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이드 따라 관광명소 다닌 1억짜리 미국 공무국외출장

2022년 12월 05일 14시 00분

○ 기자     : 방문 기관도 여행사에서 선정한 건가요? 
● 공무원  : 네, 맞습니다. 자기들이 섭외가 가능한 기관을 섭외해준 거죠.
○ 기자     : 의회가 방문 기관을 선정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요?
● 공무원  : 현실적으로 어렵죠. 현지에 컨택할 수 있는 데가 없고, 무턱대고 저희들이 방문할 기관에 공문을 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양산시의회 사무국 관계자와의 인터뷰 발췌 
경남 양산시의회 의원들은 지난 10월 단체로 미국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 계획서에는 미국의 선진 폐기물 처리시설과 도시 재생사업, 노인복지 정책 등과 관련된 해외 우수 사례를 벤치마킹해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는 게 출장의 목적으로 돼 있다.
이를 위해 양산시의원들은 의회사무국 직원들을 출장길에 대동했고, 국민의 세금을 1억 넘게 사용했다. '공무 국외 출장', 즉 공적인 업무를 위해서라면 필요한 경비를 지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의원들은 물론 시의회 사무국조차 방문 예정 기관에 공문 한 장 보내지 않았다. 방문 기관 선정과 섭외는 모두 민간 여행사에게 맡겼다. 
양산시의회 사무국 관계자는 “여행사가 섭외 가능한 (방문)기관을 섭외했다”며 “미국 현지에 컨택할 수 있는 데가 없고, 무턱대고 공문을 보낼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뉴스타파는 세부 일정표를 입수, 양산시의회 미국 출장단이 미국에서 과연 무엇을 하고 왔는지 확인했다. 

공무 국외 출장 방문지 11곳 중 8곳이 관광 명소

사막 한복판에서 수상 레포츠와 카지노 등을 즐길 수 있는 미국의 휴양도시 라플린.
영국 BBC방송이 설문조사를 통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 50곳' 중 1위로 꼽은 그랜드 캐년과 브라이스 캐년, 자이언 캐년, 라스베가스, 브라보팜, 요세미티 국립공원,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와 피어 39 그리고 현대미술관.
이는 경남 양산시의회 의원들이 지난 10월 17일부터 25일까지 7박 9일 동안 실제 방문한 곳이다. 
비용은 모두 1억 1,400여만 원. 전체 양산시의원 19명 중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불참한 3명을 제외한 16명과 의회 사무국 직원 6명 등 22명의 출장 비용을 모두 합친 금액이다. 이 가운데 시의원들이 자체 부담한 일부 경비를 제외하면, 1인당 평균 500만 원씩 총 1억 1,000만 원의 세금이 사용됐다. 

미국에서 한국에 없는 그런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지난 10월 25일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앞.
뉴스타파 취재진은 미국 출장을 마치고 이날 귀국한 경남 양산시의회 의원과 공무원들을 만났다. 공적인 업무를 핑계로 해외 관광을 다녀온 것은 아닌지 질의하기 위해서다. 이종휘 양산시의회 의장은 “LA의 시간제 주차장과 주차시설 등 미국에서 우리 한국에 없는 그런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원들이 방문한 시설들이 과연 억대의 세금을 들여 살펴볼 만한 곳인지는 의문이다.
양산시의원들은 미국 출장 첫날 LA에 있는 '한인타운 시니어 앤 커뮤니티 센터'를 방문했다. 한 시간 남짓 LA 한인들이 자체 운영하는 비영리 노인 복지 시설에 대한 소개를 듣고, 단체 사진을 찍은 게 이날 일정의 전부다. 이튿날에는 리버사이드카운티가 운영하는 한 폐기물 매집장을 방문해 2시간가량 머물렀다. 이곳은 미리 예약만 하면 10명 이상 단체에게 무료로 개방하는 견학 시설이다. 
그러나 양산시의 자원 재활용 수준은 미국의 리버사이드카운티보다 훨씬 앞서 있다. 양산시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종이와 플라스틱, 캔 등 생활쓰레기를 종류별로 구분해 재활용하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는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를 도입, 폐기물 매립을 최소화하고 있다. 또 투명 페트병을 넣으면 인공 지능이 자동으로 선별 파쇄하고, 처리한 페트병의 개수에 따라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를 제공하는 무인 회수 로봇 시스템도 갖췄다.
게다가 양산시의 자원회수 시설은 국내 최초로 섭씨 1700도 이상 고온에서 생활쓰레기를 소각하는 열분해 용융방식을 도입, 발암물질인 다이옥신 배출을 최소화하고 소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에너지를 난방에 사용한다.  
생활 폐기물을 대부분 그냥 땅에 파 묻는 미국보다 선진화된 시설이다. 
양산시의원들이 도심 재생사업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 하기 위해 방문한 라스베가스의 '컨테이너파크'는 컨테이너를 이용해 공사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한 것 외에는 양산시의 청년몰 사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구나 양산시의원들은 당초 방문하기로 했던 샌프란시스코 하수처리장과 모스콘센터는 아예 가지 않았다. 대신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을 3시간 정도 견학했고, 아메리칸드림의 대표적 상징물인 금문교와 불과 수미터 앞에서 바다사자 무리를 볼 수 있는 피어 39를 관광했다. 
이처럼 양산시의원들과 공무원들이 미국 공무 출장 중 방문한 11곳 중 8곳은 관광명소였다. 
마치 미국 서부의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는 패키지 여행 상품과 비슷한 일정으로 짜여진 출장 계획은 양산시의회 공무국외출장 심의위원회를 무사히 통과했다. 

