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다큐]국제시장과 베테랑 혹은 덕수와 배 기사의 차이점

2015년 12월 02일 17시 17분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 ‘수저 계급론’이라는 게 유행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재력에 따라 자녀들의 계급 역시 결정된다는 걸 ‘금수저’부터 ‘흙수저’까지로 나눠 풍자하는 내용입니다. 그러자 일부 언론들은 청년들이 ‘노력’은 하지 않고 ‘부모 탓’을 한다고 핀잔을 줍니다. 정말 청년들이 부모 탓을 하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상속이나 증여가 자산 형성에 기여한 비율을 살펴보면 1980년대엔 27%에 불과하던 것이 2000년대엔 무려 42%로 치솟습니다. 계층 상향 이동성의 경우도 24개국 중 20위를 기록하여 다른 나라들에 비해 개인적 노력을 통해 계층 상승일 이루기가 어려운 현실입니다.

이처럼 개인의 노력보다 부모의 재력이 성공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끼치는 사회라는 게 객관적 수치로 증명됩니다. 수저계급론은 부모 탓이 아니라 이러한 사회구조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에 대한 기성세대들의 반응입니다. 객관적 수치를 제시해도 청년들의 노력부족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거두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현 기성세대, 특히 장노년층이 젊은 시절의 경제 현실과 지금의 경제 현실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과거 경제가 고속성장을 하던 시절엔 가난한 이들에게도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았습니다. 비록 절대적 빈곤 상태였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게층 상승을 이룰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았던 기성세대에겐 당연히 성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노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저성장이 고착화된 현재엔 성공의 기회는커녕 일자리 자체가 부족합니다. 애초부터 ‘기회’ 자체가 제한되어 노력 여부와 상관 없이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의 수도 극도로 제한됩니다.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의 청년들에겐 ‘노력’의 의미가 기성세대의 그것과 같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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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현 정부와 집권 여당은 ‘부자 감세’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상속세를 깎아주려 지속적으로 애를 쓰고 있습니다. 소위 ‘효도법’과 ‘명문장수기업’에 대한 기업상속 공제가 그것입니다.

먼저 효도법은 10년 이상 부모와 함께 살면 5억 이하의 주택 상속세를 면제해준다는 게 골자입니다. 얼핏 들으면 정말 ‘효도’를 위한 법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좀 더 살펴보면 문제가 많습니다. 우선 이 법을 현행법과 함께 적용하면 최대 15억 주택까지 면제가 가능합니다. 15억 짜리 주택을 소유한 이들이라면 최소한 ‘중상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5억에서 10억 미만 주택의 73.9%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6억 초과 20억 이하 주택의 53%는 강남 3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즉, 전체 국민중 상위 2%에게 집중적으로 혜택이 돌아가는 법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명문장수기업’ 세액 공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명분이야 오랜 가업을 이어온 명문장수기업을 육성해주는 거라 하지만 법 개정의 주요 골자는 세액 공제 한도를 현행 최대 500억 원에서 1,000억 원으로 확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상속세가 상당히 줄어들어 부의 대물림이 보다 강화됩니다.

부모의 재력이 과거에 비해 자녀의 성공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세태는 영화 속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고속성장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국제시장의 ‘덕수’와 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베테랑의 ‘배 기사’는 모두 가난한 처지이지만 덕수는 노력을 통해 자수성가를 하고 ‘배 기사’는 정당한 임금을 요구하다 살해당하고 맙니다. 국제시장이 가난했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베테랑이 경제가 더 성장한 현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재벌을 응징하며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은 이러한 시대 변화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2013년 KDI ‘행복연구 조사’의 결과를 소개합니다. ‘수저 계급론’에 대한 이견은 표면적으로 들어나는 ‘세대 갈등’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악화된 ‘시대 갈등’이 본질이라는 걸 세대를 넘어서 공감했으면 합니다.

‘성공은 운이나 연줄보다는 노력이다.’75.5% (60대 응답자)

‘성공은 운이나 연줄보다는 노력이다.’51.2% (20대 응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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