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보호 외면한 경찰과 출입국 관리사무소, 추가 정황 확인

2021년 11월 09일 15시 15분

뉴스타파가 지난 10월 21일 보도한 이주여성 노동자 A 씨의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A 씨가 출입국·외국인청(출입국 관리사무소)에 인계되기 전 경찰 조사에서 성폭력 피해를 진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경찰이 성폭력 피해를 사전에 인지했으면서도 A 씨를 상담기관과 보호시설로 보내지 않고 출입국·외국인청에 구금시켜 “피해자 보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 성명을 냈다. 
이와 함께 A 씨는 구금에서 풀려난 뒤 국내 체류를 위해 출입국·외국인청에 기타(G-1)비자를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고 주장했다. G1 비자는 범죄 피해 등으로 수사기관의 수사나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 외국인들에게 발급되는 비자로, G1 비자가 있어야 취업해 생계활동을 할 수 있다. 법무부는 “A씨의 인천출입국·외국인청 방문내역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G1 비자 변경을 신청하면 관련 절차가 진행될 것”이라고 답변했다.

경찰, 성폭력 피해 진술 듣고도 출입국·외국인청에 인계

뉴스타파는 인천 삼산경찰서가 작성한 A 씨에 대한 피의자 신문조서 4회분을 확보해 살펴봤다. 첫 번째 경찰 조사는 사건 발생 다음날인 8월 20일 오전 10시 39분에 시작됐다. 조사 중에 경찰이 “피의자인 모텔 사장에게 정확히 어떻게 폭행당했냐”고 묻자, A 씨는 자신이 살던 모텔 1층 객실에서 사장이 자신의 뺨을 주먹으로 때리고 “침대에 눕혀서 성폭행하려고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뒤이어 “사장이 나의 저항을 막고자 한손으로 팔을 붙잡고, 한손으로 나의 바지를 계속해서 벗기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A 씨에 대한 1회차 피의자 신문조서 중 일부.
경찰은 사건 경위를 추가로 확인한 뒤 폭행당한 부위를 물었다. A 씨는 “온 몸에 멍이 들고 얼굴과 턱, 가슴 통증이 심하다. 머리에도 여러 개 혹이 생겼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는 낮 12시를 넘겨 끝났고 이날 오후 A 씨는 인천출입국·외국인청으로 바로 넘겨졌다.
이에 대해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10월 26일 성명서를 통해 “성폭력과 폭행으로 온몸에 상처를 입고 죽음과 같은 두려움과 공포를 겨우 벗어난 피해자였는데도, 미등록(불법 체류 신분)이란 이유로 피해자 보호도 제대로 못 받고 구금됐다”고 주장했다. “구조가 아닌 구금이 되도록 했다”고도 덧붙였다.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나 이주여성 쉼터와 같은 전문 상담기관이나 보호시설로 먼저 연계돼, 피해자의 신변 보호와 심리 안정, 범죄 피해 수준과 영향에 관한 초기 상담과 진술이 먼저 이뤄지도록 했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경찰청 훈령인 ‘피해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규칙’에도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제35조(심리적 지원 및 연계)
① 경찰관서의 장은 범죄피해의 경중, 피해자의 상태 등으로 보아 심리평가나 상담의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사건 및 기타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의 피해자에 대해 정신적 피해의 회복ㆍ경감을 위해 피해자전담경찰관을 통해 심리적 지원을 할 수 있다.
② 경찰관은 제1항의 피해자에게 지역 내 심리상담ㆍ치료를 제공하는 기관 및 단체에 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피해자가 원하는 경우 해당 기관 및 단체로 연계할 수 있다.

경찰청 훈령  ‘피해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규칙’ 중
실제 A 씨는 출입국·외국인청 보호실에 구금된 8일 동안 흉통으로 잠을 설치고, 안면부 통증으로 식사를 하지 못해 병원 치료를 요구했었다. 구금 7일차에 찾은 병원 응급실에서 갈비뼈에 간 실금이 발견됐고 35일간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까지 받았다.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는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 가까이 지난 시점에도 두통과 악몽,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인천 삼산경찰서 외경.
인천 삼산경찰서 측은 뉴스타파의 질의에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현행범 체포가 돼 우선 출입국·외국인청에 신병을 인계한 것”이라며 “A씨가 외부에 따로 있지 않아 신변 보호 조치는 별도 검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피해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규칙도 다시 한 번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다만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공식 인터뷰는 거절했다. 

