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사람들 ①유가족 전담 공무원을 아십니까

2022년 04월 18일 21시 00분

<뉴스타파함께재단>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은 지난해 말 ‘2021 뉴스타파-세명대 보도기획안 공모전’을 열었다. 기존의 ‘뉴스타파 대학생 탐사보도 공모전’과 ‘세명 시사보도 기획안 공모전’을 통합한 것이다. 국내 유일의 탐사보도 전문 매체인 뉴스타파와 역시 국내 유일의 실무형 저널리즘 대학원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힘을 합쳐 예비 언론인들이 취재, 제작의 실무와 함께 저널리즘의 공익적 가치와 취재윤리 등을 함께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엄정한 심사를 거쳐 네 편의 기획안이 선정됐고, 뉴스타파 제작진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진이 두 편씩을 맡아 데스킹을 진행해왔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취재가 끝난 안효정, 유하영의 “남겨진 사람들”을 세 차례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남겨진 사람들> 글 싣는 순서
① 유가족 전담 공무원을 아십니까
② 투입부터 되는 유가족 전담 공무원
③ 회복은 남겨진 사람들의 권리
참사가 일어난 직후에는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인다. 시민들이 앞다퉈 참사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추모하는 3~6개월 정도의 기간을 ‘허니문 기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기간에 어떤 지원이 이뤄지는지, 유가족이 정말 필요로 하는 지원을 받는지 등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취재팀은 허니문 기간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화재 참사와 광주광역시 학동 건물 붕괴 참사에서 유가족들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돌아봤다. 유가족들 곁에는 그들이 참사의 아픔을 딛고 일어날 수 있도록 손잡아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유가족 전담 공무원’이다. 말 그대로 참사 피해 유가족을 1 대 1로 맡아 지원하는 공무원이다.
취재하며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뿐 아니라 이들을 지원한 사람들, 그리고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우리 역시 참사의 피해자라는 점을 발견했다. 모두가 참사로부터 ‘남겨진 사람들’이었다. 참사 피해자들의 회복력을 높이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과제인 이유다. 사회가 함께 이 과제를 풀어야 우리는 참사가 남긴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고 회복할 수 있다.

유가족 전담 공무원을 아십니까

[남겨진 사람들①] 유가족과 정부를 연결하는 사람들
저는 ‘유가족 전담 공무원’입니다
2021년 6월 9일. 김수희 씨가 광주광역시 동구청에서 근무한 지 28년째, 청년체육과 과장으로 일한 지 5개월째 되던 날이었다. 김 씨는 오후 4시쯤 광주 학동 건물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광주 학동 4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학산 빌딩이 무너지면서 정류장에 정차한 54번 버스를 덮쳤다. 버스에 타고 있던 9명이 숨졌다.
참사가 일어난 곳은 동구청에서 버스로 10분 거리. 걸어서는 25분이 걸린다. 김 씨가 동구 내 체육시설을 점검하러 출장 갈 때마다 지나치는 곳이다. 54번 버스는 출퇴근길에 자주 보였다.
밤 10시쯤 김 씨는 동구청 복지국장이 긴급회의를 연다는 연락을 받고 동구청으로 복귀했다. 회의에서는 동구청 과장 8명과 관내 동장 1명이 유가족을 1 대 1 지원하기로 결정됐다. 김 씨를 포함한 공무원 9명이 갖게 된 임시 직책의 이름은 ‘유가족 전담 공무원’. 김 씨의 첫 번째 일정은 다음 날 고 임 모 씨 유가족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50여 일 동안 김 씨는 청년체육과 과장이자 유가족 전담 공무원으로 일했다.
▲ 지난해 11월 24일 광주광역시 동구청 근처에 광주광역시 학동 건물 붕괴 참사를 추모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유하영 기자
“이런 큰 사고가 발생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처음 겪는 일이라 (마음이) 복잡하고 무거웠어요.” 지난해 11월 광주 동구청에서 만난 김 씨는 지난 여름을 떠올리며 말을 꺼냈다. 당시 김 씨는 주말에도 출근해 유가족을 지원했다. 장례식장까지 따라갔다. 유가족들이 언제 도움을 요청할지 몰라 장례를 치르는 사흘 내내 유가족 곁을 지켰다. 김 씨는 장례식장 입구에 책상을 하나 두고 의자에 앉아 조문객을 안내했다. 자정까지 앉아 있다 가기도 했다. 유가족이 모여 있는 분향소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김 씨는 “유가족들이 우리를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였다”고 말했다. 장례식 동안 끼니를 거르는 유가족들이 많았다. 김 씨 혼자 밥을 챙겨 먹을 수는 없었다. 4일 만에 몸무게가 4kg 빠졌다.
