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관련 병원 실명 · 지도 정보 공개(6월 17일)
2015년 06월 07일 14시 50분
메르스와 관련한 보도가 너무 많이 쏟아지다 보니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정부의 방역 시스템’ 문제가 희석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메르스 사태가 진정이 된 이후에도 잘못된 정부의 방역 시스템 문제를 재정비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이번 미니다큐에서는 메르스 확산 최초부터 현재까지 정부의 방역 시스템에 어떠한 문제가 있었는지 차근차근 짚어 봤습니다.
사스, 에볼라, 신종플루 그리고 메르스는 모두 국외에서 발생한 감염병이고 발생 지역도 각기 다르지만, 지구촌 어디든 빠르게 오갈 수 있는 현대 문명의 특성상 언제든 국내 유입의 가능성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정부는 늘 국내 유입을 염두에 두고 사전에 준비를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우선 국내 유입을 막는 게 1차적인 방역입니다. 당연히 국내로 들어오는 모든 교통수단의 승객 및 화물에 대한 철저한 검역을 실시해야 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의심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발견될 경우 이 환자가 어디에 있다 왔는지를 확인합니다. 혹시 감염병 발생국에 머물렀거나 감염 인접국을 경유했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더불어 신속한 검사로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동시에 혹시 모를 2차 감염을 막기 위해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격리조치를 실시합니다.
검사 결과 감염이 확진되면 국내 유입이 확인된 것입니다. 이때부터는 확진자가 국내로 들어 온 후 직,간접적으로 접촉한 이들을 추적합니다. 환자의 국내 이동경로를 파악하고, 이동 경로 상에서 접촉 가능성이 있는 이들을 파악한 후, 이들의 감염여부를 일일이 확인합니다. 이렇게 되면 국내 감염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밖에 없는데요, 이는 어차피 막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이때부터는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개하여 국민들 스스로가 조심할 수 있도록 합니다. 환자의 동선과 진료 병원, 감염병의 진원지가 될 수 있는 곳을 공개해서 피할 수 있도록 하고 혹시 유사 증상이 발생할 경우 자진 신고할 수 있도록 채널을 마련해 줍니다. 이렇게 할 때 감염병은 ‘관리’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게 되어 비밀주의를 유지했을 때보다 오히려 국민들의 불안감은 사그라들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위와 같은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우선 첫 환자가 국내에 들어오기 전인 5월 경 세계보건기구에서 메르스에 대한 검역 강화를 회원국들에게 촉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질병관리본부는 오히려 중동 지역으로의 입출국자에 대한 건상상태 질문서를 ‘자진신고제’로 바꿨습니다. 1차 방어선이라 할 수 있는 국내 유입 차단망이 허술했던 셈입니다.
심지어 첫 환자를 진료한 의사가 메르스가 의심된다며 보건당국에 신고했지만, 환자가 머물던 바레인은 메르스 위험국 명단에 없다며 검사 요청을 두 차례나 거부했습니다. 중동의 특성상 인접국간 이동이 잦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과 함께, 당시 미국이 메르스 위험국을 13곳으로 지정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7개국만 메르스 위험국으로 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애초부터 국내유입을 막는 1차 차단망 자체가 너무 허술한 상태였다는 점입니다.
국내 유입 후 관리 역시 허술하기는 마찬가집니다. 확진자의 이동 경로와 접촉자등을 파악해서 즉각 격리조치를 실시하려면 정보 공개가 필수인데, 환자가 거쳐 간 병원을 절대로 공개하지 않음으로서 통제는커녕 국민적 불안감만 증폭시키게 됩니다. 불안감을 느낀 국민들은 당연히 스스로 정보를 찾고 공유를 하기 시작하는데요, 이에 대해 ‘괴담 유포자는 엄벌’을 하겠다며 너무나 엉뚱한 대응을 합니다.
만약 확진자수가 금새 줄어들었다면, 정부의 이러한 조치가 어느 정도 납득이 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확진자가 늘고 심지어 사망자까지 나오는 상황에선 정보 공개를 통해 모두가 총력 대응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게 상식입니다. 결국 누리꾼들이 스스로 메르스 병원 지도를 만들고 뉴스타파와 프레시안 등 일부 언론이 메르스 관련 병원 실명을 공개한 뒤에야 정부는 병원명 등 정보공개에 나서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첫 발병 이후 18일이나 지난 상태였고, 3차 감염자까지 발생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정보 공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엔 너무 늦은 시점이었죠. 실제로 6월 13일엔 4차 감염자까지 발생, 사실상 단기간에 사태를 종료시키기엔 어려워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의 대응은 과연 어떤 수준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에볼라 사태를 집중 취재했던 BBC의 포파나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에볼라 때도 국민은 공황 상태였고 정부는 감염자와 사망자 정보를 은폐하는 데 급급했다.
에볼라를 부인하던 대통령은 수 주가 지나 수백 명이 죽은 후에야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에볼라 피해가 커진 이유다.
'메르스'란 말을 '에볼라'로 바꾸기만 하면 지금 한국 상황은 당시 시에라리온과 비슷하다.
참고로 시에라리온은 우리나라 사람들 인식 속에서 후진국으로 상징되는 아프리카에 위치한 국가입니다.
뉴스타파는 권력과 자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진실만을 보도하기 위해, 광고나 협찬 없이 오직 후원회원들의 회비로만 제작됩니다. 월 1만원 후원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