유명무실한 국외 공무 출장 심의위원회

양산시의회는 지난 2003년 8월 공무 국외여행 규칙을 제정했다. 외유성 출장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원회에서 출장 계획이 타당한지 여부를 심의하도록 했다. 대학교수와 시민 사회단체 대표 등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는 여행의 필요성과 여행기간 및 경비가 적정한지 여부를 심의하도록 했다. 
사전 심의 제도 자체는 그럴듯하지만 운영이 문제였다. 심의위원장이 스스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말할 정도다. 
지난 10월 4일 양산시의회 특별위원회 회의실에서 심의위원회가 열렸다. A 심의위원이 “(의원들이) 벌써 미국 간다고 소문이 나 있는데 지금 여기서 우리가 끝까지 안됩니다(고 하면) 뭐라고 하겠습니까”라고 말하자, B 위원장은 “요식 행위에 도장 찍는 것 밖에 안된다”고 답했다. 
B 위원장은 또 “(출장) 코스를 바꿀 수도 없고, 금액을 바꿀 수도 없고, 다 정해 놓고 찬반만 물어보니까 이 위원회가 참 별 볼일 없는 위원회다”고 덧붙였다. 

출장비를 과다 지급한 사실도 모른 외부 전문가들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원들은 출장비가 규정보다 과다하게 지급된 사실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공무원들은 해외출장을 갈 경우 직급에 따라 5개, 출장 지역에 따라 4개 등급으로 구분해 정해진 여비를 받는다. 양산시의회와 같은 기초의회 의장과 부의장은 직급으로 구분한 5개 등급 중 4번째인 제1호 라목해당되며, 가등급의 도시를 방문할 경우 하루 최대 223달러의 숙박비와 107달러의 식비를 받는다. 나등급의 도시에 머무를 경우 숙박비와 식비는 각각 160달러와 78달러로 줄어든다. 
미국의 경우 뉴욕과 LA, 샌프란시스코, 워싱턴DC 등 4곳이 가등급이며, 나머지 지역은 모두 나등급이다.
양산시의회 미국 출장단이 가등급에 해당하는 LA와 샌프란시스코에 잠시라도 머문 기간은 4일. 
그런데 양산시의회는 전체 7박 9일의 일정 가운데 6일을 가등급으로, 나머지 3일은 나등급에 해당하는 식비를 지급했다. 게다가 의원들이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는 날에도 식비를 지급했다. 식비 지급 규정을 위반한 것. 
공무원 여비 규정에 따르면 식비는 여행 일수에 따라 지급하지만 항공 여행의 경우 따로 식비가 필요한 경우에만 지급하도록 돼 있다. 
뉴스타파가 추산한 결과 이종희 시의장과 최선호 부의장은 각각 136달러, 시의원 14명과 공무원 6명은 103달러씩 모두 2,232달러의 식비를 더 받았다. 
양산시의회는 뉴스타파 지적에 따라 과다 지급된 출장비를 환수하기로 했다. 환수 규모는 출장비 지급 당시 환율을 적용해 332만 원 상당이다. 
제작진
촬영이상찬
편집정지성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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