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대포 33톤...’세월호 고립작전’의 전말
2015년 04월 30일 17시 33분
5월 1일 오후 열린 2015 노동절 집회는 세월호 유가족들과의 연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집회가 내건 요구 사항으로 ‘최저임금 1만 원 인상, ‘노동시장 구조 개악 폐기, ‘공적연금 강화’와 함께 ‘세월호 진상 규명’이 포함됐다.
집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함께 나선 가두행렬은 청와대로 방향을 잡았다. 세월호 1주기에 남미 순방을 떠났다가 돌아온 대통령에게, ‘특별법 시행령 폐기’를 직접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어김없이 경찰의 ‘차벽’이 등장했고 한 차례 충돌이 빚어졌다. 버스에 줄을 묶어 당기는 시위대에 경찰은 캡사이신을 분사하며 맞섰다. 지하도를 통해 현장 주변으로 가고 있던 시민들까지 경찰에 제지당했다.
시위대 행렬은 가까스로 경찰 포위를 뚫고 인사동 입구까지 다다랐다. 그러나 거기에도 차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앞에도 뒤에도 옆에도 온통 차벽이었다. 유가족들을 포함한 시위대는 당초 예정했던 광화문 집회를 대신해 그곳에서 즉석 집회를 열어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주장했다.
날이 어두워지도록 대치하던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결국 몸싸움이 시작됐다. 경찰은 캡사이신을 무차별 분사했다. 일부 실신하는 집회 참가자도 발생했다.
이윽고 밤 10시 40분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물포를 쏘며 강제 해산을 시도했다. 물포 공세는 1시간 가까이 이어졌고 최루액 혼합 비중도 갈수록 높아졌다. 곳곳에서 구토 증상을 호소하는 시위대가 속출했다.
새벽 2시 30분쯤 경찰은 강제진압과 연행을 시도하며 시위대를 밀어붙였다. 유가족들이 온몸으로 막아봤지만 역부족. 시위대들은 대부분 인사동길 안쪽으로 밀려났고 이 과정에서 30명이 연행됐다.
새벽 3시 반을 넘길 무렵 도로 위엔 유가족들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유가족들은 동이 터올 때까지 경찰에 둘러싸인 채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있었다.
** 5월 2일 오전 8시 현재, 유가족들은 다시 청와대로 가겠다며 경찰의 포위를 뚫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뉴스타파는 이후 상황도 계속 취재해 속보로 전할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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