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국경: 마약전쟁 취재 중 피살된 기자 이야기

2018년 10월 24일 20시 00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국제협업 탐사보도 프로젝트인 ‘금지된 기사(Forbidden Stories)’에 아시아 지역의 유일한 파트너로 참여해 가디언과 르몽드 등 세계 10여 개 주요매체와 함께 주요 취재 결과물을 동시 게재합니다. ‘금지된 기사’ 프로젝트는 ‘프리덤보이스네트워크(Freedom Voices Network)’의 비영리 프로젝트로 전세계 탐사기자들이 취재 중 살해, 구금된 동료기자들의 기사를 함께 완성해 보도하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2017년 10월 취재 중 테러로 추정되는 차량 폭발사고로 숨진 타임즈오브몰타(Times of Malta) 탐사보도 기자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치아를 추모하며, 그가 못다한 취재를 이어받아서 지난 4월 그 결과물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2018년 3월 26일. 한 에콰도르 취재기자와 사진기자, 운전기사 등 3명이 에콰도르와 콜롬비아 국경에서 마약 밀매를 취재하던 중 전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 게릴라들에게 납치됐다. 3개월 후, 이들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금지된 기사(Forbidden Stories)’ 프로젝트와 에콰도르와 콜롬비아 출신 기자 19명은 동료 기자들의 죽음을 공동으로 탐사취재했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24일 영국의 가디언, 프랑스의 르몽드, 독일의 쥐트도이체차이퉁 등 전세계 15개 파트너 언론사와 함께 이 취재 결과를 동시에 공개한다.

‘금지된 기사' 취재하다 어느 날 사라진 에콰도르 취재진

하비에르 오르테가(Javier Ortega). 직업: 기자. 지난 3월 26일, 에콰도르 북서부 엘페데르갈(El Pedregal)에 있는 한 호텔 프론트에 손으로 쓴 이 이름이 에콰도르 일간지 엘 코메르시오(El Comercio)의 오르테가 기자가 생애 마지막으로 남긴 삶의 흔적이 됐다.

이날 아침 7시 10분, 오르테가 기자가 사진기자 폴 리바스와 운전기사 에프레인 세가라와 함께 호텔을 나선 모습이 감시카메라 영상에 담겨 있다. 이들은 콜롬비아와 접경지역인 에콰도르의 가장자리 마을 마타헤(Mataje)로 향하고 있었다.

▲ 에콰도르와 콜롬비아 사이 국경으로 활용되는 마타헤 마을의 다리. (출처: ‘금지된 기사' 줄스 기라우닷 기자)

3개월 후, 콜롬비아 특수부대는 마타헤로부터 24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나리뇨에서 총상 입은 이들의 시신을 발견했다. 이곳은 마약 밀매업체 여러 곳이 활동하는 지역이다. 취재진을 살해한 이들은 정성들여 구덩이 두 개를 파고 원래는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러 온 군인들을 살상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대인지뢰 5개를 활용해 부비트랩을 설치했다. ‘금지된 기사' 프로젝트 기자들이 입수한 콜롬비아 검찰의 사건 관련 사전조사 내용에 따르면 콜롬비아 특수부대가 이곳의 폭탄을 제거하는데 8시간 넘게 걸렸다.

운전기사 에프레인 세가라의 아들 크리스티안 세가라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서 시신을 보게 해달라고 영안실에서 법의학연구소 소장에게 요청했다”고 말했다. 세가라는 “소장이 아버지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연구소에서 마침내 아버지 손을 볼 수 있도록 해줬는데, 부패 정도가 심해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에콰도르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비극의 마지막 장면이다. 소셜미디어에서도, 수도 키토의 거리에도, 자동차 앞유리 위에도 ‘#nosfaltan3’ (영어로는 #wearemissing3)이란 슬로건이 퍼져나갔다. 에콰도르에서 기자가 납치돼 살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웃나라 콜롬비아가  무장혁명군(FARC)에 맞서 피튀기는 내전에 빠졌을 때도 에콰도르는 성공적으로 평화를 지킨 바 있다.

