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군 산업단지 '복마전'...주민은 땅잃고 인허가 관계자는 재취업

2023년 02월 28일 15시 45분

충청북도 음성군은 산업단지의 입지로 주목받고 있다. 서울까지 한 시간이라는 지리적 이점 덕분에 높은 분양률을 이어가는 중이다. 지금까지 음성군에 조성된 산업단지는 총 17개소, 현재 조성 중이거나 추진하고 있는 산업단지 수는 10개소에 달한다. 
이러한 음성군의 산업단지 조성 이면에는 오래된 지역 갈등이 있다. 산업단지는 기본적으로  토지 수용 절차를 거쳐 조성된다. 전통적으로 농업이 주된 먹거리였던 지역에 산업단지가 들어서면 주민들의 오랜 삶의 터전이었던 농지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한 해 농사 준비에 바빠야 할 음성군의 농민들이 산단 조성에 반대하고 생존권 보장을 외치며 거리 위에 서있는 이유다.  
뉴스타파는 신규 산업단지 조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음성군의 지역 갈등 이면을 추적했다.  산업단지 인·허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군의원, 공무원들이 줄줄이 산업단지에 재취업한 사실이 취재를 통해 확인됐다. 주민들의 희생까지 불사해가며 사적 이익을 위해 행정-정치-경제가 유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평생 일군 땅도 하루 아침에 빼앗긴다

