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생태보고서 : 집 없는 청춘, 민달팽이족

2013년 03월 20일 16시 54분

단단한 집을 이고 다니는 달팽이와 달리 집 없이 맨몸으로 다니는 민달팽이. 비바람으로부터 연약한 몸을 보호하기 위해 민달팽이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 있을까. 2013년 한국에도 민달팽이와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종족이 있다. 바로 도시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사는 청춘들, 바로 민달팽이족이다.

<도시생태보고서> 1회에서는 4명의 민달팽이를 관찰했다. 반지하 방부터 고시원, 하숙, 원룸까지 살아보지 않은 곳이 없는 정우는 현재 낡은 상가건물의 옥탑방에서 살고 있다. 친구들과 함께 월세30만원과 공과금을 분담하며 사는 성은은 반지하 방에서만 7년째다. 학교 근처 방값이 부담스러워 통학하는 수연은 아침 5시반에 일어나야만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방값으로 나가는 지출을 줄이기 위해 정헌은 아예 학교에 기거하는 쪽을 택했다. 비록 집 없는 맨몸이지만 이 도시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4마리의 민달팽이들. 이번 뉴스타파M에서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민달팽이족 생태보고서를 내놓는다.


우리는 달팽이를 행운의 동물이라고 부른다. 겨울엔 추위를 막고, 천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해주는 집, 달팽이는 그런 집을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집이 없다. 집을 찾아 정처 없이 헤매는 우리, 인간 생태계의 맨 아래 등급, 우리는 집 없는 달팽이, 민달팽이다.

낡은 건물이 즐비한 서울의 한 대학가, 대학교 4학년생 정우의 집은 이 상가 건물의 스카이라운지에 있다.

“여기 머리 조심하시고요, 여기 어깨 조심하시고요.”

한 명 통과하기에도 비좁은 계단에서 조심할 건 또 있다.

“여기 가스밸브 조심하시고요.”

어두운 통로를 빠져나가면 보물같이 숨어있던 정우의 집이 나타난다. 이 옥상에 세워진 가건물이 서울살이 8년차 정우의 러브하우스다.

여름에는 더 덥고 겨울에는 더 춥다는 옥탑방. 정우는 지난 겨울에도 큰 고생을 했다. 12월 난방비가 20만 원이 넘게 나와, 1월부터는 보일러를 끄고 살고 있다.

[이정우 / 대학교 4학년, 자취생] “아침에 씻으려고 하는데 보니까 물이 안 나와서 보니까 수도관이 얼었다고 하더라고요. 동파가 안 되려면 물을 틀어놔야 하잖아요. 물을 조금씩 그렇게 틀어놨는데 그 다음달엔 수도요금이 너무 많이 나와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래도 큰 창문이 있고 빛도 들어오는 이 집은 그 동안 살아온 집에 비하면 강남의 타워팰리스나 다름없다.

[이정우 / 대학교 4학년, 자취생] “반지하라고 해도 그냥 거의 완전히 지하실 개념이라서 햇빛도 안 들어오고 아침에 6시에 일어나면 이게 아침 6시인지, 밤 6시인지 구별도 안 가고...”

수업이 끝난 강의실에 밤늦도록 불이 켜져 있다. 대학원생 정헌이는 좀처럼 집에 갈 채비를 하지 않는다. 정헌이에게는 학교가 곧 집이기 때문이다.

[박정헌 / 대학원생] “한 달 생활비가 20~30만 원 많이 잡으면, 제가 방까지 구해버리면 그게 두 배로 뛰어버리는 거잖아요. 나름대로 줄일 수 있는 건 최대한 줄이자 해서 의식주 중에 저는 주를 선택한 거죠.”

학비와 생활비를 대 주는 부모님에게 더 이상 손을 벌릴 수 없어 선택한 길이다. 씻는 건 화장실에서, 밥은 학교 식당에서 해결한다. 강의실은 겨울 추위에도 끄떡없는 안락한 침실이다. 소파의 방석을 모아놓으면 고급 침대가 부럽지 않다.

[박정헌 / 대학원생] “안정되게 자고 싶어서 이걸(방석을) 떼올 수 있으니까 이걸 떼 와서 구석진 강의실 같은 데 두고 자면 훨씬 편하겠다 생각을 한 거죠.” (나름 생활의 발견이네요?) “그렇죠.”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삼포세대, 정헌이는 안락한 집마저 포기했다.

[박정헌 /대학원생] “일반적으로 집이라고 하면 자기의 돌아갈 곳이 있다, 다른 사람 눈치 안보고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그런 장점이 있잖아요. 그런데 여기 있으면 그런 생각이 사라지는 게 큰 변화이고, 누구를 탓할 수 없는데 나는 피해자가 되는 이상한 부조리한 상황, 그래서 어디에다 화풀이할 수 없는 그런 상황.”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성은이, 성은이의 꿈은 햇빛이 드는 방에서 사는 것이다. 서울살이 8년 동안 성은이의 집은 늘 땅 밑에 있었다.

[김성은 / 취업준비, 자취생] “1년 말고는 7년은 반지하에서 살았네요? 햇볕도 잘 못 받고 우울하기도 하고 공기도 안 좋고 이러다보니까 환기가 잘 안되잖아요.”

성은이는 지금도 보증금 300만원, 월세 30만 원의 반지하방에서 살고 있다. 친구 두 명과 월세를 나눠 내지만 아르바이트로 한 달에 20만 원을 버는 성은이에게는 그조차 큰 부담이다.

