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원장님' 모교에 예산 5천만 원 '셀프 투하'

2021년 06월 11일 10시 00분

우리나라 공공기관·공기업 350곳이 한해 쓰는 기부·후원 예산은 1조 원이 넘는다. 주로 소외·취약 계층을 돕는데 쓰인다. 그런데 ‘낙하산’이 이 예산을 제 마음대로 쓴다. 총선 출마 지역에, 모교에, 자신이 만든 단체에, 취미 생활 등으로 흘러간다. 낙하산 권력의 오작동의 폐단이 공공기관 예산의 사유화, 오·남용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대선이 300일 앞으로 다가왔다. 다음 대통령이 누구든 낙하산의 폐해를 답습하게 놔둬선 안 된다. 뉴스타파가 공공기관·공기업 개혁 프로젝트 [낙하산이 쏜다]를 시작하는 이유이다. - 편집자 설명
우리나라 고급 관료들이 거치는 ‘출세 코스’ 중 하나가 힘 있는 권력 기관의 파견 근무 경력이다. 청와대, 국무총리실, 국정원 등이다. 
국토교통부 관료 출신의 서종대 씨는 1981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6년 청와대에 파견을 나가 경제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했고, 2009년 이명박 정부에선 국무총리실 세종시기획단 부단장을 맡았다. 2010년 30년 공직에서 물러나고 잠시 대학 초빙교수로 있었지만 1년 뒤 화려하게 복귀했다. 2011년 이명박 대통령은 그를 준정부기관인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에 임명했다.
서종대 전 한국감정원장
박근혜 정부에서도 서 씨의 관운은 계속됐다. 3년간 주택금융공사 사장 임기를 마치자마자, 2014년 3월 또 다른 공공기관인 한국감정원(현 한국부동산원) 수장에 낙점 받았다. 한국감정원은 원장 공모를 시작한 2004년 이후 서종대 원장이 임명되기까지, 역대 6명의 원장 중 5명이 국토부 '관피아' 출신이다.
서 씨가 한국감정원장에 오르자, 당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반발하며 “관피아·낙하산·보은 인사”라고 비판했다. 서 원장은 언론을 통해 자신을 ‘부동산 전문가’로 소개하며 ‘낙하산 논란’을 불식시키고자 했다. 
서 원장 취임 이후, 한국감정원은 잘 나갔다. 2014~2015년 공공기관 경영 평가에서 2년 연속 최고등급을 받았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심사하는 청렴도 평가에서도 같은 기간 2년 연속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됐다.
한국감정원이 이처럼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었던 배경엔 서종대 원장이 주도한 각종 사회공헌 활동이 있다. 매년 실시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 항목에는 기관의 연간 기부·후원 활동 실적이 포함된다. 서종대 원장 취임 이후, 한국감정원의 기부금 예산은 2015년 6억 6,000만 원에서 2016년 11억 7,000만 원, 2017년 12억 5,000만 원으로 크게 늘었다. 
서종대 원장 재임 시기(2014~2017), 한국감정원은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추진했다.
한국감정원은 서종대 원장 재임 동안 기부금 예산을 활용해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추진했다. 그때마다 서 원장이 적극 나섰다. 서 원장은 군과 경찰에 위문품을 전달하고, 직접 연탄을 나르고, 김장을 담그고, 농촌 일손을 도왔다. 이런 봉사 활동이 있는 날이면, 한국감정원 홍보실은 서 원장의 사진과 함께 보도자료를 배포했고 언론은 이를 미담기사로 보도했다.
하지만 서종대 원장 시절, 숨기고 싶은 기부 활동이 하나 있다. 2016년 12월, 한국감정원은 학교법인 호남기독학원에 5,000만 원을 기관 기부했다. 호남기독학원은 미국 남장로교 선교회 재단이 설립한 사립학교 재단법인이다. 한국감정원이 특정 사립학교의 재단에 기부금을 집행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한국감정원이 호남기독학원에만 ‘유일무이’하게 5,000만 원의 기부금을 준 이유는 무엇일까? 
뉴스타파는 현재 한국부동산원으로 이름이 바뀐 한국감정원에 질의했다. 지난 5월 25일 답변이 왔다. 한국감정원은 “지원된 기부금은 호남기독학원 산하 학교의 교육환경 개선사업에 쓰였다”고 밝혔다. 또 “서종대 원장 취임 이후, 대구·경북지역에 사회 공헌 활동이 집중됨에 따라, 전국의 형평성을 위하여 호남 지역의 열악한 학교 법인을 후원하였다”고 답했다. 한국감정원(현 한국부동산원) 본사는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다. 
또 기부처를 호남기독학원으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선 ▲학교 시설 노후화로 매점 천장과 벽면에 균열로 누수 발생 ▲우천시 통행로가 침수되는 등 환경 열악 ▲장애 학생들을 위한 빗물 방지 지붕 및 위험 노출 계단의 개보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 마디로 해당 학교의 시설이 낙후돼 5,000만 원을 후원했다는 것이다. 
호남기독학원은 기독교 계열 학교법인으로 2016년 한국감정원에서 5,000만 원을 기부받았다.
그런데 이 답변만으로는 앞서 제기했던 왜 하필 호남기독학원 한 곳에만 기부한 것인지, 궁금증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뭔가 설명하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뉴스타파는 호남기독학원이 운영하는 전남 순천의 한 중학교를 찾아갔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사전에 협조 요청을 충분히 구하고 방역 절차를 지키며 취재를 진행했다.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궁금증이 풀렸다. 한국감정원이 뉴스타파에 밝히지 않았던 한 가지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기부금이 집행된 이 학교와 서종대 원장의 '특수관계'였다. 바로 서 원장의 ‘모교’로 밝혀졌다. 서종대 원장은 전남 순천 출신으로 이 학교 26회 졸업생이다.  
서종대 원장은 한국감정원장 재임 시절인 2016년 3월, 이 학교에 교훈을 담은 교비를 기증했다. 교비 뒷면에는 기증자인 서종대 원장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같은 해, 한국감정원은 이 학교에 예산 5,000만 원을 기부했다. 공공기관장이 기관의 예산으로 자신의 모교에 '셀프 후원'을 집행해, 공적 예산를 사유화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2016년 서종대 당시 한국감정원장은 자신의 모교에 한국감정원 예산 5000만 원을 기부했다.
학교 측은 해당 기부금이 "학교 시설물, 교육환경 개선에 쓰인 것이 맞다"고 밝혔다. 다만 교비의 경우 “한국감정원 예산이 아닌 서종대 원장의 사비로 설립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학교 측의 설명을 정리하면, 서종대 원장은 2016년 개인 사비로 학교발전기금을 내고 교비를 세웠으며, 같은 해 한국감정원은 서종대 원장 모교에 기부금 5,000만 원을 지급했다.    
취재가 시작되자, 서종대 전 원장은 뉴스타파에 연락해 당시 기부는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모교에 기부금을 준 이유가 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장애 학생들을 위한 기부로 문제가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개인적 이익을 얻기 위해 기부금을 모교에 준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순천에서 공직 선거 출마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기부한) 시설은 일반시설이 아니고 장애인 시설이라 법률적으로 문제 될 거는 없지만 모교에다 했다고 뭐라고 하면 그거는 인상은 좋지 않지 않겠냐. 그래서 저는 제가 정말 무슨 순천에 출마를 한다든지. 그 기부를 통해서 이득을 얻었다면 문제가 될 텐데. 전혀 그런 건 없습니다.

