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세 번의 옥중 입장문을 통해 밝힌 주장은 결국 한 가지로 요약된다. "라임자산운용 관련 수사나 검사 술접대 의혹 수사에서 모두 검찰이 부실수사와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최근 입수한 1500여 쪽 분량의 검사 술접대 사건 수사기록을 분석해 검찰이 어떻게 ‘봐주기 수사’, ‘제 식구 감싸기 수사’를 벌였는지, 또 결정적 순간마다 어떻게 접대 의혹을 받은 전현직 검사들이 위기를 모면했는지 살펴봤다.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
때 늦은 검사 휴대폰 압수수색
검사 술접대 사건 수사 과정에서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은 현직 검사들에 대한 압수수색 시점이다.
김봉현 회장이 술접대 당사자로 이주형 변호사, 나 모 검사, 유 모 검사 등 전현직 검사 3명을 지목한 것은 첫 폭로 다음날인 지난해 10월 17일이었다. 그런데 검찰은 이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에야 전현직 검사들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선다. 이주형 변호사의 주거지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10월 21일, 나 검사는 그보다 닷새가 더 지난 10월 26일에야 압수수색을 당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팀이 압수수색에 나섰을 때는 이 변호사와 나 검사가 이미 휴대폰을 새로 교체한 후였다. 이 변호사는 “서울 양재천을 걷던 도중에 부부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전화기를 분실했다”고, 나 검사는 “전화가 떨어지면서 깨졌기 때문에 집 앞에 있는 마트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각각 검찰 조사에서 진술했다.
또다른 접대 의혹 당사자인 임 모 검사에 대한 압수수색 역시 김봉현 회장이 이름을 특정한 이후 열흘이나 지난 11월 6일 이뤄졌다. 검찰이 일부러 늑장 수사를 한 것은 아닌지 의심가는 대목이다.
검찰이 접대 의혹 검사 3명 중 유 모 검사의 휴대폰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은 특히 납득하기 어렵다. 김봉현 회장이 유 검사를 술접대 검사로 지목한 것은 10월 17일이었는데, 유 검사에 대한 압수수색 역시 이주형 변호사, 나 검사와 같은 10월 26일에야 진행됐다. 유 검사 또한 이미 핵심 증거물인 휴대폰을 ‘분실’한 뒤였다. 그런데 무위로 돌아간 압수수색 이후 진행된 검찰 조사에서 유 검사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낸다. 다음은 유 검사의 검찰 진술 내용.
“제가 10월 22일 검찰 조사를 받을 당시에 검찰에서 휴대폰을 압수하거나 임의제출을 요구할 것이라 생각하여 휴대폰을 가지고 출석까지 했습니다.” - 유 모 검사 진술 조서 (2020.11.15)
압수수색보다 먼저 진행된 검찰 조사에서 당연히 수사팀이 휴대폰 제출을 요구할 것이라 생각하고 준비했지만, 수사팀이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 검사의 이 같은 답변은 검찰이 ‘술접대 당사자들이 하나 같이 휴대폰을 분실 또는 폐기했다’는 점을 이유로 증거 인멸 경위를 묻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유 검사는 “검찰조사를 받고 머리가 복잡한 상태였는지 휴대폰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라는 믿기 힘든 주장도 했지만, 수사팀은 유 검사의 휴대폰 분실 경위를 더 이상 추궁 하지 않았다.
특수통 검사 출신 변호사의 거짓말과 ‘사라진’ 의혹
김봉현 회장에게 부탁해 검사 술접대 자리를 주선한 것으로 지목된 특수부 검사 출신 이주형 변호사가 검찰 수사 내내 수시로 진술을 번복하며 사실상 수사를 방해한 사실도 수사기록을 통해 확인됐다.
이주형 변호사는 지난 해 11월 15일 진행된 검찰 조사에서는 “술자리 자체가 없었다”며 현직 검사 술접대 의혹을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나 11월 27일 이어진 조사에서는 “혼자서 갔다”고 진술을 바꾼다. 당시는 검찰이 김봉현 회장과 술자리 참석자로 지목된 이들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과 위치 추적 자료 등을 토대로 술접대 날짜를 특정하고, 당시 김봉현 회장이 지불한 술값 등을 파악해 나가던 중이었다.
