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 섬나라 피지가 지상낙원이라며 신도 400명 가량을 집단 이주시킨 이단교회가 있다. 바로 신옥주 목사 모자가 운영하는 ‘은혜로교회’다. 이 교회는 피지로 간 지 10년도 안 돼 거대한 기업 집단을 일궜다. 그 이면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신도 통제와 폭행, 강제 노동이 있었다. 이 때문에 한국 경찰이 강제 수사에 나섰으나 피지 은혜로교회는 현지 권력의 비호 하에 여러 사업체를 운영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국제 탐사보도 기관인 ‘조직 범죄와 부패 보도 프로젝트(OCCRP·Organized Crime and Corruption Reporting Project)’와 함께 현지 취재한 신옥주와 은혜로교회의 실상을 2회에 나눠 싣는다.-편집자 주
2014년 12월 한겨울, 당시 21살이던 이서연 씨는 엄마를 따라 피지로 갔다. 피지는 한여름이었다. 은혜로교회 신도들이 막 피지로 집단 이주를 시작했을 때다. 서연 씨의 어머니는 은혜로교회 신도였다. 그때만 해도 서연 씨는 은혜로교회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그저 어머니가 건강 문제로 피지에 정착하려는 줄 알았다. 서연 씨는 어머니의 피지 정착만 돕고 한국에 돌아올 계획으로 2주 후 귀국하는 왕복 비행기 티켓을 예매해 피지로 갔다.
피지 공항에 도착하자 낯선 사람들이 공항에 모녀를 마중나와 있었다. 어머니는 서연 씨에게 한 번도 피지 여행에 다른 누군가가, 특히 이단 교회가 관련돼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마중나온 사람들에게 자신과 서연 씨의 여권까지 건넸다. 2주가 지나 출국날이 다가왔을 때, 서연 씨가 귀국하려고 하자 어머니는 여권을 버렸고 한국행 귀국표도 취소됐다고 말했다.
서연 씨는 한국으로 도망쳐야겠다고 결심했다. 크리스마스 기부 모금 활동을 하고 있던 현지 경찰의 전동차를 얻어타고 근처 파출소를 거쳐 거기서 가장 가까운 나부아 경찰서로 갔다. 은혜로교회 사람들도 도망치는 서연 씨를 잡기 위해 경찰서까지 쫓아왔다. 서연 씨는 피지 주재 한국대사관에 연락했고, 피지 경찰의 도움을 받아 대사관까지 이동했다. 은혜로교회 사람들은 대사관까지 서연 씨를 쫓아왔다.
우여곡절 끝에 서연 씨는 다음날 귀국편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한국 대사관 직원은 몸만 간신히 도망쳐 나온 서연 씨에게 한국 공항에 도착하면 택시를 타라고 10만 원을 줬다. 여름 옷을 입고 도망친 서연 씨에게 12월의 한국 날씨는 너무 추웠다. 이후 서연 씨는 친구들에게 간신히 연락해 택시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서연 씨는 뉴스타파·OCCRP 취재팀과 인터뷰에서 이 날을 회상하며 “살면서 이렇게 비참했던 적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정모 씨(61) 역시 힘들게 피지를 탈출했다. 2016년, 아내와 함께 피지에 간 정 씨는 얼마 되지 않아 한국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신옥주 목사가 정 씨에게 한국에 가고 싶은지를 물었고, 정 씨는 그렇다고 했다.
그러나 귀국 허용은커녕 심한 폭행이 돌아왔다. 신 목사는 공개 예배 시간에 정 씨를 불러 세웠다. 은혜로교회 간부 나모 씨가 정 씨의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다.
