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대선을 전후하여 명태균과 나눈 280여 건의 SNS 대화를 입수해 보도하고 있다. 총 280개에 달하는 대화 이미지에는 김건희 여사가 사실상 자신이 대선 후보인 것처럼 행동하며, 명태균 씨를 통해 김종인과 이준석을 만나는 상황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김건희 여사가 직접 주요 정치인들과의 접촉을 주선하는 내용들이다. ‘장님무사와 주술사’라는 비유가 딱 들어맞는 대목이다.
공익제보자 강혜경 씨에 따르면 명태균 씨가 “윤석열은 장님 무사이고 김건희는 앉은뱅이 주술사”라고 윤석열 부부를 한 우화에 빗대어 말한 적 있다고 한다. 우화에서 장님무사는 앞을 볼 수 없지만 강한 힘을 가졌고, 앉은뱅이 주술사는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지만 장님무사의 어깨 위에 앉아 무사에게 길을 안내해준다.
김건희, 명태균에게 “김종인 위원장님 많이 노하셨을까요?”
대선 출마 선언 이틀 전인 2021년 6월 27일, 김건희 여사는 명 씨에게 “지금 전부 최재형 뒤에 김종인이 있다고 퍼졌습니다. 맞을까요? 걱정됩니다”라며 걱정섞인 카톡을 보냈다. 이에 명 씨는 “전혀 걱정하지 말라”며 “제가 위원장님께 말씀 다 전했습니다”라고 답했다. 당시 김종인 위원장은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직을 그만 둔 상태였고, 최재형은 국민의힘 대권 주자로 떠오르던 시기였다. 이 시기 마침 최재형이 감사원장직 사의를 표명하자 김 여사가 다급해진 것으로 보인다.
2021년 6월27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출마 선언을 이틀 앞두고 있던 시점에 김건희 여사가 명태균 씨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2021년 6월 29일 윤석열은 서울 서초동의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출마 선언은 김종인 전 위원장과 연락없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그로부터 한달 전 김 전 위원장은 "윤석열이 먼저 연락해오길 기다린다며 “윤석열이 시대가 요구하는 ‘공정’이란 브랜드를 자기 것으로 만들더라 그래서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조선일보와 인터뷰 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이 연락도 없이 출마 선언을 강행하자 김 전 위원장은 기자들에게 “윤석열 출마 선언 기사는 찾아보지도 않았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다음 날인 6월 30일, 김 여사는 명 씨에게 김 전 위원장이 “많이 노여워 하신다”며 “오늘 김종인 위원장에 전화를 안 드려도 되는 거냐. 내일 드려야 하는 것이냐”며 적절한 통화 타이밍을 물었다. 명 씨는 “내일 위원장님을 제가 찾아뵙고 난 뒤 전화드리겠다”며 김 여사를 달랬다.
김 여사는 명 씨를 통해 김 전 위원장을 만나기 위한 약속을 잡는다. 2021년 7월 2일 김 여사는 명 씨에게 “8시반에 김종인 위원장에게 전화드릴 것”이라며 식사 장소와 구체적 날짜를 어떻게 해야 할지까지 물었다. 명 씨가 김 여사에게 “위원장에게 직접 여쭈라”고 답하자, 김 여사는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김건희, 명태균에게 “어머니 구속이 남편에게 흉재가 될까요?”
이 대화가 이뤄지기 바로 전날인 2021년 7월 1일, 김 여사는 자택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에 명 씨를 초대했다. 명씨는 “어제 어머님 안색이 너무 안 좋아 걱정됐다. 내가 모든 능력을 다 해서 윤 총장님 대통령으로 만들어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 여사는 “어제 어머니 안색을 보셨냐?”고 되물었고 명 씨는 “주방에서 참외를 주신 분 아닙니까?”라며 “이번 선거를 꼭 이겨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졌다”고 결의를 다졌다. 이에 김 여사는 “그분은 일하시는 이모님”이라고 답했다.
명태균 씨가 김건희 여사의 초청으로 아크로비스타 자택에 초대 받은 다음날, 김 여사는 모친 최은순의 구속이 남편에게 '흉재'가 되는지 또 명 씨에게 물었다.
김여사의 모친 최은순 씨는 이날 (21년 7월 2일) 22억9천만원의 불법 요양급여를 타낸 혐의로 1심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김 여사는 “어머니 구속이 남편에게 흉재가 되는지 극복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러면서 “저도 극악스럽게 검찰에서 괴롭힐 것 같냐”며 불안한 마음을 표출했다. 명 씨는 “후보 배우자라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답하며 김 여사를 안심시켰다.
