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Context) 속에서 사실은 진실에 조금 더 다가설 수 있다고 믿는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 공판을 취재하며 이 믿음을 더욱 단단히 거머쥐어야 했다.
1심형이 내려지고 이 사건을 다룬 언론은 크게 두 부류였다. 기술적으로 판결의 의미를 분석하는 쪽과 판결 자체에 의문을 던지는 쪽이었다. 양자의 입장을 모두 이해하지만, 아무래도 험로 마다 않고 진실에 다가서고자 하는 쪽은 후자라는 생각이 든다. 사법부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통념 때문만은 아니다. 이 사건에 우리 안의 레드 컴플렉스라는 민감한 코드가 얽혀있었기 때문이다.
유죄 판결을 접하는 순간, 나의 판단은 후자 쪽이었다.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들여다 본 마흔다섯 차례의 공판은 최소한 우리 법이 규정하고 있는 ‘내란음모죄’의 구성 요소들을 충실히 입증해가고 있다기 보다, 외려 불확실해져 가는 쪽으로 진행돼 왔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이 흘려준 피의 사실들을 지면에 실어 재미를 보던 한 일간지의 기자가 재판정에서 기사거릴 찾지 못하고 수원지법에 발을 끊었다는 후일담, ‘김정운 부장판사가 변호인단을 편애하는 것이 아니냐’는 기자실의 풍문은 이같은 방향성을 방증한다.
제보자 이 모씨의 진술은 이 사건의 시작과 끝, 그 자체였다. 재판부의 판결도 이 씨의 증언에 신빙성을 부여함으로 탄력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공판 과정에서 그가 2010년부터 국정원과 공조해온 조력자라는 사실이 드러났고, 심지어 2010년 초기 진술과 2013년 검찰 진술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 행간은 다양하게 읽힐 수 있겠으나, 검찰 공소 내용의 기둥이 흔들리는 주요한 대목이라는 점에는 틀림이 없다.
마흔다섯 차례의 공판이라는 문맥에 넣어보면 1심 판결은 여러가지로 의아하다. 반박과 해명이 이뤄진 쟁점들에 대해 언급이 아주 없거나 모호한 설명으로 넘어간 대목이 많다. 조간신문 1면에 수사기관의 증거조작 의혹이 연일 실리고 있는 와중에도 재판부는 국정원 조작설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피고인들의 양형을 늘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1심 재판부의 판단은 존중하되, 아직 사건의 진실은 유보된 상태로 남겨 놓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이다. 이 상식선의 판단을 원고에 옮기는데도 일찍부터 목이 따끔거려 온다. 결말없는 색깔 논쟁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 때문이다. 아마도 이 불편함 때문에 몇몇 기자들은 판결이 미심쩍고도 지면과 전파를 아꼈으리라.
개인적으로 녹취록 전문을 통해 드러난 이 의원과 5월 회합 참석자들의 발언에 동의하지 않는다. 현행법에 저촉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에 부합하는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그 사건을 다룬 판결에 권력기관이 부당한 개입은 없었는지, 판결에 미흡한 점은 없었는지 감시하고 질문하는 것은 완전히 맥락이 다른 얘기다.
33년만의 내란음모 사건을 취재하며 54년 전 김수영의 시를 꺼내게 될 줄 몰랐다.
그의 심정으로, 탈고를 앞두고 복잡했던 소회를 휘갈긴다.
변호인단 단장이었던 김칠준 변호사와의 인터뷰를 함께 싣는다. 이미 여러 보도를 통해 재판부의 판결 요지는 잘 알려져 있어, 이에 문제 제기하는 변호인단의 주장을 싣는 것이 균형을 해치지 않는다 생각한다. 이 또한 진실의 일부라는 믿음으로 여과없이 담는다.
뉴스타파-김칠준 변호사 인터뷰◁◁◁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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