2018년 신옥주 사건 관련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나 씨는 뒷걸음치는 정 씨를 쫓아가며 20~30회 폭행했다. 이후 정 씨가 달아날 것을 우려해 은혜로교회는 그의 거주지를 옮기고 매일 밤 다른 교인들 한가운데서 잠을 자게 하면서 감시했다. 이후 정 씨는 겨우 피지 주재 한국대사관에 접촉해 한국으로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피지에서 은혜로교회가 운영하고 있는 상점들. 그레이스 키친, 써니 피자, 그레이스 뷰티 살롱. (사진 : OCCRP)
2013년~2014년 피지로 집단 이주를 한 이후, 일부 신도들은 피지에서의 삶을 견디지 못해 한국으로 탈출했다. 취재팀과 인터뷰 한 이윤재 씨, 김용린 씨도 피지에서 탈출한 신도다.
2018년 8월, 한국 경찰은 신옥주를 체포한 이후 그의 아들이자 은혜로교회 피지 법인의 실질적 대표인 김정용 씨도 송환하려고 했다. 이때 한국 경찰의 체포 작전이 성공했다면 은혜로교회 신도들은 해방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 경찰의 시도는 피지 당국에 의해 무산됐다. 신도를 폭행한 혐의로 한국경찰이 체포 영장을 발부한 김정용 씨와 지난 6월 인천공항에서 검거된 나모 씨 등 피의자 6명이 이미 2018년 8월 피지 현지에서 체포된 바 있지만 피지 당국이 갑자기 강제추방을 중단시켰다.
이 ‘피의자 추방 중단 사건’은 일종의 전환점이 됐다. 이후 몇 년 동안, 은혜로교회는 피지에서 단순한 종교 집단이 아닌, 비즈니스계의 ‘큰 손’이 됐다. 김정용 씨는 한국 수사기관이 체포영장까지 발부했음에도 피지에서 사업을 계속 확장했다. 은혜로교회는 피지에서 최소 9개의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김정용은 이 모든 법인의 이사로 등장한다.
피지 당국은 은혜로교회 신도들이 받는 고통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오랜 기간 피지에서 최고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바이니마라마 총리는 여러 차례 은혜로교회의 사업에 공개 지지를 보냈다. 뉴스타파·OCCRP 협업 취재팀은 피지 경제 발전을 위해 설립된 피지 국책 은행이 은혜로교회에 수십억 원을 대출해 준 사실도 확인했다.
총리 관저, 대통령궁 공사 따낸 은혜로교회
2014년, 은혜로교회는 피지의 수도 수바에서 차로 약 45분 떨어진 ‘나부아’ 지역에 농장을 차렸다. 농사는 은혜로교회의 첫 사업 수단이었다. 은혜로교회는 한국의 쌀농사 기술, 나아가 여러 농작물 재배 기술을 피지로 들여왔다. 식품의 질이 낮은 섬나라 피지에서 은혜로교회는 금세 양질의 쌀과 농산물, 유제품을 판매하는 사업체가 됐다.
취재팀이 확보한 ‘그레이스 로드(은혜로교회 피지 법인명) 그룹’ 관련 복수의 문서에 따르면 은혜로교회는 2013년 6월 피지에 ‘부동산 개발 법인’을 설립하고 그 다음 해인 2014년 3월 ‘식품 법인’을 만들었다. 이듬해인 2015년 3월에는 식당 사업을 위한 ‘외식업 법인’을 세웠다. 그리고 미용업과 여행업 관련 법인 등도 잇달아 설립했다.
2016년, 태풍으로 피지가 큰 피해를 입었다. 전 신도들에 따르면 은혜로교회는 수해 복구 과정에서 피지 정부를 지원했다. 은혜로교회에서 건축 파트를 담당한 김용린 씨는 수해로 무너진 집 복구 과정에서 주택 47채를 지어줬다고 말했다. 이는 은혜로교회가 피지 정부의 신임을 받고 다른 사업에도 진출하는 시작점이 됐다.
