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당시 불거진 윤석열 캠프의 단체 카톡방(이하 '단톡방') 운용과 관련된 의혹의 실체가 확인됐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수백 개의 단톡방을 만들고 관리한 주체는 윤석열 후보의 공식 캠프 조직이었다. 윤석열 캠프에서 만든 단톡방에 허위 사실이 공표되거나,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게시물이 유포됐다면 이는 공직선거법 위반이다.
대통령 선거 7일 전, 오마이뉴스가 단톡방의 존재를 처음 세상에 알렸다. 문제의 단톡방에는 상대 후보 비방 이미지와 허위 정보 게시물들이 수없이 존재했다. 이를 단톡방 외부로 전파하라는 지시까지 내려졌다. 윤석열 후보 본인을 비롯한 캠프 주요 간부들이 포함된 방도 있었다. 오마이뉴스 보도 이후 윤석열 캠프 관계자들은 "단톡방은 캠프와 관련 없다"며 선을 그었다. 누군가 자발적으로 만든 단톡방에 자신을 초대했을 뿐이란 것이다.
뉴스타파는 이 같은 해명을 뒤집는 문건과 증언을 확보했다.
오마이뉴스의 단톡방 보도 직후, 윤석열 캠프는 대책 회의를 열었다. 회의 결과를 간략히 정리한 보고서가 만들어졌다. 작성자는 윤석열 캠프 정책총괄지원실장 신용한 씨다. 앞서 신 씨는 뉴스타파에 명태균이 실질적으로 소유한 미래한국연구소가 만든 비공개 여론조사 보고서(명태균 보고서)가 대선 당일 캠프에서 배포된 사실을 폭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명태균 보고서를 받은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선관위에 신고하지 않은 불법 선거 캠프가 운용된 사실도 신 씨의 증언으로 교차 확인됐다. 대통령실은 은 서울 강남 화랑에 존재했던 불법 캠프에 대해 지금까지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캠프가 일종의 '여론 공작팀'까지 직접 만들어 운용한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로 처음 확인됐다.
2022년 3월 2일 신용한 당시 정책총괄지원실장이 작성한 전략조정회의 결과 보고서. '오마이뉴스 단톡방 특전사방 보도 관련' 논의가 이날 회의에서 이뤄진 사실을 적으면서 빨강색 굵은 글씨로 강조했다.
'단톡방' 보도에 대한 윤석열 캠프의 해명은 '거짓'이었다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둔 2022년 3월 2일 새벽 6시. 오마이뉴스는 윤석열 캠프가 단톡방을 최소 120개 이상 운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관련 기사 : [단독]윤석열 포함된 20번 카톡방, '특전사' 자처한 그들이 벌인 일)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선대본) 조직통합총괄단이 단톡방을 운영하면서 이재명 후보를 비방하는 이미지를 제작하고,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광범위하게 퍼뜨리고 있다는 내용이다.
단톡방은 ‘020-어게인SNS소통위원회’라는 식으로 방 이름 앞에 번호가 붙었다. 단톡방을 만든 실무 조직은 ‘어게인SNS소통위원회’, 줄여서 '네트워크어게인'이라고도 불렸다. 이들은 윤석열 캠프 조직통합본부 소속이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20번 단톡방에는 윤석열 후보자와 권영세 선대본부장, 조경태 직능본부장, 박형준 부산시장 등 캠프 핵심 관계자들도 참가한 것으로 나온다.
보도로 논란이 불거지자 권영세 선대본부장은 “(단톡방에) 끌려들어 간 것”이라며 “정치인들은 단톡방에서 막 나가는 것도 어렵다”고 언론에 해명했다. 캠프에서 단톡방 참가자들에게 윤석열 후보 명의의 임명장을 준 것에 대해서는 "임명장을 받은 것을 갖고 (윤 후보자가) 책임감을 갖고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단톡방과 캠프는 관련이 없다는 취지의 해명이었다.
어게인SNS소통위원회가 운영한 단톡방 리스트(우). 위원회 책임자가 게시물을 '전파해달라'고 말하는 모습(좌). ※ 익명 제보자 제공
보도 2시간 후 열린 '전략조정회의'..."대체 대화방 등 주의 요청"
뉴스타파는 윤석열 캠프 정책총괄지원실장이었던 신용한 씨의 외장하드에서 캠프 내부 문건들을 무더기로 발견했다. 오마이뉴스 보도 불과 두 시간 뒤,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6층에서 대책 회의가 열린 사실이 문건으로 확인됐다.