▲ 엘 코메르시오 취재진의 유족을 비롯해 이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에콰도르 시민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출처: ‘금지된 기사' 줄스 기라우닷 기자)

두 나라 사이 국경에 위치한 이 가파른 정글 지역에서 정확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규명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어떤 조건에서, 왜 에콰도르 일간지 엘 코메르시오 취재진 3명이 왜 납치돼 끝내 피살됐나? 에콰도르 정부는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했나? 에콰도르와 콜롬비아의 독립 저널리스트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서기 위해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서로의 안전을 위해 익명으로 취재를 진행했다.

참여 기자 중 한 명은 “이곳에서는 (이 사안이) 극도로 예민한 이슈다. 따라서 실명으로 기사를 출판해 우리 중 어느 한 명의 목숨이라도 위태롭게 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프로젝트 ‘금지된 기사'는 협박을 당하거나 수감 또는 피살된 기자들을 대신해 그들의 취재를 지속하고 완성하기 위해 모인 기자들의 연합체이다. 이들은 하비에르 오르테가 기자와 그의 두 동료가 지난 3월 26일 월요일 아침 사라진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기 위해 그들이 생전 진행했던 아이템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금지된 기사

폴에게 ‘이번에는 제발 가지 마! 너무 위험하다’고 얘기했다.

사망한 사진기자 폴 리바스의 동거녀 야디라 아구아갈로는 이제는 혼자 살게 된 아파트에서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회상했다. 올해 들어서만 마약 전쟁 취재를 위해 국경 지역으로 가는 세 번째 출장이었다. 아구아갈로는 “폴은 ‘내 일’이라고 대답했다”며 “일어났을 때 그가 옆에 있었고,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나는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엿새 전, 마타헤 지역에선 사제폭탄이 터져 군인 세 명이 죽고 한 명이 부상 당했다. 수개월 간 콜롬비아 국경 지역의 에스메랄다스 주를 뒤흔든 연쇄 폭력의 하나였다.

지난 1월 27일에는 이 주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인 산 로렌조 경찰서를 노린 차량 폭탄 공격으로 28명이 부상을 당했다. 레닌 모레노 에콰도르 대통령은 이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당국은 이 연쇄 공격의 용의자로 주로 대중들에게 ‘엘 과초(El Guacho)’로 알려진 발터 파트리시오 아리잘라 베르나자를 지목했다. 28세인 그는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당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는 빠르게 에콰도르 최대 공공의 적이 되었다. 2017년 10월 콜롬비아 방송사 RCN텔레비시온과 진행한 단독인터뷰에서 그는 전투복이 아닌 푸른색 폴로셔츠를 잘 차려입고 여유있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어깨에 멘 무거운 기관총만이 그의 진짜 활동 영역을 말해주고 있었다. 전 콜롬비아 무장혁명군 요원이었던 그는 120명으로 구성된 무장 게릴라단인 올리베르 시니스테라 전선(Oliver Sinisterra Front)의 우두머리로 알려져있다.

에콰도르 엘 코메르시오 취재진 살해 용의자로 추정되는 엘 과초. 전 콜롬비아 무장혁명군 요원으로 현재는 무장 게릴라단인 올리베르 시니스테라 전선(Oliver Sinisterra Front)을 조직해 운영하고 있다. (출처: 콜롬비아 정부)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에콰도르 군사정보국 국장을 역임한 마리오 파즈미뇨 대령은 “(콜롬비아 정부와 무장혁명군이 2016년 11월 맺은) 평화 협정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은 세력은 무장혁명군의 지휘부였다. 정부는 또 다른 시민군에 그들이 옥수수, 커피 또는 감자를 재배할 수 있는 땅을 확보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마약 밀매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훨씬 덜 매력적이었다. 1,800~2,000명의 게릴라 요원들이 반대했다”고 설명했다.

