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호, 심복에게 ‘수상한 변호비’ 16억 원 전달
2018년 12월 19일 08시 00분
양진호 위디스크 회장 사건이 시작된 지 3개월이 지났다. 전직 직원 폭행 영상이 공개된 지 9일 만에 구속된 양 회장은 현재 재판을 앞두고 있다. 폭행과 상해, 마약과 도청, 비자금 조성과 법조계 로비까지, 양 회장을 둘러싼 의혹과 혐의는 그야말로 산더미다.
양 회장의 복수도 시작됐다. 양 회장 사건을 처음 세상에 알린 공익신고자, 사건 이후 언론에 나서 양 회장의 범죄를 폭로한 양 회장 부하직원들이 하나둘 해고의 칼을 맞고 있다. 부당한 지시인 줄을 알면서도, 먹고 살기 위해 양 회장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현재 이들 대부분은 경찰과 검찰을 오가며 강도높은 조사도 받고 있다. 심지어 양 회장의 공범으로 기소돼 재판을 기다리는 사람까지 나왔다. 이들에게 ‘양진호 사건’은 진행중인 고통이다.
양진호 사건을 처음 세상에 알린 <뉴스타파-셜록-프레시안> 공동취재팀은 지난 석 달간 숨가쁘게 달려왔다. 양진호 개인의 악행은 물론 그가 만든 ‘몰카제국’의 본질을 추적하고, 이를 가능케 만든 우리 사회의 부조리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양진호의 피해자’를 만났고 인터뷰했다. 이들이 들려준 얘기는 하나같이 처참했다.
양진호 사건에 대한 재판을 앞둔 지금, <공동취재팀>은 그동안 공개하지 못한 ‘양진호 사건의 못 다한 이야기’를 꺼낸다.
양진호 회장이 부인과의 불륜을 의심해 대학교수 백모 씨를 무차별 폭행한 건 2013년 12월이었다. 폭행 사건을 벌인 뒤, 양 회장은 2개의 소송을 당하거나 제기했다. 부인 박모 씨가 시작한 이혼소송과 백모 교수를 상대로 한 위자료 청구소송이었다. 양 회장은 두 소송 모두 승소했다. 박모 씨에게는 세 자녀의 양육비를, 백 교수에게는 이혼의 책임을 물어 위자료를 받아냈다.
양 회장의 부인 박모 씨는 이혼소송이 진행되기 전 양 회장에게 무차별 폭행도 당했다. 그리고 세 자녀를 키우던 집에서 쫓겨나듯 내쳐졌다. 집에서 나온 박 씨는 부산에 사는 언니 부부의 도움을 받아 생활했다. 특히 형부 A 씨가 많은 도움을 줬다. A 씨는 이혼소송과 양육권 소송 모두에서 박 씨를 물심양면 도왔다.
양 회장은 박 씨와의 이혼소송을 전관변호사 최유정에게 맡겼다. 막 법복을 벗고 나온 최 변호사는 양 회장에게 수억 원의 수임료를 받았고, 또 더 받기로 약속하고 사건을 맡았다. 가정주부로만 살아온 박 씨가 감당하기엔 역부족인 소송이었다. 형부인 A 씨는 박 씨에게 큰 버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A 씨의 도움으로 소송은 1년 이상 팽팽하게 이어졌다. 반대로 양 회장에게 A 씨는 그야말로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A 씨의 도움으로 이혼소송이 길어지자 양 회장은 모종의 결단을 내렸다. ‘청부폭력’이었다.
<공동취재팀>이 입수한 한 장의 사진. 양진호 측 인사가 누군가에게 보낸 것이다. 사진에는 한 남자의 인상착의와 주거지가 적혀있다. ‘1번’ 항목의 ‘잠복’이라는 단어는, 이 주소지 인근에서 잠복을 하라는 의미로 읽힌다. 대체 어떤 내용일까. 양진호 회사의 한 핵심 임원 B 씨는 취재팀과 만난 자리에서 충격적인 말을 꺼냈다.
양진호 회장이 사람을 시켜 전 부인 박모 씨의 형부 A 씨를 폭행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 부탁을 받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A 씨의 집주소와 동선을 알려준 내용입니다.
B 씨는 양진호 회장에게도 직접 청부폭력 사실을 들었다고 말했다.
