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당일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키르기스스탄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한국산 전자개표기를 도입해 선거 결과를 조작했다고 지목한 국가 중 하나다. 양국의 정상회담은 수교 32년 만에 처음 개최됐는데, 그 배경은 윤석열이 신봉한 부정선거 음모론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뉴스타파는 키르기스스탄 현지 탐사보도 매체와 함께 '한국산 전자개표기' 선거 조작이 사실이지 팩트체크했다. 그 결과, 키르기스스탄 부정선거 사례는 해킹을 통한 선거인명부 유출과 돈을 주고 표를 사는 '매표 행위'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키르기스스탄이 2015년부터 한국산 개표기를 선거에 도입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부정선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럼에도 일부 한국 언론은 이를 '한국산 전자개표기' 문제인 것처럼 조작해서 보도했다. 극우 유튜버들은 조작된 기사를 내세우며 부정선거론을 주장하기 시작했고, 전현직 유력 정치인들은 유튜버들의 주장을 아무 검증 없이 받아들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내내 '가짜뉴스' 척결을 외쳤지만, 정작 본인은 이 같은 부정선거 가짜뉴스를 일말의 의심도 없이 믿었고, 이는 다시 12.3 내란과 선관위 침탈로 이어지는 강력한 동기가 됐다.
키르기스스탄 부정선거 원인이 한국산 선거 장비라는 '거짓말'
뉴스타파 취재 결과, 일부 보수 언론이 2020년 4.15 총선의 부정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한 키르기스스탄의 사례는 명백한 가짜뉴스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인터넷 언론 뉴데일리의 2020년 10월 16일자 기사는 “한국산 개표기로 부정선거, 혼란한 키르기스스탄 대통령 결국 사임”이라는 제목이었다. 소제목은 “이라크, 콩고에 이어 키르기스스탄에서도 부정선거 시비가 발생했는데, 공교롭게도 세 나라 모두 한국산 선거 장비가 사용됐다”는 내용이다.
뉴데일리는 키르기스스탄 부정선거 배경이 2015년부터 도입된 한국산 장비의 문제인 것처럼 비쳐지도록 썼다. 한국한 전자개표기가 도입된 후 “한마디로 개표부터 집계까지 모두 수작업 없이 자동으로 이뤄진다”면서 명백한 허위 사실도 기재했다. 키르기스스탄은 수 개표와 전자 개표를 동시에 진행한다.
또, 키르기스스탄을 비롯해 최근 수년간 부정선거 시비가 일었던 나라 중 상당수가 한국산 선거장비를 쓴다고 적은 뒤, “이 같은 사실은 4·15부정선거국민투쟁본부 등 지난 4·15총선 결과가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쪽에 힘을 실으며 의혹을 더할 전망이다”라는 내용으로 기사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키르기스스탄 현지 독립언론 클룹(Kloop)의 보도 내용을 확인한 결과, 뉴데일리 기사는 가짜뉴스였다. 클룹(Kloop)은 2017년 대선과 2020년 총선에서 벌어진 선거 부정을 최초로 밝혀 국제탐사보도네트워크(GIJN)의 탐사보도상을 수상했다.
키르기스스탄 탐사보도 매체 클룹이 최초 보도한 2017년 대통령 선거부정 관련 기사. 이 보도로 정부가 고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커가 선거인명부를 빼돌려 선거에 활용한 사실이 알려졌다. 일명 '사마라 게이트'로 불린다.
사실 왜곡① 2017년 대선 부정선거 내용은 "유권자 명부 유출"
클룹(Kloop)은 스웨덴 IT 전문가로 구성된 큐리움(Qurium)과 협업해 익명의 해커로부터 제보받은 영상을 토대로 2017년 대통령 선거의 부정을 최초 고발했다. 클룹의 보도 내용을 보면, 2017년 치러진 키르기스스탄 대선에서 벌어진 부정선거는 ‘해킹’을 통한 선거인 명부 유출과 매표 행위였다. 매표 행위는 돈을 주고 표를 사는 것이다.
정부 측으로 추정되는 해커가 부동산 거래 사이트인 ‘사마라(Samara.kg)’를 정부가 소유한 인터넷 서버로 연결한 뒤, 중앙행정망으로 침투해서 키르기스스탄 전체 유권자의 생년월일과 주소, 주민번호 등을 통째로 빼냈다. 여당 측 대선 후보는 이 정보를 이용해 유권자들에게 돈을 주고 표를 사들였다고 한다.
이 사건은 일명 ‘사마라 게이트’로 불리며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수사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대통령의 당선은 유지됐다.
2020년 10월, 키르기스스탄 총선 당시 탐사보도 매체 클룹이 보도한 몰래카메라 영상. 클룹은 200명의 선거 참관인을 고용해, 투표 현장에서 벌어니는 '매표 행위'를 촬영하게 했다. 이 보도로 키르기스스탄에서 대규모 시위가 촉발됐고, 총선 결과 무효와 대통령 하야로까지 이어졌다. 한국산 전자 개표기는 두 차례의 키르기스스탄 부정선거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사실 왜곡② 2020년 총선 부정선거는 대규모 매표 행위...잠입 취재로 영상 확보
이로부터 3년 뒤인 2020년 10월 4일 치러진 키르기스스탄 총선에서 클룹(Kloop)은 다시 한 번 부정선거를 취재해 고발했다.
클룹(Kloop)은 200명의 선거 참관인을 고용해 각 투표장으로 보내는 일종의 잠입 취재를 시도했다. 취재 결과, 여당 후보 측 캠프 인원들이 유권자들을 투표소 앞으로 단체로 이동시킨 후 돈을 주고 표를 사거나, 투표소에 설치된 카메라로 유권자가 누굴 찍었는지 감시하는 등의 각종 불법 행위가 적나라하게 포착됐다.
클룹(Kloop)의 고발 보도 후, 키르기스스탄 국민들은 수도 비슈케크 중앙광장에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로 인해 총선 결과가 전면 무효화됐고, 이듬해인 2021년에 재선거가 치러졌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으로 국회의장, 총리 등 고위 정치인들이 차례로 사임했고, 대통령이 하야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부정선거 음모론이 유통되는 구조 분석
정리하면, 키르기스스탄에서 벌어진 부정선거는 '선거인 명부 유출'과 '매표 행위'였다. 2015년부터 선거에 도입된 한국산 전자개표기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한국 언론은 한국산 전자개표기가 부정선거 원인이라는 가짜뉴스를 만들어 포털 등을 통해 유포했다. 극우 유튜버들은 이 기사들을 근거로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 등 유력 정치인들은 극우 유튜버들의 주장을 아무 검증 없이 받아들였다. 전현직 정치인들의 부정선거에 대한 지지 반응은 다시 뉴스 기사로 생산됐다.
결국 가짜뉴스가 퍼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윤석열 대통령이 합류했고, 12.3 내란을 결심하는 중대한 동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뉴스타파에 "그분 머릿속은 국정원 정보보고보다 유튜브 뿐"이라고 설명한 사실이 있다. (관련 기사 : 국정원 고위 관계자 "대통령은 국정원보다 유튜브를 더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