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조선일보 2면에 어김없이 등장했다. 모두 14명의 이름. ‘방일영장학생’ 선발자 명단이다. 조선일보는 방 씨 가문 시조격인 방응모의 큰손자, 방일영의 이름을 딴 재단을 통해 장학생을 선발한다. '방일영문화재단'은 매년 대학교 1학년 학생 가운데 장학생을 뽑는데 혜택은 다른 장학재단보다 월등하다. 3년치 등록금 전액과 3년 동안 매월 60만 원의 장학금을 준다.
▲ 2020년 11월 14일 조선일보 2면, 제48기 방일영장학생 14명 선발
조선일보는 지면에 선발 학생의 이름을 한글이 아닌 한자로 기재했다. 이 신문은 1980년 후반부터 지면에 인명을 모두 한글로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장학생 명단은 지금까지 한자를 고집하고 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한자 이름 외에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 출신 학교는 물론 학과, 나이도 물론이다.
‘방일영장학생’ 지원 자격은 대학 1학년 재학생 중 직전 학기 3.7 이상의 학점을 받은 학생이다. 여기까진 다른 장학재단과 비슷한데, 제출 서류가 조금 특이하다. 대학 성적증명서와 함께 수능성적표도 제출해야 한다.
지원 신청서 양식도 예사롭지 않다. 가족사항이나 경제력을 드러내지 않는 최근의 이력서 작성 추세와는 동떨어져 있다. 보호자 이름과 관계, 직업, 연락처 등을 기재하도록 했다. 또 보호자 외 가족의 직업을 적는 난도 있다. 지원 신청서를 통해 이렇게 묻는 격이다. “느그 아부지와 가족들 다 뭐 하시노?”
▲ 2021년도 방일영작학생 지원 신청서
이렇게 해서 선발된 학생은 누굴까? 어떤 기준으로 뽑히는 걸까? 2020년 선발된 학생 14명의 출신 학교를 살펴보면 딱 3개 대학교가 등장한다. 서울대 8명, 고려대 3명, 연세대 2명이다.(나머지 1명은 확인 불가) 학과는 경영, 경제, 정치외교, 언론정보, 국사, 중어중문 등 모두 인문‧사회계열이다.
방일영장학생 가운데, 올해(2021년) 대학을 졸업한 수혜자들의 진로를 확인했다. 졸업생은 모두 11명이다. 이 중 3명은 서울대 로스쿨, 3명은 서울대 일반대학원에 갔다. 또 1명은 연세대 로스쿨에 진학했다. 나머지 4명은 졸업과 동시에 취업했다. 입사 곳은 삼일회계법인과 맥킨지, 베인앤컴퍼니 등 외국계 컨설팅업체, 그리고 한국은행 등이다.
이렇게 2021년 졸업생 11명 중 4명, 2020년에는 16명 중 6명이 서울대 로스쿨에 진학했다. “방일영장학회가 아니라 서울대 로스쿨 동문회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2. 국립 서울대 기준, 3년간 최소 4천만 원 수혜
3개 대학 중 등록금이 싼 국립 서울대학교의 2021학년도 인문사회계 한 학기 등록금은 250만 원 가량이다. 이를 기준으로 추산하면, 3년 동안 1인 당 최소 4천만 원 이상의 장학금을 받는다. 방일영문화재단의 2019년 결산 서류에는 그해 50여 명의 장학생에게 5억 4천여 만 원을 지급했다고 공시해놓고 있다.
▲ 방일영문화재단 2019년 결산 공시 내역
방일영장학생이 받는 장학금은 금액으로 따져도 국내 학부생 장학금 중 최고 수준이다. 또 등록금 외에 생활보조금 형태로 매달 60만 원을 지급받는다. 방일영문화재단은 “집세와 물가 등 생활비의 압박에서 벗어나 장학생들이 학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3. 장학생을 위한 특별한 만남, 특별한 관리
방일영장학생들은 최고 수준의 장학금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각별한 관리를 받는다. 각종 행사와 모임이 따로 있다. 참석 행사만 나열해도 신년회 겸 정기총회, 송년회, 신입생 환영회 및 졸업생 환송회, 월례 세미나 등이다. 여름에는 평창, 양양, 속초, 강화도 등으로 1박 2일 하계 수련회가 열린다.
행사 장소는 코리아나 호텔이나 광화문 인근의 호텔, 조선일보사 접견실 등이다. 조선일보 스튜디오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기도 한다. 신입생 환영회와 신년 행사에는 방상훈 사장 등 조선일보 임직원들이 대거 참석한다. 조선일보 창간 100년을 맞은 2020년 1월 15일, 서울 광화문 코리아나 호텔에서 열린 2020년 신년회 및 정기총회에는 조선일보사 방상훈 사장, 홍준호 발행인, 방준오 부사장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 2020년 1월 15일 서중회 신년회 및 정기총회 사진, 테이블 왼쪽부터 서기석 전 헌법재판관, 여상규 20대 국회의원,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조연흥 방일영문화재단 이사장 (출처: 방일영문화재단 뉴스레터 제45호)
3. 출신학교 99.99%가 SKY
장학생 중에는 공부 잘 하는 이가 많다. 1982년과 1983년 차례로 학력고사 전국수석을 차지한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홍승면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모두 방일영 장학생들이다. 또 1984년도 전국 수석 황덕순(노동연구원장), 1986년도 전국 수석 오석태(시티은행 이코노미스트) 등 1980년대 ‘수석 학생’들이 조선일보 장학금을 받았다.
이밖에 1977년 서울대 법대를 수석 졸업한 여상규(전 국회의원), 사법연수원 수석졸업자 최경준(변호사), 이재혁(판사) 등도 모두 방일영 장학생들이다.
1974년 이후 지금까지 763명이 방일영장학회의 장학금 수혜를 받았다. 장학생 가운데 출신 학교 확인이 가능한 637명 대상으로 분석했다. 단 한 명 빼고 전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출신이었다. 서울대 58%로 374명, 연세대 20%로 132명, 고려대 20%로 130명이다. SKY를 뺀 단 1명은 중앙대 출신이었다.
▲ 서중회 637명 대상 출신학교 분석 (뉴스타파 영화 '족벌 - 두신문 이야기'에서)
선발 당시 학생들의 전공을 보면, 방일영장학회의 성격이 보다 잘 드러난다. 법대와 경영 경제 전공이 전체의 3분의 2나 된다. 반면 의대, 이공계 전공의 학생은 단 한 명도 없다.
이들은 사회 어떤 분야로 진출했을까. 방일영문화재단이 2018년 밝힌 장학회 학부 장학생 출신 417명의 직업별 분포에 따르면 변호사 76명, 법원 29명, 검찰 9명, 로스쿨 24명으로 법조계 진출자는 모두 138명, 33%다.
▲ 2018년 1월 기준 장학회 학부장학생 출신 직업별 분포 (출처: 방일영문화재단 뉴스레터 제41호)
4. “질서의 한 가운데” 서중회(序中會)
방일영장학생들은 대학 졸업 후에도 인연을 이어나간다. 장학회 졸업생들의 모임이 따로 있는데, 이름은 ‘서중회’다.
서중회(序中會), 풀이하자면 ‘질서의 한가운데 있는 모임’이다. 이름을 서중회로 한 것은 “방응모가 조선일보를 인수한 후 경영철학으로 중용지도를 강조한 것이 계기가 됐고 ‘중용의 첫걸음'이라는 뜻에서 ‘서중회'라 이름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세상의 중심에 서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