[김성은 / 취업준비, 자취생] “방세 10만원 내고 이것저것 하고 이러면 학자금 대출(3천만 원) 이자 내고 그러면 거의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이 얼마 없어요.”

성은이는 언제쯤 아늑한 집에 피곤한 몸을 누일 수 있을까.

[김성은 / 취업준비, 자취생] “반지하에만 너무 있다보니까 햇볕 쬐는 집에서 살고 싶다 이런 생각 많이 하거든요. 그런 얘기도 많이 하고 우리는 언제쯤 이 반지하 라이프를 탈출 할 수 있을까.”

정우의 옥탑방은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는 45만 원짜리다. 숨만 쉬고 살아도 다달이 45만원이 나간다. 생활비라도 아끼려다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습성이 있다. 쌀을 3분의 2컵 씩 네 번 정확하게 계량해 밥을 짓고.

[이정우 / 대학교 4학년, 자취생] “한 끼가 한 이 정도, 이 정도가 한 끼고요.”

소시지 개수를 세는 버릇도 생겼다.

[이정우 / 대학교 4학년, 자취생] “이 앞에 슈퍼에서 봉지 당 천원에, 그러면 이걸 두 번에 나눠먹을 수 있더라고요. 한 개당 14개에서 12개 사이로 들어있던데, 13개 들어있네요.”

한 끼 소시지량은 6개 내지 7개로 정해져 있다. 다된 밥은 미리 4등분을 해 놓고 네 끼에 나눠 먹는다.

[이정우 / 대학교 4학년, 자취생] “더 먹고 싶을 때에도 일단 지금 더 먹으면 내일 또 새로 밥을 해야 되니까 그런 것도 있고요.”

달걀프라이 1개에 소시지 6개, 쉰김치만으로 차려진 단가 1700원의 소박한 밥상, 먹고 돌아서면 배고플 나이 스물 아홉 청년 정우의 주식이다.

옷장에, 책상에, TV에, 전신 거울까지 갖출 건 다 갖춘 방이지만 정우가 돈을 주고 사온 건 거의 없다.

[이정우 / 대학교 4학년, 자취생] “살 때 좀 좋은 거 사야 돼요. 어디에서 주워오고 이러면 안돼.” (주워 온 거예요. 그거요?) “네.” (어디에서 주워온 거예요?) “전에 살 던 사람이 놔두고 갔나.”

고물상에서 3만원 주고 산 기타와 서랍장, 이불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누군가 버린 것을 주워 온 것이다.

[이정우 / 대학교 4학년, 자취생] (본인 건 어떤 거예요?) “제거는 여기 옷들하고 이런 거 옷걸이 같은 거..기타랑, 캣타워도 후배가 준 거고 제가 산 게 별로 없네요.” 정우의 재산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이정우 / 대학교 4학년, 자취생] “얼마 전에 텔레비전 보니까 이게 병 아홉 개 빈 병이 3만 원인가에 팔려가지고 저는 5만원까지 오르면 그 때 팔려고...”

민달팽이들은 평균 48만 7천원의 월세를 부담한다. 편의점에서 한 달에 100시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주거비를 벌기 위해 학생들은 공부할 시간에 돈벌이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이정우 / 대학교 4학년, 자취생] “속칭 마루타라고 얘기하는데 제약회사에서 약 먹고 생체 실험이라고 해야되나. 3일 투자해서 50만 원 80만 원 받으니까 수입은 괜찮은데 아무래도 그 약을 실제로 내가 먹고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살펴보니까 건강에 안좋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아침 6시 30분, 수연이가 바쁘게 집을 나선다. 지난 학기까지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던 수연이는 더 이상 비싼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 통학을 결심했다. 학교 기숙사는 새내기에게 우선 배정된다. 3학년 수연이에겐 기숙사는 그림의 떡이다.

경기도 수원에서부터 서울 안암동까지 매일아침 먼 등교 여행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혹시나 자리가 있을까 기대하며 버스에 오르지만 오늘도 역시나다.

[이수연 / 대학생, 원거리 통학] “진짜 힘들어요. 계속 서 있으니까 힘들고 아침에 못 자서 피곤하고 버스도 되게 답답하고 그래요.”

버스에서 내려서는 다시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한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지하철을 타고 15분, 지하철을 갈아타고 25분, 걷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집에서 학교까지 두 시간, 왕복 네 시간 가까이 걸린다.

[이수연 / 대학생, 원거리 통학] “자취를 할 땐 경제적인 문제가 제일 부담이 되고 지금 통학을 할 때는 시간이 많이 아깝고 그래서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기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학교의 적립금을 가지고 기숙사를 좀 더 건축을 하면 더 많은 학생들이 혜택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항상 기숙사 건축은 말만 무성하고 실질적으로 이루어진 적이 없더라고요.”

서울의 청년 민달팽이족 110만 명. 소득이 적은 청년들이 더 많은 주거 비용을 내고 있다.

[김성은 / 취업준비생, 반지하 거주] “집에 가면 엄청 우울해져요. 그런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거죠. 내 빚은 어떻게 하지부터 시작해서 이 집구석은 어떻게 하지..”

[이정우 / 대학교 4학년생, 옥탑방 거주] “대학교만 가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것 같고 마음의 짐이 다 내려질 것 같았죠. 2031 처음 생각했던 것만큼 마냥 장밋빛은 아닌 것 같고...”

대학은 적립금을 쌓아두고 전국에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나지만 우리를 위한 집은 없다. 도시의 민달팽이들은 오늘도 집을 찾아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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