이주형 변호사의 진술 번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4일 조사에서 이주형 변호사는 “(현직 검사가 아닌) 후배 변호사들과 술자리를 했다”고 또 다시 말을 바꾼다. 수사 담당 검사는 후배 변호사의 이름을 밝혀 줄 것을 요구했지만, 이주형 변호사는 “개인 사생활이 있어서 이름을 밝히지 못한다”고 버텼다.
하지만 수시로 진술을 바꾸는 등 문제의 술접대에 대한 이주형 변호사의 진술 신빙성이 크게 의심 되는 상황이었지만, 수사팀은 이 부분 역시 적극적으로 추궁하지 않았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1500쪽 분량의 검사 술접대 사건 수사기록
핵심 의혹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검찰
수사기록에서는 검찰 수사팀이 엉터리 진술을 반복하는 전현직 검사들을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당연히 파악했어야 하는 의혹을 아예 묻지 않거나 외면한 정황도 확인됐다.
김봉현 회장의 첫 입장문이 공개된 지 나흘 만인 10월 20일. 서울남부지검에서 진행된 조사에서 이종필 라임 부사장은 김봉현 회장의 소개로 선임한, 검사 출신의 유 모 변호사로부터 검찰 압수수색 정보를 사전에 입수했다고 진술했다. 다음은 이종필 부사장의 검찰 진술 내용. (괄호는 검사의 질문)
“(유OO 변호사로부터 리드 관련 수재사건의 압수수색 관련 조력을 받은 사실이 있는가요?) 압수수색 하루 전날 김봉현을 만나기 위해 여의도에서 강남 쪽으로 가던 중 유OO 변호사로부터 전화가 와서는 ‘압수수색이 나올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내일 나올 수도 있습니까?’ 라고 여쭤보니 유 OO 변호사님이 ‘그럴 수도 있지요’라고 하셨습니다...통화를 마치고 바로 심OO에게 전화해서 이 내용을 전달해 주었고, 강남에 도착하여 김봉현을 만나 이 얘기를 하고 바로 사무실로 가서 정리를 깔끔하게 했습니다.” - 이종필 라임 부사장 진술조서 (2020.10.20)
이 진술은 수사 기밀 사전 유출 의혹 뿐 아니라 검사 출신 변호사와 검찰 관계자 간의 유착 의혹을 밝혀줄 중요 단서였다. 특히 검찰 수사팀이 상당수 의혹을 사실로 판단하고 혐의자들을 재판에 넘겼음에도 김봉현 회장의 진술 신빙성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또 다른 핵심 인물인 이종필 부사장이 직접 겪은 사실을 밝힌 것이어서 무게감이 달랐다.
하지만 검찰은 이 진술이 있은 후 진행된 이종필 부사장에 대한 최소 2번의 조사에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검사 출신 유 모 변호사의 압수수색 정보 사전 유출 의혹에 대해 추가 질문도, 수사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유 모 변호사는 최근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괄호는 기자의 질문)
“(김봉현과 이종필에게 검찰의 압수수색 정보를 빼내 알려준 사실이 있나?) 그런 사실 없다. 사건 초기부터 당연히 압수수색이 진행될 것이니 미리 정리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한 적은 있다. 오늘 안 나오면 내일 나올수도 있는 거니까 본인 불편한 거 있으면 정리해라, 그런 정도 얘기한 것 같다. (이번 사건으로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나?) 받았다.” - 유OO 변호사 전화인터뷰(2021.1.26)
“술접대 검사들 뇌물죄로 기소했어야” (김봉현 변호인)
김봉현 회장이 3번의 입장문과 이어진 검찰 수사과정에서 술접대, 수사 은폐 등 의혹이 있다고 밝힌 전현직 검사와 검찰 수사관은 최소 12명이다. 현직 검사가 4명, 검사 출신 변호사가 4명, 그리고 전현직 검찰수사관이 4명이다. 하지만 이들 중 검찰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진 이는 3명에 불과하다.
김봉현 회장을 변호하고 있는 박훈 변호사는 “이 사건의 핵심은 검찰이 술접대를 받은 검사들에 대해서 명백하게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종필이라는 라임 사건 몸통의 변호인이 마련한 자리에 술값을 내라고 김봉현 회장을 부른 것인만큼 직무 관련성이 100% 있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검사들을 뇌물죄로 기소하지 않는 것은 매우 잘못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