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함께재단>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은 지난해 말 ‘2021 뉴스타파-세명대 보도기획안 공모전’을 열었다. 기존의 ‘뉴스타파 대학생 탐사보도 공모전’과 ‘세명 시사보도 기획안 공모전’을 통합한 것이다. 국내 유일의 탐사보도 전문 매체인 뉴스타파와 역시 국내 유일의 실무형 저널리즘 대학원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힘을 합쳐 예비 언론인들이 취재, 제작의 실무와 함께 저널리즘의 공익적 가치와 취재윤리 등을 함께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엄정한 심사를 거쳐 네 편의 기획안이 선정됐고, 뉴스타파 제작진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진이 두 편씩을 맡아 데스킹을 진행해왔다. 지난 4월의 '남겨진 사람들' 시리즈 3편에 이어 이번에는 스쿨미투우먼파이터팀(이하 스우파팀)의 성범죄 교사 판결문 전수 조사 결과를 보도한다. (편집자 주)
법원과 검찰이 학교 교사 등 신고의무자의 성범죄에 대한 가중처벌 조항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성범죄 교사 10명 중 9명이 가중처벌을 피했다. 사법당국이 학생들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교사들을 엄중히 단죄하기는커녕 오히려 솜방망이 처벌을 한 셈이다.
스쿨미투우먼파이터팀(이하 스우파팀)은 지난 2018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4년간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 학생들에게 성추행 및 성폭행을 저지른 혐의로 재판받은 교사 155명에 대한 판결문 297건(1심 147건, 2심 121건, 3심 29건)을 전수 분석했다.
이 중 무죄 판결받은 교사는 17명, 유죄가 확정된 교사는 총 138명이다. 유죄 판결받은 37명은 각각 성폭력처벌법, 아동복지법, 아동학대처벌법 등이 적용됐고, 101명은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이하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 성범죄 교사 101명 중 90명이 가중처벌을 피했다.
그런데 취재 결과, 자신이 근무한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러 유죄가 확정된 교사 101명 중 90명(89.1%)이 청소년성보호법 제18조를 적용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교사의 판결문에 있는 ‘법령의 적용’란에 제18조가 명시돼 있지 않았다.
제18조는 신고의무자의 성범죄에 대해 가중처벌하도록 한 조항이다. 신고의무자인 교사가 자기의 보호⠂감독을 받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범할 경우,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처벌하게 돼 있다.
하지만 제18조가 적용돼 가중처벌받은 교사는 11명으로 전체의 10.9%에 불과했다.
용화여고 가해교사도 가중처벌 피했다
부산 동구 ㄱ고교에 근무하던 A 전 교사 역시 가중처벌을 피했다. A씨는 2016년 3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제자 5명을 14회 강제추행한 혐의로 2심에서 징역 1년을 확정받았다. 스우파팀이 성범죄 전문 변호사에게 자문한 결과, 제18조가 적용됐다면 A씨 형량은 최소 6개월 이상 늘어난다.
처단형은 법정형에서 가중·감경한 형의 범위이며, 선고형은 처단형 내에서 결정된다. 아동⠂청소년 대상 강제추행범의 법정형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성범죄 교사 처단형은 제18조로 인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1500만원 이상 45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가중된다.
▲ A씨의 처단형 하한 계산 과정을 나타낸 그래프. 제18조 적용 유무에 따라 6개월 형량 차이가 발생한다.
A씨의 경우 제18조가 적용되지 않아 처단형 하한이 2년에 그쳤다. 여기에 작량감경(법관 재량으로 형의 2분의 1 감경)까지 적용돼 처단형 하한이 1년으로 줄었다. 제18조가 적용됐다면 처단형 하한은 3년, 작량감경을 해도 1년 6개월이다. 결국 제18조가 미적용돼 가중처벌이 이뤄지지 않았고, 1년 6개월 이상의 형량을 받아야 하는 A씨 형량은 1년으로 줄었다.