2017년, 은혜로교회는 피지 총리 관저와 대통령궁 리모델링 공사를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취재팀이 확보한 ‘2017-2018년도 피지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당시 총리 관저 리모델링 예산은 한화로 약 10억 원(약 240만 피지 달러), 대통령궁 리모델링 예산은 한화로 약 20억 원(약 430만 피지 달러)이었다.
은혜로교회 전 신도 이윤재 씨는 “총리 관저와 대통령궁 리모델링 계약을 건설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그것도 외국인이 하는 회사가 수주했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했다.
당시 이 리모델링 공사를 책임졌던 김용린 씨는 “한국 같으면 건설 자격증이라든가 하는 면허가 있어야 하는데 은혜로교회는 그런 면허가 없었다”며 “건물을 새로 짓는다고 하면 면허가 필요한데 이때는 리모델링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반 사업자 등록증만 가지고도 계약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피지 총리 프랭크 바이니마라마는 은혜로교회 사업에 놀랄 만큼 큰 지지를 보냈다. 2017년 11월, 은혜로교회는 ‘총리배 국제 비즈니스 어워즈’에서 1차 산업 비즈니스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바이니마라마는 은혜로교회의 개업식에도 여러 번 참석했다. 2020년 11월에는 은혜로교회의 주유소, 편의점, 식당 등이 모여있는 복합 시설 개업식에 참석해 “서비스의 혁신”이라고 치켜세웠다. 지난 2021년 10월에는 김정용 씨와 함께 은혜로교회의 새 대형마트 개업식에 참석해 “은혜로교회가 피지 현지의 소매업과 식품 사업의 수준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2017년 국제 비즈니스 상 수상 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 세 번째가 김정용 대표와 바이니마라마 총리 (출처: Prime Minister's International Business Awards 페이스북 페이지)
총리의 권한이 막강한 피지에서 이런 노골적 지지는 큰 의미를 갖는다. 바이니마라마 총리는 2006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2007년 총리로 임명된 이후 현재까지 집권 중이다. 총리는 외교부 장관을 겸하고, 이민 정책을 총괄한다. 원주민 토지 임대 계약 등을 결정하는 위원회도 총리실 관할이다. 모두 피지 은혜로교회의 존속과 직결된 영역들이다. 경찰청장도 총리가 임명한 인물이다.
전체 인구가 90만 명 남짓한 피지에서 은혜로교회는 이미 유명한 존재가 됐다. 그러나 은혜로교회와 정치 권력의 유착 의혹, 은혜로교회의 신도 폭행 및 착취 문제에 대해서는 별 다른 비판이 제기되지 않고 있다. 피지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고 있고 언론의 자기검열을 강화하는 법이 시행되고 있다.
피지를 떠나 호주에 살고있는 피지 정부 전 대변인 그레이엄 데이비스는 취재팀과 인터뷰에서 “은혜로교회는 피지에서 보호종이 됐다”고 말했다.
“총리의 지시는 신의 지시입니다. 총리가 원하는 건 가져요.” 데이비스의 말이다.
프랭크 바이니마라마(조세이아 보렝게 므베이니마라마) 피지 총리
피지 정부의 보복을 두려워 해 익명을 요구한 한 현지 기업 고위 간부는 “은혜로교회와 정부의 관계는 완전히 다른 수준”이라며 “은혜로교회는 우리가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것 같다. 그들처럼 대우받는 회사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피지의 많은 사람들이 은혜로교회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길 두려워한다. 모두가 다 두려워한다”고 덧붙였다.
피지 국책은행 대출까지 받아
뉴스타파·OCCRP 취재팀은 은혜로교회가 피지 국책은행인 피지개발은행(Fiji Development Bank)의 금융지원을 받은 사실도 최초로 확인했다.
취재팀이 입수한 은혜로교회 부동산 담보 대출 서류 등에 따르면 은혜로교회는 2015년부터 지금까지 최소 850만 피지 달러(한화 50억 원)을 피지개발은행에서 대출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2015년은 은혜로교회가 피지 원주민 소유지인 부지를 장기 임대해 나부아 농장을 일구고 벼농사 등 각종 농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다.