서종대 전 한국감정원장
그런데 확인 결과, 현재 이 학교 재학생 중에 장애 학생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기부 당시엔 장애 학생이 있었지만, 현재는 모두 졸업했고 특수 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도 떠났다는 것이 학교 측 설명이다. 
이에 대해, 서종대 전 원장은 기부금 5,000만 원을 오직 당시 재학 중이던 장애 학생을 위해 썼다고 거듭 주장했다. 서 전 원장은 또 학교재단 이사장으로부터 학교 재정이 어렵고 시설도 열악하다며 지원을 요청해 왔다고 밝혔다.  
그 당시에 이제 김OO의원이 호남기독학원 이사장이시고 저희 순천 출신인데 저한테 전화가 오셨어요. 그 분이 호남기독학원의 재정상태가 안 좋고. 정문 앞에 교문탑 같은 거 필요하다고 하고… (학교) 도색은 안 된다고 그래서 그거는 제가 잘 아는 건설회사에 부탁을 해서 부영주택이라고 이중근 회장님한테 부탁을 해서 도색을 해드렸어요. (감정원 예산으로) 도색은 기부가 안 된다 해서… 그런데 장애 학생을 위한 시설 개선은 (감정원 예산으로) 기부가 되겠다 해가지고 그것만 기부를 한 겁니다. 

서종대 전 한국감정원장
이렇게 개인적 부탁을 받고, 원장의 모교에 수천만 원의 기관 예산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한국감정원(현 한국부동산원)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감정원은 이메일 답변에서 “당시 기부금이 적정하게 집행되었다”고 주장했다. 
한국부동산원은 기부금 집행이 적절하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면서도 어떤 내부 절차에 따라 기부를 진행했는지, 최종 결정권자가 누구인지, 전국의 장애 시설 중 기부가 필요한 학교가 많은데, 하필 원장이 졸업한 특정 학교에만 기부금을 몰아 준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는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한국감정원 대구 본사 전경, 지금은 한국부동산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또 한국부동산원은 서종대 전 원장에게 연락해 뉴스타파 취재에 대응하지 말 것을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 전 원장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이 건으로 내가 감정원 직원들과 얘기했는데, 직원들은 ‘언론에 원장님이 당시 상황을 잘 모른다고 답변해도 문제가 없으니까 연락하지 말라’는 취지로 말했음에도 내가 기자에게 직접 해명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해당 내용에 대해선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공공기관장이 권한을 이용해 특수관계인 모교에 '셀프 후원'을 진행해 국민의 세금이나 다름 없는 공공기관 예산을 사유화했다고 언론이 문제 제기를 하는데도, 정작 해당 기관은 복지부동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제작진
영상취재최형석, 이상찬
편집김은, 박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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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