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1.5°C : 고장난 배출권 거래제... 온실가스 내뿜고 돈 번 기업들

2021년 03월 11일 19시 00분

2021년 03월 11일 19시 00분

‘1.5℃’와 ‘탄소중립’은 기후위기 극복과 관련한 핵심 키워드입니다. ‘1.5℃’는 기후변화의 재앙을 막기 위해 2100년까지 산업화 이전(1850~1900년)을 기준으로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1.5도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미이고, 이를 위해서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정부도 지난해 10월 28일 2050 탄소중립 선언을 했습니다. 중국과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세 번째입니다.
세계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하는 직접적인 제도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와 탄소세가 대표적입니다. 한국 정부는 2014년 12월 23개 업종 520여 개 업체에 온실가스 배출권을 할당해 2015년 1월 1일부터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처음 시행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란?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 허용 총량을 정하고 각 기업에 배출권을 나눠주면 기업은 그 범위 내에서 생산 활동을 해야 합니다. A기업이 온실가스 감축을 많이 해서 배출권이 남을 경우 B기업에 남은 배출권을 판매할 수 있고, 반대로 A기업이 감축을 적게 해서 배출권이 부족할 경우 B기업으로부터 부족한 배출권을 구입해 생산을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기업 재무에 영향을 줘 온실가스 감축을 유인해 내는 제도입니다.
▲ 배출권거래제 개념 (KRX 배출권시장 정보플랫폼 갈무리)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한 지 6년이 지난 2021년부터는 제3차 국가 배출권 할당계획(2021년~2025년)에 따라 새롭게 수정된 배출권 거래제가 시행됐습니다. 이를 계기로 앞선 1・2차 계획기간(2015-2020) 배출권 거래제가 국내 온실 가스 감축 제도로서 제 역할을 했는지, 새롭게 시작된 3차 계획기간(20 21-2025) 배출권 거래제는 탄소중립에 어느 정도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점검했습니다.
뉴스타파는 국회 장혜영 의원실과 양이원영 의원실을 통해 ‘1,2차 계획기간 업체별 무상 배출권 할당량 데이터’와 ‘3차 계획기간 업체별 연평균 무상 배출권 할당량 데이터’를 각각 입수했습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데이터와 더불어 기업이 해마다 정부에 보고한 온실가스 배출량이 기록된 온실가스 종합센터의 ‘명세서 배출량’을 종합해 △기업들의 배출권 과부족량 △배출권 구매비용 △무상 배출권 할당량과 온실가스 배출량의 상관관계 등을 분석했습니다.
종합한 데이터를 토대로 배출권 거래제가 온실가스 감축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결과적으로 지난 5년간 배출권 거래제가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데 기여를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1년부터 새롭게 시행된 3차 배출권 거래제 역시도 현행대로 작동된다면 탄소중립을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뉴스타파는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2050 탄소중립에 보탬이 되도록 ‘1,2,3차 계획기간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량 데이터’를 뉴스타파 데이터 포털(링크)에 공개합니다.

1・2차 배출권 거래제 중간 점검 결과... 온실가스 감축 실패

지난 1・2차 배출권 거래제 대상이었던 443개 업체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무상 배출권 할당량을 분석한 결과, 업체들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받은 무상 배출권은 같은 기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96%로 나타났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나면 배출권도 함께 늘어나고, 배출량이 감소하면 배출권도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배출권 거래제 1차 계획기간이던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2017년 배출권 거래제 대상 업체 443개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5년 대비 6%p 증가했는데, 무상 배출권은 6.9%p 증가했습니다. 2차 계획 기간이던 2018년과 2019년의 경우에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4.4%p 감소했는데 할당량도 7%p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해도 무상 배출권이 줄지 않으니,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가 온실 가스 감축에 효과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겁니다. 배출권 거래제 대상 업체들이 지난 5년간 받은 무상 배출권은 총 27억 톤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은 5년 사이 2.9% 증가했습니다.
배출권 할당량이 온실가스 배출량에 연동되는 이유는 ‘그랜드파더링’이라는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입니다. 배출권을 할당할 때 과거 온실가스 배출량이 기준이 되는 방식입니다.
1,2차 계획기간 배출량 및 무상 배출권 할당량 추이. 배출권 거래제를 시작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과 무상 배출권 할당량이 함께 증가했다. 2018년에 배출량 증가세가 둔화됐고, 무상 할당량도 감소했다.
과연 배출권거래 제도를 통해서 기업들에게 유의미한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시그널을 확실히 보냈느냐 하는 거에 대해서는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거죠.

