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기후·환경 위기에 지속가능한 도시를 구현하겠다며 지난해 10월 그린뉴딜 정책의 대표 사업으로 스마트 그린도시의 청사진을 발표했다. 환경부가 공모를 통해 선정한 25개 지방자치단체에 2021년부터 2년 동안 총 2,900억 원의 사업비를 집중 투입해 미래형 친환경 도시를 만든다는 것이 스마트 그린도시 사업의 목적이다.
그린뉴딜 사업과 '가짜 용천수'
제주특별자치도가 제안한 사업도 스마트 그린도시 사업으로 선정됐다. 제주도는 제주시 용담동에서 발견된 용천수를 이용해 생태공원을 조성하고, 쓰레기 수거 시스템을 바꾸는 겠다는 계획을 제출했다. 이를 위해 국비 60억 원과 도비 40억 등 총 100억 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그러나 취재 결과 제주도가 말한 용천수는 없었고, 생태공원 조성 또한 입지 조건상 사업 진행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뿐만 아니라 고가의 쓰레기 불법투기 감시 장비 구입이 그린뉴딜 사업으로 포장돼 있었다.
제주도의 스마트 그린도시 사업 구상도에는 용천수를 활용해 참여형 생태공원을 조성하고, 쓰레기 중량제 시범 사업과 시민참여형 자원 순환 사회조성이라는 거창한 목표가 담겨 있다.
제주도는 스마트 그린도시 사업의 일환으로 용천수를 활용해 참여형 생태공원을 조성하기로 했다. 용천수가 발견된 위치는 한라산 기슭에서 내려오는 병문천 하류 지점으로, 제주국제공항에서 동쪽으로 2km가량 떨어진 제주시 용담1동의 바닷가 부근이다. 제주도는 이 곳에 주자창을 마련하기 위한 복개공사를 하던 중 용천수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용천수는 지하수가 암석이나 지층의 틈을 통해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샘을 말한다.
그러나 제주도가 스마트 그린도시 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후, 뒤늦게 진행된 담당 부서의 검토 결과 용천수는 애초부터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용담동 지역에서 복개천 공사를 하다가 굴착 도중에 지하수 층을 건드려서 지하수가 유출된 것으로 담당 부서에서 최종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자연적으로 솟아난 용천수가 아니라 공사 도중 지하수층을 건드려 지하수가 터져 나왔다는 것이다.
제주시 용담동 주차장 공사 부지에서 유출되고 있는 지하수(왼쪽 사진 )와 현장 실사를 진행 중인 공사 관계자들(오른쪽 사진).
제주도는 수자원의 90% 이상을 지하수에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환경단체들은 제주도의 유출 지하수 활용 계획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는 "현재 제주도가 직면한 심각한 물 부족 위기는 지하수를 너무 많이 써서 발생했다. 용천수나 지하수를 뽑아서 공원 등지에 활용하겠다는 계획은 기본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빗물 재활용 같은 지하수 보존을 위한 진짜 그린뉴딜 사업은 하지 않고 생태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사업들을 추진하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졸속 행정'으로 만든 생태공원 조성 계획
용천수를 이용해 만들겠다는 생태공원 조성 계획 역시 곳곳에서 차질을 빚고 있다. 제주도가 공원 부지로 선정한 지역이 문화재 보호법과 공원녹지법 등에 따라 개발이 제한된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것이다.
제주도가 생태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밝힌 부지는 지하수가 유출된 지역에서 200m가량 떨어진 용담근린공원이다. 제주도는 기존에 있던 근린공원에 용천수를 끌어와 주민들을 위한 족욕시설과 분수대 등의 시설물을 추가로 설치해 생태공원으로 전환할 계획이었다. 문제는 용담근린공원이 문화재 보호법 및 제주도 조례 등에 따라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 속한다는 점이다.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서는 무분별한 개발을 막기 위해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등을 거쳐야만 개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제주도 문화재위원회는 용담근린공원을 생태공원으로 전환하는 사업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용두암, 미륵서자복, 제주목 관아, 관덕정, 제주 향교 등 다수의 지정문화재가 위치해 있어 문화적 보존가치가 높은 용담근린공원 일대가 공원 개발 사업으로 인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제주시가 계획한 생태공원 조성 부지 인근에 용두암, 미륵서자복, 제주목 관아, 관덕정, 제주향교 등 다수의 지정문화재가 위치해 있다.