피지개발은행은 피지 정부의 2인자, 아이야즈 사예드-카윰(Aiyaz Sayed-Khaiyum) 법무부 장관 관할이다. 카윰은 경제부장관을 겸하고 있다. 경제부장관은 피지개발은행을 경영하는 이사진 전원을 임명한다. 카윰 장관은 “모든 부처의 장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피지 내에서 실권을 가진 인물이다.
실제 은혜로교회가 피지개발은행에서 빌린 자금은 더 많을 수 있다. 취재팀은 은혜로교회가 부동산을 담보로 자금을 빌린 내역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레이엄 데이비스 전 피지 정부 대변인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카윰 법무장관의 공식적인 허락 없이 피지개발은행이 은혜로교회에 대출을 해줬을 리는 없다. 절대 없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피지 개발은행에 은혜로교회를 상대로 한 자금 대출 경위 등을 묻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답변은 오지 않았다.
아이야즈 사예드-카윰(Aiyaz Sayed-Khaiyum) 피지 법무부장관
2018년 8월, 경찰청 외사수사과 6명, 경기남부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11명 등 모두 17명의 한국 경찰이 피지로 건너갔다. 신옥주 목사의 아들 김정용 씨 등 은혜로교회 신도 감금폭행 피의자 6명을 송환받기 위해서였다. 경찰은 당시 피지 현지 수사 과정에 대한 취재팀의 질의에 “한국 경찰의 피지 파견, 현지에서의 피의자 체포, 피의자 강제 추방은 모두 피지 당국과 사전에 협의된 사안이었다”고 말했다.
우리 경찰에 따르면 피지 경찰은 초기 공조 수사 과정에서는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 ‘작전명 엘레강스’. 피지 경찰들이 작전에 붙인 이름이었다. 이 작전은 성공적인 듯 보였다. 피지 경찰은 한국 경찰과 함께 늦은 밤 은혜로교회의 본거지인 나부아 농장을 급습해 김정용을 포함해 피의자 3명을 체포하고, 다음날 나머지 피의자 3명을 추가로 붙잡았다.
그러나 다음날, 피지 경찰이 현지에 온 한국 수사팀에 연락해 피의자를 석방한다고 말했다. 한국 경찰은 당황했다. 작전에 참여했던 한 한국 경찰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 처음엔 화도 많이 났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은 김정용 씨 등 피의자들이 ‘현지 법원의 결정’으로 석방됐다고 보도했다.
한국 경찰은 취재팀에 보낸 서면 답변서에서 “피지 경찰이 법무차관, 검찰국장, 이민국장, 총리실 차관의 회의 이후 피의자들을 석방하라는 권고가 내려와 석방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 회의가 공식적인 회의였는지, 피의자 석방 권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인물이 누구였는지 등에 대한 질문에는 “대상자 강제 추방과 관련된 정부 기관의 고위직 공무원간 회의를 의미하지만, (이 회의가) 공식적 업무였는지 등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고 말했다. 인터폴은 “통상 피의자의 국외 추방은 현지 국가기관 및 법원의 판단에 의하지만, 고위급 관료회의를 통한 석방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피지 경찰의 수사 시늉
추후 피지 경찰은 한국 경찰에 피지 은혜로교회의 실질적 대표인 김정용 씨 등에 대한 수사를 직접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지 수사기관은 은혜로교회 피의자들을 한 번도 기소하지 않았다.
크리스토퍼 프라이드 피지 검찰국장은 “피의자들을 풀어준 데에 정치적 압력은 없었다”며 “피지에서 일어난 범죄는 피지에서 수사를 받고 기소돼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지 경찰에 범죄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가져오라고 압박했지만 충분한 증거를 가져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뉴스타파와 OCCRP 협업취재팀은 피지 경찰이 자체 수사 과정에서 한국까지 와서 은혜로교회 핵심 피해자들을 만난 사실을 확인했다. 한국 경찰에 따르면 2018년 12월, 피지 경찰 5명이 한국에 와 4명의 피해자들을 만났다. 이들은 피지에서 탈출해 한국에 머물고 있던, 한국 수사기관이 신옥주 목사 등에 대한 혐의를 입증하는 데 조력한 피해자들이었다.
