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김건희 디올백, 정말 돌려주라고 했을까

2024년 07월 18일 14시 23분

첫 보도가 나온 지 7개월 반만에 드디어 디올백의 행방에 대한 김건희 여사 측의 입장이 나왔다. 대통령실 설명은 그동안 여러 차례 있었지만, 김건희 여사 측의 직접적인 입장이 나온 건 처음이다.  

오락 가락 해명… 디올백 반환하면 국고 횡령이라더니 

대통령실은 올해 1월 19일 “대통령 부부에게 접수되는 선물은 관련 규정에 따라 국가에 귀속돼 관리 보관된다”고 했다. 마치 김건희 여사가 외국 정상으로부터 공식적인 선물이라도 받은 것 같은 투였다. 공식적인 선물처럼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쳐 보관하고 있기만 하면 사적 친분에 따라 받은 사적 선물도 공식적인 선물로 둔갑시킬 수 있는 걸까. 
이른바 ‘찐윤’으로 분류되는 이철규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가 준엄하게 선포했다. “이것(디올백)은 대한민국 정부의 것이다!”  “국고에 귀속된 물건을 반환하면 국고 횡령이다!” (2024.1.22.) 
대통령실의 이런 입장은 최근까지도 유지됐다. 지난 7월 1일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디올백이) 포장 그대로 대통령실 청사 내에 보관 중인 것으로 알고있다”고 말했다. 다만 사족이 하나 붙었다. “대통령 기록물로 분류하는 작업은 아직 기한이 도래하지 않았다”는 것. 무슨 말이냐면 사실은 아직 대통령 기록물로 분류하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제대로 보관하고 있다’는 취지였던 앞선 1월의 해명과는 뉘앙스가 많이 다르다. 한 발 물러선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여론의 압박에 못 이겨 검찰이 수사를 시작해버렸다. 디올백을 받을 때 동석했던 대통령실 유 모 행정관이 검찰에 나가 조사를 받았다. 그녀는 검찰에서 이렇게 진술했다고 한다. “김건희 여사가 반환을 지시했는데 깜빡하고 돌려주지 못했다” 이럴 수가. 지엄한 영부인님의 지시 사항을 일개 행정관이 ‘깜빡’해버리다니. 이것 참 대통령실의 기강이 말이 아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 행정관은 ‘깜빡’한 게 아닐 수도 있겠다. 이철규 의원의 준엄한 선포에 따르면 “국고에 귀속된 물건을 반환하면 국고 횡령”이라고 하니, 영부인의 반환 지시는 국고를 횡령하라는 지시와 같다. 그렇다면 사실 유 행정관은 영부인의 불법적인 국고 횡령 지시를 따르지 않음으로써 영부인을 보호하려고 한 것 아닐까? 눈물겨운 충성심이다. 
더 나아가 생각해보니 정진석 비서실장이 “아직 대통령 기록물로 분류 안했다”고 해명한 것도 영부인을 국고 횡령죄 혐의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런 복잡한 사정과 충신들의 충정을 알 리 없는 무지한 국민들은 유 행정관의 설명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엄하게도 실소와 함께 ‘꼬리자르기’라고 했다. 수많은 언론도 비판을 쏟아냈다. 심지어 동아일보까지. 

디올백 포장은 누가 풀었나

스스로 생각해도 행정관이 ‘깜빡했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느꼈을까? 이틀 뒤인 16일 오후 12시 29분, 김건희 여사 측은 처음으로 직접 해명에 나섰다. 선물을 준 최재영 목사의 기분이 나쁠 수도 있으니 ‘추후에’ 돌려주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아 그럼 그렇지. ‘추후’에 돌려주라고 했으니까 다른 업무를 처리하다 ‘깜빡’할 수도 있었겠구나. 이제 이해가 된다. 마침내 이치에 닿는 해명을 만들어 낸 김건희 여사 측의 최지우 변호사는 자신만만하게 여사님의 결백을 강조하기 위해 “포장도 뜯지 않은 채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어쩌나, 또 손발이 안 맞았나 보다. 같은 날 오후 3시 47분 최 변호사는 “포장을 풀어보긴 했으나 반환하기 위하여 그대로 다시 포장하여 가지고 있다”고 불과 3시간 만에 말을 바꿨다. 아 포장을 풀어봤구나. 그래 영부인도 내용물이 궁금할 수는 있잖아. 비록 카톡으로 미리 사진을 전달받았다 해도 사진하고 실물은 다르니까. 열어서 물건을 직접 봐야 쓸만한 물건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테지. 물론 최 변호사는 포장을 김건희 여사가 풀어봤는지 아니면 유 모 행정관이 풀어봤는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래, 뭐 까짓 포장이야 한 번 풀어볼 수도 있지. 누가 풀었든 그게 중요한가. 