유가족이 만나는 첫 번째 공무원
김수희 과장이 맡은 유가족 전담 공무원은 사회적 참사 이후 유가족들을 돕는 임시 직책이다. 화재나 건물 붕괴 같은 참사가 발생했을 때 중앙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임시로 편성한다. 민원인을 많이 대해 본 경력 있는 공무원들이 주로 배치된다. 심영기 광주 동구청 주민안전담당관실 과장은 “광주 학동 참사 직후에 배치된 구청 공무원 9명은 전부 5급 이상 부서장들”이라고 했다. 또 사고 수습으로 바쁜 부서는 제외됐다고 설명했다.
전담 공무원의 주된 업무는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장례를 치르기까지의 과정을 돕는 것이다. 사고 이후 49재까지 한두 달 정도 유족들을 지원하다 보면 업무는 대부분 마무리된다. 2020년 4월 29일 경기도 이천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참사 당시 ‘장례지원반’을 총괄했던 이종현 이천시 노인장애인과 과장은 유가족이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필요한 사항들을 지원할 때 유가족 전담 공무원과 협의했다고 말했다.
“전담 공무원들이 우리(장례지원반)에게 ‘유가족들이 화장장 예약을 원한다’고 연락해요. 그러면 저희가 경기도 내에 유골을 안치할 수 있는 화장장을 알아보고 예약합니다. 또 유가족이 유골을 고향에 모시고 갈 건지, 관내 시설에 임시 안치할 건지 등을 전담 공무원 통해 물어보고 관리했습니다.”
유가족 전담 공무원들이 유가족의 요청을 지자체나 정부 부처에 전달하면, 해당 부서에서 업무를 처리해 결과를 전담 공무원들에게 알린다. 예컨대 유가족이 ‘긴급복지지원제도’ 대상자인지 알아봐 주고 지원을 요청하는 식이다. 전담 공무원은 유가족들의 요구사항이 해결됐는지, 해결이 어렵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유가족에게 알려준다. 유가족을 지자체나 정부와 연결하는 다리인 셈이다. 유가족 전담 공무원으로 일했던 이재영 당시 이천시 도시개발과 팀장은 “유족은 요청 사항을 어디에,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 모르는데, 전담 공무원한테 전화하면 알아서 담당 부서에 물어봐 주니 업무 처리 속도가 빨라진다”고 말했다.
 유가족 전담 공무원의 업무 처리 구조(예시) ⓒ 안효정 기자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유가족 전담 공무원 제도의 시작을 ‘오스트리아 카프룬 화재 참사’에서 찾았다. 2000년 11월 11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카프룬의 알프스 산맥 스키 휴양지 키츠슈타인호른 케이블 열차에서 불이 나 155명이 숨졌다. 사망자 중에는 독일, 일본, 네덜란드 출신 승객들도 있었다. 당시 오스트리아 공무원들은 여러 나라에서 온 유가족들을 참사 현장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에 유가족 전담 공무원이 등장한 건 2014년 세월호 참사 때였다. 세월호 침몰 12일째인 2014년 4월 27일, 범정부 사고대책본부가 희생자 가족과 공무원을 1 대 1로 연결해 희생자 이송부터 장례까지 지원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사회적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유가족 전담 공무원 배치를 약속했다. 국민안전처의 ‘사회재난 구호 및 복구 업무 편람’을 보면 2014년 10월 경기도 판교 환풍구 붕괴 참사 당시 성남시가 사망자들의 유가족을 대상으로 1 대 1 지원 체계를 운영했다. 2018년 경남 밀양 세종병원 참사 때도 밀양시가 유가족 전담 공무원을 지정했다. 2019년 대구 사우나 화재 때는 행정안전부가 전담 공무원을 배치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천 한익스프레스 참사 때는 경기도 이천시가 화재 발생 다음 날 6급 이상 공무원 38명을 유가족과 연결했다. 이듬해 3월 이천시에서 발간한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화재대응백서’를 보면 유가족 전담 공무원들은 지원금 신청부터 장례까지 모든 절차를 지원했다. 다른 지역에서 온 유가족들이 묵을 숙소와 교통편 등을 알아봐 주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유가족 전담 공무원이 재난 상황에서 꼭 필요한 존재라고 했다.