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저널] 편집자주= 김대중 정권 때부터 정부는 일자리 창출에 매달렸다. 해마다 수십만개의 신규 일자리를 약속했고, 실적도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는 ‘고용 없는 성장’ 시대를 끝내고 현재 60%대 초반인 고용률을 정권 말기엔 70%대로 올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10년 넘게 계속된 정부의 일자리 창출이 오히려 소득 불평등을 부채질했다. 늘어난 일자리의 질도 문제지만, 엉뚱한 사람들이 새 일자리를 차지했다. 심화된 ‘한국의 불평등’ 사회구조를 짚어봤다.
2012년 10월 31일 저녁 6시께 울산 중구 성안동 주택가 골목길에서 폐지 손수레를 끌고가던 안모 할머니(74)가 차에 치어 숨졌다. 차는 안 할머니와 손수레 위를 달렸다. 안 할머니는 현장에서 불과 10여m 떨어진 집에서 남편과 함께 평소 폐지를 주어 생계를 이어왔다. 급경사에 꺾인 주택가 골목길엔 반사 거울도 없었다. 40대 운전자는 할머니를 친 사실조차 모른채 집까지 차를 몰았다. 이틀 뒤 경찰은 주변 편의점 CCTV로 가해차를 확인해 아파트에 주차된 차량 밑에서 혈흔과 숨진 안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발견했다. 당시 <울산저널>이 숨진 할머니 집에서 만난 70대 초반의 남편은 충격에 빠져 말을 잇지 못했다. 폐지를 주워 생계를 잇는 노인은 전국에 175만명에 달한다. 생명나눔재단이 지난달 26일 발표한 김해지역 폐지 노인 실태조사에서 폐지수입은 월 5만원에 불과했다. 지난해까지 폐지 수입은 월 10만원에 달했지만 정부 정책 때문에 크게 줄었다.
기획재정부는 올해부터 재활용폐자원 세액공제율을 단계적으로 축소했다. 세금 부담이 늘어난 재활용업체는 폐지 매입단가를 낮췄다. 자원재활용연대 조사에 따르면 1kg에 100원하던 폐지는 80원으로, 플라스틱은 150원에서 130원으로, 고철은 200원에서 170원으로 각각 떨어졌다. 결국 재활용폐자원 세액공제율 축소는 서민 증세의 전형적인 사례가 됐다.
김대중 정권 때부터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핵심으로 삼았다. 현 정부는 지난해 6월 해마다 60만 개 이상 일자리 창출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1일 호주에서 열린 ‘G20 고용노동장관회의’에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국가 정책의 핵심으로 삼아 성장률이 아닌 고용률을 국가 핵심 의제로 설정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10년 넘게 60% 초반에 묶인 고용률을 2017년까지 70%대로 끌어올리려 한다. 이 장관은 이날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선 일자리 창출 못지않게 일자리 질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11년 사이 중상위층 배우자 취업률 급증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지난 11년(2000~2011년) 동안 늘어난 일자리는 대부분 중상위층 노동자의 배우자가 차지했다. <표 참고>2000년 배우자 취업률은 가구주 소득이 낮을수록 높았다. 즉 저소득층이 배우자까지 일해 가구소득을 보충했고, 그 때문에 가구소득 불평등을 완화해왔다.
하위층 배우자의 일자리 참여는 되레 줄어
그러나 2011년엔 가구주 소득이 중상위층인 배우자의 취업률이 크게 뛰었다. 소득 수준별로 최하층을 1분위, 최상층을 10분위로 나눴을 때 중상에 속하는 7분위 가정의 배우자는 2000년 37.7%만 일했지만 2011년엔 46.3%로 크게 늘었다. 4~7분위 가정의 배우자의 취업률은 2000년보다 높아져 모두 45% 이상이었다.
결국 정부의 일자리 창출노력이 고소득층 배우자의 취업률만 높여 오히려 가구소득 불평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정부는 불평등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고용정책을 전면 손질해야 한다.