용담근린공원에 이미 설치돼 있는 시설물 또한 문제다. 현행 도시공원녹지법의 시행규칙에 따르면 근린공원에는 운동기구 등 시설물이 차지하는 면적이 전체 부지의 40%를 넘지 못한다. 과도한 시설물 설치로 녹지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용담근린공원에는 이미 화장실과 정자, 운동기구 등 시설물이 전체 부지 면적의 40%를 넘어선 상태. 애초부터 생태공원 조성을 위한 추가 시설물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는 의미이다.
용천수를 활용해 용담근린공원을 생태공원으로 조성하는 사업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파악됐지만 제주도는 일부 계획을 수정해 스마트 그린도시 사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사 중 유출된 지하수를 관리하고 이를 용담근린공원 화장실 등에 공급하는 데 10억 원, 용천수가 나오는 제 3의 부지를 선정해 생태공원을 조성하는데 33억 원의 예산을 오는 2022년까지 집행할 예정이다. 정부에 제출한 원래 계획과는 크게 다른 사업으로 바뀌고 있지만, 이미 배정받은 예산은 모두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쓰레기 무단투기 감시 장비와 그린뉴딜
납득하기 어려운 제주도의 스마트 그린도시 사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제주도는 쓰레기 무단 투기를 막겠다며 지능형 CCTV(폐쇄회로)용 카메라와 관련 소프트웨어를 구입하는데 총 12억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촬영 및 녹화 기능이 중심인 일반 CCTV와 달리 지능형 CCTV에는 화면을 자동으로 분석해 촬영된 인물의 성별과 나이 등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기능이 탑재된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쓰레기 수거장에 설치될 지능형 CCTV에 대해 "개인 정보가 침해되지 않는 선까지는 데이터를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몇시에 쓰레기를 얼마나 버렸는지, 이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연령대는 어떻게 되는 지 등을 자동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제주도는 고가의 지능형 CCTV 도입이 도민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 외에 쓰레기 발생을 줄이는데 어떤 기여를 하는지, 나아가 탄소배출 감소를 위한 그린뉴딜 정책에 부합하는 지에 대해 뚜렷한 설명을 못하고 있다. 게다가 제주도 내 대부분의 쓰레기 수거장에는 이미 일반 CCTV가 설치돼 있는 상황이어서 지능형 CCTV 추가 설치에 따른 예산 오남용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제주도는 스마트 그린도시 사업 예산 100억원 중 12억원을 쓰레기 무단투기 감시를 위한 지능형CCTV를 도입하는 데 책정했다.
가짜 용천수와 실현 불가능한 생태공원, 나아가 쓰레기 무단투기 감시장비 구입까지. 탄소중립과는 무관해 보이는 사업을 그린뉴딜 예산으로 집행하는 것에 대해 제주도청 관계자는 "환경부 공모 기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에 부서간 내용 파악과 조율을 위한 시간이 부족했다"고 해명했다. 제주도는 정부 지원 예산을 반납하는 대신 책정된 예산 100억원을 모두 사용하기 위해 계획을 수정 중이라고 밝혔다.
고조되는 기후위기, 한국 그린뉴딜의 미래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온실가스가 현재 수준으로 계속 배출된다면 2040년 이내에 지구의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 시기(1850~1900년)보다 섭씨 1.5도 지상승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지난 9일 발표했다. 지구 온도가 1.5도씨 이상 오를 경우 극단적인 기후 현상이 증가하면서 인류가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데, 2040년 이내에 그 위기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우리 정부는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마련하고자 지난 해 7월 그린뉴딜 정책을 천명했다. 2025까지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산업 구조를 대대적으로 전환하는 동시에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는데 78조원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린뉴딜 정책이 시동을 건 지 1년, 기후위기 극복 보다는 정부 예산을 타 낼 기회만 노리는 가짜 그린 뉴딜 사업들이 하나 둘 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