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 사업부장은 유가족 전담 공무원이 “재난 상황 초기라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유가족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심 부장은 “어디서부터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누군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은 회복에 굉장한 도움이 된다”고 했다. 최남희 서울내러티브연구소 소장은 “감정적 상태의 유족과 같이 병원에 가주고 서류를 처리하는 등 1차적 지원을 유가족 전담 공무원이 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성현 4.16재단 팀장은 “재난 발생 초기에는 간단한 시스템으로 빠르게 지원받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며 “세월호 참사 때 안산시가 배치한 공무원들이 그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 최남희 서울 내러티브연구소 소장이 지난해 12월 7일 서울 종로구 서울내러티브연구소에서 취재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하영 기자
어려웠던 유가족과의 첫 만남
‘유가족 전담 공무원’은 한익스프레스 참사나 광주 붕괴참사 때 이 업무를 맡았던 공무원들에게도 낯선 개념이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 전담 공무원 제도가 도입됐다는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은 데다, 이천시와 광주광역시 모두 유가족 전담 공무원을 배치한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전담 공무원들은 유가족과 연락할 때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첫 마디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몰랐죠.” 이천 한익스프레스 참사의 유가족 전담 공무원이었던 권혁진 당시 이천시 기술보급과 팀장이 말했다. 유가족 전담 공무원이라는 말도 처음 들어봤고 참고할 만한 매뉴얼도 없었기 때문이다. 권 팀장은 유가족들의 신경이 날카로울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권혁진 팀장은 하루에 한 번씩 숨진 조 모 씨의 형에게 전화했다. 권 팀장은 “유가족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우선 다 들으려 했다”고 말했다. 권 팀장은 이천시 생활이 낯선 유가족들을 위해 인근 버스 터미널 등 편의 시설 정보도 자주 보내줬다.
고인을 원래 알고 있던 유가족 전담 공무원도 있었다. 그렇다고 유가족과의 연락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광주 학동 참사 직후 유가족 전담 공무원이 된 변 모 동장은 고 김 모 씨 가족을 맡았다. 고인은 광주 동구청에서 일했던 청소 근로자였다. 변 동장은 동구청에서 김 씨를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나누곤 했다. 그래도 그의 유가족에게 다가가기는 어려웠다. 변 동장은 “관내에서 일어난 참사라 책임이 나한테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연락하는 게 조심스러웠다”고 말했다.
광주 학동 참사의 전담 공무원으로 활동한 최 모 과장은 숨진 고등학생 김 모 씨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도왔다. 최 과장이 처음에 배정받은 유가족은 이들이 아니었다. 희생자 중 한 명이 최 과장의 둘째 아들과 같은 중학교에 다녔던 학생이라는 소식을 듣고 담당한 유가족을 바꿨다. 최 과장은 “고인과 연결고리가 있으면 유가족에게 다가가기 수월할 것 같아 바꿨지만 유가족 속마음은 정확히 모르니 대하기 쉽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유가족 지원은 추가 업무···틈틈이 원래 업무도 해야
김홍규 팀장은 이천시 교통행정과에서 일하던 중, 이천 한익스프레스 참사 희생자인 고 나 모 씨의 아내와 두 딸을 지원했다. 그날부터 김 팀장은 업무의 1순위를 유가족 지원에 두었다. 유가족을 살필 일이 생기면 교통행정과 회의에 불참했다. 회의 날짜를 정할 때는 장례일 등 유가족의 일정을 제일 먼저 고려했다. 이 외에도 김 팀장은 일주일에 한두 번씩 합동 분향소와 유가족 숙소를 찾아가 이들을 살폈다. 유가족들에게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며 ‘필요한 일이 생기거든 언제든지 연락 달라’고도 했다. 김 팀장은 “유가족이 전화하면 늦은 밤에라도 나가 유가족들을 살피려고 했다”고 말했다.
