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민원⑫ '아들과 친인척' 민원만 21건, 류희림은 정말 몰랐을까

2024년 01월 04일 20시 00분

뉴스타파는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위원장 가족들이 집단으로 민원을 신청한 시점과 제출된 민원 내용 등을 정밀하게 분석했다. 그 결과, 류 위원장이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을 위반한 정황이 또렷해졌다. 앞서 류 위원장의 동생은 취재진에게 "형과 함께 일하는 후배가 민원을 내라고 연락해왔다"고 말했다. 가족들 각자가 스스로 판단해 민원을 낸 것이 아니란 얘기다. 
분석 결과를 종합하면, 류 위원장은 가족 민원의 존재를 사전에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민원 신청 과정에도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뉴스타파 보도 갈무리. 류희림 위원장의 친인척 6명이 4일 동안 총 21건의 민원을 신청했다. 민원 내용은 류 위원장의 측근이자 방심위 국장 출신인 박모씨가 낸 것과 동일했다. 방심위 내부에서 '이해충돌' 문제를 제기하자, 류 위원장 동생은 자신이 냈던 민원 4건을 취소했다. 

일가족 6명이 4일 동안 총 21건...명백한 '이해충돌' 근거 

류희림 위원장의 친인척 6명은 9월 4일부터 7일까지 나흘 동안 총 21건의 민원을 신청했다. 아들, 동생 부부, 처제, 동서, 조카 등이다. 뉴스타파는 류희림 위원장 가족이 신문에 낸 부고 알림과 현장 취재를 통해 민원 신청인 중 친인척이 누군지 가려낼 수 있었다. MBC 제3노조는 뉴스타파가 불법적인 경로로 확인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정치 편향성에 빠진 제3노조의 착각에 불과하다. 
뉴스타파는 2022년 3월 6일 '김만배-신학림' 대화 녹취록을 보도했다. 이튿날 대다수 방송사들은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했다. 그런데 이 보도를 문제 삼는 시청자 민원이 방심위에 처음 접수된 건 2023년 9월 4일이다. 보도 19개월 만에 갑자기 민원이 쏟아진 것이다.
2023년 9월 4일, 오후 5시 38분. 류희림 위원장이 대표로 있었던 미디어연대 박모 공동대표가 방심위에 민원을 제기했다. 민원 접수 시각순으로 보면 두 번째에 해당한다.(첫 번째 민원 신청자도 위원장과 연관된 인물) 박 씨는 류 위원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인물로, 방심위 국장 출신이다. 그는 MBC와 JTBC를 상대로 총 3건의 민원을 제기했다.
이로부터 3시간여 뒤인 오후 9시 23분. 류 위원장의 조카 채모씨가 친인척 중 가장 처음으로 민원을 신청한다. 채 씨는 오후 9시 23분부터 약 12분 동안 KBS, MBC, JTBC 등을 상대로 모두 4건의 민원을 냈다.잠시 뒤인 오후 10시 1분에는 류 위원장의 동서 김모씨가 등장한다. 김 씨는 10분 동안 4개 방송사를 상대로 민원을 신청했는데 피신청 방송사의 순서는 물론 내용까지 조카 채 씨가 한 것과  똑같았다. 
▲9월 4일 오후9~10시에 류 위원장 조카와 동서가 총 8건의 민원을 제출했다. 피신청 방송사 순서는 물론 민원 글의 내용까지 동일했다. 
▲9월 5~6일 이틀간 류 위원장의 처제, 제수, 동생과 아들이 등장해 민원을 냈다. 다음날인 9월 7일 처제가 추가로 1건의 민원을 냈는데, 이것까지 포함하면 9월 4~7일 나흘 동안 가족 6명이 총 21건의 민원을 냈다. 
이튿날인 9월 5일 오전 11시 34분. 이날은 류희림 위원장의 처제가 가장 먼저 2건의 민원을 신청했다. 이어서 차례로 친동생의 아내(제수)가 1건을. 그로부터 6시간 뒤엔 친동생이 등장해서 전날 조카와 동서가 냈던 것과 거의 똑같은 내용의 민원을 신청한다. 
그런데 이날 여당 측 방송통신심의위원 두 명은 방송소위원회를 열고 방송심의국장에게 뉴스타파 관련 민원이 들어온 게 있느냐고 물었다. 회의 속기록을 보면, 민원이 속출하고 있음을 사전에 알고 물은 듯하다. 이들은 민원 접수 사실을 확인한 뒤, 뉴스타파 보도 인용 건을 긴급 심의하기로 결정했다.
다음날인 9월 6일, 오전 8시 23분. 친동생이 추가로 민원을 내기 시작하더니. 오후 12시 7분엔 류 위원장의 아들이 등장해 약 3분 동안 4건의 민원을 속사포처럼 신청했다.
분석을 종합하면, 9월 4일부터 7일까지 류 위원장의 친인척 6명은 모두 21건의 민원을 냈다.