정부 고용창출이 되레 소득 불평등 유발
소득을 10분위로 나눴을 때 최하위 1분위 노동소득과 최상층 10분위 노동소득은 2000년 14.1배 차이를 보였다. 정부의 소득재분배 노력에도 2011년엔 20.2배로 소득 불평등이 더 커졌다. 이처럼 일을 하면 할수록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
같은 기간 32개 나라의 고용률과 임금불평등의 변화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고용률이 2.4%p 소폭 증가했지만 임금 불평등은 가장 크게 증가했다. 고용률이 늘어나면 소득 불평등이 떨어지는 데도 우리나라에선 고용률 증가가 노동소득 불평등을 개선하지 못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과 복지확대 등 정부의 재분배 정책이 소득 불평등을 다소 감소시켰지만, 소득 불평등의 증가가 워낙 커서 가처분소득의 불평등은 오히려 늘어났다. 65살 이상 인구의 확대도 노동소득 불평등을 부추겼다.
신규 일자리 대부분 중상위층이 독식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가 불평등을 낳았다는 기존 주장과 거꾸로 “노동소득 불평등의 심화가 세계 경제위기와 연이은 대침체의 근본 원인”이라고 말했다. 소득 불평등 상태에서 저소득층은 더 열심히 일하거나 배우자 등 가족의 노동시장 참여를 늘린다. 이렇게 해도 안 될 땐 저축을 줄이고 가계부채를 늘린다. 이런 부채의존적 성장은 부채 거품이 터지면 경제위기와 생활수준의 급격한 악화를 가져온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에선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전인 2000년부터 이런 과정이 진행됐다고 주장한다. 그나마 정부가 힘들게 만든 일자리는 조건이 좋은 중상위층 배우자들이 차지해버려 소득 불평등이 더 악화되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지난해 8월 7회 대안담론포럼 발표문에서 “고용률 증가로 노동소득 불평등을 줄이는 효과는 2000년대 들어 크지 않았고, 오히려 불평등을 유발하는 고용창출로 변질돼 국가 전체의 고용률 제고도 가로막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결국 노동시장 규제와 사회적 보호를 결합해 불안정과 격차를 억제하는 정책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성장이 빈곤과 불평등 해소하던 시대는 지났다" 정부의 여러 분배정책에도 절대빈곤율 90년대의 2배
경제성장이 빈곤과 불평등을 줄이는 만병통치약인 시대는 끝났다.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서 경제성장은 빈곤감소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구제금융(IMF) 이후 지금까지 경제성장은 빈곤감소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절대빈곤율은 1996년 3%에 불과했다가 구제금융 때 급증했다가 2009년 세계 경제위기 때 8.4%로 정점을 찍고 이후 다소 완화됐지만 여전히 90년대 중반보다 2배 이상 높다. 상대빈곤율은 2009년 경제위기 이후 사실상 제자리 수준이다.
아랫목 아무리 데워도 윗목은 냉기만
같은 기간 경제성장율(1인당 국내총생산)은 꾸준히 증가했다. 이는 과거와 달리 경제성장이 빈곤 감소로 이어지는 효과가 사라졌음을 뜻한다.
통계청 가구소비실태조사와 가계조사 자료로 1996~2012년까지 빈곤율 추이를 분석한 김미곤 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통계청 해당 조사가 “소득수준이 낮은 농.어가를 포함하지 않아 실제 빈곤율은 이보다 더 높을 것”이라고 밝혔다.
개인별 소득은 국세청 납세자료 데이터를 활용하는 게 가장 정확하다. 그러나 국세청은 수년째 노동계와 심지어 노동부의 공개요구에도 개인정보 유출을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학계의 연구목적 공개요구에도 국세청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상위 1%가 전체소득의 12% 차지
동국대 김낙년.김종일 교수가 올초 국세청 납세자료를 활용해 ‘한국의 고소득층’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은 2012년 말 한국의 소득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12.33%를, 상위 10%가 전체의 절반 가까운 44.87%를 차지해 소득불평등이 미국 다음으로 높았다. 이 논문은 지난 2일 프랑스 파리경제대학의 세계 상위소득 데이터베이스로 정식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 대학 자료로 전세계 소득 동향을 발표한다.
