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아파트 분양 시장 ‘작업의 정석’

2015년 12월 14일 17시 00분

미국 금리인상이 닥쳐오니 부동산 시장이 술렁인다. 전세난은 갈수록 심해지고 분양 아파트는 쏟아져 나오는데,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큰 폭으로 오르기 시작한 분양가는 끝없이 치솟으니 집 없는 서민들도, 집 한 채 있는 서민들도 왠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대로 몇 년 더 전세나 월세살이를 하며 버텨야 할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집을 사야 할까?’
‘급격한 고령화와 앞으로의 인구 구조를 고려하면 지금 집을 팔고 현금화하는게 낫지 않을까?’
주택 시장 수요자들은 이렇게 매수냐 매도냐의 기로에서 항상 헛갈린다. 그러나 아파트 가격이 미래에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주택 수요자들이 모르는 것은 미래의 아파트 가격 말고도 많다. 그리고 그런 정보 비대칭(Information asymmetry)때문에 주택 수요자들은 선택의 기로에서 더욱 고심하는 것이다. 소비자로서 당연히 알아야 할 정보를 거의 완벽히 통제 당하고 있으니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지난주 기자는 서울 강남의 한 재건축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찾았다. 3.3제곱미터 당 4천만 원이 넘는 분양가로 이목을 집중시킨 곳이다.전용 84제곱미터 아파트 가격이 14억 원 수준이니 한국 최고가 아파트인 게 분명하다. 지난 10월 분양 당시 모델하우스 현장에는 3일 간 3만여 명이 다녀갔고, 경쟁률은 20대 1을 넘어 1순위에서 모두 청약 마감됐다는 기사들이 나왔던 곳이다. 그러나 이 아파트에 대한 후속 보도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 아파트가 ‘완판’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청약 마감 이후 공식적인 계약기간은 10월말 이미 끝났지만 이달 들어서도 신문들은 여전히 분양 마감 임박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미분양된 것이다. 다만 요즘 신문들은 이렇게 표현을 완곡하게 해서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미분양된 것일까? 먼저 아파트의 모델 하우스로 전화를 걸어봤다.전화 상담 직원은 미분양이 약 10% 정도 남아 있다고 대답했다.이 아파트의 일반분양 물량이 201세대였으니 20채 정도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직접 모델하우스에 가 보니 분양대행사 여직원은 면적에 따라 한 두 세대만 남아있다고 말한다. 그나마도 저층만 일부 남아 있어 곧 모두 ‘완판’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말일까?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일반 소비자로서는 무엇이 진실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래서 기자는 아파트 분양시장의 ‘공급자들’을 수소문했다. 삼성이나 현대 등 메이저 건설사들을 대신해 조합으로부터 재건축 수주사업을 따내는 일종의 ‘브로커’도 만나고, 분양대행업체 본부장도 만났다. 그들은 아파트 분양시장의 대략적인 흐름을 이야기는 해 줬지만 이른바 ‘영업비밀'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렵사리 최근 수도권에서 대규모 아파트 분양을 ‘성공리에 마감’한 시행사의 고위 임원을 만나 기자가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그들만의 ‘작업’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부동산학과로는 최고 명문이라는 A대학교 부동산학과를 나와 20년 이상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기업인이다. 그가 말하는 아파트 분양을 위한 ‘작업의 정석'은 이랬다.
‘완판’?
완판이라는 게 다 팔렸다는 게 아니야. 우리는 초기 분양이라는 게 있어. 그걸 보통 3개월 이야기하거든. 대략 정당(정식) 계약기간 이후부터 3개월. 그 초기 3개월 내에 한 80%이상 팔면 그냥 완판이라고 해.
원래 그래.
당연히 저층은 초기에는 다 안 팔리지.강남이라도 그건 절대 다 안 팔려.원래 그래.원래.
이것도 상품인데.저층이나 향이 안 좋은 층들은 입주 때까지 2-3년이 남잖아. 그때 쭉 다 팔아가는 거야.(그렇게 2-3년 동안에)아주 미분양 지역이 아니고 하면 서울이고 여기고 다 팔려나가는 거지.
그래야지 사람들이 심리적으로도...
