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의 배신 ② "나는 삼성생명 보험설계사였습니다"

2018년 03월 29일 23시 07분

아직 한기가 가시지 않은 여의도 거리 위에 사람들이 모인다. 눌러 쓴 모자 사이로, 턱을 두른 마스크 사이로 거뭇한 맨살이 보인다.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쥔다. 퍼렇고 높은 건물, 금융감독원을 향해 소리를 높인다. 익숙치 않은 이 일이 어설프고 어색하다. 1년, 2년 전만해도 자신이 이처럼 길 위에 서게 되리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도 암에 걸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도 반드시 피켓을 들고 이곳 금융감독원 앞에서 이렇게 목청 터지게 얘기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뻔한 얘기를 듣지 않는 보험사와 금감원을 두고, 이 땅의 국민으로 사는 게 억울하고 화가 나고 부끄럽습니다.

이들은 암을 겪고 있거나 겪었다. 일부는 가족이 그렇다. 병마와의 싸움을 끝낸 사람도, 아직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유방암도 있고, 간암도 있고, 직장암도 있다. 연명에 그칠 뿐 이제는 약과 수술이 소용없다는 이도 있다.

▲ 지난 3월 13일, 암환자, 가족들이 암입원 보험금 미지급에 항의하기 위해 금융감독원을 찾았다.

각자의 사정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보험사와의 싸움에 지칠대로 지친 사람들이다. 금감원에도 십수 번 민원을 넣었지만 하는 소리는 보험사나 금감원이나 매한가지였다. 청와대, 국회, 공정위, 힘있는 기관이라면 어디든 하소연했지만 회신을 보내오는 곳은 다시 금감원 그 사람이었다. 더 이상 갈 곳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알음알음 집회에 모였다. 지난달만 해도 너다섯이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제법 늘어 수십에 이르렀다.

암 환자들은 왜 거리로 나섰나

이들의 요구는 한 가지다. 계약 당시의 약속대로 보험사가 암 입원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암 수술을 마치고 일주일 남짓 머물 수 있는 대형 병원 뿐만 아니라 약관에 규정된 모든 형태의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암 입원 보험금이 지급돼야 한다고 말한다.

대부분 암 환자가 수술을 받은 대형 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일주일 남짓이다. 수술 전후 입원하고 최소한의 회복만 하면 병원을 나가야 한다. 수술을 받은 대형 병원과의 통원 거리가 멀거나 자택에서 간호받을 여건이 안되는 환자는 남은 치료과정을 마치기 위해 대형 병원 인근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다수 보험사들은 요양병원에 입원한 암 환자들에게 암 입원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기존에 지급하던 보험사들도 최근에는 입장을 바꾸는 추세다. 요양병원에 머물며 시행하는 각종 시술이 암 종양을 없애기 위한 ‘직접 치료’가 아니라는 논리다.

생사를 다투는 투병 생활을 하는 암 환자들은 이 같은 보험사의 논리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암 치료는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과 항암제 투약, 방사선 치료, 그리고 면역력 강화와 재발 방지 치료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치료 과정을 말한다. 암 치료에 ‘직접’과 ‘간접’이 있다는 말은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하고 나서야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모호한 약관이 발단이다. 대다수 암 보험 약관에는 암 입원 급여금 지급에 대해 '암의 치료를 직접 목적으로 하여 입원할 경우'에 지급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정작 암의 치료를 직접 목적으로하는 입원이 무엇인지 명시된 부분이 없다. 직접과 간접의 모호한 경계가 늘상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시간은 보험사의 편

하지만 보험사들은 약관을 명확하게 고쳐 소비자와의 분쟁을 없애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대신 소비자와의 소송을 통해 자신에 유리한 판례를 만드는데 열중했다. 약관에 없는 직접 치료의 기준을 '종양을 제거하거나 종양의 증식을 억제하기 위한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 항종양 약물 치료'로 한정시키는데 성공했다. 암 치료와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면역력 강화 치료(대법원 2008다13777)와 재발 방지, 후유증 완화를 위한 의료 행위(서울지법 2004가합 48985)조차도 '직접 치료'에서 제외됐다. 금감원도 판례를 옮긴 보도자료를 내어가며 보험사의 손을 들었다.

보험사는 약관을 정확히 만들 이유가 없어요. '억울하면 소송하자' 이거죠. 그런데 소비자들은 돈이 없어요. 보험사들은 돈이 많죠. 소비자들한테 받은 돈이 많죠. 그걸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변호사들을 고용해가지고 싸우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일부러 애매한 문구를 거기다 넣어요. ‘직접 치료’라고. 환자 입장에서 따져봤을 때 세상에 직접 치료가 아닌 게 어디있어요.

이건 옛날부터 얘기가 많았어요 이 ‘직접 치료’를 명확하게 약관에서 바꾸면 되잖아요. 근데 안 바꿔요. 안 바꿔야지 이득이니까. 계약할 때는 다 보장해줄 것처럼 해놓고 나중에 보험금 청구 들어오면 '싸우자, 억울하면 소송 가던가' 하는 거죠. 소송에서 지면, 그냥 그 사람만 합의로 보상해주면 되는 것이고요.