'가족 민원'은 방심위 국장 출신 박 씨의 민원과 '판박이'

가족 민원의 내용을 보면, 류 위원장이 직간접으로 개입한 정황이 더욱 구체적으로 파악된다. 미디어연대 대표 박모 씨가 낸 한 줄 짜리 민원 내용과 가족들이 낸 민원 내용이 99% 동일했다.
여기서 두 가지 가능성이 제기된다. 박 씨가 가족들에게 직접 연락해서 자신이 작성한 민원 문구를 전달했거나, 류 위원장이 박 씨에게 받아서 가족에게 전달했을 가능성이다. 방심위 국장 출신인 박 씨의 민원 글은 일종의 '교범'처럼 전파됐다. 류 위원장의 지인과 관련 단체 소속 인원들도 박 씨의 민원 문구를 그대로 베꼈기 때문이다. 
▲방심위 국장 출신인 미디어연대 공동대표 박모씨가 낸 민원 내용
▲류 위원장의 조카와 동서가 9월 4일에 신청한 민원 내용. 박 씨가 4시간 앞서 제출한 민원 글과 99% 동일하다.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보고받은 류희림, 국민 아닌 가족들에게 사과 

류희림 위원장은 뉴스타파가 보도한 '청부 민원' 의혹에 대해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민원인들이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라면서, 자신의 가족들에게 사과했다. 이번 사건은 도의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방심위의 정상적인 심의 행정 업무를 방해한 불법 행위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류 위원장이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을 위반 혐의를 받는다. 이 법 제5조에 따르면 과징금 등 제재적 직무를 수행하는 공직자는 직무 관련자가 사적 이해 관계자임을 안 경우, 안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소속 기관장에게 그 사실을 서면으로 신고하고 회피를 신청해야 한다. 
뉴스타파는 방심위 직원이 류희림 위원장에게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고 문서로 보고한 사실을 파악했다. 이 직원은 지난해 9월 14일, 관련 법 조문이 포함된 보고서를 위원장에게 제출했다. 류 위원장은 직원의 보고까지 받고도, 뉴스타파 관련 심의 업무를 회피하지 않았다. 다만 류 위원장은 자신은 동생이 민원을 낸 사실을 몰랐으며, 직원 보고로 알았으니 취하를 시키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 나흘 만인 9월 18일 류희림 위원장의 동생은 자신이 낸 민원 4건을 취하했다.  
▲지난해 9월 27일 방심위 직원이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 갈무리
하지만 나머지 가족 5명의 민원은 취하되지 않았다. 그러자 또 다른 직원이 방심위 내부 게시판에 위원장의 '이해충돌' 문제를 지적했다. 이에 류 위원장은 간부를 통해 해당 글을 삭제하라고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듭된 내부 지적에도 끝까지 심의를 회피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방심위는 이러한 청부 민원들을 근거로 뉴스타파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보도를 인용한 방송사 4곳에 총 1억 4천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류희림 위원장이 청부 민원을 근거로 위법한 셀프 심의를 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제작진
취재한상진 봉지욱 박종화
영상취재김기철 이상찬 오준식
편집박서영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