오늘날 에콰도르와 콜롬비아 접경 지역에는 12개 정도의 무장 단체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멕시코 마약 카르텔과 손잡고 활동해 악명높은 마약 밀매업자로 부상하면서, 두 나라 당국은 더욱 강력한 안전 대책을 도입했다. 에스메랄다스 주에서 발생한 폭력 사건을 조사하는 크리스티안 리바드네이라 검사에 따르면 지난 몇 개월 간의 공격은 이 같은 조치의 반작용이다. 리바드네이라 검사는 “보복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코카인 수출의 핵심 중개지역, 에콰도르

리바드네이라 검사는 “콜롬비아에서는 코카 잎이 코카인으로 변형되는 시기에 마약이 바다나 육로를 통해 에콰도르로 밀반입 된다. 밀반입된 마약은 에콰도르에서 저장됐다가 밀매업자들이 고용한 어부들에 의해 중앙아메리카, 멕시코 또는 미국으로 운반된다”고 설명했다. 마약이 운반되는 이 지역의 산악 지형과 빽빽한 숲, 그리고 거대한 맹그로브 숲은 마약 밀매업자들을 단속하는 콜롬비아 특수부대의 활동을 극도로 어렵게 만든다.

▲ 코카인 핵심 중개 지역으로 알려진 에콰도르 팔마 레알 (출처: ‘금지된 기사' 줄스 기라우닷 기자)

파즈미뇨 대령은 “에콰도르에서는 왜 이것(마약 밀매)을 거론하는 게 금기로 여겨지나? 왜 정부는 사람들이 이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원치 않는가? 국내외 대중에게 이 국경이 통제 불가능한 상태이고, 이곳 주민들의 안전 또한 그들의 운명에만 맡겨놓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에서 어떻게 주민들이 마약 밀매업자들과 협력하지 않기를 기대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오르테가 기자와 두 동료는 이 마약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지난 3월 26일 국경에 위치한 마타헤 마을에 간 것이다. 이 지역은 엘 과초 일당이 장악해 특별히 위험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다. 에콰도르 내무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날 아침 9시 30분쯤 취재진은 마타헤 마을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마지막 군사 바리케이드를 넘어갔다. 우리는 바로 이때부터 4월 3일까지 그들의 행방을 알지 못 한다.

콜롬비아 방송사 RCN텔레비시온에서 보도된 한 영상에는 기자들이 제정신이 아닌 얼굴로 쇠사슬에 매여 있는 모습이 나왔다. 이 영상에서 오르테가 기자는 모레노 에콰도르 대통령에게 “우리 목숨이 당신에게 달렸다"고 외쳤다. 이어 오르테가는 수감된 마약 밀매범 3명을 석방하고, 콜롬비아와 에콰도르가 국경 지역에서 군사 협력을 약속한 협정을 종료하라는 납치범들의 요구를 전달했다. 그는 또 영상 말미에서 자신을 포함한 엘 코메르시오 취재진 3명이 엘 과초 일당에게 납치됐다고 밝혔다. 모두가 우려했던 시나리오가 사실임을 확인해 준 것이다.

▲ (왼쪽부터) 엘 과초가 이끄는 무장단체에 납치된 엘 코메르시오 사진기자 폴 리바스, 하비에르 오르테가 기자, 운전기사 에프레인 세가라 (출처: RCN텔레비시온)

“그들은 콜롬비아로 가는 다리가 어디에 있는지 아이 몇 명에게 묻고는, 사라졌다.”

오르테가 기자와 동료들의 죽음 이후, 단 한 개 취재팀만이 에콰도르 군의 호위를 받아 마타헤 마을에 진입할 수 있게 됐다. 지난 8월 2일, 우리 차례가 됐다.

▲ 마타헤 마을 진입로에 위치한 군 검문소. (출처: ‘금지된 기사' 줄스 기라우닷 기자)

마을에는 두 개의 균열된 아스팔트 도로와 콘크리트 블록으로 지은 집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불과 몇 백 미터 밖 강 너머엔 국경과 코카 재배지가 있었다. 이곳 군인들은 무장 차량을 타고 활동한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마약 밀매꾼들에게 여전히 열려있는 콜롬비아로 가는 다리에 대한 영구적인 통제권이 없었다.

당국에서 버려둔 이 마을의 중심지에는 신축 건물 하나가 들어서 있었다. 우리와 동행한 로드리게즈 대령은 “저곳이 엘 과초 어머니의 집”이라고 설명했다. 피살된 기자들의 차량이 이곳에서 불과 24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로드리게즈 대령은 “비어있는 집이지만 엘 과초가 주기적으로 이 곳을 지나다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군은 우리가 차량에서 내려 주민들에게 질문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몇 분 후, 마을 전역 스피커에서 레게 톤의 음악이 울려퍼졌다. 우리가 여기 와 있다는 사실을 국경 건너편에 있는 이들에게 알리는 일종의 신호였다.

