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영풍제련소 '백혈병' 하청노동자...1심 이어 2심도 '산업재해' 인정

2025년 02월 03일 17시 52분

영풍 석포제련소 하청노동자로 일하다가 급성 백혈병에 걸린 진현철 씨가 항소심에서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지난 16일 서울고등법원 행정3부 (재판장 정준영)은 "피고(근로복지공단)의 주장이 1심과 크게 다르지 않고, 제출된 증거를 피고의 주장과 함께 다시 살펴보더라도 1심의 사실인정과 판단은 정당하다고 인정된다"며 근로복지공단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고(진현철)의 손을 들어줬다.
낙동강 최상류인 경상북도 봉화군에 있는 석포제련소는 아연, 황산 등을 생산하며 매년 1조 2,000억 원 가량을 벌어들이는 재계 30위권의 대기업이다. 하지만 설립 때부터 '환경파괴 주범', '노동재해 다발 기업'이란 오명을 받아왔다. 석포제련소의 작업환경과 관련한 우려와 문제 제기는 꾸준히 제기되어 왔으나, 중대 질병으로 인한 산업재해가 인정된 것은 진 씨가 처음이다.  
2021년 9월 뉴스타파는 영풍 석포제련소의 환경파괴, 주민건강을 외면하는 지자체의 문제를 4회에 걸쳐 보도했다. 진 씨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영풍 석포제련소가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건강 보호장비가 턱없이 부족했다"면서 "노동자들이 유해 물질에 얼마나 노출되는지를 확인하는 작업환경 측정에도 문제가 많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영풍 석포제련소 협력업체 S사 퇴직자인 진현철(왼쪽) 씨. ⓒ뉴스타파

서울고등법원 "5년간 27건 하청 근로자 산재 발생"

진 씨는 2009년 12월부터 약 7년간 석포제련소 제련과정에서 발생한 불순물 찌꺼기를 제거하는 일을 했다. 3조 3교대로 하루 8시간씩 주 7회 출근하며 아연을 추출하고 남은 뜨거운 중금속 슬러지를 긁어내고 원료를 하역하는 업무를 주로 했다. 
2017년 8월 진 씨는 온몸에 힘이 없고 입맛이 떨어져 병원을 찾았다가 돌연 급성 전골수성 백혈병을 진단받았다. 진 씨는 2019년 9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포름알데히드 등의 발암물질에 대한 인체 노출 수준이 미미하다는 이유로 2021년 6월 진 씨의 산재 신청을 기각했다. 
뉴스타파 보도 이후 진 씨는 민주사회를통한변호사(민변)의 도움을 받아 2021년 9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포름알데히드, 비소, 아연, 카드뮴, 구리, 납, 수은 등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업무 환경에서 일했고, 60대 나이에 3교대 근무를 하며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며 "여러 유해인자에 복합적으로 노출돼 업무상 질병으로 보아야 한다"며 법적 다툼을 시작했다.
2023년 11월 1심 재판부는 진 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진 씨의 백혈병이 산재라 판단한 서울행정법원(재판장 손혜정)의 근거는 크게 네 가지였다.
  1. 측정값만으로 원고가 업무 수행 중 노출된 포름알데히드 등의 발암물질의 양이 미미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2. 지속적으로 노출된 포름알데히드는 백혈병 관련성이 의학적으로 확인된 물질이다
  3. 석포제련소는 유해물질 노출 관리가 잘 되지 않아 심각하게 지적을 받았던 사업장이다
  4. 석포제련소 근무 전 진 씨는 별다른 건강 이상이 없었고, 가족력도 없었다
근로복지공단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2025년 1월 서울고등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인용하면서 아래 3가지 내용을 추가했다. 
  1. 원고는 2016년 이전까지 방진 기능이 없는 일회용 마스크만 착용한 채 포름알데히드에 장기간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
  2. 2015년 실시된 토양조사에서 1급 발암물질 비소가 우려 기준보다 최대 33배까지 초과돼 검출됐다
  3. 각종 위반 행위로 조업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지속적으로 받아왔고, 5년간 27건의 하청업체 근로자의 산업재해가 발생하고 직업병 유소견자가 매년 20명 이상 발생하는 등 사회적 논란 빚었다

"1,2심 모두 근로복지공단 판단 위법성 지적"

사실 영풍 석포제련소의 열악한 작업환경관리 실태에 대한 비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매년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주요 논점으로 다뤄질 정도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경영 책임자인 원청 대표이사가 해당 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된 첫 번째 사례가 바로 석포제련소다. 2023년 12월 탱크 수리 작업을 하던 근로자들이 비소에 중독돼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치면서 지난해 9월 박영민 영풍 석포제련소 대표이사와 배상윤 석포제련소장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진 씨를 대리한 임자운 변호사(법률사무소 지담)는 "근로복지공단은 '백혈병 발병 원인으로 확인된 물질이 고농도로 노출됐는지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 씨의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었는데, 1,2심 법원 모두 이런 판단에 대해 위법성을 지적했다"고 말했다. 또한 "산재보험법상 상당 인과관계 판단이 ‘의학적 관련’ 규명 여부에 좌우되어서는 안된다고 본 점, 공장 안팎에서 확인된 여러 환경 문제를 원고의 작업환경 평가에 적극적으로 고려한 법원의 판단이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진 씨는 지난달 20일 뉴스타파와 한 통화에서 "대법원 판단이 남긴 했지만 1,2심 판단이 대법원까지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면서 "본인을 시작으로 석포제련소 하청업체 퇴직자도 산재를 인정받고, 이로 인해 석포제련소가 근로자 환경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작진
취재이명선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