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한복판의 골목길에서 158명이 숨진 전대미문의 참사가 일어난 지 오늘로 26일째입니다. 그러나 참사에 대한 관심은 점점 옅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유가족이나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지난 22일, 참사 24일이 지나서야 몇몇 유가족들이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그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책임있는 사람들과 시민들에게 온전히 전달되었는지는 의문입니다. 대통령의 언론관과 영부인의 기이한 행보에 대한 논란, 검찰의 대장동 수사와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각종 이전투구, 그리고 현재 열리고 있는 카타르 월드컵 본선까지, 온갖 소음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묻어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뉴스타파는 그런 소음을 뚫고 유족들의 목소리에 계속 귀를 기울이고 그 목소리를 시민들에게 전달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참사 그날, 소중한 자식을 잃은 한 아버지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생존자,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희생자들을 도왔지만 그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던 목격자들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그 과정에서 뉴스타파는 정부의 실수로 인해 불거진 2차 가해를 맞닥뜨리고 있는 유족들의 아픔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 정부가 발표한 공식 참사 발생 시각인 10시 15분 보다 2분 앞선 10시 13분 참사가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유력한 증언과 정황들을 확인했습니다.
방치, 방해, 거짓말... 유가족이 말하는 정부의 잘못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지한 씨의 아버지는 뉴스타파 취재진과 만나 아들을 잃은 슬픔에 더해 정부와 정치권의 태도에 또 한번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난 21일 몇몇 유족들과 함께 여당인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어떤 국회의원은 졸고 있었고, 어떤 국회의원은 계속 휴대전화만 들여다보고 있었고, 또 다른 국회의원은 중간에 밖으로 나갔다'고 전했습니다.
SNS와 인터넷 게시판을 중심으로 퍼지는 2차 가해, 조롱과 혐오를 조장하는 글과 가짜 뉴스들도 유가족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다고 이지한 씨의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가 참사 직후 유족과의 상의 한 마디도 없이 위로금과 장례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느닷없이 발표한 게 이같은 2차 가해의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정부가 희생자 유가족에게 뇌물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돈 줄테니까 어디 가서 나오라고 할 때까지 찌그러져 있어라'. 배상금 얘기를 하게 되면 '거 봐라 결국 돈 아니냐' 그런 댓글들이 난무할테고.."라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이렇게 참사 피해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2차 가해의 계기를 제공해놓고도, 2차 가해를 줄이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취재를 해보니 행정안전부도 국가인권위원회도 아무런 계획을 세우고 있지 않았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유가족들에게 '직접 명예훼손성 댓글을 캡쳐해서 신고하라'고 했다는 게 이지한 씨 아버지의 주장입니다.
유가족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동병상련의 아픔을 지난 유가족들끼리 서로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의 만남을 주선하기는 커녕 다른 유가족의 연락처를 알려주지도 않고 있습니다. 이지한 씨 아버지는 "정부가 방치를 했고 만나지 못하게 하는 공작을 했던 것 같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참사 발생 시각은 10시 15분이 아닌 '10시 13분'
뉴스타파는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생존자와 현장 상황을 가까이에서 본 핵심 목격자, 구조에 참여했던 시민들을 만나 참사의 구체적인 진행 상황과 경위를 분 단위로 재구성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실제 참사 발생 시각은 정부가 공식 발표했던 10시 15분 보다 2분 정도 빠른 10시 13분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심정지 환자의 심폐소생술 골든 타임이 4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2분의 차이는 국가가 져야할 책임의 무게를 다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 몇 분의 시간 동안 수십 명의 생명을 더 살릴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사가 발생하기 시작한 정확한 장소도 취재를 통해 특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 장소는 이태원 해밀턴 호텔 맞은편에 있는 한 지하 클럽 입구입니다. 내리막길에 꽉 찬 상태로 내려오던 군중 가운데 일부가 지하 클럽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설치된 연석에 걸려 넘어지면서 뒤에 따라오던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넘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뉴스타파가 만난 생존자 역시 그 곳에서 넘어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자세히 알아야 진정으로 떠나보낼 수 있다
지난 22일 기자회견에서 희생자 이남훈 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사망진단서를 내보이면서 "어떤 순간에 죽음에 이르렀는지, 아니면 누군가 도와주어 심폐소생술이라도 받았는지, 병원 이송 도중 사망했는지, 이 정도는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내 아들이 죽은 이유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엄마는, 우리 가족은 알아야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다른 희생자 이지한 씨의 어머니는 "국민 여러분 도와주세요, 기자분들 부탁드립니다. 모든 걸 낱낱이 밝혀 이 억울한 청년들의 미래가 짓밟히지 않도록 10조를 줘도 바꾸지 않았을 내 아이, 아이들의 앞날에 더 이상 억울한 일이 없도록 국민 여러분과 기자분들께 부탁드립니다. 도와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더 이상 국가를 믿지 못하게 된 유가족들은 자기 가족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정부가 아니라 국민들과 기자들에게 밝혀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저희 뉴스타파는 비록 많은 인력과 장비를 갖춘 대형 언론사는 아니지만 이런 유가족들의 호소를 어떤 언론보다 무겁게 받아들이니다. 오늘 저희가 보도한 참사 당일의 자세한 경위도 그 일환일 겁니다.
158명 희생자 유가족 가운데 현재 민변과 시민단체를 통해 모인 유족은 6,70 가족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유가족들은 아직도 2차 가해의 위협과 정부의 방치 속에서 고립된 섬처럼 홀로 슬픔과 두려움에 맞서 싸우고 있을 겁니다. 지금이라도 윤석열 정부는 희망하는 유족들이 서로 모여 위로하고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태원 참사의 진상 규명과 후속 대책 수립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다행히 어제 (23일) 여야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정 조사에 합의했습니다. 국회와 정부는 오늘 저희가 취재해 전해드린 것처럼 참사의 진상을 하나 하나 세밀하게, 낱낱이 밝혀내고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것이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