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2년 끌어온 국회의원 23명의 명단과 '범죄자료 찾기'

2021년 06월 28일 14시 00분

2021년, 부동산 투기 의원 12명 공개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의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수 조사 결과, 의원 12명이 부동산 투기 의혹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익위는 해당 의원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민주당에 명단을 전달했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를 비판하는 여론이 거세졌고 곧 명단이 공개됐다. 민주당은 12명 의원에 대해 탈당 또는 제명 조치를 내렸다.
3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권익위, 국회의원 그리고 범죄형 비리에 따른 국민적 공분까지, 모든 게 동일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는데, 바로 의원 명단의 공개 여부였다.
2018년, 국민적 공분이 국회로 향했다. 국회의원들이 피감 기관의 예산으로 해외 출장을 다녀온 부당 특혜 사건이 불거졌다.「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즉 김영란법 위반 논란이 일었다. 국민권익위가 국회의원 전수 조사에 나섰다. 권익위는 김영란법 적용과 유권해석의 주무 부처이다.
2018년 12월 31일, 권익위가 ‘피감 기관이 국회의원의 해외출장을 지원한 사례 23건'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중, 의원 23명이 김영란법을 시행한 2016년 9월 28일부터 2018년 4월까지 피감 기관의 예산으로 해외 출장을 다녀온 사실이 확인됐다. 김영란법 위반 혐의가 드러난 것이다. 김영란법은 직무 관련성에 상관없이 공직자가 1회 100만 원 이상의 금품을 수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2018년, 피감 기관 해외출장 부당특혜 의원 23명의 미공개

권익위는 그때도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23명 명단이 들어 있는 자료를 밀봉해 국회의장에게 전달됐다. 겉봉투에는 '친전'(親展) 즉 국회의장만 ‘친히 펴서 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당시 피감 기관의 돈으로 해외 출장을 간 의원 명단을 공개하라는 여론이 거셌지만, 여당인 민주당도 당시 야당인 자유한국당도 입을 꾹 다물었다. 명단을 공표하거나 확인해 주지 않았고, 국회 윤리특위 제소 등 징계 조치도 내리지 않았다. 검찰 수사도 없었다. ‘죄지은 의원’이 누군지 권익위와 국회의장만 알뿐, 정작 유권자인 시민들은 모르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외 출장 특혜 의혹에 연루된 의원 23명은 지금도 베일에 싸여 있다. 
2019년, 하승수 변호사(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23명 의원을 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수사해 달라고 서울남부지검에 고발장을 냈다. 당시 하승수 변호사는 비리 의원의 이름을 파악할 수 없었기에 피고발인을 ‘성명불상’으로 기재해 고발장을 썼다.
서울남부지검은 2년을 끌어오다 올해 3월 사건을 각하했다. 검찰의 각하 결정에 불복해 뉴스타파와 하 변호사는 지난 5월, 서울고검에 항고장을 제출했지만 역시 기각됐다. 검찰의 각하와 기각 사유는 간단하다. 23명이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고, 검찰도 명단을 갖고 있지 않아 수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의원 23명의 범죄 조사 자료, 분명히 있다”

하승수 변호사는 이 같은 검찰의 태도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 변호사는 “국민권익위 사무실 어딘가에 23명의 의원 이름과 이들을 조사했던 자료가 분명 남아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뉴스타파가 권익위에 '자료가 있는지' 물었다. 권익위는 명확한 답변 대신 이렇게 에둘러 말했다. “명단 등 공직자가 특정될 수 있는 사항은 비밀·비공개에 해당하여 공개하기 곤란하다.” 권익위는 “검찰에도 (같은) 답변을 했다”고 밝혔다. 언론에 공개하긴 어렵지만, 자료는 존재한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답변이다. 
실제, 해당 자료가 분실됐거나 폐기됐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당시 권익위가 조사하고 작성한 자료는「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생산한 정부 기록물이다. 중대한 상황이 아닌 이상, 기록물을 무단 폐기할 순 없다. 보존 기간도 만료되지 않았다. 하 변호사는 “검찰이 의지만 있다면, 해당 자료를 쉽게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검찰은 자료를 찾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지난 6월 23일 오후, 뉴스타파 취재팀과 하승수 변호사는 다시 한번 서초동 검찰청사를 찾았다. 피감 기관으로부터 위법하게 해외 출장 특혜를 누린 국회의원 23명이 누구인지 파악해 수사해 달라고 대검찰청에 재항고장을 냈다.
▲ 6월 23일, 하승수 변호사가 대검찰청에 재항고장을 제출하는 모습.

김영란법 공소시효는 5년… 더 이상 시간 끌지 않았으면

하승수 변호사가 남부지검에 고발장을 낸 게 2019년 초 겨울이었다. 이후 기각과 각하를 거듭하며 대검찰청에 재항고장을 내기까지,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하 변호사의 옷차림도 2년 전 두툼한 겨울 외투에서 반팔 티셔츠로 바뀌었다. 
대검이 이번에도 기각 결정을 내린다면, 어찌해야 할까. 23명의 의원도, 그들의 범죄 혐의도 영원히 잊히고 마는 것일까. 
하 변호사는 검찰청사를 빠져나오며 이렇게 말한다. “법 앞에 누구나 평등해야 합니다. 김영란법 공소 시효가 지나기 전에 의원들을 처벌할 수 있도록 재항고를 받아들여야죠. 올여름이 가기 전에요.” 김영란법의 공소시효는 5년이다. 해당 의원들을 처벌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제작진
촬영 신영철
웹디자인 이도현
웹출판 허현재
소송담당 하승수 변호사
협업 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함께하는시민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