언론에 나왔을 때도 ‘완판’이라고 그래야지 사람들이 더 사고 싶잖아. 더. 몇 개 안 남았다 그래야지 후리거든. 사람 심리가 그렇잖아. 홈쇼핑 할 때도 그러잖아. 이번이 한정. 마지막입니다. 몇 분 남았습니다. 그래야지 사람들이 얼른 전화 버튼 누를 거 아니냐.
전국이 다 마찬가지야. 다 그래. 계약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 정당 계약 기간에 7-80%했다면 그것은 엄청난 계약률이야. 엄청나게 잘한 거지. 강남에서 10대 1,20대 1이 나와도. 다 계약을 잘 안 한다고. 그 사람들도 다 눈치를 보잖아.
언론들이 잘해주면.
그래서 시공사들이 언론플레이를 하는 거지. 언론에서 사람들이 엄청 몰렸다, 그런 광고성 기사를 써 주면. 광고 잘 되면 사람들이 달라붙고 시공사는 3-40%만 분양돼도 공사비 조달하고 현장 굴러가는 데는, 초기비용 조달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어. 그래서 3-40%만 분양해도 그냥 굴러가는 거지. 나머지는 그런 식의 마케팅으로 2-3년 간 쭉 팔아나가면 되니까.
마켓팅비용 700억 원.
우리는 그 정도 책정했어. 마켓팅 비용이라는 것이 모델하우스 도우미들 까지 포함해서. 요즘은 신문에는 잘 많이 안 내고 다음이나 네이버 온라인 광고들 많이 내. 언론들은 급수에 따라서, 관리 차원에서. 지방인 경우는 지방지도 좀 줘야 하고. 유력지는 몇 천만 원. 발행도 안 되는 신문사들에도 우리도 다 알지만 그냥 악성기사 내지 말아 달라고. 실제 광고는 걔들도 안 해주고. 그냥 돈만 주는 거야. 걔들은 한 100만 원 선부터 있고. 룰 대로 하는 거지.
장이 좋으면 더 피(프리미엄)가 붙어.
정당 계약일이 끝나고 실제 계약은 60%만 돼도 시행사, 시공사에서 진짜 좋은 것은 빼 놔. 영업하는 거지. 건설사는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서 서서히 매물을 내놓은 거지. 그걸 작업이라고 그러는 거거든. 자, 100개 중에 60개가 팔렸어. 40개가 남았어. 20개는 안 좋은 거고.20개는 좋은 거면. 안 좋은 것부터 팔고.20개는 프리미엄이 붙든지, 언제든 팔 수 있다. 그래서 홀딩. 그리고 80%정도 됐다면 끝났다고 완판됐다고 하면서 딱 끝내버리는 거지. 나머지 20개는 가계약금 100만 원, 200만 원 뿌려 놓고 잡고 있는 거지. 부동산 중개업소 시켜서.그렇게 6개월 정도 있다 보면 (소비자가) ‘그 때 살 걸’ 하는 시기가 오거든. 그럼 모델하우스 문도 닫아버리고. 알아볼 데가 없잖아. 그럼 업소 통해서 프리미엄 5천만 원 받고 팔고. 그럼 어떻게 되겠어? 60개 샀던 사람들도 ‘돈 좀 벌어볼까?’ 하면서 분양권을 내놓게 되는 거야. 장이 좋으면 더 피가 붙어. 그렇게 피 붙여서 나머지 좋은 거 20개를 다 파는 거지.
이런 이른바 ‘마켓팅 기법'말고도 시행사나 시공사가 소비자에게 감추고 있는 것은 많을 것이다. 땅 값은 어떻게 책정되는지? 호화 전원주택을 지어도 3.3제곱미터 당 건축비는 600만 원이면 충분한데 어떻게 강남의 59제곱미터 아파트는 건설 비용이 3억 가깝게 든다는 것인지? 대규모 공동주택을 지을 때는 대량으로 자재를 구입하기 때문에 건설원가도 훨씬 줄어들어야 되는 것이 아닌지, 돈이 없어 선분양하는 건설사들의 금융조달비용까지 모두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게 과연 맞는 건지 등도 의문이다. 부동산 경기를 부양해야 국가경제가 활성화될 것처럼 말하는 정부에 주택시장 수요자로서 평등한 정보 접근권을 요구해본들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택시장에서의 정보 비대칭성은 너무 심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