취재팀은 이 4명 중 3명을 찾아 접촉했다. 이 가운데 1명은 피지 경찰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잘 기억하지 못했지만 이윤재 씨와 정모 씨 등 다른 2명은 비교적 정확하게 진술 내용을 기억했다. 이들은 피지 경찰을 만나 자신들이 피지에서 당한 피해를 상세히 진술했다고 한다.
“피지 경찰들이 “한국 경찰이 수사했던 ‘타작마당’ 같은 것들이 사실인지를 상당히 궁금하게 생각하더라고요. 그래서 피지 경찰들에게 타작마당으로 폭행을 당했고, 은혜로교회 사람들이 여권을 보관하고 있었던 사실, 무임금으로 노동을 했던 사실 등을 전부 피지 경찰에게 진술했습니다.” 이윤재 씨가 말했다. 이 씨는 피지 경찰들이 자신의 진술을 녹화까지 해갔다고 말했다.
이윤재 씨(가운데)가 2018년 은혜로교회 피해자 조사차 한국을 방문한 피지 경찰들과 서울에서 만나 관련 증언을 마친 뒤 찍은 사진. (제공: 이윤재 씨)
이 씨는 “진술을 할 때는 피지 경찰들도 다 공감을 했는데, 피지에 돌아가고 나니까 피지 경찰들이 피의자들에 대한 범죄 혐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피해 사실을 다 증언했는데 왜 피해자의 진술 내용을 묵살하고 범죄 혐의점을 못 찾는다는 식으로 거짓으로 (상부에) 보고를 하는지 좀 강하게 (피지 당국에) 물어봐 주세요.” 이 씨가 덧붙였다.
사실 피지 경찰은 2018년 8월 한국 경찰과의 현지 수사 당시 은혜로교회 사무실의 책상 서랍 속에서 신도들의 여권이 뭉치로 보관되어 있던 점도 확인했다.
한국 경찰은 서면 답변서에서 “피지 경찰에 피의자에 대한 체포 영장 영문 번역본과 신옥주 목사에 대한 판결문의 영문 번역본도 제공했다”고 밝혔다.
취재팀이 크리스토퍼 검찰국장에게 다시 질의하자 그는 “피지에 거주하고 있는 피의자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피해자들로부터 들은 게 없다”고 말했다. 또 “피지를 떠난 사람들은 불평을 했지만, 피지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은혜로교회에서의 생활과 일에 만족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아이스크림이 맛있잖아”
그레이엄 데이비스 전 피지 정부 대변인은 취재팀과 인터뷰에서 은혜로교회가 일종의 ‘보호종’이 된 이유가 피지 경제에 투입된 수천만 달러에 있다고 말했다. 취재팀이 은혜로교회의 법인 문서를 확인한 결과, 은혜로교회는 적어도 약 130억 원(2,250만 피지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피지에 투자했다.
그는 “은혜로교회 사람들이 피지에 머물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피지 경제의 주요한 형태이기 때문”이라며 “피지 정부는 은혜로교회가 다른 현지 기업들과는 다르게 노예 노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레이엄 데이비스 전 대변인은 자신이 피지 정부 관료로 일할 때 카윰 장관에게 은혜로교회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사람들(은혜로교회 신도)을 피지에서 활동하게 허락하는 것이 아무래도 피지 국가 이미지에 안 좋은데 왜 내버려두는 거냐고 카윰 장관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장관은 얼렁뚱땅 넘기려는 듯 '(은혜로교회) 아이스크림이 맛있잖아'라고 답하더라고요.
