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정의

30년 만에 재심, 전교조 북침설 교육의 진실은?

2020년 02월 05일 18시 00분

“학생과 교사, 스승과 제자가 법정에서 진위를 다투는 아픔이 있었거든요.”

청주 상당고 강성호 교사는 지난 31년간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다. 강성호 교사는 1989년 대학을 졸업하고 충북 제원고등학교로 첫 발령을 받은 지 불과 석 달만에 구속됐다.

죄목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수업시간에 “6.25는 남침이 아니라 미군이 먼저 침략했다, 북한도 잘 산다”는 등 북한을 찬양하는 교육을 했다는 것이다.

강 교사는 수업도중 경찰에 강제 연행된 뒤 1999년 복직될 때까지 10년간 교단을 떠나야 했다.

강 교사가 구속되던 1989년 5월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출범을 앞두고 교사들이 줄줄이 구속됐던 시기다. 전교조 결성에 앞장선 교사들에게 ‘빨갱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여론을 호도하는 방법으로 전교조 결성을 막기 위해서였다.

5월 24일 서울 인덕공고 조태훈 교사는 1년전 술자리에서 동료 교사에게 북침설을 말했다는 이유로, 26일 경북 영주 동산여중 이수찬 교사는 한 여학생이 김일성을 만나보고 싶다고 쓴 낙서를 방치했다는 이유로 각각 재판에 넘겨졌다.

조태훈 교사와 이수찬 교사는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가 항소심에서 승소했지만, 강성호 교사는 대법원에서 유죄가 최종 확정됐다.

30년의 세월동안 수형번호 279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있었던 강 교사는 지난해 비로소 용기를 냈다. 법원의 재심 신청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기로 한 것이다.

뉴스타파는 강성호 교사의 재판기록 일체를 입수해, 사건의 진실을 추적했다.

 # 의혹 1
경찰은 범행날짜를 이미 알고 있었다.

충북 제천경찰서가 1989년 5월 19일 작성한 수사보고서에는 강성호 교사의 범행 날짜가 각각 같은해 4월 11일과 4월 25일로 적시됐다.

그러나 뉴스타파 취재결과 수사보고서가 작성된 날까지 경찰이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한 5명중 어느 누구도 범행 날짜를 정확히 증언하지 못했다.

5월 18일 조사를 받은 제원고 육성회장 노모씨와 유 모 부회장은 정확한 날짜를 모른다고 답했고, 김 모 총무는 북침설 교육 얘기를 전혀 들어본 적 없다고 했다.

5월 19일 경찰에 출석한 제원고 최모 교장은 강성호 교사의 이른바 의식화 교육에 대해 구체적인 날짜를 대며 진술했지만 정작 북침설 교육 날짜에 대해서는 3월 21일부터 5월 2일 사이라고 뭉뚱그렸다. 북침설 교육을 받았다고 주장한 학생을 직접 면담했던 제원고 신 모 교감 역시 3월초부터 4월말까지라고 말했을 뿐 구체적인 범행날짜를 밝히진 못했다.

경찰이 범행 날짜에 대한 구체적인 증언을 확보한 것은 수사보고서를 작성한 다음날이었다.

제원고 학생이 5월 20일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친 뒤 담임교사와 함께 경찰서에 출두, 지난 4월 11일과 4월 25일 각각 북침설과 북한 찬양 교육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이 이 학생의 증언이 나오기 전에 이미 범행 날짜를 알고 있었다는 건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 의혹 2
북침설 교육, 학교측은 왜 사실 확인을 안 했나?

강성호 교사와 함께 제원고에서 근무했던 김성장 교사는 당시 상황을 정리해 기록했고, 이 기록물은 1990년 책으로 발간됐다. 이 책에는 당시 2학년 7반 담임교사였던 신 모씨는 강성호 교사가 경찰에 체포된 5월 24일 학생들에게 북침설 교육을 받았는지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를 했다고 나온다.

하지만 신 교사가 북침설 교육을 처음 들은 것은 일주일 전인 5월 18일 점심무렵.

2학년 7반 이미연(가명, 이하 학생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 학생은 친구 이영자와 함께 이성 문제 등을 상담하다 수업시간에 북침설을 교육받았다고 말했다. 신 교사는 학생주임 교사를 따로 불러 의논한 뒤 최모 교장과 신모 교감에게 보고했다. 교장은 교감에게 사실 확인을 지시했고, 신 교감은 이미순 학생만 불러 면담했다.

5월 18일 오후부터 5월 24일 오전까지 일주일간 이 학교 교장과 교감, 신 교사 중 어느 누구도 강성호 교사는 물론 다른 학생들에게 북침설 교육을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 조사하지 않았다.

31년이 세월이 흘러 최 모 교장은 이미 유명을 달리했고, 신 교감의 근황도 알 수 없었다. 수소문끝에 신 교사가 충북 제천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고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했다. 문자메시지로 질문 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동료 교사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될 때까지 교장과 교감, 담임교사 모두 쉬쉬하며 제대로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것이 이 사건의 두번째 의문이다.

# 의혹 3
359명을 이긴 7명의 증언

강성호 교사가 구속된 다음날 제원고 학생들은 운동장에 나와 집단 시위를 벌였다. 당시 수학여행을 떠나 학교에 없었던 1학년을 제외하고 2.3학년 학생들이 모두 시위에 참여했다.