유승직 / 전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장

온실가스 최다 배출, 포스코... 배출권 팔아 이익 남겨

기업입장에서 온실가스 배출권은 배출권 거래 시장에서 사고 팔 수 있는 일종의 금융자산입니다. 온실가스를 감축해 아낀 배출권을 다른 기업에 팔면 경영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업이 온실가스 감축을 하지 않았는데도 국가가 너무 많은 무상 배출권을 줘서 기업이 오히려 배출권을 팔 수 있게 된다면, 국가는 기업에 금융자산을 공짜로 퍼줘 배를 불려준 셈입니다. 포스코의 사례가 그렇습니다.
포스코는 국내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기업입니다. 2016년 포스코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7천백만 톤(tCo2eq)을 기록한 뒤 꾸준히 증가해 2019년에는 8천만 톤을 넘겼습니다. 국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2%를 차지하는 규모입니다.
이 가운데 포스코가 2015년부터 5년간 국가로부터 무상으로 받은 배출권은 3억8300만 톤에 달합니다. 그간 뿜어낸 온실가스 배출량을 차감하고도 무려 1400만 톤의 배출권이 남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분의 배출권에 대해 2019년 배출권 평균가격(₩29,126)을 적용해 계산하면 4089억 원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추산됩니다. 포스코는 2020년 사업보고서에서 배출권을 처분해 245억 원의 수익을 냈다고 공시했습니다.
포스코와 삼성전자 모두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뿜어낸 배출량보다 무상으로 할당 받은 배출권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 역시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했는데도 무상 배출권이 남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5년 670만 톤을 배출하던 온실가스 양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9년에는 1100만 톤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에 할당된 무상 배출권도 함께 증가했습니다. 5년간 받은 배출권에서 내뿜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하니 150만 톤이 남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여분의 배출권은 2019년 배출권 평균가격 기준으로 약 446억 원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5년부터 2021년 현재까지 배출권 거래제 대상인 425개 기업의 무상 배출권 할당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29개 기업에서 배출권이 남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중 삼성전자와 포스코처럼 온실가스를 감축하지 않았는데 배출권이 남은 기업은 109개로 2015-2019년 남은 배출권 규모는 약 6천2백만 톤입니다. 2019년 배출권 가격으로 환산하면 1조8058억 원의 가치를 지닙니다. 여기에는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LG U+,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등 주요 대기업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 기업들이 2019년 뿜어낸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1억9500만 톤으로 국내 온실가스 전체 배출량의 27%를 차지했습니다.
2015년부터 2021년 현재까지의 배출권 거래제 대상인 425개 기업 중 배출량은 증가했는데 무상 배출권이 남은 기업은 109개로 나타났다.
환경부 관계자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배출권 할당 총량이 증가했다고 인정하면서도 배출량이 18년 대비 19년에 2.4% 줄었다고 하면서 배출권 거래제가 성과를 보인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석탄화력발전소, 배출권 거래제로 인한 손해는 전기료로 채워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발전기업은 막대한 온실가스를 뿜어내므로 국가가 나눠준 무상 배출권 외에도 부족한 배출권을 확보해야만 원활한 발전이 가능합니다. 특히 석탄화력발전소가 내뿜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 기준 3억1500만 톤으로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43%를 차지했습니다. 
2019년 한 해 동안, 발전 기업이 다른 기업의 배출권을 추가로 구매하는 데 지출한 비용은 당시 배출권 평균 가격으로 계산하면 8013억 원 규모에 달합니다. 배출권 시장 거래금액의 74%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그런데 한국전력이 발전기업의 배출권 구매 비용 대부분을 전기료로 보전해줬습니다. 해마다 발전기업이 부담해야하는 수천억 원대의 배출권 비용은 소비자가 내는 전기료로 전가됐습니다. 석탄화력발전소가 지금까지 건재할 수 있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석탄발전소를 가동한 사람들한테는 비용 부담을 하지 않으면서 소비자들은 그 비용을 내는 거예요. 석탄발전소를 가동하지 않으면 낼 필요가 없는 비용을 우리 소비자들은 내고 있는 거거든요? 생각해보면은 탄소배출은 발전기업이 해가지고 돈을 거기에 벌면서 이 모든 피해는 또 국민들이 받는 건가

양이원영 /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더불어민주당)

3차 계획기간 시작, 2050 탄소중립 가능할까?