유가족 전담 공무원들에게 유가족 지원은 추가 업무였다. 이들 모두 본래 소속된 부서에서 담당하는 일은 계속해야 했다. 광주 학동 참사의 유가족 전담 공무원이었던 최 모 과장은 유가족을 지원하면서 회의, 문서 결재 등 기존의 세무과 업무도 이어 나갔다. 최 과장은 “유가족을 만나 뵙고 난 뒤 시간을 쪼개 기존 업무들을 하는 일상을 반복했다”고 말했다.
장례식 당일 최 과장은 오전 9시부터 저녁 7~8시까지 약 8시간 동안 유가족 옆에 있었다. 지난해 10월에는 “아들을 보고 싶은데 갈 방법이 없다”는 아버지 김 씨의 연락을 받고 고인이 안치된 묘지까지 동행했다. 최 과장은 자신의 차로 광주에서 담양까지 왕복 60여 km의 거리를 3번 오갔다.
장은경 당시 광주 동구청 주민안전담당관실 주무관은 “전담 공무원들이 실무자가 아닌 과장급이었기 때문에 업무량을 조율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동구청 차원에서 기존의 업무를 미룰 수 있게끔 하진 않았다”고 했다. 이천 한익스프레스 참사에서 유가족 전담 공무원 배치를 총괄했던 이천시 관계자는 “전담 공무원뿐 아니라 다른 공무원들도 참사 수습, 유족 지원 업무에 투입됐다. 참사 현장, 분향소, 장례식장 등에 시청 직원들을 포함해 70~80명이 동원됐다”며 “시가 전담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기존 업무를 줄여주는 건 없었다”고 답했다.
전담 공무원도 재난의 3차 피해자
유가족 전담 공무원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유가족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필요했다. 이천 한익스프레스 참사 유가족을 지원한 김홍규 팀장은 “유가족의 슬픔이 먼저였다”고 했다. 김 팀장은 자신이 담당한 유가족을 처음 만난 날을 기억했다. 희생자의 두 딸은 김 팀장에게 “아버지가 계셨던 숙소에서 유품을 가져오고 싶다”고 했다. 김 팀장은 두 딸이 유품 정리하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면서 눈물을 닦았다. 김 팀장은 “나도 딸 키우는 입장이라 (두 딸의) 슬픔이 와닿았다”라고 회상했다.
유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릴수록 유가족 전담 공무원들도 참사의 슬픔에 빠졌다. 이천 한익스프레스 참사 당시 유가족 전담 공무원이었던 A 팀장은 53일 동안 매일 1시간 이상 유가족을 만났다. A 팀장은 전담 공무원 14일 차부터 우울함과 의욕 저하를 느꼈다. 유가족들과 얘기를 나눌수록 증상은 심해졌다. A 팀장은 “지나치게 감정 이입하면 안 되는 건데 초보라 잘 몰라서 그랬다”며 “빠져나오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권혁진 이천시청 팀장은 “두 번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권 팀장은 “사실 전담 공무원을 시키니까 한 거지, 자원하는 사람 나오라고 하면 나설 사람이 있을까”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사회가 유가족 전담 공무원들이 겪는 업무상의 고충 또한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전담 공무원 관리도 재난 대응의 한 축이기 때문이라는 게 서경대 유정 교수의 설명이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피해자 권리 매뉴얼’에서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는 전담 공무원도 피해자들과 동일한 감정 상태를 겪는 등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다. 전담 공무원도 상시적으로 심리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적었다.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부장은 유가족 전담 공무원을 비롯한 재난 관련 업무 종사자들을 ‘재난의 3차 피해자’라고 했다. 1차 피해자는 재난을 직접 당한 사망자나 부상자, 2차 피해자는 유가족, 3차 피해자는 재난 업무 종사자라는 것. 심 부장은 “참사의 고통을 겪는 사람을 계속 만날 때 심리적 타격을 간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가족 전담 공무원이) 대리 외상 등 고통을 겪는다면 지자체나 정부가 휴가와 심리지원 등 적절한 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작진
취재안효정 유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