음성군 성본리 일대는 5년 전만 해도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성본1리에 사는 24가구 중 22가구가 농업으로 생계를 꾸렸다. 성본리에서 나고 자란 최재근 씨(73)에게 이 마을은 평생의 터전이다. 약 2만㎡의 농지에서 벼, 수박, 고추 등을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이 땅을 일궈 얻은 수익으로 삼 남매를 먹이고 가르쳤다. 굽은 최 씨의 허리는 40년 넘는 농사일이 남긴 훈장이다.
지난 2월 취재진이 성본리를 찾았을 때 최 씨가 말하는 농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땅은 고층 건물 높이의 크레인이 쉼 없이 움직이고 차량에서 일어나는 흙먼지로 뒤덮인 공사판이 되어 있었다. 파헤쳐진 땅 위에 세워진 표지판에서 겨우 옛 땅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최 씨의 오랜 터전이었던 마을과 농지는 산업단지 조성으로 인해 강제 수용됐다. 
△ 충청북도가 2022년 6월 준공인가한 성본산업단지. 현재 아파트와 공장 건설이 진행 중이다.
최 씨가 살아온 성본리 일대에는 200만㎡ 규모의 일반산업단지인 성본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성본산업단지는 음성군이 설립 자본 20%(4억 원)를 대고 SK에코플랜트, 한국투자증권 등 민간기업이 참여하는 민관합동개발 사업이다. 
이 산업단지는 오랫동안 지역의 논쟁거리였다. 2012년 민간 건설사의 투자제안서를 받고 2018년 첫삽을 뜨기까지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음성군 의회는 공식 회의에서만 산단 조성 문제를 57차례나 다뤘다. 
정말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는 개발인지를 두고 찬반양론이 제기됐다. 사업을 추진하는 음성군은 중부고속도로와 평택제천고속도로가 교차하는 지리적 이점을 강조하며, 산업단지가 성공하면 자연히 지역 경제도 함께 좋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대 측에서는 지역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미지수라고 봤다. 산업단지 조성으로 인해 생길 막대한 지방정부 채무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주민들이었다. 당장 농업으로 생계를 꾸리는 주민들이 개발 논리로 터전에서 밀려나면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질 것이 뻔했다.
최 씨는 마을에 산업단지가 들어서는 것을 앞장서서 반대해왔다. 산업단지에 편입되는 최 씨 토지는 13,000㎡가 넘는다. 그에게 성본리 땅은 다른 땅과 의미가 달랐다. 일생을 통해 일궈온 경제적 수단이자 그의 기억이 스민 동반자였다. 그런 땅을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들이 마음대로 파헤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 성본산업단지 위성 사진. 정중앙 흙으로 뒤덮인 토지 가운데 70% 가까이가 원래는 농지였다. (출처: 네이버)
하지만 법은 민간 개발업체의 편이었다. 현행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산업입지법)에 따르면, 산업단지 조성 시에는 토지 소유자들이 매매를 원하지 않더라도 사업 시행자가 토지를 강제수용할 수 있다. 매매를 원치 않았던 최 씨 입장에서 보면 땅을 강제로 빼앗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루아침에 땅을 뺏기게 된 주민은 최 씨만이 아니다. 성본산업단지에 편입될 농지(농림지역 및 생산관리지역)는 약 140만㎡다. 산업단지 전체 면적의 70%에 달한다. 수용된 농지 가운데는 농지 보전 목적으로 지정하는 '농업진흥지역'도 약 43만㎡ 포함됐다. 농업진흥지역은 농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보전하기 위해 우량농지로 지정된 지역으로, 관련 법에 따라 지자체장이 지정하고 농림부 장관이 승인해 결정된다. 이른바 '농업의 최후 보루’라 불리는 농업진흥지역까지 산업단지에 수용되는 것을 지켜보며 농심은 더욱 허탈해졌다. 
대다수의 주민들은 최 씨와 뜻을 같이하며 산단 조성에 반대했다. 성본산업단지 반대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이승협 씨(67)는 이대로 사업이 추진되면 수많은 주민들이 생존권 문제에 내몰리게 된다고 말했다. 주민들 대부분은 땅을 담보로 농협 대출을 받았다. 부족한 벌이로 자식을 키우기 위해선 대출이 불가피했다. 일정한 토지 보상금을 받는다고 해도, 그 돈을 대출 갚는데 쓰고 나면 손에 쥐는 것은 소액에 불과하다. 주민 대다수는 이미 60, 70대다. 나이 든 농부가 땅도 잃고, 돈도 없다면 생계를 이을 방법이 없다. 산업단지 반대 투쟁이 이들에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싸움인 셈이다.  
△ 2013년 11월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 주민 등으로 구성된 태생산업단지(現 성본산업단지) 반대대책위원회가 음성군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성본산업단지 일대 주민 3백여 명은 2013년 7월 음성군에 산업단지 반대서명서를 제출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길 위의 싸움은 6년 동안 계속됐다. 1인 시위, 천막 시위, 서울 상경 시위, 혈서 작성 등 상상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청와대, 정부종합청사, 충북도청, 음성군청, 그리고 개발 회사인 SK 본사까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갔다. 산업단지 집행정지 소송, 산업단지 승인 고시 취소 소송, 주민감사청구 등의 대응도 계속했다.  
투쟁은 순탄치 않았다. 마을 안팎의 산업단지 찬성파들은 수시로 제동을 걸었다. 외지에 살면서 성본리에 토지만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도 주민이라며 사업 추진을 종용했다. 현실적으로 산업단지 조성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 일부 주민들이 보상금이라도 더 받자며 찬성 쪽으로 돌아서는 일도 생겼다. 음성군청 앞에는 산업단지를 찬성하는 현수막과 반대하는 현수막이 동시에 걸렸다. 
2022년 6월 충청북도는 끝내 성본산업단지 개발사업의 준공을 인가했다. 6년에 걸친 주민들의 투쟁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반대 투쟁에 참여했던 박정옥 씨는 취재진을  만나 “나라가 추진하는 사업을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이 막을 수는 없더라”라고 말했다. 이들 농민들에겐 개발 논리가 모든 것을 누르던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었다.

