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1년 : 권력 장악, 포퓰리즘 도구로 전락한 언론

2023년 05월 11일 20시 00분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강한 조치를 내리는 데는 반대 입장이었어요. 오히려 제가 승인 취소까지 해야 된다고 더 강력하게 주장했어요. 위원장이 점수 조작까지 해서 승인 취소를 하려고 했다면 나와 입을 맞추거나 뭔가를 해야 하잖아요. 그런 시도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저는 점수 조작이라는 검찰의 시나리오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죠. 

김창룡 / 전 방통위원, 인제대 명예교수
김창룡 인제대 명예교수는 최근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TV조선 재승인 심사 점수 조작' 사건과 관련해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을 기소한 검찰의 수사 결과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월 초까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이었고, 2020년 TV조선 재승인 심사 당시 '조건부 재승인' 결정에 참여했던 당사자다. 지난 5월 2일, 검찰은 2020년 TV조선 재승인 심사 과정에 개입해 점수를 변경했다는 혐의로 한상혁 위원장 등을 기소한 바 있다.
검찰 수사 결과 곳곳에는 핵심 의혹과 구체적 증거가 빠져있다. 당초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건의 핵심 의혹, 즉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점수 조작 지시를 했다는 내용은 기소 내용에서 아예 빠졌다. 검찰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TV조선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평가 점수를 보고받고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는 것이 그간 제기되어 온 의혹에 대한 수사 결과다. 대신 검찰은 한 위원장이 점수가 수정됐다는 사실을 보고받고도 이 사실을 다른 방통위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점을 위계공무집행방해라고 봤다.
▲ 지난 5월 2일, 검찰은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을 2020년 TV조선 재승인 심사 과정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했다. 
김 명예교수는 유효기간 3년의 조건부 재승인을 직접 결정한 방통위는 그대로 둔 채 이를 방통위원장의 직권남용으로 본 검찰 주장에 분노했다. 일련의 결정은 방통위원 5인의 토론을 통해 결정됐다. 심사위원의 평가점수는 결정의 주요 참고사항 중 하나일 뿐이었다. 
당시 TV조선 재승인 결정을 바라보는 시민과 시청자들의 여론은 차가웠다. 승인 취소를 요구하는 국민 청원이 27만 건이 넘었고, 사전 시청자 의견 조사에서도 75%의 응답자가 같은 요구를 했다. 무거운 책임감 속에 여야 5인의 위원이 내린 결정을 검찰이 이른바 '법 기술'로 모욕한 셈이라고 김 명예교수는 말했다. 
1년에 걸친 감사원 특별감사, 4차례 압수수색과 30여 명 직원들에 대한 검찰의 고강도 조사 등 이른바 '먼지 털이식' 수사가 내놓은 결과물이다. 사건의 시시비비는 결국 법원에 가서 가려질 예정이다. 하지만 그 결과와 상관없이 한상혁 방통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해온 현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목적을 이뤘다. 
정부는 한 위원장에 대한 검찰 기소 직후 그에 대한 면직 절차에 들어갔다. 아직 사건의 진실이 가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기소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면직절차를 추진하는 것을 두고 적법성과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나올 법도 하지만 정부는 주저하지 않았다. 결국 이 사건을 둘러싸고 나타난 감사원과 검찰, 그리고 보수 언론이 보인 일사불란한 움직임 뒤에는 처음부터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 이전 문재인 정부 인사의 국무회의 참석을 거부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이후 불과 일주일만에 방통위에 대한 감사원의 특별감사가 개시됐다.
감사원의 특별감사는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 등 이전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장관급 인사를 향해 '국무회의에 참석할 필요 없다'라고 말한 지 일주일 만에 개시됐다. 윤 대통령이 임기 초반부터 추진해온 YTN 지분 매각도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는 이를 승인할 방통위원장 자리에 현 정부 인사가 있어야 한다는 점도 윤 대통령이 방통위원장 자리에 관심을 두는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반부터 주요 방송사들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여론을 자신에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서는 이들 방송국에 대한 인사권이 필요한 상태다. 결국 KBS 이사회와 MBC 방송문화진흥회를 관할하는 방통위원장의 영향력이 필수적이다.
22대 총선이 불과 1년 앞으로 다가온 상황, 정치적 자산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윤 대통령에겐 이른바 '언론 장악'이 시급한 과제다. 논란을 무릅쓰고 임기가 불과 2 달여 남겨놓은 방통위원장을 수사해 면직까지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의 속내에는 이러한 정치적 계산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언론과 힘겨루기 1년, 실종된 언론 정책

