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기록을 미래로 보내자

10.29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20여 일이 지났다. 아직 애도하는 중이고, 원인을 찾는 중이고, 수습하는 중이다. 피해자와 유가족의 아픔을 공유하고, 시민들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야 할 때이다. 또한 진상과 책임자 규명도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참사 관련 기록을 빠짐없이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할 틀을 만드는 것이다. 진상규명, 추모, 연구 모든 것을 위해 기록이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 공공기록과 시민기록 모두 수집해 미래로 보내야

참사기록은 참사 원인을 밝혀줄 기록과 대응 및 수습 기록, 그리고 추모기록으로 나눌 수 있다. 앞의 것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생산하고 관리하는 기록이고, 뒤의 것은 시민기록이다.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고 수습하는 공공기록과 아픔을 공유하는 시민기록을 모두 수집 보관해 미래로 보내야 한다. 참사의 사회적 기억을 모아 미래로 보내는 것은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참사기록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사회적으로  짐작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월호참사 수습 과정에서 기록을 제대로 수집하고 관리하지 못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일이다. 세월호참사는 그 진상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이러저러한 수사와 조사가 있었지만 모든 사람이 합의하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런 결과의 이유는 참사 대응 초기에 기록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그것을 제대로 관리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수습과정에서 기록을 제대로 수집하고 관리하지 못해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른 대표적 사례다.
세월호참사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대통령지정기록물에 접근하고 이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렇지만 대통령지정기록물에 세월호참사의 진상을 밝혀줄 기록이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검찰이 세월호참사를 수사한다며 대통령기록관을 세 번이나 압수수색해서 대통령지정기록물에 접근했지만 결정적인 증거기록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대통령지정기록물이 진상을 밝혀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것은 헛된 바람일 수 있다. 오히려 기록을 남기지 않았거나, 남긴 것도 불법적으로 처분했을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참사의 수습 과정에서 체계적 기록관리를 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정부와 서울시가 기록 관리 나서라

역사적 사회적 기억을 모아서 미래로 보내는 일은 국가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의무이다. 더욱이 그것이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참사라면 그 의무는 더욱 크고 무겁다. 그래서 정부와 서울시가 기록관리에 나서야 한다. 
첫째, 기록이 소실되지 않고 역사기록이 되도록 해야 한다. 공공기록물법 제27조의2 제2호에는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의 보호 등 국민의 권익 보호를 위하여 기록물의 폐기금지가 긴급히 필요한 경우”에는 기록의 폐기를 금지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고, 같은 법 시행령 제26조 제2항에는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의 장은 특별히 보존기간을 달리 정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단위과제에 대해서는 보존기간을 직접 정할 수 있다”라고 정해 놓았다.
 이 두 조항 모두 국가기록원장과 서울기록원장의 권한으로 시행할 수 있다. 법령에 따라 정부와 서울시는 이번 참사와 관련한 기록의 폐기를 금지해야 한다. 참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기관들, 이를테면 대통령실, 서울시청, 행정안전부, 소방방재청, 경찰청, 서울경찰청, 서울소방안전본부, 용산구청 등이 이번 사태와 직접 관련이 있는 곳들이다. 또 이 기관들에게 이번 참사 발생 전후의 원인 규명, 대응과 수습 기록을 단위과제로 한데 묶고, 영구보존 기간을 부여하는 등 따로 분류해서 관리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추가 진상규명과 수습에 대한 피해자 지원과 역사적 평가를 위해 모든 기록이 하나도 누락없이 역사기록이 되도록 해야 한다.

시민기록은 벌써 소실되는 중

 둘째, 시민 추모기록을 완전하게 수집하고 보존해야 한다. 참사 이후부터 많은 시민들이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물품과 글귀를 남겨 추모에 동참하고 있다. 시민들이 남긴 추모와 위로의 메모 하나하나는 10.29 이태원 참사라는 ‘사회적 기억’의 한 대목이다. 이것을 스쳐 지나가는 행동으로 끝나게 해서는 안된다. 이미 이전에 발생했던 참사의 경우 기록을 수집해서 보존하고 있는 사례가 있다. 구의역 사건과 강남역 사건의 추모기록은 서울시에서 수집하여 보존하고 있다.
구의역 사건 당시 시민들이 남긴 추모기록들. 서울시가 수집해 보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참사의 추모기록은 아직 수집하지 못하고 있다. 추모 공간을 관리하는 주체가 명확하지 않고, 대표성이 없어서 서울기록원 같은 아카이브가 협의할 대상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들을 대표자라고 할 수는 없다. 피해 유가족의 모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시민들이 하나하나 붙여 놓은 메모지들을 수습해서 기록관리 조치를 할 수 없다. 정부와 서울시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기록을 수집하는데 어려움을 준다.
만약 서울시가 추모기록 수집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시민을 설득해야 한다. 실외의 추모 공간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비바람은 기록의 소실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미 많은 기록이 사라져 가는 중이다. 매우 급하다.

유족과 피해자의 기록 접근 보장해야

셋째, 참사기록에 대한 피해자와 유가족의 접근을 완전히 보장해야 한다. 참사에 대한 애도와 진상규명 요구는 금방 끝날 일이 아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일은 더 많아질 것이다. 이때 관련 기록의 접근과 열람, 그리고 공개는 반드시 보장돼야 할 전제 조건이다. 특히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기록에 대한 접근은 상처를 씻고 일상의 삶을 살아가게 할 가장 적극적인 지원정책이다. 피해자와 유가족이 무언가 하려고 할 때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기록이다.
그러나 벌써 지우고 없애려는 반문명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 핼러윈을 앞두고 작성된 용산경찰서의 정보보고서가 삭제되었고, 관련자가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용산구청은 기존에 공개되었던 핼러윈 회의 문서를 비공개로 전환하거나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비공개하고, 일부 기록은 알 수 없는 시스템 오류로 확인이 불가능하다며 시민의 알 권리를 외면하고 있다.

철저한 기록과 빠짐없는 공개만이 사회적 비용 줄인다

참사에 대응하고 수습하는 가장 확실한 조치는 철저하게 기록하고 빠짐없이 공개하는 것이다. 그래야 사회적 논란을 없애고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빨리 잊히길 원해서 기록되고 공개되는 것을 꺼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결코 잊히지는 않는다. 어느 순간 송곳처럼 불쑥 드러날 것이다. 그때 우리 사회는 또 대립과 갈라치기로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다. 그 상황을 맞지 않기 위해서 ‘지금, 여기’를 기록하고 보존하고, 공개해야 한다.
제작진
디자인이도현
출판심인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