떠나거나 줄이거나...농민을 위한 나라는 없었다

주민들은 땅을 뺏기고 보상을 받았다. 토지보상법에 따라 보상은 크게 두 종류였다. 첫째는 토지 보상이다. 토지 소유자들에게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시행사가 보상한다. 필지마다 다르지만, 평당 15만 원 내외에서 보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는 영농손실보상금이다. 편입 토지에서 농사짓던 주민이면 모두 수령했다. 한국부동산 사이트에 있는 계산식에 따르면 영농손실보상금은 3.3㎡당 1만 1천 원가량이다.
농민들의 삶은 달라졌다. 주민들이 예상한대로였다. 많은 주민이 농업을 포기하거나 농사 규모를 대폭 줄였다. 농지 3분의 2를 강제 수용당한 최재근 씨는 아직 마을을 지키고 있다. 남은 6000㎡ 농지에서 아들과 함께 수박 농사를 짓는다. 친환경을 고집했던 최 씨도 수지를 맞추기 위해 농법을 바꿨다. 토지 전부가 강제 수용됐다는 다른 주민은 농사를 아예 포기하고 노인연금과 음성군 노인 일자리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본리 주민 절반가량은 토지를 주인에게서 빌려 농사를 짓는 임차농이다. 이들 임차농의 사정은 토지를 갖고 있는 농민들보다도 어렵다. 토지 소유자는 토지 보상금이라도 받지만, 임차농은 2년 치 벌이 정도에 해당하는 영농손실액 보상만 받고 떠나야 한다.  
“40마지기(약 26,000㎡) 빌려서 농사로 생계를 유지했었어요. 35마지기(약 23,000㎡)가 수용돼서 지금은 5마지기(약 3,000㎡) 남았어요. 농지를 새로 임대하기도 힘들어요. 개발 사업 때문에 인근 땅값이 다 올라서 감당이 안 돼요. 결국 남편이 포클레인 일을 새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건설 일은 계절 영향을 많이 받아요. 겨울에는 일이 없어요. 수입이 들쑥날쑥하니까 많이 힘들어졌죠.”

성본리 임차농가 주민
음성군이 이러한 주민들의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산업단지 편입으로 인해 생기는 주민의 어려움을 줄이겠다며 2015년 10월 ‘공공개발사업 편입지역 주민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에는 음성군이 주민들의 재정착과 생활 안정을 지원한다는 내용들이 담겼다. 이필용 당시 군수도 주민의 생활 안정을 위한 지원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군 의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 2017년 5월 이필용 당시 음성군수가 음성군의회에 제출한 답변서. ‘성본사업단지 토지 편입 주민’의 ‘생활안정 지원시책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하지만 이러한 음성군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음성군은 2021년 1차 추경을 통해 ‘성본산업단지 주변주민지원사업 실시설계용역’을 실시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이 예산은 불용예산으로 남았다. 이미 주민들의 땅은 파헤쳐 졌지만 지원 계획조차 마련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앞서 음성군이 제정한 조례에도 주민지원기금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 포함돼 있었지만, 정작 제정 8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금 조성은 감감무소식이다. 
음성군 관계자도 아직까지 진행되고 있는 주민 지원 사업이 없다고 인정했다. 관계자는 “산업단지 조성은 민간사업인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시행사와 긴밀히 협조해 편입 지역 주민들이 벌목 같은 소규모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라고 했다. 

