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임원들의 상이 등급에 대해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 설명해주시겠어요?” “일부 수익 사업이 대명으로 이뤄지고, 관리가 불투명하다는 점에 대해 해명해 주세요” “그런 걸 왜 당신한테 설명해야 돼!” “뭐야? 당신이 보훈처에 정보 공개 청구한 놈이야?. 이런 종북 XX들…” ” 이런 사이비 기자XX들…”, “여기가 어딘데 취재를 하고 지랄이야.” “전쟁터에서 죽다가 살아난 사람들이야.” 그러고 난 뒤 손이 올라가고, 여러 명의 직원들이 달려 들었다.
리포트에도 일부 소개된 상이군경회 본부에 대한 취재 장면이다. 기자에게 직접 손을 댄 이는 현직 상이군경회 상근부회장 박 모씨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시의원까지 역임했던 이였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현장 취재 과정에서는 상이군경회 인천시 지부 간부가 비록 전화 상으로 였지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험한 욕설을 내뱉었다. 상이군경회 수익 사업에 대해 취재한 나에게는 이 정도였지만, 가짜 상이 등급 의혹을 취재한 한상진 기자에게는 죽여버리겠다는 등의 협박까지 있었다. 취재 과정에서 험한 말이 오고 가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달랐다. 그런 ‘욕설’과 ‘폭력’이 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었고, 많은 부분에서 그와 같은 방법이 통해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내뱉는 ‘욕설’과 ‘폭력’에는 일체의 거리낌이 없었기 때문이다.
‘욕설’과 ‘폭력’은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겠다는 극단적인 표현이다. ‘상대방’의 인격을 짓밟는 야만적인 행위이다. 그래서 ‘욕설’과 ‘폭력’은 대등한 상대 사이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싸움’의 양상으로 발전되기 쉽다. 또한, 우월적 지위를 가진 사람에게는 그렇지 못한 상대방을 저급하지만 효과적으로 억압하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폭력적 지배’는 가장 쉽게 상황을 제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모든 비 이성적 상황을 정당화 시키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욕설’과 ‘폭력’에 대한 단상을 늘어놓는 이유는 20년의 기자 생활 동안 이번 만큼 욕설과 폭력에 시달린 예가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기자는 많은 경우 취재 대상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야만 한다. ‘설명’과 ‘해명’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혹시 있을지 모를 취재 과정에서의 오류를 점검하기도 한다. 최소한의 반론을 보장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상이군경회 본부에 대한 취재는 이런 과정이 묵살되는 현장이었다.
엉터리 상이 등급 수혜자와 수상한 상이군경회의 수익 사업에 대한 취재는 처음부터 쉽지 않으리라 짐작했다. 어쩌면 어느 정도의 봉변을 예상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국민의 세금을 엉뚱하게 낭비하는 것일 뿐 아니라, 전체 상이 군경 회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할 수익 사업이 일부 간부들의 이권 싸움으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고발이었기에 위험을 감수하고도 취재할만한 사안이었다. 특히, 많은 상이군경들이 등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고통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그들의 대변자 역할을 해야 할 상이군경회의 비정상적인 행태는 반드시 고쳐져야 하는 문제였다.
이번 프로그램의 제목인 ‘가짜가 진짜를 울리다’처럼 취재 과정에서 자주 든 생각은 상이군경회의 문제가 이 나라의 축소 판은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국민의 대변인, 단체 회원의 대변인들이 그 지위를 활용해 먼저 이익을 취하고, 정작 진짜들은 고통을 받아야만 하는 현실이 겹쳐져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정당하고 상식적인 문제 제기를 폭력적 수단으로 봉쇄해버리려는 모습들이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7년 여를 해직의 멍에를 써야만 했던 필자에게 그들이 내뱉은 다음 두 단어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종북XX”,”사이비 기자XX!”
하지만 그들과 똑같이 되지 않기 위해서 취재와 보도로써 그들에게 우리의 대답을 돌려준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