경기 파주시 ㄴ고교에서 일하던 B 전 교사는 2019년 5월 제자 1명을 강제추행했다. B씨는 2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확정받았다. 제18조가 적용됐다면 B씨 형량은 최소 벌금 750만원으로 늘어난다.
지난 2018년 전국적인 스쿨미투 운동을 촉발한 서울 노원구 용화여고의 학내 성폭력 가해자 C 전 교사 역시 제18조를 적용받지 않았다. C씨는 2011년부터 2012년까지 학생 5명을 12차례 강제추행하는 범죄를 저질렀지만 형량은 징역 1년 6개월에 그쳤다.
용화여고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 위원 겸 학내 성범죄 고발 당사자 강한나(가명)씨는 “가중처벌 조항이 있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강씨는 “피해자 고통에 비하면 1년 6개월도 낮은 형량”이라며 “대다수 피해자는 법 조항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만큼, 검찰과 법원이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 제18조 미적용 일부 인정 "일선에 주의 촉구"
스우파팀은 대검찰청과 각급 법원에 청소년성보호법 제18조를 적용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대검 측은 제18조를 적용하지 않은 사실을 일부 인정했다. 서면 답변을 통해 “공소제기 시 제18조를 적용 법조에 명시하지 않은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3월 25일 해당 법 적용에 대해 일선에 주의를 촉구하는 등 조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해당 판결문 기재 범죄사실에는 제18조와 관련된 피고인들의 신고의무자 지위가 명확히 기재돼 있고, 피고인들의 지위, 추행방법 및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검찰사건 처리기준 및 양형기준에 따라 구형량을 결정하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어떻게 주의를 촉구했는지 구체적인 정보공개는 거부했다. 대검 관계자는 “해당 정보는 포괄적으로 수사에 관한 정보라고 판단되므로 공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제18조를 적용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공소제기 시 검사들이 해당 조항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인지를 물었지만 대검은 답하지 않았다.
▲ 제18조를 적용하지 않고 성범죄 교사를 기소했다는 사실을 일부 인정한 대검찰청의 서면 답변
법원 역시 검찰의 잘못된 공소 사실을 바로 잡지 않아 성범죄 교사들이 가중처벌을 피하는 데 일조했다. 스우파팀은 제18조를 적용하지 않고 재판한 이유를 듣기 위해 판사 9명을 상대로 여러 차례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만날 수 없었다.
변호사 자문을 얻어 제18조 미적용으로 형량이 줄어든 사례를 파악한 뒤, 해당 판결을 내린 재판장(사건 당시 소속 법원 9곳, 재직 중인 법원 6곳)에게 질문지를 보냈다.
그러나 각 법원과 판사들은 공통적으로 “판사는 확정된 판결에 대해 별도로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며 답변을 피했다. 서울동부지법, 부산고법, 대전고법 등의 공보판사들은 “불고불리의 원칙에 따라 수사기관으로부터 가중처벌 조항으로 기소되지 않는 한 법원으로서는 (가중처벌) 판결을 할 수 없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하지만 법원은 형사소송법 제298조 제2항에 따라 검찰이 공소를 미흡하게 진행했을 시 공소장 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 공소장 변경을 요청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대다수 법원은 답하지 않았다. 김근홍 대전고법 공보판사는 “공소장 변경 요청은 법원의 의무가 아니다”고 해명했다.
시민단체 “스쿨미투는 아동학대…제대로 처벌해야”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 김정덕 활동가는 “교사는 아동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그 의무를 이행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학부모는 아이를 학교에 맡긴다. 하지만 의무를 저버린 성범죄 교사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스쿨미투는 성범죄이자 아동학대다. 아동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교사는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정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가 성범죄 교사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스우파팀은 판결문 분석으로 얻은 성범죄 교사의 범죄 행위와 형량에 대한 데이터를 공익적 차원에서 뉴스타파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운영하는 단비뉴스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