찬성표 던진 군의원들, 산업단지 대표와 감사로 재직

주민 피해가 불 보듯 뻔했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사업에 반영되지 않았다. 주민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지자체의 약속은 자취를 감췄다. 가장 큰 이해당사자인 주민의 목소리가 빠져있는 이 성본산업단지 사업은 대체 어떻게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일까. 파괴된 마을 공동체와 주민 피해 뒤로 소리 소문없이 이권을 챙긴 사람들이 있었다. 다름 아닌 지역의 일부 공직자, 정치인들이었다.
군 의회는 성본산업단지 사업을 57차례나 다뤘다.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서다가 이 사안은 2013년 12월 표결에 부쳐졌다. 음성군이 군 의회에 제출한 ‘태생일반산업단지(지금의 '성본산업단지') 조성사업 추진을 위한 특수목적법인 출자 및 매입확약 동의안’에 관련된 표결이었다. 동의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성본산업단지 조성이 불가능했다. 
이날 표결은 당일까지 누구도 결과를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최종 투표 결과는 찬성 5, 반대 3이었다. 손달섭 전 의원과 김순옥 전 의원이 던진 찬성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표라도 반대표가 더 나왔다면 사업은 중단되었을 것이다. 
이날 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손 전 의원과 김 전 의원은 공교롭게도 각각 성본산업단지 대표이사와 감사로 재직했다. 법인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손 전 의원은 2014년 6월 임기를 마친 뒤 2016년 9월 성본산업단지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현재도 대표이사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김 전 의원도 2014년 6월 임기를 마치고 2014년 말부터 2017년 3월까지 성본산업단지 감사로 재직했다. 성본산업단지 추진 여부를 놓고 결정적인 역할을 한 당사자들이 해당 기관으로 자리를 옮겨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 ‘태생산업단지(現 성본산업단지) 출자 및 매입확약 동의안’에 찬성한 손달섭 의원과 김순옥 의원은 임기 종료 후 성본산업단지로 자리를 옮겼다.
행정안전부 지방공공기관통합공시 '클린아이'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손 전 의원은 성본산업단지 대표이사로서 기본연봉, 급여성 복리후생비, 평가급을 합쳐 총 5억 3천만 원을 받았다. 2017년 8천 5백만 원, 2018년 1억원, 2019년 1억 1천만 원, 2020년 1억 1천 만 원, 2021년 1억 3천만 원이었다. 연평균 급여가 1억 6백만 원에 달한다. 
특히 손 전 의원은 37년간 음성군에서 공무원으로 재직한 공무원 출신이었다. 전직 지역 공무원, 정치인의 이해 상충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정작 이 문제를 꺼내드는 사람은 드물었다. 좁은 지역 사회다 보니 문제를 알고도 쉬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대해 공익법률센터 농본 김형수 정책팀장은 “산업단지 추진 과정에서 역할을 한 정치인이 산업단지 시행사로 자리를 옮긴 것은 이해충돌을 넘어서 정경유착에 가까운 일”이라며 “강제 수용이라는 폭력적인 방법이 동원되는 산업단지 조성 사업에서 지역 발전을 명분으로 정치와 경제가 유착해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실정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공직자와 업체 사이 유착을 근절하려는 목적으로 제정된 공직자윤리법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현행법은 공직자에게 퇴직 후 3년간 취업제한 대상 기관에 취업할 경우 관할 공직자윤리위의 취업심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손 전 의원과 김 전 의원은 이러한 충청북도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 심사를 피했다. 
법은 취업제한 대상기관을 ‘자본금 10억 원 이상이고 연간 외형거래액 100억 원 이상’인 영리기업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재취업 당시 성본산업단지는 이 요건에 해당하지 않았다. 사업이 본격 궤도에 오른 2021년 성본산업단지는 1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고 취업제한 대상기관이 됐다. 
취재진은 두 전직 지역 정치인에게 연락을 취했다. 손 전 의원은 “보기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겠지만 대소면이 고향인 데다 오랜 기간 공직 생활을 했기 때문에 지역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한다”라면서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지역에 있는 산업단지 대표이사에 취임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 일”이라고 해명했다. 김 전 의원은 반론을 요청하는 문자와 전화에 모두 응하지 않았다. 음성군 관계자도 같은 말을 반복했다. 관계자는 “(정치인같이) 지역을 잘 아는 지역 출신 인사가 산업단지 대표이사에 있으면 주민 설득, 민원 처리 등에서 수월한 부분이 있다”라고 말했다. 

58명 중 58명, 산업단지에 재취업하는 퇴직 공무원들 

이러한 지역 정치인과 공직자의 이해 상충 문제가 나타나는 곳은 비단 성본산업단지만이 아니다. 뉴스타파는 음성군 내 농공·산업단지들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이 같은 유착 행위가 음성군 내 산업단지에서 관행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음성군 내 17개 농공·산업단지 가운데 9개소는 산업단지 입주기업 간의 협의체인 입주기업체협의회를 운영하고 있다. 입주기업체협의회의 회장은 산업단지 관리소장을 임명하는데, 관례적으로 입주기업체협의회는 음성군으로부터 추천받은 사람 중에서 관리소장을 채용하고 있다. 뉴스타파가 정보공개포털을 통해 확인한 내용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음성군은 대풍산업단지·원남산업단지·삼성농공단지 등 9개소에 관리소장을 추천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음성군이 추천한 관리소장은 어김없이 퇴직 공무원이라는 점이다. 취재진이 확보한 음성군청 자료에 따르면, 음성군은 2010년부터 2022년까지 관내 산업단지 입주기업체협의회에 총 58명을 추천했는데 58명 모두 음성군 퇴직 공무원이었다.
△ 음성군은 2010년부터 2022년까지 관내 산업단지 관리소장에 퇴직 공무원만 추천했다.
산업단지 관리소장직에 각종 인·허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음성군 퇴직 공무원이 음성군의 추천을 받아 재취업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 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역 인사는 “많은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관행으로 굳어졌고 공무원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나서서 지적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라고 말했다. 
산업단지 관리소장으로 재직하는 퇴직 공무원들의 전문성에 대한 지적도 있다. 군 의회에선 정말 산업단지가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전문 인력이 관리소장으로 채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기업들이 제2공장을 설립을 할 때 우리 음성군이 아닌 외지로 지금 다 나가고 있잖아요. (중략) 산업단지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 공무원 퇴직을 하신 분들이 대부분 관리소장을 하고 계시는데 그런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나 이렇게도 생각이 됩니다.

