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인권

[미투인터뷰]'선생님' 오태석을 고발한 이후 그녀에게 닥친 일들

2018년 03월 21일 16시 23분

지난 2월 15일, 연출가 이윤택 씨에 이어 또 한 명의 연극계 거장인 오태석 연출가의 성추행 사실이 폭로됐다. 이후 연극배우뿐만 아니라 서울예대 연극과 학생들 중에서도 성추행을 당했다는 추가 증언이 나왔다. 그러나 오태석 연출가는 한 달이 넘도록 인정도 사과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 자신이 대표로 있는 극단 ‘목화’, 초빙교수로 있던 서울예대, 그 어디에도 모습을 드러나지 않고 있다. 서울예대는 연락이 두절된 오태석 초빙교수를 배제한 상태로 피해자들 증언과 정황증거를 조사해 오 교수의 임용계약을 해지했다.

피해자들은 아직까지 아무런 사과도 받지 못 했다. 오히려 “오태석이 무너지면 한국 연극이 무너진다”며 피해자를 비난하는 2차 피해에 시달려야 했다. 사안을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으로부터도 2차 피해를 당했다.

오태석 연출가의 성추행 사실이 폭로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자신의 SNS를 통해 가장 먼저 피해 사실을 고발한 연극배우 박영희 씨가 카메라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미투 그 이후’ 벌어진 일들과 그간 못다한 이야기를 털어 놨다.

▲한국 연극계의 거장 오태석 연출가. 피해자들의 미투 폭로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올해로 23년 차 연극배우 박영희 씨(극단 ‘목화’ 단원 출신). 그의 연극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 ‘오태석’. 한 달 전 그는 평생을 ‘선생님’으로 불렀던 연출가 오태석을 고발했다. ‘선생님’으로부터 당한 지속적인 성추행 피해 사실을 그의 페이스북에 폭로했다. 몇 번을 썼다 지우고 다시 또 고쳐 쓰며 조심스럽게 올린 한 편의 글. 그 속에 담긴 한국 연극계의 거장, 오태석 연출가의 두 얼굴.  이윤택 연출가에 이어 연극계에 던져진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그날 부로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잃은 것도 있었고 얻은 것도 있었다. “후회도 했지만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선택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하는 영희 씨. 그가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을 미투 고발자들과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호주 등을 오가며 연극 작업에만 몰두해 왔던 영희 씨가 미투 운동에 참여하게 된 건 “또 다른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였다. 2년 전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을 보고 생각만 하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에 용기를 얻었다. 이윤택 연출가의 피해자들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접하면서 연극 환경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것이 없다는 점에 미투에 나서야겠다고 결심했다.

제 후배들에게는, 동료들에게는 똑같은 환경을 물려줄 수 없다는 절박함에 미투를 하게 됐어요.

‘오태석이 무너지면 한국 연극이 무너진다’...무차별적인 2차 가해들

오태석이라는 연극계 거장의 민낯을 힙겹게 세상에 알린 영희 씨는 미투 이후 또 다른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언론의 ‘2차 가해’였다. 피해자 찾기에 나선 언론은 영희 씨는 물론 주변인과 가족들까지 무차별적으로 괴롭혔다.

하지도 않은 말들이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는 것도, 선정적인 피해 사실만을 부각하는 기사를 보는 것도 그에게는 큰 고통이었다. 두 번째 2차 피해는 주변인과 SNS의 댓글이었다. “오태석이 무너지면 한국 연극이 무너지는데 꼭 이렇게 했어야만 했냐”, “결국은 돈과 권력을 쫓다가 그것으로부터 좌절하니까 그 사람들한테 복수하기 위해서 미투를 이용한 것 아니냐”는 식의 댓글이 달렸다.

최근에는 미투가 정치권 등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정치공작’이라는 단어까지 나왔다. 영희 씨는 “아직 미투조차 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많은데, 사회적으로 굉장히 발언권이 센 사람들의 입에서 ‘공작’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이 개탄스럽다”며 “겉으로는 미투를 지지한다고 하면서도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이 겪고 있는 피해를 폭로하는 미투를 공작 또는 음모로 보는 것은 진심으로 피해자 입장에서 공감하지 못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힘내라’라는 말 보다 ‘힘들죠’란 위로 절실

영희 씨는 2차 피해 혹은 2차 가해를 막기 위해선 “진심으로 공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단순한 것 같지만 최근 미투 고발자들에게 가해지는 댓글을 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 또는 나의 가족의 일이라고 생각해 주기를, 또 여성 만의 일이 아닌 남녀 모두의 일”로 여겨주기를 부탁했다.

남성도 여성 못지 않게 위계에 의한 폭력을 겪고 있어요. 직장에서도 그렇고, 군대 문화도 그렇고요. 미투를 여성만의 일이 아닌, 남녀 모두의 일, 모든 권력관계 속에 오랜기간 존재해 왔던 위계에 의한 폭력, 그에 대한 저항으로 봐주셨으면 해요.

한가지 더. 그는 미투 고발자들에게는 “힘내라”라는 응원 보다 “힘들죠”라는 위로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혼자가 아니라 당신 옆에 있다”는 공감과 위로의 말이 더 힘이 된다는 것이다.

그 글을 쓰는 순간, 제가 인간으로서 낼 수 있는 최대치의 힘, 인간으로서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치의 용기를 이미 낸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에서 더 힘내라라고 하면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는거죠.

나 자신과의 화해, 치유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 ‘미투’

미투에 나선 지 한 달. 영희 씨는 “미투를 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눈을 감았다.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매일 꿈을 꿔요. 미투 이후에 단 하루도 잠을 편히 자본 적이 없어요. 아마 그것은 어찌 됐든 제 20년 동안의 과거, 저를 배우로서 이렇게 있게 했던 그 시간 속에서 오태석이라는 사람 그리고 그 시절을 함께 했었던 많은 사람들이 저한테는 굉장히 소중한 삶의 부분인데 그분들의 삶 역시 지금 바뀌어있고 저 역시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쉽게 잠들 수 없어요. 후회, 당연히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시간을 되돌린다 하더라도 저는 똑같은 선택을 할 것 같아요.

영희 씨는 미투를 통해 비슷한 피해를 겪었던 동료들을 도와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을 조금 덜었다. 후배와 동료들에게 더이상 같은 피해를 물려줘선 안 된다는 책임감은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자신의 아픔을 바깥에 꺼내놓음으로써 전보다 자유로움을 얻었고, 치유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나를 통해 조금이나마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희망도 봤다. 그가 시간을 되돌려도 미투를 선택하겠다고 말한 이유다.

영희 씨는 현재 연극계 성폭력 방지를 위해 결성된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에 함께 하고 있다. 미투 당사자로서 또 다른 피해자를 돕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그는 미투조차 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혼자 감당하려 하지 말고 주변에 반드시 도움을 청하라”고 부탁했다.

많은 미투 참여자들이 얼굴을 드러내고 실명으로 이야기했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어요. 그 이후에 따라오는 2차 피해가 크기 때문에 꼭 그렇게 드러내지 않아도 피해자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곳이 많아요. 한국성폭력상담소나 한국여성민우회 등 주변에 꼭 도움을 요청하세요. 개인이 감당하기는 굉장히 힘든 일이기 때문에 절대로 ‘나’라고 생각하지 말고 옆에 ‘우리’가 많으니까 그 ‘우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시길 바라요.

인터뷰 : 홍여진
촬영 : 정형민
편집 : 이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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