양 회장이 누군가를 시켜 전 부인의 형부에 대한 폭행을 지시했다는 제보가 회사로 들어왔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얘기라 양 회장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양 회장이 사실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전 부인인 박모 씨 형부가 내 돈을 뜯으려고 이혼소송을 부추기고 있어서 작업을 하려고 했다. 칼로 옆구리 한방, 허벅지 한 방을 찌르라고 지시했다. 3000만 원을 썼다’는 겁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이 사건을 알고 있는 양 회장 회사의 핵심임원들의 진술과 취재진이 추가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양 회장의 전 부인 박모 씨 형부는 실제로 이 사건 관련자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다행히 양 회장 지시대로 칼이 등장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 사건에는 관련자들이 많았다. 양 회장에게 처음 청부폭력을 부탁받은 사람은 스님인 C 씨였다. C 씨는 양 회장에게 3000만 원을 받았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C 씨는 2014~2016년까지 양 회장 회사 직원들을 데리고 전국을 다니며 일본군이 숨겨둔 금괴를 찾고, 양 회장 회사 직원들의 머리카락과 혈흔을 모은 인형을 양 회장 가족 묘 주변에 묻고 제사를 지냈던 사람이다.
양 회장에게 청부폭행을 부탁받은 스님 C 씨는 조직폭력배 D 씨에게 2000만 원을 주고 이 청부폭력 건을 넘겼다. 1000만 원은 자기가 먹었다. D 씨는 또 E 씨에게 사건을 넘겼다. E 씨는 단돈 200만 원을 받고 양 회장 부인의 형부인 A 씨를 찾아가 폭행하고 칼침 놓을 기회를 엿보다 실패했다.
2015년 3월 23일, 홍콩의 저녁 날씨는 '맑음' 이었다. 출장 중이었던 양진호 회장은 밤거리를 마음껏 누볐다. 바다를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는가 하면, 회사 직원들과 맛집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일행 중 한 명이 구입한 셀카봉으로 이 날의 즐거운 분위기를 사진으로 담았다.
양 씨와 홍콩을 방문한 사람들은 일명 ‘대학인수팀’이었다. 양 회장은 그 즈음 서울 소재 유명 4년제 대학교인 OO대학교를 인수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회사내에 팀을 가동하고 있었다.
<공동취재팀>은 최근 양 회장 회사의 한 핵심 임원에게서 양 회장이 포함된 카카오톡 대화방 문자내역을 통째로 입수했다. ‘대학인수팀’은 대화방 이름이었다. 대화 내용은 이랬다.
취재진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양 회장은 '대학 인수'와 관련해 회의만 한 게 아니었다. 인수를 시도한 대학 관계자와의 미팅도 진행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00대 미팅결과 보고서' 문건을 보면, 구체적으로 학교에 접근하는 방법을 비롯해 자신들이 확인한 사항, 그리고 이후 매입을 위해 고려해야 할 부분까지 자세히 적혀 있다. 다음은 취재진이 입수한 문건 내용 중 일부
양 회장 측은 인수 대상 대학의 총장까지 만났다.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한 계획까지 구체적으로 마련했다. 위디스크의 한 전직 직원은 “양 회장은 자기가 하던 로봇사업에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가자, 교수들을 연구인력으로 쓰는 등 비용절감 방안의 하나로 대학 인수를 계획했다”고 말했다.
로봇 산업을 하려고 한 거다. 군포에 로봇 공장을 만들었지만, 관련해서 인건비와 인프라 비용이 많이 들었다. 로봇 관련 교수 자문료도 상당히 들어갔다. 그런데 대학교를 인수하면 그런 비용이 대부분 줄어든다고 생각했다. 교수와 학생을 이용하면 (사업을 싸게) 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양 회장의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다른 이에게 선수를 뺏겼다.
<공동취재팀>이 양 회장 회사 직원들로부터 입수한 사진들. 기괴한 모습의 사진 여러 장이 들어 있다. 누군가 땅을 깊이 파더니, 그 안에 사람 형상의 인형을 질서있게 배열했다. 탑을 쌓듯이 아래쪽에 많은 인형이 놓였고, 위로 갈수록 그 수가 줄었다.
식별이 어렵지만, 인형 몸통에는 글자가 적혀 있다. 사진을 확대해 보니 낯익은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전OO’
양진호 회장 소유 회사에서 대표를 지낸 인물이었다. 다른 인형 몸통에 적힌 글자도 해독했다. 모두 양진호 회사의 임직원들이었다. 직원 이름이 적힌 인형을 땅에 묻은 것이다. 대체 누가, 왜 이런 일을 벌인 것일까.
