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정영학이 쓴 고소장에 적힌 대장동 실체 "김만배가 검찰 인맥 통해서 사업권 빼앗아" 주장
② "김만배가 박영수, 최재경, 곽상도 만남 주선...막강 인맥 과시했는데 통했다"
③ 동업자들의 협박 방어하려고 시작한 정영학 녹음파일...대장동 수사의 '스모킹건' 작동
뉴스타파는 대장동 사건의 검찰 수사 증거기록 40,330쪽과 정영학 녹음파일 100여 개를 입수해 대장동 개발 비리의 실체를 추적 중이다. 취재진이 확보한 검찰 기록 중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단서를 제시하는 자료도 포함돼 있다.
그런 자료 중 하나가 정영학 회계사가 작성해서 검찰에 제출한 44쪽 분량의 '고소장'이다. 정영학은 업자들과 나눈 대화 녹음파일을 스스로 검찰에 제출해 대장동 수사의 '특급 도우미' 역할을 한 인물이다.
▲ 정영학 고소장(2021년 10월 검찰 제출) 대장동 수사가 시작되면서 실제 고소는 이뤄지지 않았다. 정영학은 고소장에 첨부한 녹음파일과 녹취록을 수사 초반 검찰에 제출했다.
2021년 9월 대장동 사건이 불거지기 전, 정영학은 김만배, 남욱, 유동규, 정재창(사업 초기 동업자) 등을 상대로 고소장을 작성했다. 여기서 정영학은 김만배와 정재창이 자신을 협박해서 60억 원 이상을 갈취했다고 주장했다. 개발 사업으로 6천억 원에 달하는 개발 수익을 올린 대장동 업자 간에 한 푼이라도 더 갖기 위해 진흙탕 싸움을 벌였음을 보여준다.
정영학 고소장, "김만배가 검찰 인맥 통해서 사업 시행권 빼앗았다"
정영학은 44쪽 분량의 고소장에서 대장동 사건의 실체와 김만배의 역할을 이렇게 규정했다.
"김만배는 로비스트로 활동하다가 부산저축은행 사태로 이 대장동 사업장이 수사 대상이 되자, 검찰 인맥을 통해서 이전 사업 시행자 남욱, 정영학, 정재창으로부터 실질적으로 사업 시행권을 뺏어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김만배는 본인은 전혀 돈을 들이지 않고서 이 사건 사업의 최대 이익을 누리게 됩니다"라고 덧붙였다. 김만배가 화천대유를 만들 때 약 5억 원 가량을 썼는데, 이것도 자기 돈이 아니라 박영수 전 특검에게 빌린 돈이었단 주장이다.
▲ 정영학 고소장 일부 (2021년 10월 검찰 제출)
정영학 "김만배가 고위 법조인 인맥 과시했는데 실제로 통했다"
정영학은 자신이 녹음한 녹취록을 근거로 김만배, 정재창 등의 범죄 혐의를 자세히 적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김만배의 불법적인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던 이유를 이렇게 해명했다. "김만배가 검찰 및 법원 인맥을 과시하며, 실제로 과시가 통한 것도 여러 번 있었고 해서 두려움에 김만배의 지시를 거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영학은 '박영수, 최재경, 곽상도 등을 김만배로부터 소개받고 같이 골프도 쳤다'고 말한다. 정영학과 남욱은 2015년 수원지검의 수사를 받았다. 저축은행이 대장동 업자들에게 빌려준 자금을 불법으로 빼돌린 혐의였다. 그런데 당시 김만배가 "최재경이 수원지방법원장을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등 수사를 막기 위한 로비가 있었단 얘기를 자신에게 했다는 것이다. 당시 정영학은 참고인 조사만 받고 풀려났다.
김만배는 2011년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에게 박영수 변호사를 소개해주며 대장동 업자들과 첫 인연을 맺었다. 이듬해인 2012년 남욱은 김만배를 '대장동 로비스트'로 영입했다.
뉴스타파가 지난 1월 공개한 '정영학 녹취록'에는 김만배의 로비 활동이 자세히 나온다. 로비스트에 불과했던 김만배는 이후 대장동 업자들 사이에 실세가 됐고, 2015년에 지분 49%를 챙긴다. 그럴 수 있었던 배경이 바로 '검찰 인맥'이라는 게 정영학의 주장이다.
▲정영학 고소장 (2021년 10월 검찰 제출)
대장동 사건 터지면서 고소 대신 자수 선택...정영학이 검찰서 밝힌 녹음 경위
정영학이 김만배 등을 고소하려던 시기에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이 외부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때 정영학은 고소 대신 자수를 택했다. 그는 2012년부터 자신이 만든 녹음파일과 녹취록, 사건 요약서 등을 세 차례에 걸쳐 검찰에 제출했다.
정영학은 2021년 10월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 조사에 응했다. 검사는 정영학이 녹음을 한 경위를 물었다. 정영학은 2011년 정재창이 다른 동업자의 약점을 잡아 돈을 요구하고 내쫓은 일이 있었다고 답했다. 언젠가 나도 당할 수 있단 생각에 녹음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정재창은 대장동 사업 초기 멤버다. 원래 대장동 사업 지분은 남욱, 정영학, 정재창이 각각 1/3씩 갖고 있었다.
▲정영학 참고인 진술조서(7회, 2021.10.13) 정영학이 녹음을 하기 시작한 경위를 답변하고 있다.
동업자의 협박 방어하려고 만든 정영학 녹음파일, 대장동 수사의 '스모킹건'
그러나 김만배가 주도권을 잡은 2014년 중순부터 달라진다. 김만배는 우선 정재창을 사업에서 배제했다. 정재창의 지분은 김만배 손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대장동 수익이 나오는 2019년부터 반전이 시작된다. 정재창이 대장동 로비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김만배를 협박했다. '유동규꺼'라고 적은 현금 다발 사진, 동영상 등 물적 증거도 있었다. 결국 김만배는 정영학에게 90억 원, 남욱에게 60억 원을 분담하라고 지시한다.
또한 분양업자 이기성 등도 로비용 비자금을 만든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김만배 등에게 돈을 요구했다. 이기성에게도 150억 원 이상이 흘러갔다. 약점이 잡힌 대장동 업자들은 협박과 공갈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영학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녹음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녹음파일의 속엔 정영학이 유동규 로비에 가담한 정황 등 자신의 범죄 혐의도 담겨 있다. '정영학 녹취록'이 없었다면, 검찰의 대장동 수사는 상당 기간 공전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