취재팀은 바이니마라마 총리, 카윰 법무장관, 피지 이민국, 피지 투자청, 피지 경찰에게 은혜로교회와의 관계에 대해 묻는 서면 질의서를 보냈지만 답변은 오지 않았다. 은혜로교회 측에도 서면 질의서를 보냈지만 답변이 오지 않았다.
은혜로교회는 피지 실권자의 비호 의혹 속에 피지에 정착한 지 10년이 채 안 돼 피지 곳곳에 사업망을 펼쳐갔다. 피지에서 가장 큰 식당 체인을 운영하고, 120만 평의 농장, 8개의 대형마트와 편의점, 그리고 5개의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다. 또 치과와 행사 케이터링, 건설, 미용업으로도 사업을 확장했다. 현재 은혜로교회는 모두 54개의 상업 시설을 운영 중이다.
현재 운영 중인 은혜로교회 사업들 (데이터 : OCCRP)
신도는 '노예 노동'...목사 아들은 잘 산다
은혜로교회 신도들은 임금도 없이 수년째 사실상 노예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 신도들은 그들이 은혜로교회의 피지 법인에 ‘주주’로 등록돼 있다는 이유로 “무임금 노동이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과거부터 현재까지 피지 은혜로교회 신도 339명이 은혜로교회의 피지 법인인 그레이스 로드 부동산 개발·그레이스 로드 식품·그레이스 로드 에너지 등 최소 9개 법인에 주주로 등록돼 있다.
2019년 은혜로교회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에서 한 신도는 “임금을 받으려 한다면 주주 등록을 사전에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대부분 신도들은 자신이 어느 법인의 주주인지도 모른다. 나부아 농장에서 농림부장으로 일하던 이윤재 씨는 “피지에 있는 사람 중 자신이 어느 법인에 속해 지분이 얼마인지 이런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회사 자산이 얼마인지도 전혀 모르고, 경영 성과나 손실 이런 부분을 주주한테 알려야 하는데 그런 것도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신도들의 이름을 주주로 올리는 것은 “(피지) 워킹 비자를 받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피지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전 은혜로교회 신도들의 증언에 따르면 피지에서 윤택한 삶을 누리고 있는 건 김정용 씨 가족뿐이다. 전 신도 박찬문 씨는 “신도들은 다 집단생활을 하는데, 김정용만 나부아 농장 근처 퍼시픽 하버라는 곳에 단독 주택을 지어서 산다. 집단생활을 안 하는 건 김정용 부부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 은혜로교회 신도 김용린 씨는 “휴대폰 같은 것도 한국에서 새로운 기종이 나오면 김정용은 마음대로 쓸 수 있고, 차도 조금 끌고 다니다가 새로 바꾼다”고 말했다.
“자기는 누릴 것은 다 누리고, 그 외의 사람들은 다 종처럼 일하고 있다고 보면 돼요.” 김 씨가 말했다.
은혜로교회,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올해만 수억 대 광고
이단 은혜로교회 설립자 신옥주 목사는 법원에서 징역 7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피지 은혜로교회 신도 수백 명은 여전히 감금, 폭행, 착취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한국 주요 일간지에는 은혜로교회의 교리를 선전하는 전면 광고가 실린다. 올해 1월부터 7월 현재까지 은혜로교회는 최소 조선일보에 14회, 동아일보에 8회 전면 광고를 게재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실린 은혜로교회 전면 광고
조선일보(2017년 12월 기준)와 동아일보 홈페이지에 나오는 광고 요금표에 따르면 은혜로교회 광고가 실린 ‘기타 미지정면 15단 컬러 광고’에 해당하는 광고 단가는 두 신문 모두 6,660만 원이다. 이를 기준으로 할 경우 은혜로교회가 지난 7개월 동안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지급한 광고료는 각각 9억 3천만 원과 5억 3천만 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