한 위디스크 관계자는 놀라운 말을 전했다. 양 회장이 땅에 묻은 인형속에 직원들의 손톱, 발톱, 심지어 피까지 넣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강제’에 의한 것이었다.
회사에서 여러 말이 떠돌았는데, 그게 사실이란 걸 저희도 사진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몇해 전에 양 회장이 임직원들에게 머리카락, 손톱, 발톱을 제출하라고 했는데요. 그걸 저 인형에 넣어서 미신 행위를 한 겁니다. 사진 속 인물은 양진호 회장에게 ‘대통령이 된다’고 말한 그 땡중입니다.
취재진은 한 스님이 제사를 지내는 사진도 입수했다. 양 회장에게 ‘청부폭력’을 부탁받았던 바로 그 스님이었다. 사진을 살핀 결과 땅에 인형을 묻은 뒤 제사를 지내는 장면으로 추정됐다. 위디스크의 한 전직 직원은 이 기괴한 제사를 “일종의 충성맹세 행사였다”고 설명했다.
인형을 피라미드 꼴로 배열한 맨 위 상단에는 양진호 회장과 그의 동생 양OO 인형이 놓였습니다. 그 아래는 핵심 임원, 그 다음은 간부, 맨 아래는 말단 직원. 양 회장은 ‘이런 의식을 하면 직원들이 회장 가족에게 끝까지 충성한다’는 땡중의 말을 믿고 일을 벌인 겁니다. 머리카락, 손톱, 발톱을 제출한 직원들은 그 이유를 전혀 몰랐습니다.
위디스크 전직 직원은 양 회장이 인형을 묻은 이유를 또 이렇게 설명했다.
인형 머리에 직원들 얼굴을 최대한 닮게 그리라는 거예요. 인형 손발에는 왼쪽-오른쪽 구분해서 해당 직원의 손톱-발톱을 넣었어요. 머리에는 머리카락을 넣고. 그걸 전남 영암의 땅에 묻은 겁니다. 그러면 직원들이 충성하고, 모든 기운이 회장 가족에게 몰린다는 믿음으로요.
직원들 이름이 적힌 인형을 땅에 묻던 당시, 양 회장은 보물찾기에도 열을 올렸다. 자기 회사 직원들을 여럿 동원해 1년 넘게 온나라를 뒤지고 다녔다. 양 회장이 찾던 것은 ‘일제가 숨겨놓은 금괴’였다. 양 회장은 금괴를 찾는데 쓸 탐지기 구입에만 1억 원 이상을 썼다. 어떤 직원은 양 회장의 지시로 회사 일은 팽개친 채, 금속탐지기를 들쳐메고 1년 넘게 전국을 돌았다. 또 다른 형태의 폭력, 직장 갑질이었다.
양 회장의 금괴찾기는 집요했다. 아예 ‘지질탐사팀’이라고 적힌 조끼까지 제작해 직원들에게 입히고 내몰았다. 직원들이 지치면 ‘열정’을 강조하며 독려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당시 ‘탐사팀’의 단체 SNS대화방에는 “김일성식 초과달성”, “무서운 집중력으로 될 때까지 몰입하는 집념” 같은 표현을 쓰며 금괴탐사를 독려하는 양 회장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보물찾기’와 ‘인형 순장’은 비슷한 시기에 진행됐다. 전현직 위디스크 임직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당시 상황은 이랬다.
밀짚모자와 회색 승복을 입은 남자는 경기도 성남 판교 위디스크 사무실에 2014년 등장했다. 직원 K씨는 양진호 회장 방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스님으로 보인 그 남자는 K 씨 관상부터 살폈다.
"와… 당신 그 눈 100만불짜리야."
그날 이후 K 씨는 원래 하던 업무에서 배제됐다. 대신 양 회장은 K 씨에게 다른 일을 맡겼다.
앞으로 OO스님 따라다니면서 보물 찾아 와. 네 업무는 이제 보물찾기야.
농담이 아니었다. OO스님은 “일제시대 때 일본군이 숨겨 놓은 금괴가 어디 있는지 압니다. 좋은 장비만 구입해 주시면 금방 찾아오겠습니다”라고 양 회장을 설득했다. 양 회장은 금방 설득 당했다.