주민 한 명이 기자들이 납치되던 날 마타헤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주기로 했다. 빅토르 휴고 게레로 퀴노네즈는 마타헤에서 25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샌 로렌조 지역 한 가난한 마을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퀴노네즈는 원래 마타헤 마을에서 2년 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지만 지역에서 잇달아 발생한 폭력 사건 때문에 교직을 그만 뒀다. 그는 엘 코메르시오 기자들이 사라졌을 때 마타헤에 없었지만 과거에 가르치던 학생들과 동료들로부터 목격담을 수집했다고 했다.

취재진은 주차를 하고 주민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주변에서 얘기하기를 꺼려했다. 침묵하는 것이 일종의 행동수칙이었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아이들에게 콜롬비아로 가는 다리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고, 아이들이 대답해주자 그들은 사라졌다.

오르테가 기자와 그의 두 동료에게는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몇 가지 엇갈리는 가설이 있다. 지난 8월 6일, 콜롬비아 국방부는 로베르토라는 사건 용의자가 체포됐다고 발표했다. 국방부는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정보국에 따르면 그(로베르토)는 마타헤 마을에서 엘 코메르시오 취재진을 불러세우고 이들을 콜롬비아로 데려가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는 콜롬비아 검찰의 가설과는 엇갈린다.

지난 7월 23일 콜롬비아 보고타 법원에서 공개된 사전정보에 따르면 취재진은 콜롬비아로 납치되기 이전에 마타헤 마을에서 로베르토와 다른 공범 한 명에게 인질로 잡힌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유가족들로부터 억류된 취재진의 구출을 위해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은 에콰도르 정부에게는 매우 민감한 부분이다.

마약밀매범 석방 발표

지난 7월 19일 기자회견에서 오스왈도 하린 에콰도르 국방부 장관은 취재진이 에콰도르 국내에서 납치당했다는 가설은 부인했다. 하린 장관은 “수치스럽다!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한 주장을 할 수 있나?”라며 사망한 운전기사 에프레인 세가라의 아들 크리스티안 세가라를 겨냥한 발언을 했다. 그는 “그들(유가족)은 콜롬비아에 책임을 묻고 싶어한다. 나는 단지 콜롬비아 정부가 취재진을 살아있는 상태로 데리고 오는데 실패한 것 뿐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늘날까지 수 개월 간 유가족들은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에 에콰도르 정부의 책임이 있다며 정부의 미숙함을 언론에 고발하고 있다. 사진기자 폴 리바스의 파트너 야디라 아구아갈로는 “(납치돼 있었던) 19일 동안 정부는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고 우리는 (국가로부터) 최악의 방법으로 버려졌다. 정부는 납치범과 협상 중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장관은 외신에게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발표했다”고 밝혔다.

오늘날 에콰도르 정부가 수치스러워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에콰도르 고위 경찰관인 알레한드로 잘둠바이드와 엘 과초가 왓츠앱(WhatsApp)에서 나눈 대화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법원에도 제출된 이 대화는 기자들이 납치되기 며칠 전 이미 해당 지역에서 민간인들에 대한 위험이 증가하고 있음을 당국이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난 3월 16일, 마타헤 마을의 치안 작전에 화가 난 엘 과초는 알레한드로에게 “참을 수 없다. 우리가 만약 국경에서 일반 시민들을 발견하면 죽일 것”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오르테가 기자가 몸담았던 엘 코메르시오의 지오바니 티판루이사 편집국장은 “하비에르와 팀원들이 마타헤에 진입하기 불과 몇 시간 전, 모든 언론의 출입은 금지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우리 취재진이 등록하고 통과하도록 허가했다”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나는 아직 이에 대한 답을 듣지 못 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질의했지만 정부는 답변을 거부했다.

