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간첩조작 검사가 사과도 없이 영전하는 나라

2022년 05월 13일 17시 33분

‘이시원’이라는 이름을 이렇게 많은 방송과 신문에서 다시 보게 될지는 몰랐다. 나는 그가 2018년 변호사가 된 뒤 평생 조용히 살아가리라 믿었다. 그가 저지른 일은 ‘검찰의 성골’이라는 신분이 아니었다면 형사처벌을 받고도 남을 일이었고, 어느 권력도 간첩조작사건 책임자라는 그의 죄과를 무시하고 공직에 등용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정을 화두로 집권한 윤석열 대통령은 그를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에 내정했다. 2015년 대구고검에 좌천돼 있던 윤석열 검사가 이시원 검사를 만나 교분을 다진 것이 계기라고 한다. 
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그가 교체된다는 소식은 없었다. 피해자 유우성 씨가 언론을 통해 이시원 씨의 사과와 사퇴를 요구했지만 그는 답하지 않았다. 그가 언론에 밝힌 것은 ‘검찰 시절에 있었던 일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한 마디였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간 잘 계셨습니까? 이제 비서관이 되셨는데, 그래서 이제 제가..
-임용이나 이런 게 된 건 아니니까요.. 

이시원 비서관은 “아직 임용된 것은 아니라”며 예의 나직하고 예의바른 목소리로 답했다. 2013년과 2014년 간첩조작사건이 한창 진행될 때도 그를 인터뷰 한 적이 있는데,그는 항상 예의 바르게, 그렇지만 중요한 의혹제기에 대해 간단히 무시하는 답변을 하곤 했다. 나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쨌든 청와대에서 일을 하실 것 같은데, 저는 좀 문제의식이 좀 있어요. 제가 생각할 때는 우리 비서관님께서 유우성 씨한테, 또 특히 유가려 씨한테 사과를 하시는 과정은 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공직을 하시는 입장에서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시원 검사는 유우성 유가려 두 남매의 삶에 큰 상처를 줬다. 그가 선입견을 갖지 않고 국정원이 조작한 증거들을 살폈다면 유우성 간첩조작사건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국정원은 중국에서 찍힌 위치정보가 있는 사진을 북한에서 찍은 것이라며 유우성이 북한에 간 증거라고 조작했지만 그는 국정원의 조작을 지나쳤다. 또 유우성이 북한에 들어갔다는 날 중국에서 통화한 기록이 있다는 사실도 지나쳤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들에 대해서는 이시원 검사가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단순 과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의 의도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품게 된 것은 국정원에서 한 진술이 거짓이었다는 유가려 씨의 고백에 대한 그의 태도 때문이었다.  
2013년 3월 4일, 유우성 사건의 사실상 유일한 증인이었던 여동생 유가려 씨에 대한 증거보전 재판이 열렸다. 증거보전 재판이란, 재판 이전에 했던 진술을 판사 앞에서 확고한 증거로 만들기 위한 재판이다. 증거보전 재판 이후에 증인이 진술을 번복하더라도 이전 진술이 증거로서 유지되는 것이다. 유가려 씨는  5개월 동안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 독방에 갇힌 채 담금질을 당하며 ‘오빠가 간첩'이라는 허위자백을 한 상태였다. 
이날 재판에서 여동생 유가려 씨는 구속돼 있던 오빠 유우성 씨를 처음 만났다. 만났다기보다 같은 공간에 있게 됐다. 오빠를 직접 보면 진술이 바뀔 것을 우려한 이시원 검사는 유가려 씨를 법정이 아닌, 영상증언실에서 증언하게 했다. 오빠를 볼 수 없도록 차단하고 목소리만 듣게 한 것이다. 국정원 여직원 2명이 유가려 씨를 옆에서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대비도 소용 없었다. ‘오빠가 간첩'이라는 허위자백을 하는 것이 오빠와 자신을 위해 좋은 일이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온 유가려 씨는 막상 재판정에 나온 오빠가 “왜 거짓말을 하느냐?”고 추궁하자 이내 무너졌다. 쉴 새 없이 울었고, “미안해”라는 말을 되뇌었다. “거짓말, 모두 거짓말”이라는 말도 했다. 재판 말미에 유가려씨는 “오빠를 5분만 만나게 해달라”고 했지만 이시원 검사는 거절했다. 당시 유우성 씨의 변호인이었던 장경욱 변호사는 법정에서 이시원 검사를 향해 “사건 조작하려고 하니까 힘드시죠?”라고 면박을 줬다. 그 말은 그 뒤 수년 간 벌어진 일을 예언한 촌철살인이었다. 
다음 날 이시원 검사는 유가려 씨를 검찰청으로 불렀다. 전날 증거보전 재판에서 보인 유가려 씨의 태도에 의문을 느낀 것이다. 유가려 씨에 따르면 당시 이 검사는 “국정원 직원들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 사실대로 말하라”고 종용했다고 한다. 평소같으면 ‘사실대로 말하라'를 ‘그동안 진술한대로 말하라'로 알아들었겠지만, 이 검사의 진지한 태도에 유가려 씨는 사실대로 말했다. ‘유우성 씨는 간첩이 아니고 그동안 국정원의 강압으로 거짓 자백을 한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사실을 이야기하자 검사는 같이 듣고 있던 수사관을 내보내더니 “이렇게 말하지 마라, 이렇게 이야기하면 도와줄 수 없다”고 몇 차례나 말했다고 한다. 
이시원 검사는 나중에 재판정에서 “유가려 씨가 진술을 번복한 것은 1분도 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검사 이시원: 그렇게 부인(유우성이 간첩이 아니라는)했던 시간은 1분도 안 되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는가요?
증인 유가려: 1분도 안 되었던 것이 아니고, 나에게 “왜 이렇게 거짓진술(오빠가 간첩이 아닌데 간첩이라고 진술)을 했냐”라고 물어서 내가 울면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가족을 위해서 도와주겠다고 하니깐 내가 마음고생하면서 진술에 협조했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검사 이시원: 그런 말은 들은 적이 없는데.
증인 유가려: 부인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검사 이시원: 알았습니다.