문건 제목은 ‘전략조정회의 결과 보고’. 문건 작성 시각은 2022년 3월 2일 오전 8시 51분이다. 전략조정회의는 선거 당일까지 매일 열렸던 아침 회의다. 본부장 및 실장급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서 현안을 제시하고 논의하고 결정하는 자리다. 신 정책총괄지원실장은 매일 아침 전략조정회의에 참석한 뒤, 논의 결과를 보고서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날 회의 결과 보고 문건 하단에 ‘오마이뉴스 단톡방 특전사방 보도 관련'이란 문장이 등장한다.중요한 의제였다는 걸 표시하기 위해 빨강색 굵은 글씨로 강조 처리했다. 바로 아래에는 '대체 대화방 등 주의 요청’이라는 문장이 추가로 적혔다. 이에 대해 신용한 씨는 "(그날 분위기가) 굉장히 좀 심각했던 것 같다. 그 당시에 그런 보안이 오픈돼서, 마치 쉬쉬 하듯이 운용하는 단체 대화방이 들킨 것 같은 혼란함이 있었던 것 같다"면서 회의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허위 보도였다면 결과 보고서 내용 자체가 달랐을 것"이라면서 "전략조정회의에서 만약에 (보도가) 허위였다면 ‘강력하게 허위 사실로 고소 고발을 한다 언론에 대처한다’ 이렇게 했을텐데. 그게 아니라서 ‘기존 단톡방은 폭파 다 삭제하라’ 이렇게 됐을 것이고. 이런 일이 있으니 정책본부에서도 단톡방 운영을 조심하라는 의미로 '대체 대화방' 그러니까 새로 만드는 대화방에 대해서는 각별히 보안을 조심하라는 차원으로 제가 적었던 걸로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회의 자필 메모지에도 '오마이뉴스 단톡방 보도'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캠프 문건과 신 씨의 증언을 종합하면, 여론 공작을 위한 카톡방의 존재가 언론 기사로 드러난 상황에서 이를 대체할 대화방을 다시 만들되, 앞으로는 철저히 보안을 유지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것으로 확인된다.
신용한 전 윤석열 캠프 정책총괄지원실장이 자필로 작성한 회의 메모지.(2022.3.2.) 하단에 '오마이뉴스 단톡방 보도'라고 적혔는데, 이날 관련 논의가 이뤄졌음을 뒷받침한다.
신용한 전 윤석열 캠프 정책총괄지원실장의 외장하드 저장된 캠프 내부 문건. 윤석열 캠프 전략조정회의 개최 시간과 장소, 참석 대상이 기재됐다.
'여론 공작팀'은 공직선거법 위반 가능성...윤 대통령은 공소시효 남았다
단톡방에는 경쟁 후보에 대한 '허위 사실'이 수없이 올라왔다. 일례로 2022년 2월 17일,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재명 후보의 옆집이 불법 선거사무소”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로부터 사흘 뒤, 단톡방 참가자 정연태 씨는 '이 후보가 집 베란다를 뚫어 경기주택공사 합숙소를 왕래했다'고 주장하며 증거 사진까지 첨부했다. 정 씨의 게시물은 단톡방에서 페이스북 등 SNS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사진 속 공간은 이재명 후보 자택이 아니었다. 명백한 허위 정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 당시 정연태 씨는 윤석열 캠프 공보특보였다. 공식 직함을 가진 캠프 관계자의 불법 행각이 발각됐지만, 논란은 거기까지였다. 캠프가 단톡방을 직접 운영한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관련 저서를 집필한 오윤식 변호사는 “추상적인 표현이 아닌 구체적으로 허위 사실을 표현했다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위에서 언급한 '이재명 후보 베란다' 게시글이 이에 해당한다. 오 변호사는 또 “허위가 아닌 사실을 적었다고 할지라도 후보자를 비방하는 내용이라고 법원이 판단하면 후보자 비방죄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수사와 재판을 통해서 유무죄를 가려야 한다는 얘기다.
공직선거법 제250조(허위사실공표죄)는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공표하면 7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천만 원 이하 벌금에, 제251조(후보자비방죄)는 당선되거나 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후보자를 비방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공직선거법의 공소시효는 선거 후 6개월이다. 다만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공소시효가 멈춘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뉴스타파는 캠프 내부 문건과 신용한 씨의 증언 내용이 사실인지 대통령실과 당시 윤석열 캠프 본부장급 인사들에게 전화와 SNS로 해명을 요청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