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경제원이 대학에 돈까지 주며 개설한 강좌의 실체
2017년 09월 05일 09시 50분
※ 이 기사는 2018년 7월 뉴스타파 탐사보도 연수에 참가한 연수생들(조은총, 허지원, 황다은)이 실습 과제로 제출한 결과물입니다. |
지난 7월 13일 저녁 7시, 서울 노원역 앞 광장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광장에서는 ‘스쿨미투 문화제 2018’ 행사가 한창이었다. ‘스쿨미투’란 초∙중∙고 학생들이 직접 학내 성범죄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활동이다. 문화제에는 스쿨미투 관련 학교의 졸업생과 재학생을 비롯해 학부모까지 참석해 학내 성범죄 사실을 알리고, 교육 당국에 대책을 촉구했다.
이날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서울의 한 사립학교 교사와 교직원들이 학생들을 상대로 저질러 온 성희롱과 성추행 등 성비위(性非違) 문제 때문이다. 교원들의 성비위는 20년 이상 지속되었지만, 최근에서야 스쿨미투 운동을 계기로 공론화되고 있다.
이 학교는 서울 노원구 용화여자고등학교. 재학생들이 교실 창문에 ‘#ME TOO’, ‘WE CAN DO ANYTHING’와 같은 글귀를 포스트잇으로 만들어 붙였던 이른바 ‘창문미투'가 일어난 학교다. 용화여고는 최근 서울시교육청의 감사를 받은 뒤, 성비위 관련 교사들에게 징계 권고가 내려진 상태다. 용화여고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서울 용화여고에 교원 성비위 문제가 불거진 것은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올해 4월 초다. 당시 용화여고 졸업생들로 구성된 ‘용화여고 성폭력 뿌리뽑기위원회’가 국민신문고에 신고를 했고, 서울특별시교육청 지시에 따라 학생들이 지목한 성비위 교사 4명이 수업에서 배제됐다. 곧바로 교육청 특별감사가 시작됐고 10일 남짓 진행된 결과, 성비위 교사 18명에 대한 징계 권고가 내려졌다.
징계 사유는 ‘품위유지의무 위반(성적 접촉, 발언)’, ‘사안 처리 부적정(성고충을 수사 기관에 신고하지 않음)’, ‘교직원 성교육 실시 소홀’ 등 4가지. 뉴스타파 탐사보도 연수생들이 교육청 등을 통해 확인한 감사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교직원 83명의 20%를 넘는 수가 처분대상자로, 중징계 6명(계약해지 포함), 경징계 5명, 경고 9명, 총 20건의 징계를 받아야 한다.
용화여고 2∙3학년 학생 1,108명 중 10%에 달하는 186명이 가해자로 지목한 A 교사는 파면을 권고받았다. 사유는 성적 접촉과 행동, 발언을 한 것과 이와 같은 위협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것이다. A 교사는 2014년 12월에도 학생을 성추행해서 교장의 경고를 받은 전력이 있다.
가해 교사의 구체적인 성비위 사실은 학생들의 증언을 통해 공개됐다. ‘노원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은 지난 6월 20일 용화여고 졸업생과 재학생들의 피해 증언을 모은 자료집, ‘스쿨미투 운동의 과제와 전망’을 발간했다. 이 자료집에는 교사들이 그 동안 학생들에게 가해온 성추행과 성희롱에 관한 내용이 증언 형태로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가장 많은 학생이 지목한 A 교사의 경우, 1996년 졸업생을 비롯해 2010년, 2012년, 2013년, 2018년 졸업생과 현재 학교에 다니는 재학생까지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증언한 피해 사실을 보면, A 교사는 어린 학생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언행을 상습적으로 해온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용화여고가 사립학교이기 때문에 교육청이 징계 권고를 하더라도 사립학교법에 따라 학교에서 구성한 징계위원회의 자체적인 결정으로 징계 수위가 확정된다는 것이다. 같은 성비위가 드러나더라도 공립학교는 교육청의 징계 의결 요구에 따라야 하지만, 사립학교는 교육청이 징계를 권고하더라도 따라야 할 의무가 없다. 공립학교에서 교원 징계가 이루어질 때는 징계위원회를 교육청에서 구성하지만, 사립학교의 경우 학교 법인에서 징계위원회를 구성한다.