구본기/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 소장

시간은 보험사의 편이다. 당국이 뒷짐지는 사이, 소비자가 낸 보험료는 보험사의 것이 되고 보험사의 곳간은 넘치고 있다.

보험료 계산과 보험금 계산, ‘그때그때 달라요’

소비자가 보험사에 납부하는 보험료는 보험개발원의 공시하는 통계에 기초해 산정된다. 보험개발원이 개별 보험사가 가지고 있는 통계자료를 취합해 '참조순보험요율'을 내놓으면, 다시 개별 보험사가 이 자료를 참고해 상품을 개발하는 식이다.

보험개발원이 참조순보험요율 예시로 공시한 자료에 따르면, 암으로 인한 평균입원일수(4일 이상 120일한도)는 20~70일 수준이다. 전 연령의 평균치는 41.6일로, 약 6주가 된다. 풀어쓰면 보험회사는 6주를 평균적인 암 입원일로 잡아서 산출한 보험료를 전체 소비자에게 받고 있다는 얘기다. 보험개발원 측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통계 산정시 수술을 받는 대형 병원 입원과 요양병원 입원을 따로 분류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보험사가 소비자에게 지급하는 보험금을 계산할 때는 방식이 다르다. 수술과 항암제 투여, 방사선 치료만을 '직접 치료'로 보는 판례에 따르면, 보험소비자들이 현실적으로 지급받을 수 있는 암 입원 보험금은 일주일 치가 고작이다.

보험료를 낼 때는 6주를 기반으로 산정된 보험료를 내고, 보험금을 받을 때는 많아야 1주일 치를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삼성생명 보험설계사 출신 암 환자, 김근아 씨

지난 2015년 유방암 진단을 받은 김근아 씨도 금감원 앞 거리에 있다. 'S사'라고 쓰여진 피켓을 들고 있다. 2월 26일 결국 피켓에 적힌 ‘S사’ 위에 '삼성생명'이라는 글씨를 덮어 썼다.  그는 어디를 가든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다닌다. 그 안에는 지난 3년 동안 삼성생명과 싸워온 기록들이 빼곡히 들어있다. 혹시 한 장이라도 빠뜨리게 될까봐 손에서 놓을 수 없다고 한다.

20여 년 전 김 씨는 소위 '잘나가는' 삼성생명 보험설계사였다. 1994년 삼성생명에 입사했고, 설계사가 된지 2년만에 큰 계약을 성사시켰다. 회사에서 표창도 받았다. 실력을 인정받아 신입 보험설계사들을 교육하는 지도장 역할을 하게 됐다. 1996년엔 보험설계사 모델로 뽑혀 신문 전면 광고에 얼굴이 실렸다. 10년 간 삼성생명 보험설계사로 일하며 '삼성 매니아'를 자처하며 살았다.

▲ 김근아 씨는 20년 전 삼성생명 보험설계사 시절 삼성생명의 신문 광고 모델에 발탁됐다.

하지만 암 치료 후 보험금을 청구하는 과정에서 ‘삼성 매니아’는 삼성과 싸움을 벌여야 했다.  보험설계사를 하면서 김 씨는 삼성생명에 보험을 들기 시작했다. 암 입원 보험금 지급이 명시된 보험이 3개다. 김 씨는 계약에 따라 약 3,600만 원의 암 입원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정작 삼성생명이 지급하기로 결정한 암 입원 보험금은 174만 원이었다. 방사선 치료 기간 동안 입원한 요양병원은 암의 ‘직접 치료’를 목적으로 한 입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때 얼굴이 떠오른 사람은 자신이 교육한 신입 보험설계사와 그들과 계약을 맺은 보험 계약자들이었다.

제가 삼성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다닌 시간에 대해서 분노, 배신감이 일어났어요. 그리고 저에게 교육을 받았던 신입 보험설계사들, 그리고 보험계약자들,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나와 같은 (보험금 미지급 문제를) 겪으면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사기를 치지도 않았고 삼성으로부터 받은 교육 그대로 했었어요. 보험설계사 일을 할 당시에는 암 입원비에 대해 '암 치료시 입원하면 지급하겠다는 것'이 다였어요. 그런데 제가 보험금을 받을 때가 되어서 이렇게 받을 수 없다고 하니 그때 만났던 수많은 사람이 떠올라요. 마치 저승사자 같아요. 그게 암보다 더 무섭더라고요.

김근아 / 삼성생명 보험금 미지급 피해자, 전 삼성생명 보험설계사

김 씨는 보험 가입 당시부터 미지급까지 삼성생명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조사했다.  신입 보험설계사 교육을 담당하던 시절의 경험과 지식이 힘이 됐다. 삼성생명과의 계약은 시작에서부터 잘못돼 있었다. 2007년 김 씨는 1994년 계약한 '무배당새생활암' 보험의 보험증권을 분실해 재발급했다. 하지만 이후 잃어버렸던 원래 보험증권을 찾았다. 같은 보험의 증권을 우연히 2장 갖게 된 셈이다.