“김건희, 과거에도 유 행정관에게 쓰던 명품 수시로 줬다” 

몇달 전 김건희 여사와 유 행정관을 모두 잘 아는 제보자를 한 명 만났다. 편의상 제보자 A라고 하자. 재밌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본격적인 기사로 쓰기 위해서는 취재와 검증이 필요한 내용이 많았다. 그래서 고이 저장해두었다. 그런데 이 제보자의 얘기 중에 디올백과 관련한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내용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유00 씨는 코바나 컨텐츠에서부터 10년 이상 김건희 여사를 ‘모시고’ 있는 분이에요. 정작 월급은 많이 안 주면서도 김건희 여사는 본인이 쓰던 명품 가방 같은 것을 유00씨한테 자주 줬어요. 그런 건 널부러져 있으니까. 그리고 가끔  해외도 데려가고… 유00씨는 코바나 컨텐츠 시절 회사를 그만뒀다가 재입사를 한 적이 있어요. 제가 보기에는 그런 명품 가방 같은 것도 다시 돌아간 이유 중 하나였을 거예요. 중독된 거죠. 

김건희-유00 행정관의 지인 A씨와의 인터뷰 중
그러면서 그는 문제가 되고 있는 디올백도 김건희 여사가 직접 사용하지 않고 유 행정관에게 줬을 거라고 추측했다. 
솔직히 천만 원도 넘는 에000 버킨백 들고 다니는 분이 디올 300만 원 짜리 그런 거 쓰겠어요? 유00 씨 쓰라고 줬을 거예요. 제 생각에는.

김건희-유00 행정관의 지인 A씨와의 인터뷰 중
제보자 A가 이런 추측을 말한 것은 디올백 사건과 관련해 유 모 행정관이 등장하기 한참 전이다. 

“김건희, 디올백 비서에게 줬다고 말해”

제보자 A를 만나기 얼마 전 또 다른 제보자를 만났다. 편의상 이번에는 제보자 B라고 하자. 제보자 B는 자신이 김건희 여사를 만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건희 여사와 주고받았다는 카카오톡 내용을 보여주기도 했다. 번호를 확인해보니 기자가 알고 있던 김건희 여사의 휴대전화 번호와 같았다. 제보자 B가 김건희 여사를 만난 이유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밝히기 어렵다. 그의 신원이 특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보자B는 김건희 여사를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문제의 디올백에 대해 물어봤다고 한다. 그러자 김건희 여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그런 걸 왜 써요. 받자마자 우리 비서한테 줘 버렸어”
다만 제보자B는 그 비서가 유 모 행정관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애초에 김건희 여사의 비서들과는 모르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최재영 목사 사건 이후 몸 수색이 강화되어서 김건희 여사의 말을 녹음하지도 못했다고 했다. 

받은 뒤 선물했어도 받은 것은 받은 것

유 모 행정관의 검찰 진술과 김건희 여사 측의 해명, 그리고 제보자들의 얘기를 종합해 그려본 ‘시나리오’는 이렇다. 어디까지나 ‘시나리오’다. 
김건희 여사는 명품백을 받았다. 명품이지만 자신의 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비서이자 지금은 대통령실 행정관인 유 모 씨에게 줘버렸다.유 씨가 그것을 집에 가져갔는지 관저에 두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직 물건이 있다고 하니 그래도 다행히 ‘당근’에다 처분해버리지는 않은 것 같다. 포장 상자도 버리지 않고 보관했나보다. 
보도가 나오자 유 행정관의 마음은 덜컥 내려 앉았다. 불안했지만 물론 든든한 뒷배가 있다. 예기치 않았던 원군도 나타났다. 대통령과의 대담에 나선 KBS 박장범 앵커가 “파우치, 쪼만한 백”이라고 불러주자 다시 안심이 됐다. 이래서 대통령님이 자신의 말 그대로 “언론계에서 가장 존경받고 유능하다는” 박민을 내세워 KBS 정상화를 하셨구나. 
그래서 그냥 넘어갈 줄 알았는데 웬걸, 총선에서 국민의 힘이 대패하자 검찰이 여론에 밀려 수사에 착수했다. 국민 권익위는 아무 문제 없다고 했는데 검찰은 왜 이러나. 검찰이 불렀다. 검찰에 나가 절반의 진실 (김건희 여사가 내게 줬다)과 절반의 거짓 (반환하라고 했다)을 섞어 말했다. 누군가의 조언 내지는 지시에 따라. 
여기까지가 시나리오다. 시나리오대로 김건희 여사가 최재영 목사로부터 디올백을 받아 곧바로 유 행정관에게 줬다면 김건희 여사는 디올백을 받은 것일까 안 받은 것일까. 법무법인 소헌의 신인수 변호사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받아서 중고로 팔았든, 불에 태웠든, 누구에게 선물로 주었든 자신의 의사와 선택권에 따라 처분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받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다. 소유하지 않은 물건을 남에게 하사, 아니 선물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 물론 이것은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 가공의 ‘시나리오’에 불과하다는 것을 거듭 밝혀둔다. 비록 그것이 지금까지의 정황과 딱 맞아 떨어지고 복수의 독자적인 제보와 일치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노파심에 말씀 드린다.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훼손 혐의에 이어 김건희 여사의 명예 훼손혐의로 뉴스타파를 수사하지는 말아달라. 이미 국격이 무너질 대로 무너졌는데 ‘대통령 부부 명예훼손' 수사까지는 좀 그렇다. 
제작진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