방통위 관련 수사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1년을 맞은 현 정부가 언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그간 정부가 언론과 관련해 관심을 기울여 온 것은 언론 자유를 두텁게 보장하는 언론 정책이 아니었다. 
지난해 9월 대통령 미국 순방 당시 이른바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 논란이 벌어지자, 정부는 대통령의 발언을 보도한 MBC를 비난했다. 전용기 탑승 배제 등 불이익을 주며 비판적 보도에 재갈을 물렸다. YTN의 정부 관련 지분을 매각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계획은 진행형이다. 특정 기업 사주에 넘겨 정권 친화적인 보도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11월, 용산 대통령실 이전의 명분이었던 국민 소통을 스스로 거둬들였다. 언론과의 이른바 '도어스테핑' 소통을 일방적으로 중단하고 반년째 밀실 대통령실을 운영하는 중이다. 지난 4월에는 '가짜 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 학계에서는 정부가 주장하는 가짜 뉴스의 개념이 무엇인지 반문했다. 실제 사업내용을 들여다보니, 보수성향 언론단체에 팩트체크 예산을 지원하는 등 정부에 우호적인 여론에 힘을 싣고 비판 여론을 단속하는 것에 가까웠다.
▲ 지난 3월 대통령실이 수신료 분리 징수를 묻는 게시물을 홈페이지에 올리자, 여당 정치인들은 이 내용은 내건 현수막을 전국에 내걸었다.
대통령 후보 시절 공약했던 수신료 분리 징수 문제를 끌어오기도 했다. 지난 3월 대통령실은 국민제안 홈페이지에 이 문제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묻는 게시물을 게재했다. 여당은 이에 발맞춰 'TV 수신료 강제징수 폐지'라는 문구를 단 현수막을 전국에 내걸었다. 국민제안 홈페이지 기준, 찬성 여론이 반대의 100배수에 이를 정도로 우호적인 여론이 압도적이다. 부진한 국정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정부여당의 카드라는 분석도 나온다.
분리 징수라는 의제는 던졌지만 그에 따르는 부작용에 대해선 정부도 여당도 아무런 언급이 없다. 정부는 전기 요금에 합산되어 TV 수신료를 청구하는 기존의 방식을 폐지하고 분리 징수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공영방송 재정을 어떻게 충당하겠다는 것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그간 언론학계에서는 공영방송의 역할을 제고하고 정치적, 재정적 독립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해왔다. 여러 선진국들은 섣불리 수신료 문제를 건드렸다가 공영방송의 재정 독립성을 해치고 방송의 질을 악화시키는 부작용을 겪었다. 합리적인 징수 방식에 대한 토론은 좋지만 현 정부가 밀어붙이는 'TV 수신료 강제징수 폐지' 구호는 그간의 논의 수준을 과거로 돌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탄식이 나온다. 
이어 최근 방통위원장을 겨냥한 수사와 면직 처분까지, 지난 1년 동안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은 꾸준히 후퇴하는 형국이다. 언론학자들은 이러한 지난 1년 정부의 행보에서 언론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보는 구태의 언론관이 드러난다고 지적한다. 언론 정책에 대한 고민이 없는 '반지성주의',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언론을 도구로 이용하는 '포퓰리즘' 정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언론 장악의 오래된 미래, "윤석열의 자유, 공허하다" 

언론을 정치의 도구로 여기는 정부의 언론관은 과거에도 언론의 자유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 전반의 자유를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아왔다. 이번 방통위 수사와 판박이처럼 닮아있는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정연주 KBS 사장 배임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 이전 노무현 정부 인사였던 정연주 당시 KBS 사장(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을 겨냥해 감사원 특별감사를 진행했다. 감사 결과가 검찰로 이첩됐고, 검찰을 이를 토대로 수사를 벌여 정 전 사장을 기소했다. 보수 언론은 정 전 사장의 도덕성을 공격하며 여론을 이끌었다. 이명박 정부는 기소 직후 정 전 사장을 해임했고, 이후 국내 언론 환경은 악화일로를 겪었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은 노골적이었다. 비판적 언론인은 정부 기관에 의해 사찰당하거나 해고당했다. 정부 시책을 지원하는 보도 일색으로 메인뉴스가 채워졌고, 언론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과거 군사정부 시절 이른바 '땡전뉴스'가 부활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 2008년 이명박 정부 초기 있었던 '정연주 KBS 사장 배임 사건' 수사와 해임의 이르는 과정은 현재 진행 중인 방통위 수사건과 판박이처럼 닮았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은 4년 뒤 최종심에서 무죄 판단을 받았다. 그러나 이미 임기가 끝나있어서 복권하지 못했다. 지난 2019년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한 검찰의 기소가 유죄 가능성이 낮은 무리한 기소였다고 결론 내렸다. 과거사위 조사에 참여한 검찰 간부들조차  스스로도 이 사건 기소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이 기소로 인해 벌어졌던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의 후퇴에 대해 책임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검찰총장은 과거사위의 권고에 따라 이 사건에 대해 사과했고, 검찰의 권한 남용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총장 사과 이후 불과 4년 뒤, 정연주 사건과 판박이로 닮은 방통위 수사가 진행되며 이러한 사회적 논의는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 학계에서는 언론의 자유, 민주주의의 후퇴가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일갈이 나온다.
입에서 자유를 말한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인권이나 언론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가고 있잖아요.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언론을 전용기에 태우지 않는다든가 진실을 부정하는 이런 행태를 보면 자유를 강조하는 대통령의 말은 현실에서 상반되게 벌어지고 있어요. 이 모습을 보며 국민들은 너무나 당황하는 거죠. 언론관은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지금까지 대통령의 언행을 보면 잘 되기는 틀렸구나 생각이 듭니다. 대통령은 지금 언론을 부정하고 있어요.   

김창룡 / 전 방통위원, 인제대 명예교수
제작진
촬영최형석
편집윤석민, 김은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