K 씨는 양 회장 지시에 따라 땅속 금속을 탐지하는 장비를 구입했다. 독일에서 생산하는 제품(EXP 5000 pro)이었다. 양 회장은 1억 원이 넘는 이 제품을 회삿돈으로 샀다. 국내에 없는 제품이어서 이용하려면 따로 교육까지 받아야 했다. K 씨는 일주일간 일종의 과외를 받았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양 회장이 진지하게 말했다.
꼭 곳간을 찾아야 한다. 금괴가 가득한 곳간.
K 씨는 2014년 8월 말부터 ‘EXP 5000 pro’를 어깨에 메고 OO스님과 함께 전국을 돌아다녔다. 일본군이 남기고 떠났다는 그 ‘전설의 금괴’를 찾아서. 보물찾기팀의 발자국이 찍힌 장소는 한두 곳이 아니었다.
원주, 인천, 함평, 나주, 상주, 부산, 군산… 서울에서 출발하면 꼬박 하루가 걸린다는 전남의 섬 흑산도까지 갔다. 당시를 기억하는 위디스크의 한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누가 봐도 코미디 같은 상황이잖아요. 회사 사람들 다 웃었어요. 양 회장이 좀 이상하다고. 장비를 들고 전국을 다닌 K 씨의 마음은 어땠겠어요. 제정신으로는 절대 못할 일이죠. 들리는 말로는 K 씨는 정신줄을 놓고 자포자기 심정으로 다녔다고 하더라고요.
직원들은 황당했지만, 양 회장은 진지했다. 취재진은 최근 이 당시 양 회장 등 보물찾기 팀원들이 모두 가입했던 밴드 모임방의 캡처 사진을 입수했다. 모임방 이름은 ‘100톤’. 이름의 기원은 2014년 8월 26일 양 회장이 올린 글에 있었다.
“만 톤은 비현실적이니 초과 달성을 목표로 (금괴) 백 톤으로 하면 어때?”
금괴 100톤을 찾아낸다는 꿈. 그 꿈이 밴드 이름이 된 것이다. 양 회장과 보물찾기 팀원들은 댓글로 이런 대화를 나눴다.
OO스님 - “백 톤이면 5조 원.”
양진호 - “김일성식 초과달성을 목표로 백 톤이면 아주 현실감 있게 느껴짐. 내 평생 5조 원이나 (금괴) 백 톤이 이렇게까지 만만하게 보인 건 첨이라는.”
OO스님은 금괴 사진도 올렸다. 이를 본 양 회장은 이런 댓글을 달았다.
양진호 - “사진을 보아하니 역시 백 톤 별 거 아니네요. 꿈을 현실로 만든 비결은 집념.”
OO스님 - “집중하게요. 하지만 항상 마음은 비우게요.”
집념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마음을 비우지 않은 탓인지, 금괴 100톤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금속탐지기를 메고 탐사할 때면 종종 사람들이 의심을 하기도 했다. 경찰도 찾아왔다. 그때마다 보물찾기 팀은 이렇게 둘러댔다.
“일본이 한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박은 말뚝을 찾는 중입니다.”
주변 사람들의 의심을 피하려 ‘한국데이터기록원 지질탐사팀’이라 적힌 푸른색 조끼도 맞춰 입었다. 한국데이터기록원은 양 회장이 설립, 소유하고 있는 IT회사의 이름이었다. 물론, 보물찾기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회사였다.
언젠가, 전남 나주의 한 폐가에서 금속탐지기가 반응을 보인 일이 벌어졌다. OO스님은 굴착기를 불러 곧바로 폐가 마당을 파헤쳤다. 그런 상황이 양 회장에게 실시간으로 보고됐다. 판교 사무실에 있던 양 회장의 얼굴이 활짝 폈다. 양 회장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한 임원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렇게 외쳤다.
“우리 대박 났습니다!”
하지만 금괴는 나오지 않았다. 일본이 박았다는 말뚝도 없었다. OO스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먼저 다 파갔네. 우리가 한발 늦었어.”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K 씨는 어느 날 양 회장에게 용기를 내 직언을 했다.
회장님, 금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좀 무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양 회장은 “보물찾기는 내 취미”라며 K 씨를 질책했다. 끝내 금괴를 찾지 못하자 “믿음이 부족하다”, “정성껏 일을 하지 않았다”며 K 씨 탓을 했다. OO스님은 “기계가 이상하다”며 금속탐지기를 탓했다.
양 회장의 ‘금괴 100톤’의 꿈은 결국 1년여 만에 끝이 났다. 금은 커녕, 일본이 박았다는 말뚝도 구경하지 못했다.
취재 : 한상진, 강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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