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전쟁이었으면 아수라장 되는 거야”

2015년 06월 13일 21시 03분

‘메르스 골든타임’ 5월 11일~29일, 평택과 아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정부의 메르스 초기 대응이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쳤던 세월호 참사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뉴스타파>는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 2차 확산이 시작되기 전인 5월 11일부터 29일까지 평택과 아산 지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고, 정부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추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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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기 직원 아닙니다.

지난 6월 10일 경기도 평택시 평택성모병원 앞. 차에서 내린 한 남성은 취재진이 다가서자 손사래부터 쳤다. 그러나 잠시 병원 입구에서 휴대폰을 쳐다보는 시늉을 하더니, 안에서 나온 동료가 문을 열어주자마자 병원으로 들어갔다.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사태의 진원지로 지목되며 지난 5월 29일부터 휴원 중이던 평택성모병원에 다시 인적이 돌기 시작했다.

지난 6월 8일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대책본부는 모두 37명의 확진자가 나온 평택성모병원에서의 메르스 1차 유행이 종식됐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병원 측도 재개원 준비에 들어갔다. 병원 관계자는 자가 격리된 직원들의 모니터링 기간이 끝나는 오늘(6월 13일)부터 팀장급 직원들이 다시 출근한다고 밝혔다. 소독 등 준비 과정을 거친 뒤 정부가 메르스 사태 종식을 공식 선언하면 재개원할 방침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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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평택성모병원 인근 지역민들의 불안은 여전하다. 병원 인근에 신축 중인 한 상가의 임대업자는 메르스 사태 발발 이후 임대 문의가 급감했는데 메르스가 진정세라는 정부의 발표가 나온 이후에도 그대로라고 말했다. 그는 병원이 다시 문을 열어도 사정이 나아질 것 같지 않다고 덧붙였다.

인근 상가에 입주해 있는 편의점, 약국, 음식점 등에서도 같은 말이 나왔다. 짐을 챙기기 위해 잠시 약국을 찾았다는 한 약사는 “모든 것을 다 투자해 개업했는데 불과 4개월 만에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면서 앞으로도 답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쉬쉬하는 사이 일이 커졌다며 “(1번 확진자의) 중동 출장 이력만 제대로 파악해 냈어도 이 지경까지 되진 않았을 것 아니냐”고 말했다. 불과 5분 남짓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그는 병원 근처를 서둘러 떠나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빨리 벗어나야죠. 아무래도 찝찝하잖아요.

평택성모병원이 재개원한다고 해도 그가 이 ‘찝찝함’을 극복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는지 가늠하기 어려워 보였다.

“메르스 환자 나온 병원? 휴원 직전까지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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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날씨에 두꺼운 마스크를 올려 쓴 한 중년 남자가 병원 주변을 서성거렸다. 95세 노모의 약이 떨어져 혹시 병원이 다시 문을 열었는지 확인하러 왔다는 그는 덤프트럭 운전사 김 모 씨. 뜻밖에도 그는 메르스 자가격리 대상자였다.

밖으로 돌아다니면 벌금 300만 원 때린다는데, 그럼 어머니 약은 누가 지어다 줘.

그는 지병으로 입원한 어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5월 26일부터 28일 사이 이 병원을 수차례 드나들었다고 했다. 이 기간은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했던 환자와 의료진들이 속속 메르스 확진자로 판정되기 시작했던 시기다. 그러나 김 씨는 어머니가 퇴원할 때까지 이같은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당시까지 병원 의료진들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근무하고 있었고, 의사와 간호사, 환자 등 누구로부터도 이 병원과 메르스의 관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상한 낌새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는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키기 직전 “평택성모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다"는 SNS 게시물이 있길래 담당 의사에게 보여주며 사실인지 물었다고 했다.

(평택성모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나왔다는 내용의) SNS가 떠서 담당의사에게 보여줬더니, 다른 병원에서 자기네를 음해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나중에 보니 그게 사실이었어. 그땐 전혀 몰랐지 뭐요.

5월 20일 첫 확진자가 발표되자 평택성모병원은 확진자와 접촉했던 의료인 16명을 자가격리시켰다. 해당 병원의 담당 의사가 이같은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김 씨의 어머니가 입원한 날은 5월 26일. 정부는 6월 5일에야 평택성모병원의 이름을 공개했다. 만약 정부가 첫 확진자 발생일인 5월 20일 직후에 병원 정보 공개를 제대로 했다면 김 씨와 어머니가 메르스 감염위험이 높았던 평택성모병원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갈 일은 없었을 것이다.

만약 전쟁 났다면 아수라장 되는 거지 뭐. 장관도 전공분야를 살려야지, 경제학과 나온 사람을 앉혀 놓으면 뭐해. 기본적인 건 알아야지. 코드만 맞고 개뿔도 모르는 사람 앉혀 놓으니까 수습이 되겠어요.

경로당 잃은 영인면 노인들 “우리 동네엔 메르스 없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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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해서 나와있는 거지유.

