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이 명예훼손 혐의로 기자를 고소했다는 뉴스를 본 아내가 그날 밤 기자의 소주잔을 채우며 건넨 소리다. 국민일보에서 해직된 뒤 3년여간 법원을 들락거린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서게 될 남편이 짠하다고 한다.
기자의 마음도 편하진 않았다. 부인과 수술을 앞두고 심란해 있던 아내에게 고민거리를 얹어준 것 같아 더욱 미안했다.
사실 기자는 ‘나경원 의원의 딸 입학 부정 의혹’을 보도하면서 법적 분쟁에 휘말릴 것으로 예견했다.
하지만 소송을 겁내 진실을 외면한다면 99% 시민들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비영리독립언론 뉴스타파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뉴스타파를 믿고 진실을 밝힌 이재원 성신여대 교수의 용기에 답하는 길이기도 했다.
기자는 성신여대 학내 분규에 대한 취재 과정에서, 이 교수로부터 2012학년도 특수교육대상자 전형에서 부정이 저질러졌다는 뜻밖의 ‘양심선언’을 듣게 됐다.
당시 면접위원이었던 이 교수는 나경원 의원 딸이 면접 도중 신분 노출을 했고, 실기 면접 과정에서 해당 학생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25분간 면접이 중단됐으며, 면접위원장이었던 실용음악학과장 이병우 교수의 부적절한 ‘편들기’가 있었다는 점을 고백했다. 장애인이기도 한 이 교수는 이 일로 지난 5년간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여당 3선 의원의 딸이 연루된 부정입학 의혹. 이 교수는 직접 카메라 앞에 나와 실명을 공개하며 인터뷰할 정도로 자신의 증언이 명백한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증언을 뒷받침해 줄 증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교수는 면접이 끝나고 며칠 뒤 같은 학교에 재학중인 선배 교수 A씨에게 면접 당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가 꾸지람을 들었다고 했다. A씨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이 교수가 공정하지 못한 면접을 진행한 데 대해 질책한 적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가 한 증언의 신뢰성이 한층 높아졌다.
하지만 부정입학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았다. 성신여대와 나경원 의원 측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지만, 이들은 관련 보도가 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일체의 대응을 하지 않았다. 당초 선거 운동 모습을 촬영하고 10여 분간 짬을 내 인터뷰를 하기로 약속했던 나경원 의원 측은 인터뷰 목적이 딸의 부정입학 의혹과 관련된 것임을 알고 돌연 약속을 취소했다.
성신여대 측은 이병우 교수와의 인터뷰를 방해했다. 서면으로 질의 내용을 보내주면 충실히 답하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기자의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실마리는 외곽 취재를 통해 조금씩 풀려나갔다. 2011년 5월 나경원 의원이 성신여대에서 특강을 했고, 이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성신여대가 특수교육대상자 전형을 급조한 사실을 확인했다.
제보도 이어졌다. 이를 통해 나경원 의원과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 간의 관계가 매우 밀접했음을 보여주는 여러 객관적 증거를 확보했다. 이 중 하나는 지난 2013년 성신여대는 극심한 학내분규에 휩싸이면서 심화진 총장이 해임될 위기에 처하자 나 의원 측 인물들이 구원투수 역할을 한 사실이다.
당시 성신여대 이사회는 교비 횡령과 인사권 남용 등의 이유로 심화진 총장을 해임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부 이사들의 사퇴하면서 이사회 내 총장 해임 정족수가 부족하게 돼 개방이사 선임에 나서게 됐다. 이 때 나경원 의원의 전 보좌관과 서울시장 후보 당시 캠프 법무팀장을 맡았던 이가 개방이사 후보 추천위원으로 선임됐다. 이후 개방 이사 추가 선임이 무산됐고, 결국 심화진 총장은 해임 위기를 넘겼다.
이후 심화진 총장은 새누리당 서울시장 경선 후보 선거대책위원장, 유력 정치인 출신을 교수로 영입하는 등 자신의 학내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권 뒷배를 활용하는 처세를 보였다.
4·13 총선을 한 달여 앞두고 나온 이 보도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뜨겁게 달궜다. 네이버와 다음 등 인터넷 포털에서 하루종일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교훈에도 변하지 않은 언론<br>‘침묵의 카르텔’에 묻힐 뻔 하기도
하지만 주류 언론들의 태도는 달랐다. 9개 종합 일간지 가운데 한겨레와 경향만이 3월 18일 자에 뉴스타파 기사를 인용 보도했을 뿐이다. 다른 신문과 지상파 방송은 이 사건을 완전히 외면했다. 한 종편은 나경원 의원을 두둔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내기도 했다. 마치 미리 짜기라도 한 듯한 ‘침묵의 카르텔’이었다. 이들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난해 야당 의원의 불법 행위에 대해 수백여 건의 기사를 쏟아내며 물어뜯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진실을 외면하고, 권력의 추가 기우는 정도에 따라 기사를 쓰는 이중 잣대야말로 국민들이 언론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다. 우리 언론은 2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 ‘기레기’라는 신조어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세월호 희생자들로부터 얻은 교훈을 우리 기자들이 잊지 않았으면 한다.
뉴스타파 보도 이후 나경원 의원은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기자를 상대로 형사 고소한 데 이어 1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그러나 당장이라도 법적조치를 취할 것처럼 으름장을 놨던 성신여대와 스페셜올림픽코리아는 쥐 죽은 듯 조용한 상태다. 무엇이 두려운지 뉴스타파 취재진의 출입을 봉쇄했다.
진실은 바지 주머니 속 송곳과 같아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다.
기자는 법정 공방을 통해 그동안 나경원 의원과 성신여대측이 감추려 했던 추악한 진실이 낱낱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