2021년부터 적용되는 3차 배출권 할당량은 직전 3년(2017~2019) 평균 배출량과 연동돼 산정됩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3차 계획기간 배출권 할당량 데이터로 전체 기업들을 분석해보면 3차 계획기간 배출권 평균 할당량은 지난 3년 배출량 대비 10.1%가 적게 나타났습니다. 2030년까지 2017년 대비 온실가스 24.4%를 줄이겠다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보다도 적은 수치입니다. 2021년 새롭게 시행되는 배출권 거래제도 이렇게 작동한다면 2050년 탄소중립은 요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새롭게 시작되는 3차 계획기간 거래제 대상 기업 579개 기업 중 과거 배출량보다 새롭게 할당받은 배출권이 많은 기업은 306개로 절반이 넘는다.
3차 계획기간의 거래제 대상 579개 업체의 배출권 할당량을 분석해보니 306개 기업이 과거 내뿜은 온실가스 배출량보다 많은 양의 배출권을 할당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기업들은 어떤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과거와 비슷한 수준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하면서 생산활동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거래제 대상의 절반이 넘는 이 기업들이  스스로 온실가스 감축에 노력할 이유는 희박해 보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준비 정말 잘해야겠다, 3기 때부터는 제대로 해야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다가 본인들이 제출한 거에 비해서 10% 정도 더 많이 받은 상황들이 발생하니 기업들도 ‘이거 뭐지? 그리고 좀 약간 여유를 갖게 되고 감축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아직 우리 시간 좀 있는 건가?’ 

김소희 /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
3차 거래제에서도 느슨하게 배출권 할당이 이뤄진 것은 2030 온실가스 감축 목표 자체에 아직 탄소중립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감축 목표를 부문별로 뜯어보면 폐기물 부문이 27.1%로 가장 높게 설정됐고, 수송이 21.2%, 발전 부문이 21%를 감축하는 것으로 계획됐습니다. 반면 배출권거래제에 가장 큰 연관이 있는 산업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2017년 목표 대비 5.67%로 가장 낮습니다.
배출권거래제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는 2030년 산업부문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2017년 대비 5.67% 감축으로 다른 부문보다 가장 낮게 설정됐다.
환경부 관계자는 3차 배출권 거래제에서도 업체들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무상 배출권 차이가 적은 것에 대해 산업부문 감축 목표가 낮게 설정됐기 때문이라고 인정하면서 현재 2030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수정하고 있고 더욱 강화하도록 다른 조치가 있을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느슨한 온실가스 감축… 기업 경쟁력 약화 우려

오늘날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갈수록 심화되는 이상기후와 빈번해지는 재난재해를 막기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온실가스 감축이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의미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EU와 미국 정부는 앞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많이 한 이른바 ‘탄소누출’ 제품에 대해서는 ‘탄소국경조정제’라는 것을 도입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탄소국경조정제란 EU와 미국이 온실가스 규제가 약한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을 수입할 때 자국 기업들이 부담했던 수준의 온실가스 비용을 부과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당장 EU는 2023년부터 시멘트, 철강, 유리, 석유화학 등의 일부 탄소집약도가 높은 제품에 탄소국경조정세를 부과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18일 프란스 팀머만스 EU 집행위원회 그린딜 부위원장은 “탄소 감축을 위해 탄소 배출이 많은 나라에 탄소국경조정을 하는 것은 정당하다”며 “다른 국가가 탄소 비용을 올바로 부과한다면 탄소국경조정제는 필요 없어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과 달리 EU는 역내 기업들에 무상할당 배출권을 배출량의 50% 이하 수준으로 할당하고 습니다. 발전기업은 무상할당을 전혀 해주지 않아 화석연료로 만들어내는 전기에 대해서는 배출권을 사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이라면 배출량 만큼의 무상 배출권을 할당받고 석탄화력발전소 비중이 높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국내 기업들은 EU와 미국기업들과 겨뤘을 때 탄소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8,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비교해보면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LNG발전의 용량은 늘어난 반면, 재생에너지 용량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탄소중립선언 이후에 나온 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과 비교해 보면 석탄화력발전소는 39.9GW에서 32.6GW로 7.3GW밖에 안 줄고, 재생에너지 비중은 58.5GW에서 58GW로 오히려 0.5GW 줄어들었습니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LNG 발전은 47.5GW에서 55.5GW로 8GW 늘었습니다.
전문가들은 탄소국경조정제의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국내 배출권 거래제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손을 보고 전력수급 기본계획도 탄소중립에 맞춰서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배출권거래제가 제대로 작동을 해서 탄소 비용이 국내에서 제대로 걷힌다면, 그 재원은 기업의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쓰일 수도 있고 기후 변화로 피해를 입는 국민을 지원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국내에서 탄소비용이 부과되지 않으면 우리나라 국고에 남을 수 있던 재원이 결국에는 EU 국고에 납부하는 꼴이 되는 거죠.

고은 / 에너지 정책연구기관 넥스트 이사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가 3억 톤 이하로 재설정이 돼야 하고 배출권 거래제 3기 할당계획도 그 3억 톤에 맞춰서 전반적으로 더 강화가 돼야 됩니다. 그리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게 산업분야에서도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기 때문에 그걸 위해서 전반적인 제도가 다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양이원영 /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더불어민주당)
제작진
취재신동윤 연다혜
데이터 분석연다혜 김지연
데이터 시각화김지연
촬영김기철 최형석
편집박서영
CG정동우
삽화이도현
출판허현재
캘리그라피박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