윤석열도 명태균에게 "김종인 주소 알려달라"
다음날(3일) 오전 11시께, 김 여사는 김종인 위원장에게 전달해달라며 7월 4일 저녁식사 예약 정보를 보냈다. 그러면서 “남편한테 직접 보내라할까요? 일단 남편 번호를 알려드린다”며 윤석열의 번호를 보냈다.
4일 저녁 김 전 위원장과 윤석열-김건희 부부가 식사를 한 자리에는 김영선 국민의힘 의원도 참석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저녁식사를 마친 김 여사는 명 씨에게 “김종인 위원장이 화는 좀 푸신 것 같냐”고 물으며 “아직 좀 덜 풀렸는지”까지 확인했다. 명씨는 “위원장님이 기분 좋게 갔다”며 자신이 “내일 김 위원장과 저녁 식사를 같이 하니 넌지시 물어보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김 여사는 “오늘 만남을 절대 보안으로 해달라며 김영선 의원에게도 전달해달라”고 덧붙였다.
김 여사가 '보안'으로 해달라는 카톡 메시지로 미뤄볼 때, 2021년 7월4일, 김종인 전 위원장과 윤 후보 내외가 함께 식사한 자리에 김영선 국민의힘 의원도 함께 한 것으로 보인다.
김 여사는 며칠 뒤 김 전 위원장의 생일 선물을 논의하면서도 사모님 화장품을 살지, 아니면 상품권을 드릴지 묻는 등 시시콜콜한 모든 것을 명 씨에게 묻고 또 물었다.
김종인 위원장과의 관계와 관련해 명 씨에게 의존한 건 윤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윤석열 후보가 국민의힘에 입당한 다음 날인 7월 31일 오전 10시께 윤 후보가 명 씨에게 “김종인 위원장의 주소가 ‘경희궁의 아침’ 몇 호인지” 물었다. ‘경희궁의 아침’은 서울 종로구에 있는 오피스텔형 주거단지다. 명 씨는 윤 후보에게 호수를 알려줬다. 이날 오후 ‘윤석열이 국민의힘에 입당한 지 하루만에 김종인과 1시간 비공개 회동을 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윤석열이 이준석ꞏ안철수에게 던질 질문도 김건희가 명태균 통해 준비
김건희 여사가 명 씨를 통해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당대표를 만나고 국민의힘 입당을 추진한 정황도 확인된다. 2021년 6월 27일 명 씨는 김건희 여사에게 “이준석 대표는 화요일 오후 8시에 아크로비스타에서 만나면 된다”는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비공개 미팅 일정을 직접 잡은 것이다.
이준석 대표를 만나기로 한 날, 김 여사는 명 씨에게 “준석씨에게 어떻게 질문하면 되는지 문자로 좀 주세요. 간단하게라도요. 웬만하면 질문만 하려고요”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명 씨는 국민의힘 예상 경선 일정과 방식, 언제까지 입당해야 경선에 참여할 수 있는지, 윤석열 후보가 시급하게 보완해야 할 3가지 등 총 4개의 질문을 적어 보냈다.
윤 후보와 이 대표, 그리고 명 씨의 미팅은 아크로비스타 자택에서 이뤄졌다. 미팅이 끝나고 김 여사가 “오늘 미팅은 잘 된 것이냐”고 묻자 명 씨는 “총장님 댁에서 나와서 이준석 대표한테 다음 대통령 꼭 만들어 줄 테니깐 이번에는 윤석열 총장님 대통령 만들자고 둘이서 손 잡고 세번이나 약속했습니다”라며 이 대표의 연락처를 김 여사에게 보냈다. 김 여사는 “감사합니다”라며 “내일 안철수 대표 만나면 어떤걸 질문할지 간단히 문자달라”고 또다시 부탁했고 명 씨는 또 다시 4개의 질문을 적어 보냈다.
명태균이 김 여사는 앉은뱅이 주술사, 윤 대통령을 장님 무사하고 표현한 이유가 이들의 SNS 대화에 엿보였다. 김 여사는 자신이 대선 후보인 것처럼 적극적으로 앞에 나섰는데, 김종인 전 위원장과 이준석 당대표와의 만남을 결정하고 이들을 만나 질문을 주도한 사람도 윤 후보가 아닌 김 여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