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조작 문자’로 법정서 언론플레이

2024년 04월 23일 21시 40분

검찰이 법정에서 ‘허위 문자’를 제시하며 뉴스타파 기자를 증인 신문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금요일(19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 허정 검사가 뉴스타파 편집기자와 촬영기자를 법정에 증인으로 불러 신문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허 검사는 “뉴스타파 한상진 기자가 2022년 3월 6일 (김만배 녹취록) 보도 직후 지인에게 ‘윤석열 잡아야죠. 한 건 했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다”고 법정에서 말했지만, 한 기자가 지인에게 보낸 문자에는 “한 건 했습니다”라는 내용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대선 3일 전인 2022년 3월 6일 뉴스타파의 ‘<김만배 음성파일> 박영수-윤석열 통해 부산저축은행 사건 해결’(이하 ‘김만배 녹취록 보도’) 보도가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수사중이다. 지난해 9월 14일 뉴스타파 사무실과 뉴스타파 소속 한상진 기자의 자택을, 12월 6일엔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검찰, 법정서 ‘허위 문자’ 제시하며 뉴스타파 기자 증인 신문

수사가 시작된 이후, 검찰은 뉴스타파 직원 여러 명에 대해 참고인 조사 요청을 한 바 있다. 하지만 뉴스타파 직원들이 조사에 응하지 않자, ‘김만배 녹취록 보도’ 제작에 참여한 3명의 기자를 상대로 법원에 ‘공판기일전증인신문’을 신청했다. 법원은 검찰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지난 19일 3명 중 2명(윤 모 편집기자, 신 모 영상취재기자)이 먼저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증인 신문을 받았다.
‘공판기일전증인신문’은 범죄 수사에 없어서는 아니 될 사실을 안다고 명백히 인정되는 자가 출석 또는 진술을 거부하는 경우 검사가 제1회 공판기일전에 한하여 판사에게 그에 대한 증인신문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형소법 221조의2)
검찰은 이 날 뉴스타파 기자 2명을 상대로 한 증인 신문 과정에서 뉴스타파 기자들과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이 서로 혹은 각자 지인과 주고받은 사적인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유출하며 신문을 진행했다. 아래는 그 중 하나.
2022년 3월 6일 보도 직후 한상진이 지인 OOO에게 ‘예쁜 짓 했네’라는 메시지를 받고 ‘윤석열 잡아야죠. 한 건 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있는데 애초부터 윤석열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서 윤석열에 불리한 내용을 보도한 거 아닙니까?

제1회 공판기일전증인신문 중 허정 검사 질의 내용. (2024.4.19.)
검사가 법정에서 공개한 문자 내용은 당일 수십개 언론에 그대로 보도됐다. 연합뉴스, KBS, 동아일보, 조선일보, 세계일보, MBC 등이다. 
검찰이 증인신문 도중 유출한 사적 대화 내용을 받아 쓴 언론 보도들. 
그런데 확인결과 검찰이 법정에서 공개한 한상진 기자의 문자 내용은 사실과 달랐다. 한 기자가 ‘김만배 녹취록 보도’ 당일 지인에게 보낸 문자에는 “윤석열 잡아야죠”라는 내용은 있었지만 “한 건 했습니다”라는 내용은 없었다. 결국 검찰은 존재하지 않는 문자를 증거로 제시하며 법정에서 증인 신문을 한 셈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사가 언론플레이를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공개 절차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사회적으로 편향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거든요. 정말 언론 대응용으로 검찰이 이용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언론플레이죠 그러니까.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검사가 신청한 ‘공판기일전증인신문’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과거 피의자의 방어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일부 조항이 위헌 결정을 받은 사실도 거론된다. 한상희 교수는 “참고인 신문 제도는 아주 긴급한 경우에 이용해야지 단순히 참고인이 출석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열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피의자 방어권 보장에 한계가 있고, 공개 절차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사회적으로 편견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결국 대언론용으로 검찰이 이용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검찰이 ‘허위 문자’까지 만들어 언론플레이 한 이유는?

그럼 왜 검찰은 ‘공판기일전증인신문’이란 이례적인 절차까지 이용해 뉴스타파 직원들을 법정에 불렀을까.
검찰이 증인신문을 위해 준비한 질문에서 그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증인 신문에서 검사는 ‘뉴스타파가 윤석열은 낙선시키고 이재명을 당선시키려고 해당 보도를 했다’는 식의 질문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영상 촬영과 영상 편집을 맡은 기자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두 기자가 알 수 없는 질문이 반복됐다. 한마디로 뉴스타파가 의도를 가지고 인터뷰를 허위 조작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아래는 19일 진행된 증인 신문 내용 중 일부.
○허정 검사: 2022년 3월 6일 보도 직후 한상진 지인에게 ‘예쁜 짓 했네’라는 메시지를 받고 ‘윤석열 잡아야죠. 한 건 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있는데 애초부터 윤석열 낙선시키기 위해서 윤석열에 불리한 내용을 보도한 거 아닙니까?
○판사: 앞부분이 지금 뒷질문하고 상관이 없는데요. 이 메시지를 증인이 알 수가 없고 앞부분은 제외하시고 뒷부분만 물어보시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허정 검사: 그럼 질문 바꿔서 하겠습니다. 증인이 보도 편집에는 관여를 하신다고 하니까 증인이 보도 편집 과정에서 한상진이 증인한테 ‘윤석열 잡아야지. 우리 한 건 했어’라는 취지로 말한 적은 없습니까?
○편집 기자: 네, 없습니다.
○허정 검사: 그런 직접적인 표현을 증인은 들은 적은 없다고 하시는데 그러면 직접적인 표현 말고 3월 6일자 뉴스 사건 보도 시점 그 무렵에 한상진이나 신학림이나 김용진이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고 윤석열 후보가 낙선되기를 기대한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편집 기자: 없습니다.

뉴스타파 기자를 상대로 한 검찰의 증인 신문 내용 중 일부 (2024.4.19.)
검사가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자 판사가 나서 제지하는 일도 벌어졌다. 판사는 “증인들이 알 수 없는 질문은 그만하라”, “이미 질문에 대한 답을 한 것 같은데, 같은 질문을 계속할 이유가 있냐”고 여러 차례 말했다. 하지만 검사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제작진
취재박종화 송원근
촬영이상찬
편집정지성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