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목격자들]골령(骨靈)골 이야기

2015년 06월 15일 07시 05분

뼈와 영혼이 잠들어 있는 골짜기, 골령(骨靈)골

대전 동구 낭월동에는 사람 뼈가 무더기로 묻혀있는 골짜기가 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골령(骨靈)골이라 부른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09년 하반기에 발표한 진상조사결과에 따르면 최대 7,000여 명의 유해가 이곳 골령골에 뭍혀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유해들은 왜 이 골짜기에 묻히게 된 것일까?

▲ 2007년 대전광역시 산내면 골령골에서 발굴된 유해
▲ 2007년 대전광역시 산내면 골령골에서 발굴된 유해
▲ 2015년 2월 대전광역시 산내면 골령골에서 발굴된 유해, 좁은 공간에 포개져 누워있는 채 발견돼 집단학살이 이뤄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 2015년 2월 대전광역시 산내면 골령골에서 발굴된 유해, 좁은 공간에 포개져 누워있는 채 발견돼 집단학살이 이뤄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가해자는 국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북한군의 기세에 위협을 느낀 한국 정부는 좌익 성향의 인사들을 비롯한 민간인들을 체포, 구금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재판도 하지 않은 채 군경에 의해 총살 당했다. 바로 ‘국민보도연맹’ 사건이다.

한국전쟁 직후 꾸려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등 민간단체들이 파악한 ‘국민보도연맹' 민간인 희생자들은 최소 6만에서 최대 2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 임시정부 청사가 있던 대전 지역은 ‘보도연맹사건'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지역이었다. 진실화해를 위한 진상조사위원회는 2010년 종합보고서를 통해 이 사건의 ‘가해자는 국가’라고 밝혔다.

▲ 1950년 대전지역 민간인 학살 현장 (당시 미군 촬영)
▲ 1950년 대전지역 민간인 학살 현장 (당시 미군 촬영)
▲ 2015년 2월, 민간단체의 기금모금과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대전 낭월리 일대에서 일주일동안 현장발굴을 진행했다. 그러나 민간의 힘으로는 매장지 전체를 발굴할 여력이 없어 현장을 덮어야 했다.
▲ 2015년 2월, 민간단체의 기금모금과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대전 낭월리 일대에서 일주일동안 현장발굴을 진행했다. 그러나 민간의 힘으로는 매장지 전체를 발굴할 여력이 없어 현장을 덮어야 했다.

65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2015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5년이 지났지만 골령골 사건의 희생자 유가족들은 지금도 대전 동구청을 찾고 있다. 유해가 매장된 지역에 안내판 하나를 설치해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서다. 곳곳이 농사를 위해 개간되는 등 유해 매장지로 추정되는 현장이 심하게 훼손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가족에게 돌아온 것은 ‘지자체는 권한이 없으니 국방부로 가서 요청하라’는 답변이었다.

▲ 유해 매장지 위에 희생자 유가족이 가져다 놓은 꽃
▲ 유해 매장지 위에 희생자 유가족이 가져다 놓은 꽃
▲ 희생자 유가족들은 지금도 대전 동구청 앞에서 지자체가 책임지라며 피켓팅 시위를 벌이고 있다.
▲ 희생자 유가족들은 지금도 대전 동구청 앞에서 지자체가 책임지라며 피켓팅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진실 화해를 위한 진상조사위원회는 지난 2009년 위령사업 지원을 포함한 후속 조치를 할 것을 국가에 권고했다. 그러나 정부나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서 이 지역의 현장 보존 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65년이 흘렀지만 정부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의 흔적들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골령골에서 벌어진 이 슬픈 역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연출 : 김성진 글, 구성 : 정재홍 취재 작가 : 이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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