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최순실 체제의 부역자들 8 - 김기춘
2016년 11월 30일 17시 55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2018년부터 독립PD와 독립영화감독을 대상으로 작품 공모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성균 감독의 <검열시대>는 2019년 독립다큐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작품으로 뉴스타파의 제작비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 편집자 주 |
김기춘 잡혀가고 막 이럴 때, 저를 아직도 빨갱이 연극쟁이라고 부르는 저희 아버지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야, 그럼 너 엄청 좋아지는 거 아니냐 이제? 너 돈 좀 버냐 이제?
촛불 들고 막 나가더니 좋아졌냐 너네는?”
그걸 듣고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그래, 뭐가 달라지는 거지?’
2016년 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이제 모두에게 잊혀진 게 된 것일까. 어떤 이들은 그거 다 해결된 일 아니냐고, 어떤 이들은 아직도 블랙리스트 이야기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4년 전 사건 이후로 한국문화예술계는 얼마나 나아진 것일까?
이 다큐멘터리 작업에서는 박근혜정권 하에서 행해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실행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오히려 봉합의 수순을 밟고 있으며, 블랙리스트 실행을 가능하게 했던 한국문화예술계의 토양의 문제점들은 여전히 계속 같은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이명박 정권 당시로부터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예술인들을 배제하고 검열한다는 소문이나 정황증거는 많았지만, 박근혜 정권에 이르러서는 더욱 노골적인 사건들이 등장한다.
특히 연극계의 경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직원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풍자한 연극 <개구리>의 연출가 박근형을 2015년 창작산실 지원사업에서 배제하도록 심사위원들에게 압력을 넣고, 심사위원들이 거부하자 박근형 연출가에게 직접 지원포기각서를 받아낸 사건을 비롯하며, 같은 해 한국공연예술센터가 진행한 팝업씨어터의 <이 아이> 공연 내용이 세월호 참사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직원들이 집단적으로 공연을 방해하는 일까지 벌어지는 등, 검열의 양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구체적인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이것이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검열과 배제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2014년 3월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불법시위, 정권반대운동 등에 참여하는 단체들이 정부지원금을 받는 것에 대한 실태파악과 조치를 지시하고, 이에 따라 만들어진 ‘민간단체보조금 TF'’에서 정부보조금을 받는 단체와 개인들에 대한 성향 등의 전수조사를 통해 블랙리스트의 기본적인 데이터베이스가 만들어진다. (이 리스트는 박근혜정권 기간 동안 꾸준히 업데이트된다.)
블랙리스트 실행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영화진흥위원회 등 산하기관들이 공모사업을 진행할 때 그 신청자 리스트를 문체부를 거쳐 청와대와 국정원으로 보고하면, 이들 중 블랙리스트에 해당하는 이들이 있는지 청와대와 국정원에서 검토한 후 배제해야 되는 이들의 명단을 산하기관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배제사례는 매우 광범위했고, 2015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사업 같은 경우 책임심의위원들의 배제 거부로 사업을 시행하는 데 거의 9개월이라는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도 발생했다. 또한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이들뿐만 아니라 그들과 협업하거나 극장을 대관한 등 작은 연관관계가 있는 이들마저도 블랙리스트 배제 대상이 된 것이다.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예술가들의 분노는 단순히 지원 배제의 문제가 아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개인정보에 대한 신원조회를 비롯한 사찰이 이루어지고, 관료조직의 문서에 등재되어 관리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에 대한 공포감, 그리고 이에 따른 자기검열로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작품들이 사라지게 되는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는 권한과 시간 부족을 이유로 봉합 선에서 마무리되었고, 문체부는 진상조사위의 징계권고를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실행자들이 징계시효 만료 등을 이유로 처벌을 피했으며, 당시 문체부 기조실장은 예술대학 총장으로 영전하여 여전히 예술계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심지어 그 실행의 정점이었던 김기춘의 직권남용죄 관련 재판도 2020년 1월 대법원에서 ‘하급 기관에게 지원사업 명단을 보내라고 지시한 일들이 블랙리스트 실행과 관련된 것인지 다시 심리하라’ 고 파기환송되었으며, 김기춘의 비서실장 퇴임 이후 실행된 사건들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블랙리스트 사건이 직권남용죄에 근거한 재판이 된 근본적 이유는 헌법상의 표현자유를 뒷받침할 처벌조항이 없는 것에서 비롯된 문제이며, 예술인권리보장법 등 제대로 된 제도개선 역시 거의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
그리고 이를 실행할 수 있도록 했던 구조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 문화예술 관련 기관은 여전히 정권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하고, 사회적 문제제기를 하는 예술에 대한 배제사건들은 여전히 조금씩 다른 양상으로 반복된다.
예술인들을 대변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거수기 역할을 해 온 협회 등 민간단체들은 예술계 안에서 여전히 기득권의 역할만 하고 있다. 블랙리스트라는 어이없는 사건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공모한) 이러한 문화예술 생태계의 기반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과연 무엇이 바뀐 것일까.
연출, 촬영, 편집 | 김성균 |
촬영 | 고헌, 정용택 |
디자인 | 이도현 |
웹출판 | 허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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