삼성생명이 암 입원 보험금을 미지급하기로 결정한 이후에서야 살펴보게 된 두 증권은 미세하게  달랐다. 1994년 증권에는 단순히 '3일 초과 입원에 1일 당 암 입원 급여금 20만 원을 지급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2007년 재발급받은 증권에는 원래 없었던 문구가 추가돼 있었다. '암 또는 상피내암치료를 직접 목적으로 입원시'에 지급한다는 전제가 새로 붙은 거다. 1998년 가입한 또 다른 보험 '무배당여성시대건강보험' 증권도 재발급을 받았는데 마찬가지였다.

당시 관행적으로 약관 교부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 비춰볼 때 보험소비자 입장에서는 보험증권이 가입 당시의 계약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증서다. 변경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보험사가 재발급 증권 내용을 근거로 암입원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손쓸 도리가 없는 셈이다.

▲ 2007년 재발급받은 김씨의 보험증권에는 '암 치료를 직접 목적으로 입원시'라는 내용이 추가돼 있었다.

삼성생명이 차후 '직접 치료'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예상해 증권의 내용을 소비자 동의 없이 임의로 변경했다면 명백한 불공정 행위라는 것이 소비자단체의 지적이다.

예전에는 요양병원이 많이 없었어요. 대부분 자가 치료를 했던 거죠. 보험계약 설계할 때는 요양병원이 늘어날거라 예측 못한 거예요. 요양병원이 늘어 암 입원율이 늘어난 것에 대해서는 가입하는 분들에게 요율을 조정해서 보험료를 더 받으면 되거든요. 이미 가입한 가입자는 가입 때 약속한 것이 있으니 주변 환경이 바뀌든, 손해가 오든, 약속을 지키는 것이 의무예요. 그런데 보험사가 이용자 몰래 증권을 전혀 다른 내용으로 바꿨다는 거죠. 전산을 조작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상호 간 계약인 만큼, 한번 설정된 경우에는 이용자 동의 없이 증권 내용을 바꿀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김미숙 /  보험이용자협회 대표

삼성생명 측은 이에 대해 보험증권의 변경은 양식의 변경이나 발행시스템의 변경 등에 따라 그 형태나 내용이 변경될 수 있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또 90년대 이후부터는 증권에 약관의 내용을 많이 서술하는 형태로 변경되어 왔다고 밝혔다.

'짜여진 미지급 각본' 손해사정서

보험증권을 임의로 변경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삼성생명이 보험금 지급 여부를 판가름하는 주요 근거인 손해사정서는 사실과 다를 뿐더러 김 씨가 한 적도 없는 말들로 채워져 있었다. 암 입원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기존 판례에서 사용됐던 주요 문구들이 그대로 사용돼 있었다. 보험금 미지급을 위해 짜여진 각본인 것처럼 느껴졌다고 김 씨는 말했다.

김 씨는 퇴원 후 자신이 삼성생명의 직원이라고 소개한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암 입원금 미지급 사례가 담긴 판례를 제시하며 '직접 치료와 관련해 보험금 지급이 어렵다'는 취지의 설명을 했다. 이 남자는 위임동의서에 사인을 해 달라고 했지만 김 씨는 거절했다. 건강상태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답하지 않았다. 김 씨는 암 입원금 미지급이 결정된 이후 그의 사무실을 찾아가 봤다. 그는 삼성생명의 손해사정 위탁 자회사인 (주)삼성생명서비스손해사정 소속 손해사정인의 보조인이었다.

취재진이 입수한 당시 손해사정서에는 김 씨가 면담을 통해 '수술 후 암의 잔존 종양이 없고, 항암 미시행 중인 상태'라고 밝힌 것으로 나타난다. 당시 김 씨는 항암 방사선 치료를 받는 상태였고, 주치의로부터 잔존 종양 유무에 대해 설명조차 듣지 못한 상황이었다. 암의 잔존 종양 여부나 항암 시행 여부는 판례를 통해 정해진 보험금 미지급의 주요 근거다. 당시 담당 손해사정사는 '본사를 통해 취재하라'며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주식회사 ‘삼성생명서비스손해사정’은 삼성생명이 99% 지분을 가진 자회사로 삼성생명의 손해사정 업무 99%이상을 독점 위탁하고 있는 회사다. 자회사 소속 손해사정사를 통해 손해사정 업무를 하는 이상, 구조적으로 ‘공정한 손해사정’이 이뤄지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대해 삼성생명 측은 "전문화된 손해사정 업무 수행을 통해 신속하고 정확한 보험금이 지급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면서 자회사 소속 손해사정사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대해선 답변하지 않았다.

삼성생명은 또 암 입원 보험금 지급과 관련해 "대법원 판결과 금감원의 분쟁조정위원회에서는 요양병원에서의 합병증과 후유증 등의 치료는 약관상 암 직접 치료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합리적 기준을 적용해 심사하고 있지만 고객들마다 상황이 상이하기 때문에 획일적인 기준으로 지급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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