김영호 음성군 의원 (2018.12.04 행정사무감사특별위원회 발언)
인근 지자체의 경우에는 공무원 출신이 아닌 이 분야의 전문가나 유능한 지역 인사를 소장으로 임명합니다. (중략) 본 의원은 공개모집이 인재를 선임하는 데 가장 적합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최용락 음성군 의원 (2022.10.07 본회의)
이에 대해 음성군 관계자는 관리소장의 전문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산업단지 공공시설물 유지 및 관리를 보통 군에서 하기 때문에 입주기업체협의회 입장에서는 퇴직 공무원들이 관리소장으로 오면 군과의 소통에 유리한 측면이 있는 것”이라며 “이런 이유로 기업도 퇴직 공무원을 더 선호한다고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음성군 사정에 밝은 한 지역 인사의 말은 반대다. 기업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적재적소에 전문성 있는 지역 전문가를 채용해야 하는데, 관행적으로 퇴직 공무원이 오다 보니 운영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다.  
“음성군이 각 산업단지에 여러 이유로 예산을 지원하잖아요. 입주기업체협의회에선 자기들이 사람을 뽑아 쓰고 싶어도 군이 퇴직 공무원들을 관행적으로 관리소장으로 추천하면 거기에 맞춰갈 수밖에 없는 것이죠. 능력이 부족한 퇴직 공무원이 오면 곤란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어요.” 

음성군 지역 관계자

지역 행정-정치-경제가 사적 이익 편취...피해는 주민에게

공익법률센터 농본 김형수 정책팀장은 음성군 군의원과 공무원들이 퇴임 후 산업단지에 재취업하고 있는 모습을 ‘행정-정치-경제가 실핏줄처럼 유착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가고 있지만, 지역의 행정-정치-경제가 산업단지 인·허가를 둘러싸고 각자의 사적 이익을 취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그 피해는 지역의 공정한 행정과 정치를 기대하는 주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 음성군 산업단지 사례는 '행정-정치-경제'가 유착한 전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은 2012년 7월 음성군청에서 열린 생극산업단지 조성 사업 체결식 모습. (출처: 음성군)
김 팀장은 기초의원과 공무원들이 사실상 개발사업의 이해 당사자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앞으로 어떤 주민도 행정 당국의 결정을 납득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음성군에서는 신규 산업단지 사업이 추진될 때마다 토지 수용되는 주민들의 반발이 반복되고 있다. 현재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양덕리 일대에 들어설 예정인 삼성테크노밸리를 둘러싸고 주민 반대 운동이 벌이고 있다.
법이 이러한 유착이 가능하도록 열어놓은 배경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도 나온다. 2008년 9월 이명박 정부 시절 시행된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 간소화를 위한 특례법(산단절차간소화법)은 최대 4년 걸리던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를 6개월까지 줄였다. 이 법이 시행되면서 제대로 된 사업성 검토와 주민 의견 수렴 없이도 산업단지 조성이 가능해졌고, 민간 업체에 의한 농지 강제수용도 보다 쉬워졌다. 실제 이 법이 시행된 이후 음성군에는 13개소에 달하는  산업단지가 우후죽순 지정됐다. 공익법률센터 농본 등 농민 단체들을 이 법을 조속히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산업단지계획심의위원회가 산업단지계획을 승인하면 교통영향평가, 사전재해영향 검토 등의 절차를 사실상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충분한 논의나 의견 수렴 절차가 없는 셈입니다. 실제 계획을 짧게 수립해서 일단 통과시킨 뒤 나중에 계획을 변경하는 꼼수도 많습니다.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구조적 원인이 되고 있는 산단절차간소화법을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공익법률센터 농본 김형수 정책팀장
제작진
디자인이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