[2013년 6월3일 공판 조서 중 유가려 증언]
유가려 씨는 국정원 합신센터에서 5개월 간 담금질을 당하는 동안에도 ‘오빠가 간첩이라는 진술은 거짓’이라고 여러 차례 번복했고, 이는 진술서로 남겨졌다. 심지어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도 유가려의 ‘간첩 자백'은 거짓으로 나왔다. 그때마다 국정원 직원들은 ‘진술을 번복하는 것이 더 큰 죄'라고 윽박질러 허위자백을 유지했다. 당시 이시원 검사가 증거보전 재판을 신청한 것은 국정원 직원들로부터 유가려 씨의 자백이 매우 불안정하다는 말을 들어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재판정에서 유가려 씨가 유우성 씨를 만나지 못하도록 조치한 것도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그런데 재판에서 결국 국정원이 만든 거짓의 탑이 무너져내렸다. 
이쯤 되면 검사는 당연히 사건을 근본적으로 다시 봤어야 한다. 이시원 검사도 그런 문제를 느꼈기 때문에 유가려 씨를 불러서 ‘사실대로 말하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사실을 따르기보다 하마터면 국정원이 무너뜨릴 뻔한 탑을 다시 쌓는 쪽을 택했다. 그 결정을 한 순간, 이시원 검사는 결국 국정원 조작범들과 한 몸이기를 선택한 것이다. 
- 보도 매체에서 전화를 주시면 저는 일관되게 일단 말씀을 드리고 있는데요. 제가 검사로서 수행했던 직무와 관련해서 검사의 직을 내려놓은 다음에 언급을 드리는 것 자체가 좀 적절치 않다. 그래서 우리 최 PD님께서 말씀하시는 부분에 대해서도 지금으로서는 제가 이런 입장밖에 드릴 수 없다는 거를 좀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은 안 되더라도 앞으로는 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신 건가요?
- 제 입장은 똑같습니다. 제가 검사… 지금 상황에서 검찰에서 행한 여러 가지 업무에 대해서…
그게 도덕적으로 옳은 일일까요.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게?
- 제 입장은 똑같습니다. 지금 검사로서 행한 업무에 대해서 검사의 직을 내려놓고 난 뒤에 뭐라고 제가 언급하는 것 자체가 원칙에도 안 맞고 적절하지도 않고..”
그럼 검사 시절에 사과를 하셨어야죠.
- 다시 한 번 제가 말씀드리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 드릴 말씀은 저는 동일합니다.

이시원 씨는 같은 답변을 반복했다. 내가 유우성 씨 사건을 취재하던 당시 ‘검찰이 낸 출입경 기록이 위조된 것이라는데 검증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을 때도 그랬다. 그는 그때도 ‘재판정에서 이야기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 날 이시원 검사는 또 다른 조작된 증거를 법정에 제출했다. 그로부터 2달 , 중국 정부가, 검찰이 제출한 증거들은 위조됐다고 공식 답변을 한 뒤에도 이시원 검사를 비롯한 당시 검사들은 “중국 정부가 말하는 위조가 우리가 말하는 위조라는 뜻과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뉴스타파가 중국 관리들을 인터뷰한 영상은 도촬한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등 뻔뻔한 주장을 계속했다. 시간이 흘러 간첩증거조작이 백일하에 드러난 뒤에도 이 검사는 ‘나는 몰랐다'고 발뺌했다. 검찰은 그의 변명을 받아들여 정직 1개월로 사건을 끝냈다. 물론 그때도 그는 유우성 씨 남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그 뒤 그는 대구고검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하다 좌천돼 있던 윤석열 검사를 만났다.
2019년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사과를 권고한 뒤 문무일 검찰총장은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은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 검사가 증거를 면밀히 살폈어야 했는데 안 한 큰 과오가 있다. 굉장히 안타깝고 부끄럽게 생각한다”며 허리를 숙였다. 과거사위 조사를 토대로 유우성 씨가 이시원 등 당시 검사들을 고소했지만,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다.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이었다. 
이시원 씨는 아직도 자신에 의해 간첩조작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사과할 생각이 없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사람이 윤석열 정부의 공직자 감찰을 담당하는 공직기강비서관이 될 참이다. 그래도 되는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자기는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셨거든요.정말 묻고 싶습니다.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게 이렇게 하는 거냐고. 국민들의 목소리를 항상 낮은 자세로 경청하고 반영하는 나라를 만드시겠다고 했는데 지금 수많은 언론들이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지적하고 바로 잡아주기를 원하는데 바로잡지 않는 것은, 저는 이것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간첩조작 피해자 유우성 
제작진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