최저임금위원회는 해마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해 국세청에 소득 관련 납세자료를 요구하지만 국세청은 같은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저임금위원회는 통계청과 고용노동부 자료를 활용하지만 두 기관의 자료를 불완전하다.
통계청 가계조사는 설문에 의존하기 때문에 고소득층이 소득을 낮게 적어도 잡아낼 수 없다. 고용노동부 임금.근로시간 실태조사는 임금대장을 보고 기록하기 때문에 다소 정확하지만 노사가 합의해 실제보다 낮게 신고하는 것까지 가려내진 못한다. 특히 고용노동부 조사는 1~4인 사업장은 통계 대상에서 빠져 있어 영세사업장 저소득층 노동자 임금을 확인할 길이 없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해마다 1~4인 사업장 통계가 빠진 고용노동부의 ‘사업체 임금근로시간 실태조사’를 활용해 전체 노동자 임금의 절반에 해당하는 임금을 내년도 최저임금 요구안으로 확정해 발표한다. 이 때문에 노동계와 재계는 해마다 최저임금 결정을 놓고 지루한 입씨름만 반복한다.
저임금 비중 OECD 최고, 빈곤율 개선 효과도 미미
한국은 OECD 나라 가운데 중위임금의 2/3도 못 받는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미국과 함께 가장 많았다. 정부의 각종 정책을 통한 빈곤 개선효과에서도 한국은 OECD 나라 가운데 최하위권을 차지했다. 김미곤 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빈곤.불평등 추이 및 전망’ 보고서에서 “현재의 체제가 지속되는 한 한국의 시장 소득기준 빈곤과 불평등은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임금차별(노동소득 불평등)은 교육수준에 따른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사이 불평등이 심했으나 최근엔 정규직 여부(종사상 지위)에 따라 크게 좌우되고 있다.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1992~2012년 사이 20년 동안 연령과 교육수준, 성별, 종사상 지위, 산업, 직종 등 5개 요인별로 노동소득 불평등에 미친 기여도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종사상 지위에 따른 노동소득 불평등이 최근 20년 동안 가장 크게 악화됐다. 1992년엔 정규직, 비정규직 여부가 임금차별에 겨우 6.3%만 영향을 줬다. 그러나 2012년엔 24.6%나 영향을 미쳤다. 이 수치는 1997년까지 한 자리 수(8.5%)에 불과했으나 구제금융(IMF) 직후 1999년 17.1%로 2배로 급증한 뒤 고공행진중이다. 최근 2~3년 사이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이 다소 나아져 다소 주춤했지만 여전히 높은 불평등 기여도를 보였다.
'가방 끈 길이'가 좌우하던 임금차별 이젠‘정규직/비정규직 여부’가 결정
1992년 임금차별은 주로 성별과 교육수준, 직종이 좌우했다. 성별 임금차별은 지금도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수준과 취업 직종이 임금차별에 미친 영향력은 20년 동안 크게 줄었다.
1992년까지 우리 노동시장은 교육수준에 따라 취업직종을 달리해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로 양분돼 임금격차가 심했다. 그러나 20년 사이 교육수준에 따른 임금차별은 크게 완화됐다.
반면 정규직 여부에 따른 임금차별이 급증했다. 1992년 노동시장에서 정규직 여부(종사상 지위)는 임금에 불과 6.3%만 영향을 줬다. 그러나 2012년엔 24.6% 급증했다.
최근 한국 노동시장의 불평등은 정규직 여부와 성별이 결정한다. 여성과 비정규직 해소를 직접 겨냥한 노동정책으로 변해야 불평등 사회에서 탈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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