오르테가 기자의 아버지 갈로 오르테가는 “에콰도르 정부는 국내외적으로 정부가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우려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그런데 만약 이들 취재진이 풀려났다면? 지난 3월 28일 콜롬비아의 가장 저명한 일간지 엘 티엠포(El Tiempo)는 엘 코메르시오 취재진이 풀려났다는 기사를 작성했다. 그날 저녁 9시 25분, 엘 티엠포지는 이들 취재진의 신병을 에콰도르 당국이 무사히 확보했고 마타헤 마을 근처에 있다며 확정적인 기사를 썼다. 엘 코메르시오 티판루이사 편집장은 “이곳 모든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기쁨에 가득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 기사 내용에 대한 엘 코메르시오의 사실 확인 요청에 더디게 대응했다. 시저 나바스 에콰도르 내무부 장관은 다음 날 아침이 돼서야 엘 코메르시오 취재진이 석방됐다는 기사 내용을 부인하며, 석방을 위한 협상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만 확인해줬다.

그러나 ‘금지된 기사' 프로젝트 취재진이 접촉한 한 에콰도르 사법부의 취재원은 정부의 답변과 완전 다른 사실을 내놓았다. 이 취재원에 의하면 28일 저녁 6시 경, 에콰도르 군은 헬리콥터 한 대를 배정해 인질들을 넘겨받고 타히나에 위치한 콜로넬 칼로스 콘차토레스 공항으로 데리고 간 후, 공항에서 석방된 취재진을 키토로 이송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우리 취재 결과, 그날 저녁 루이스 칼로스 빌레가스 콜롬비아 국방부 장관은 파트리시오 잠브라노 당시 에콰도르 국방장관에 접촉해 인질 석방을 축하하기도 했다. 지난 9월 28일 인터뷰에서 잠브라노 전 장관은 빌레가스가 전화를 해왔다는 사실은 확인을 해줬지만 풀려난 인질들을 데리러 가는 계획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그는 “당시 (이들의 석방과 관련해) 우리가 접한 소식은 추후에 오보로 밝혀진 엘 티엠포지의 기사 내용 하나 뿐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지난 3월 28일 저녁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유가족 크리스티안 세가라는 “그게 바로 내가 오늘날 갖고 있는 가장 큰 의문"이라며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조사에 실패한다면 평생 그 의문을 가지고 살아갈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4월 11일, 엘 과초가 이끄는 무장 단체 올리베르 시니스테라 전선은 엘 코메르시오 취재진 3명을 살해했다고 발표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콜롬비아 조사당국에 협조한 한 조직원은 인질과 납치범 사이의 마지막 대화가 어땠는지 증언했다.

운전기사가 본인들은 어떻게 될지, 죽게 되는 건지 물었다. (엘 과초 일당의 일원인) 페루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에콰도르 정부가 협정을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그리고 그들은 총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엘 과초 측근 몇 명은 콜롬비아에서 체포돼 기소됐다. 그러나 엘 과초는 여전히 체포되지 않고 있다. 두 나라는 그를 체포하기 위한 수색을 벌이고 있다. 지난 9월 15일 이반 두께 콜롬비아 대통령은 엘 과초가 군사 작전 중에 부상을 당했다고 발표했으나 정부군 참모총장인 알베르토 호세 메히아 장군은 사흘 뒤 철수하면서 “(부상 사실을) 확인해줄 수도 부인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엘 과초를 죽이거나 생포하는 데 도움이 될 정보를 제공할 경우 에콰도르 정부는 현상금으로 미화 100,000달러(한화 1억 1373만 5천원)를, 콜롬비아 당국은 미화 148,000달러(한화 1억 6832만 7천원)을 걸었다. 사진기자의 유족 아구아갈로는 “폴의 동반자로서 이들 취재진이 납치돼 피살됐고, 당시 국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신경쓰기 시작하는 것 자체가 상처”라고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우리는 눈을 감아버렸다. 콜롬비아와 에콰도르 정부는 상황이 이렇게 된 데 책임이 크다. 폴과 하비에르, 에프레인의 죽음에 대해 책임자가 처벌받지 않고 지나가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전혀 정의는 작동하지 않았다. 침묵은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취재: ‘금지된 기사(Forbidden Stories)’ 줄스 기라우닷, Fundamedios, Foundation for Press Freedom(Flip), Verdad Abierta, Periodistas sin cadenas, 조직범죄와 부패보도 프로젝트(OCCRP), La Liga Contra el Silenc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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