A 씨 “비자 발급 거부 당해”…취업 못해 소득 끊겨

A 씨는 경찰과 검찰 수사, 법원 재판이 끝날 때까지 한국에 머물기를 원하고 있다. 이렇게 범죄 피해 등으로 수사기관의 수사나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 외국인들에게 발급되는 비자가 G1 비자다. G1 비자를 받으면 ‘체류자격 외 활동 허가’를 받아 취업도 할 수 있다. 장기간이 될 수도 있는 체류 기간 동안 생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A 씨는 8월 27일에 보호 해제, 즉 구금에서 풀려날 당시 인천출입국·외국인청으로부터 “9월 27일 전에 출국해라. 출국 전까지 일하면 안 된다”는 얘기만 들었다고 했다. 범죄 피해와 그로 인한 수사 때문에 추가적인 체류가 필요한 상황인데도 G1 비자와 체류자격 외 활동허가에 대한 안내를 받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9월 하순경 인천출입국·외국인청에 방문해 G1 비자를 신청했지만 발급대상이 아니라는 식의 답변과 함께 거부당했다고 A 씨는 주장하고 있다.
A 씨에게 내려진 ‘보호 일시 해제’는 다른 말로 ‘출국 명령’이다. 권리 주장과 피해 회복을 이유로 매달 출입국·외국인청에서 출국기한 유예 허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G1 비자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A씨는 직장을 구할 수 없다. 사건 발생일 이전 월급과 2년 3개월 동안 일한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범죄 가해자로 지목된 모텔 사장이 지급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A 씨는 현재 몽골 이주민 커뮤니티 대표가 운영하는 인권 보호 단체의 지원으로 석달 째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변호사 선임 비용도 일부만 지급되는 등 지원 여건도 넉넉지 않은 상황이다. 
인천출입국·외국인청 외경.
‘G1 비자와 체류자격 외 활동허가에 대해 왜 안내하지 않았냐’는 뉴스타파의 질문에 법무부는 “보호 해제 당시 성범죄 피해자인지, 상대 피의자의 입장이 어떤지에 대해 불명확한 상태”였기 때문에 출국기한 유예만 설명했다고 답변했다. 
A씨의 G1 비자 발급 신청을 왜 거부했는지에 대해서는 “A 씨가 방문 상담을 했는지 확인되지 않고, 비슷한 상담 내용을 기억하는 직원도 없다”며 “입증서류 등을 첨부해 G1 비자를 신청하면, 위와 같은 사정을 감안해 본부에 승인 상신 후 허가여부에 대한 절차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사건을 다수 다뤄온 최정규 변호사는 “당사자 입장에서 출국기한 유예와 G1 비자 발급은 천지 차이”라고 말했다. 출국기한 유예는 “당신은 한국에 있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고 “매우 불안정한 지위”라는 것이다. 최 변호사는 “성범죄 피해 가능성 있어 인도적으로 보호 해제해줬다면, 상식적으로 봤을 때 당연히 G1 비자를 발급해줘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정된 체류 보장·인권 교육 강화’ 지적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형사 소송 중에만 유효한 G1 비자만으로는 체류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소송이 끝나도 피해자의 심리 치료, 민사상 피해 보상 등 해결할 문제들이 남아있지만 체류 연장이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미국의 ‘U 비자’를 모범 사례로 꼽았다. U 비자는 범죄 피해를 신고한 불법 체류 외국인에게 발급되며, 일정 시일이 지나면 영주권과 시민권도 취득할 수 있게 돼 있다. 안정된 체류를 보장함으로써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는 건 물론, 범죄의 수사와 처벌을 원활히 해 사회 전반의 안전에 기여하겠다는 취지다. 이 센터는 U 비자와 같은 체류 자격이 국내에도 신설되는 등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법무부 답변 중 일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불법 체류 외국인, 강제 출국 대상이기 전에 범죄 피해자, 이주여성이란 사실을 공무원들이 기억해야 한다"며 출입국·외국인청과 경찰에 대한 인권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 같은 요구 사항에 대해 법무부는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체류 보장, 인권 교육 등을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고 짧게 입장을 전했다. 
※ 뉴스타파는 10월 21일에 보도한 <나의 참혹한 대한민국 : 범죄자가 된 성폭력 피해자> 기사에 대한 외국인 시청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기사 유튜브 영상에 첨부할 영어 자막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작업을 마무리해 영상을 업데이트할 예정입니다.
※ Newstapa is working on English subtitles to attach to the YouTube video of the article, thanks to the support of foreign viewers for the article <South Korea, too cruel to me : A victim of sexual violence who was treated as a criminal> reported on Oct. 21, 2021. We will finish the work as soon as possible and update the video.
제작진
취재박상희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