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하나

2014년 05월 14일 16시 01분

세월호 참사로 인해 너무나 큰 고통과 슬픔을 겪고 있는 유가족들. 당연히 많은 국민들은 유가족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고 구호의 물품을 보내거나 실제 현장에 찾아가 자원봉사를 하는 등 유가족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있다. 비록 유가족과 직접적인 인연은 없지만 같은 학부모로서, 같은 학생으로서, 무엇보다 같은 ‘사람’으로서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겐 모두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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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놀랍게도 결코 적지 않은 수의 또 다른 이들이 유가족에게 차마 상상할 수도 없는 수준의 막말을 하는 일이 발생했다. 처음엔 그저 극소수의 사람들인 것처럼 보였는데 그 수가 점점 늘더니 심지어 방송사, 그것도 국가재난 주관방송사의 보도국장까지 막말 대열에 합류하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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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그들은 왜 이런 막말을 하는 걸까? 단순히 ‘인격’의 문제거나 혹은 정치적 의도가 있어서 그런 것일까? 물론 각기 나름의 의도가 있긴 하겠지만 이들 막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유가족들의 아픔이나 입장에서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다면 결코 내뱉을 수 없는 말들이란 점이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능력, 즉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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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공감’이라고 하면 감정이입과 같은 감성적인 면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피아제의 인지 발달 이론에 다르면 ‘공감’이라고 하는 건 단순한 감정이입이 아니라 자기 관점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인지 능력’을 의미한다. 그래서 공감 능력이 아직 발달하지 못한 전 조작기(2~7세) 아이들의 경우 자신의 위치에서 본 산의 모양과 자신의 반대편에서 본 산의 모양이 같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는 ‘자기 중심성’을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내가 보거나 느끼는 대로 다른 사람들 역시 보고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 중심성’에 갇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면 타인이 느끼는 고통이 무엇인지, 그 크기가 얼마만큼이나 되는지에 대해 당연히 알 수가 없다. 나아가 타인에게 무엇이 고통이 되는지 이해하지 못하기에 자신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고, 상처를 주고 나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그런 자신에게 타인이 실망했다는 것 역시 이해하기가 어렵다.

물론 막말을 한 이들이 전혀 공감 능력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유가족의 아픔에 공감하고 눈물과 함께 추모의 뜻을 보낸 대다수의 국민들과 비교하면 매우 부족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이는 이후 이어진 그들의 사과 발언이 진정성을 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평소 정책 위주의 연설을 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러던 그가 애리조나 총기 난사 사건 추도식에선 매우 감성적인 연설을 하게 되는데, 연설 중간에 무려 51초 간 침묵을 하는 것으로 희생자들 및 그 유가족의 슬픔에 대한 ‘공감’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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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공감’을 중심에 둔 오바마의 연설은 지지자들은 물론 반대파들까지도 큰 감동을 받게 되는데, 심지어 전 공화당 대선후보까지도 오바마의 연설에 극찬을 하게 된다. 정치성향을 떠나 ‘공감’이 가진 위대한 힘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날 오바마가 공감과 함께 미국민들에게 요구했던 게 ‘정쟁을 자제한 단합’이란 면에서, 그리고 실제로 당시 미국이 공감을 통해 하나가 되었다는 면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에 거의 같은 뉘앙스의 말을 하고 있는 현 정부와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단합을 요구하기 이전에 우선, 자신들의 ‘공감 능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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