학생들은 강성호 교사로부터 북침설 교육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쓰고, 선생님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강 교사의 무죄를 주장하며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한 한 학생은 359명. 반면 북침설 교육을 받았다고 진술한 학생은 2학년 7반의 7명에 불과했다.

뉴스타파는 북침설 교육을 들었다는 학생들이 경찰과 검찰, 법정에서 각각 진술한 기록을 꼼꼼히 따져봤다.

이미연 학생은 경찰조사에서 북침설 교육을 직접 듣고 옆에 있던 김은희에게 “이북이 남한을 침범했다고 배웠는데 (강 교사는)미군이 먼저 이북을 침범했다고 하는데 우리에게 전혀 다른 것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이영자 학생은 처음에는 북침설 교육을 직접 들었다고 했다가 나중에 강 교사와의 대질 신문에서 “이미연과 김은희가 하는 대화를 듣고 북침설 교육을 받게 된 것을 알게 됐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정작 김은희의 진술은 달랐다. 김은희는 “남침이다 북침이다 하는 이야기를 직접 듣지는 못했고, 그 시간에 옆자리에 앉은 이미연과 이영자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서로의 증언이 서로 엇갈려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 어려운 상황.

그런데 이들의 진술이 모두 거짓이었다.

김은희 학생이 북침설 교육을 했다는 그날 학교를 결석했기 때문이다. 당시 교실에 없던 학생과 서로 얘기를 주고 받았다고 거짓 증언을 한 것.

결석했던 학생이 경찰서에 출석해 위증한 경우는 또 있었다. 김숙희는 “ 강 선생님이 사진첩을 가지고 와 한장한장 넘겨가며 ‘북한도 많이 발전해 잘 살고 있다. 금강산 백두산 사진을 보여주며 너희도 통일이 되면 이런 곳으로 신혼여행을 갈 수 있다’고 말했다”며 당시 수업 상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하지만 이날 출석부에는 이 학생이 결석한 것으로 돼 있었다.

이명자 학생은 검찰 조사에서 북침설 교육을 듣지 못했다고 답했다가 석달 뒤 법정에 출석해서는 북침설 교육을 직접 들었다고 증언했다.

북침설 교육을 받았다고 진술했던 이하영 학생은 옆 친구가 쓴 자술서를 베껴 쓴 사실이 들통나기도 했다.

이처럼 강성호 교사로부터 북침설 교육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학생들 진술에 일관성이 없었다. 하지만 법원은 이들 7명의 주장을 절대 다수인 359명의 목소리보다 더 중요한 증거로 채택했다.

# 의혹 4
왜 경찰은 강성호 교사를 불법 체포했나?

19일 작성된 경찰의 수사보고서는 강성호 교사의 범죄행위를 입증하기 위해 불온 서적과 사진 책자 등에 대해 사전 압수 수색 영장이 필요하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압수수색 영장은 발부되지 않았다.

대신 담당 검사는 수사를 개시하되 혐의 유무를 명확히 한 후 재지휘를 받으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경찰은 체포영장 없이 강성호 교사를 연행해 구금했고, 압수수색 영장 없이 강 교사의 책과 사진첩을 무단으로 압수했다. 경찰이 불법으로 입수한 책자는 강씨의 유죄를 입증하는 증거로 활용됐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강성호 교사의 책 10권을 일일이 나열하며 평소 불온한 사상을 갖고 있는 강 교사가 북침설 교육 등 북한의 주장에 동조 찬양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감자씨와 볍씨의 통일이야기가 미군을 몰아내고 반민족적 반민주적 세력과의 치열한 투쟁과정을 통해 통일을 이뤄야한다는 내용을 담았다고 지적했다.

뉴스타파가 국회도서관의 협조를 얻어 경찰이 압수한 서적과 동일한 출판본을 찾아 검증했다. 재판부 지적과는 달리 통일에 대한 학생들의 글과 북한 실상을 이해하는 글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게다가 경찰청 산하 공안문제연구소는 이 책이 “북한당국에 대해 실체를 오인하게 만드는 문제점은 있으나 용공적이라 할수는 없다”는 감정 결과를 내놨다.

당시 제천 경찰서는 경찰청 산하 공안문제연구소에 불온 유인물에 대한 감정을 의뢰했다.

공안문제연구소는 현재 경찰대학 산하 치안정책연구소로 간판을 바꿔달고 더이상 불온 서적에 대한 이적성 여부를 감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2천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용공서적 감별사로 악명이 높았던 곳이다.

당시 경찰이 감정을 의뢰한 책자는 모두 17권. 공안문제연구소는 ‘찢겨진 산하’ 단 한 권에 대해서만 용공성이 있다고 판단했을뿐 나머지 16권은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감정했다.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강성호 교사를 소위 말하는 의식화교사의 증거로 나열한 10권의 책 중 9권은 이른바 불온 서적이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일관성 없는 학생들의 증언와 함량 미달의 증거로 강 교사는 자신도 모르게 빨갱이 교사가 됐다.

그리고 다시 교단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지난해 5월 강 교사는 청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지난 11월 재심 결정을 내렸다. 재심 첫 공판이 열린 지난 1월 30일 그는 다시 법정에 섰다. 31년전 법정에 출두하면서 그가 손바닥에 썼던 진실과 승리를 입증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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