이에 올해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른미래당 장정숙 의원은 “징계절차를 아예 밟지 않는 사례를 비롯해 사립학교의 폐쇄성과 사립학교 징계권자의 재량에 따른 솜방망이 징계, 봐주기식 징계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립학교가 교육청의 징계 권고를 무시하거나 징계 수위를 낮출 경우에 이를 제재할 방안이 있을까? 교육청 관계자에 따르면, 징계 의결에 대해 재심을 한 번 요청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재심 이후에도 권고를 따르지 않으면 교육청에서 직접 제재할 수 있는 권한이나 행정처분, 제도는 없다고 한다. 학급 수 조정이나 재정 지원 조정 등 간접적 제재 수단에 대한 매뉴얼도 없다.
또 교육청은 사립학교 징계위원회의 구성에 문제가 있더라도 제보가 있지 않은 이상 알 수가 없다고 한다. 학교는 징계 결과에 대해서만 교육청에 보고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징계위원회는 재단 인사 2명, 외부 인사 1명, 본교 재직 중인 제척 사유가 없는 교사 2명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용화여고의 경우, 교원에 대한 (중)징계는 징계위원회, 인사위원회, 이사회를 거쳐 처리된다. 용화여고 측은 징계위원회 구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인사위원회와 이사회에 징계 대상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의혹이 교내에서 제기되고 있다. 사실이라면 징계를 받아야 할 사람이 징계하는 주체가 된, 이른바 ‘셀프 징계’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서울시북부교육지원청에서도 이와 같은 제보를 받고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번 교원 성비위 사건의 징계 주체인 용화여고 법인은 1987년 재단 설립 승인을 받았고, 그해 6월 박용화 씨가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설립자 박용화의 세 아들 중 첫째 아들은 이사장, 둘째는 상근이사, 셋째는 행정실장을 맡고 있다.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인 첫째 아들 이사장을 대신해 둘째 아들인 상근이사가 이사장 역할을 하고 있고, 셋째 아들 박모 행정실장은 해외 연수 중인 교장을 대신해 학교 교장 역할을 하고 있다.
설립자의 둘째 아들인 박 모 이사는 용화여고 교감이었던 2003년, 학내 성추행 사실을 교육청 홈페이지에 게시한 학생을 퇴학 처분했다. 성추행 사실을 알린 학생을 옹호한 교사도 ‘성실의 의무’, ‘복종의 의무’ 등을 따르지 않았다는 사유로 해고됐다. 당시 재학생 300명은 부당하게 해직된 교사의 복직을 요구하며 학교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 문제뿐 아니라 학내 비리 문제가 추가로 제기되면서 졸업생들은 학교에 졸업장을 반납하고 이사장실과 교장실로 찾아가 면담을 요청했다. 재학생, 졸업생, 학부모가 힘을 모은 결과 해직된 교사와 퇴학당한 학생은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의 당사자들은 여전히 학교를 지키고 있다. 박 모 이사는 교감에서 교장으로 승진했고, 재직 중 뇌물수수, 불법 전학 알선 등으로 교육청에서 해임요구를 받았다. 그러나 박 이사는 이를 무시한 채 정상적으로 퇴임했다. 현재는 상근이사란 직함으로 학교에 출근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스쿨미투가 일어난 학교 중 사립학교의 비율은 80%를 넘는다.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전국에서 ‘스쿨미투’ 폭로가 나온 20개 학교 중 17개는 사립 중⋅고교였고, 이후 7월에 폭로된 3곳 또한 사립학교로 밝혀졌다. 사립학교에서 그동안 해결되지 않은 교원 성비위 문제가 결국 학생들의 입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용화여고 성폭력 뿌리뽑기위원회’와 ‘노원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과 같은 스쿨미투 관련 시민단체에서는 사립학교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사립학교법에 따라 교원 징계 권한이 사립학교 법인에 있는 한 성비위 문제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의원은 사립학교에 대해 “국민에게 의무교육을 제공하고 이를 이유로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다”며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국가의 법과 제도의 구속 아래에서 법률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6년 기준, 교육청에서 사립 고등학교에 지원한 금액은 4조 2,659 억 원에 달했다. 박 의원은 “사립학교의 성비위 교원이 공립학교의 성비위 교원보다 관대한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올해 발의된 사학법 관련 개정안은 총 14건이다. 그러나 이중 원안 가결된 것은 성범죄 징계 시효 연장을 명시한 개정안 하나였다. 나머지 계류 중인 13개 법안 중 사립교원 징계와 관련된 내용은 대표적으로 ▲징계 효력 강화 ▲교원징계위원회 구성 변동 ▲교원의 징계사유여부 확인 의무화 ▲관할청의 수사 및 징계 권한 확대가 있다. 문제는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고 있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계류 중인 개정안들은 사립학교의 교원 성비위 척결에 있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성비위 교사에 대한 최종 징계 권한이 사립학교에 있기 때문이다.