6월 10일 오후 충남 아산시 영인면 창룡리. 평소 같으면 경로당에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을 동네 어르신들이 길가에 나와 있었다.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멀리 들판을 응시할 뿐 서로 말이 없었다. 마을 경로당은 굳게 문이 잠겨 있었다. 문 앞에는 메르스에 대한 정보와 예방 수칙을 담은 공지문이 붙어 있었다. 아산시는 6월 9일부터 메르스 전파 방지 차원에서 경로당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영인면은 첫 번째 메르스 확진자인 68살 남성 A씨가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을 무렵 머물던 곳이다. 그의 실거주지는 서울이지만 연중 상당 기간을 이 지역에 머물며 농원을 운영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 발병했을 때 인근 둔포면에 있는 아산서울의원을 찾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A씨가 메르스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바레인에서 인천으로 귀국한 것은 지난 5월 4일. 1주일이 지난 11일에 고열과 기침 등 증상이 시작돼 12일 아산서울의원을 찾았다가 15일에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했으니 적어도 5일 동안 영인면에 머물면서 여러 사람들과 접촉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A씨가 확진 판정을 받은 5월 20일 이후로 이 지역에 대한 정부의 격리와 역학조사 조치는 전무했다.

현재 국가지정격리병상에서 치료 중인 A씨는 상태가 위중해 말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A씨의 영인면 내 동선도 지금껏 오리무중이다. 영인면 이장들 사이에서 뜬소문만 몇 개 떠돌고 있을 뿐이었다. 어떤 이장은 A씨가 창룡리 사람이라고, 어떤 이장은 아산리 사람이라고, 또 어떤 이장은 신봉리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영구 영인면 이장협의회 회장은 “여러번 면사무소에 문의해봤지만 그쪽에서도 알지 못한다며 확인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A씨의 농원이 위치해 있다는 소문이 도는 마을도 찾아가 봤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아이고, 우리 동네에는 메르스 환자 없어유.

실제로 A씨로 인해 영인면 주민들이 감염된 사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과정을 돌아볼 때 이런 결과는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지역사회 감염'은 없었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지만, 6월 11일 확진된 119번 환자(경찰관)와 6월 12일 확진된 133번 환자(구급차 운전자)의 경우처럼 ‘병원 외 감염'이 유력한 사례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한국정부와 공동 조사를 수행한 WHO도 13일 기자회견을 통해 “지역사회 전파에도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만약 A씨에 대한 정부의 초기 대응 부실로 인해 노령층이 많은 영인면 일대에 메르스가 번졌다고 가정해 본다면 아찔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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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한테서 전화는 많이 왔는데 직접 찾아온 사람은 처음이네.

6월 10일 둔포면 아산서울의원. 지금까지는 A씨가 가장 처음 ‘밀접접촉'을 한 장소로 알려진 이 의원 관계자의 첫 마디였다. 건물 외관은 여느 읍내의 시골 의원과 다를 바 없었지만 이 지역에서는 30년 넘게 운영된 ‘토박이’ 의원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이 의원에서는 A씨에게 주사를 놓았던 간호사(8번 확진자)가 메르스에 감염됐다. 진료를 한 의사와 일부 간호사들도 한동안 자가 격리됐었다. 지금은 정부로부터 위험 종료 판정을 받고 정상 운영 중이다.

5월 12일 이곳을 찾았던 A씨는 여느 감기 환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일반적인 투약과 주사 처방을 했을 뿐이고, 폐렴 의심 환자에게 흔히 처방하는 엑스레이 촬영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어 5월 12일과 14일과 15일 등 세 차례의 내원에도 불구하고 A씨가 차도를 보이지 않자 담당 의사는 그에게 천안 단국대병원으로 가볼 것을 권했다고 한다. 그러나 A씨는 이 권고를 따르지 않고 평택성모병원으로 향했다. 만약 A씨가 의사의 말대로 국가지정 격리병상 운영 병원인 천안 단국대병원으로 갔다면 메르스 전파 양상은 지금과는 달라질 수 있었을까.

바이러스의 회귀...아직도 끝나지 않은 공포

첫번째 메르스 확진자 A씨가 아산과 평택을 경유하는 동안 감염된 사람은 모두 30명. 6월 5일 이후로는 A씨로부터 비롯된 확진자가 더 이상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끝난 건 아니다.

A씨로부터 감염된 14번 환자가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가 새로운 슈퍼전파자가 되면서 60명 넘는 사람들에게 바이러스가 퍼졌다. 이 14번 환자가 삼성서울병원으로 가기 전 들렀던 평택굿모닝병원에서도 3명의 감염자가 확인됐다. 또 평택성모병원에서 A씨와 같은 병실을 사용하며 감염된 16번 환자는 다시 대전의 대청병원과 건양대병원을 차례로 옮겨가며 20여 명의 추가 감염자를 낳았다. 여기에 아산충무병원도 확진자 경유 병원으로 지정된 상태다. 평택과 아산에서 출발했던 바이러스들이 돌고 돌아 여전히 그 주변에서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여전히 정부의 정보 공개 부족이 쟁점이다. 윤현수 평택 메르스 시민비상대책협의회 집행위원장은 “메르스 사태 초기부터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는 문제는 바로 환자 발생부터 확진까지 걸리는 기간 동안의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이를 관리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경유지에 대한 정보 공개인데 이것이 제도와 시스템에 따라 이뤄지지 않으니까 불안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점차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지역사회 확산'에 대비해 병원 정보뿐만 아니라 확진자들의 개인 정보 일부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정미 민주노총 평택안성지부 지부장은 “여전히 정부가 메르스 확산 관련 정보를 100퍼센트 공개하고 있지 않다는 의혹이 많다"면서 “지역사회 전파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확진자 개인 정보도 일부 공개해서 해당 지역 주민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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