졌습니다. 방송 뉴스에 나간 짧은 분량의 화면입니다. 플래시가 반복적으로 터집니다. 1분짜리 화면에서 확인된 횟수만도 십 수 차례에 달합니다.

먹고 마시고 찍어대는 만찬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그러나 최초의 박물관 만찬도 이명박 정부 때 열렸습니다.

지난 2010년 G20 정상회의의 만찬 장소도 국립중앙박물관이었습니다. 박물관 측은 그 당시 만찬장에 유물을 전시하지는 않았다고 말합니다.

[박물관 직원]
(G20 때는 여기서 드셨다면서요? 거기도 유물이 보관된 곳입니까?)
“(G20 만찬) 연회장엔 유물이 없었어요. 그때는.”

G20 만찬은 박물관 내 특별 행사 공간인 으뜸홀에서 열렸습니다. 박물관 측 설명대로 유물이 전시되지 않았다면 문제 삼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도 국보를 비롯한 유물들이 만찬장에 전시됐습니다. G20 정상회의 만찬 장면입니다. 당시 정부와 박물관 측은 G20에 맞춰 선정한 국보 등 20개의 유물을 만찬장과 접견행사장에 배치했습니다.

정상들의 만찬장 눈요기 거리로 국보까지 꺼내줬던 최강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결국 문화부 장관이 됐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반문화적 행태가 반복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해 보입니다.

뉴스타파는 이번 사안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 보호 기준이 생각보다 엄격함을 확인했습니다. 박물관 측은 사람이 내쉬는 숨까지도 유물에 해가 될 수 있다는 교육홍보 영상까지 상영하고 있었습니다. 만찬을 허용한 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박물관 대형 모니터에서 만화영화가 돌아갑니다. 박물관 관람에 들떠 있는 어린이가 꿈을 꾸는 장면입니다. 영문도 모른 채 벌을 받는 어린이에게 한숨을 쉬면서 이산화탄소를 내뿜었다고 말합니다. 잠에서 깬 어린이는 학교에서 알려준 박물관 예절을 지키기 위해 가방에 숨겨놨던 과자를 꺼내두고 집을 나섭니다.

만화에서는 규칙을 조금만 어겨도 벌을 받고 뉴스에서는 대통령 부인이 활짝 웃으며 같은 규칙을 어기는 상황. 아무 때나 국가만 들먹이면 통할 것이라는 얕은 판단이 국격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무뇌충이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박물관 만찬을 강도 높게 비판합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
“일반인들 같으면 박물관 안에서 물도 제대로 못 먹게 합니다. 왜냐면 물이라는 거는 유물에 손상이 갈 수도 있고 또 습도 같은 것도 문제가 되고 해서. 전시실을 식당으로 개조를 해서 유물을 수장고에 갖고 와서 벽에다가 디스플레이를 했어요. 쉽게 말하면 고급 레스토랑처럼 만들어서 우리의 국가 보물들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썼다, 라는 거죠. 이거는 무뇌충 아니면 할 수가 없어요.”

“만찬장에 공식 이런 만찬장에서 만찬을 하고 걸어서 직접 가서 유물을 보여줬다고 그러면 아주 뭐 좋은 역할이 되겠죠. 행사, 연회장소가 따로 있어요. 전시관을 저렇게 꾸미는 경우는 없어요. 저는 아마 전 세계에서 처음일 거예요, 아마.”

국립중앙박물관 뿐 아니라 어느 박물관에서도 유물이 전시돼 있는 한 음식 반입이 금지되고 사진촬영도 제한됩니다. 이명박 정부의 박물관 만찬은 특권계층의 호사를 부각시켜 위화감을 조작한 천박한 이벤트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사례가 이미 2005년 6월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에 있었습니다.
@ KBS2 뉴스

“신문협회가 국보인 창경궁에서 국제적 만찬을 열어서 문화재 훼손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네. 일반인들에겐 술은 물론 도시락도 금지된 곳입니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나요?”

2005년 6월 1일 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정전이자 국보인 창경궁 명전전 앞뜰에서 수백 명이 몰려든 술 파티가 열렸습니다. 주최는 한국 신문협회. 후원은 서울시였습니다.

당시 서울 시장이던 이명박 대통령도 참석해 만찬사를 했고 술 먹고 담배까지 피운 이날 행사를 두둔했습니다. 2005년 KBS가 보도한 내용을 잠시 보시겠습니다.

@ KBS2 뉴스

[이명박 / 당시 서울시장]
“우리 역사를문을 닫아 놓으면 아무도 모르잖아요. 외국 사람에게 보이고 싶은 생각에서 문화재청이 열린 마음으로 (허용) 한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권력자와 기득권층의 반문화적인 행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은 언론의 견제가 무뎌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6년 전 고궁 만찬을 비판했던 KBS는 이번 박물관 만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홍보에 가까운 보도를 했습니다. 지상파, 보도채널, 종편까지 방송이란 방송은 대체로 비슷했습니다. 각 방송사 보도가 어땠는지 모아봤습니다.

@ KBS 뉴스, 3월 26일

“정상회의에 동행한 영부인들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첫 공식 만찬에서 우리 문화와 역사에 멋과 매력을 만끽했습니다.”

@ YTN 뉴스, 3월 26일

“한국의 전통문화를 감상했습니다.”

@ 동아종편 뉴스, 3월 26일

“부인들은 서울의 봄과 문화를 만끽했습니다.”

@ 조선종편 뉴스, 3월 26일

“김윤옥 여사는 각국 정상의 배우자들을 상대로 우리문화를 알리는 문화 외교를 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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