개정안을 발의한 의원실 관계자는 “솔직히 한두 조항을 개정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학교라는 ‘공공성’과 사립이라는 ‘자율성’의 경계가 불명확한 현행 사학법 내에서 발의할 수 있는 내용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법안을 발의할 때마다 사학재단, 교원단체, 교육부 등 여러 이해관계자의 빗발치는 항의도 부담이다.
‘사립학교개혁과 비리추방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의 정대화 대표는 “여당은 (개정에) 의지가 없고 야당은 반대”하는 것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야당은 사학재단과 이해를 같이하고, 여당은 2005년 전향적인 사립학교 법 개정의 후폭풍으로 개정을 하려다 정권을 잃었다는 자조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05년의 사학법 개정안은 사학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학교법인 운영권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성폭력 가해자 고발이 있고 나서 징계가 진행 중인 지금, 용화여고 재학생에게 미투운동 이후 학교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파면 대상인 A 교사가 학교에서 나갔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후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교사들이 많이 보이지만, 몇몇 교사들은 “미투 때문에 무슨 말을 못 하겠다”라는 말을 하며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한 재학생에 따르면, A 교사가 수업 배제 조치를 받았음에도 동료 교사들에게 교사와 학생 중 누가 사주했는지 캐묻고 다니고 있다. 또 다른 징계대상자인 C 교사는 학생들에게 자신을 고발한 주동자를 색출하겠는 말을 했다고 한다. 취재 중에 만난 용화여고 교사는 이 같은 상황에서 쉽사리 학생들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학교는 과연 근원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을까? 용화여고 교사에게 학교가 주도적으로 성폭력 예방 교육을 실시하거나, 성폭력 사건 대응 매뉴얼을 작성하는 등 자정 노력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는 “내부적인 자정 노력은 전무하다”며 “(교직원들이) 교육청의 연수에 수동적으로 참여할 뿐이다”라고 답했다.
징계위원회 구성과 법인의 문제점, 그리고 학교의 안일한 사건 대응에 대한 용화여고 측의 답변과 해명을 듣기 위해 행정실에 전화를 걸었다. 이사장이나 상근이사를 연결해달라고 했지만, “미국에 있다”, “출근 날짜와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직원들도 알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용화여고 법인은 최종 징계 처분을 8월 16일 전까지 내려야 한다. 교육청이 특정감사 후 처분을 요구한 6월 18일에서 60일 이내로 징계결과가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용화여고는 이전에도 학내 성추행을 은폐하고 교육청 감사결과를 무시한 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 동문, 시민들은 이번 징계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그런데 징계결과가 제대로 나오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시민단체에서는 가해 교사들이 신고 주동자를 찾고 있는 만큼, 사안이 잠잠해지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피해자들을 고소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복수의 교직원은 감사결과를 받고 나서 7월 16일에 교육청에 재심의 요청을 했다. 교육청은 경고 대상자인 한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기각했으나, 여러 징계대상 교원들이 감사결과에 반발하고 있다.
올해 용화여고에서 ‘창문미투’가 일어난 지 약 4개월이 지났다. 6월 28일에는 교육부, 서울시교육청, 여성가족부가 3자 간담회를 열어 성희롱·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학교를 만드는 방안을 협의했다. 협의 내용에는 사립학교 성비위 교직원에 대한 징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사립학교법 개정을 추진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그런데 지난 7월, 부산과 광주의 사립학교 3곳에서 또 스쿨미투가 잇따라 일어나 교육현장에서 실질적인 변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노원스쿨 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의 이혜숙 활동가는 “용화여고 문제가 끝이 아니라 시발점이 되어 모든 학생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시민들 한 명 한 명이 적극적으로 힘이 되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화여고 성폭력 뿌리뽑기위원회’ 소속 A 씨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런 일이 후배들에게는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을 방지하는 것뿐인데 관료들은 사안이 가라앉기만 바라는 것 같다”며 시민들이 지속해서 감시해주기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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