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 원짜리 기부금의 '나비효과'...이해충돌과 공정한 직무수행

2021년 08월 04일 17시 05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 뉴스타파는 지난 6월부터 공공기관의 예산 내역을 추적해 낙하산 인사들이 기부금 예산을 모교와 출마 지역구, 설립 단체, 취미 생활에 쓰는 등 제 잇속을 챙기는 사실을 폭로했다. 그런데 이 같은 기부금의 '사익 추구 비위'가 비상임(사외)이사들에게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었다. 경영진을 감시해야 할 비상임이사들도 자신이 대표로 있는 단체에 기부금을 받아 온 사실이 드러났다. 자칫 공공기관 비상임이사 제도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는 심각한 이해 충돌의 현장을 고발한다. - 편집자 설명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이다. 농·수산 식품의 원활한 유통과 관련 산업을 육성해 농·어업인의 생활을 지원하는 게 공공기관 AT의 운영 목적이다. 전남 나주시에 본사를 두고 있다.
2015년 2월,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비상임(사외)이사에 김준봉 씨가 취임했다. 김 씨는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회장을 거쳐 한국농어민신문 대표이사, 농협경제지주 비상임이사, 농업정책보험금융원 비상임이사 등을 지냈다. 김 씨는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상임특보로 활동하기도 했다.  
김 씨가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비상임이사로 있던 2016년 8월, AT는 사단법인 ‘활력농촌운동본부’에 150만 원을 기부했다. 활력농촌운동본부는 2015년 11월 설립한 말 그대로 농촌 운동을 벌이는 단체다. AT의 후원 명목은 ‘농식품 분야 단체 후원’이다. 만든지 채 1년이 안 돼 AT로부터 기부금을 받았다. 상대적으로 소액인데다, 기부 내역만 놓고 보면 문제는 없어 보인다.

공공기관 비상임이사 임기 중 겸직 단체에 기부금 집행 확인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의외로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경영을 감시해야 할 비상임이사의 역할론까지 묻게 되는 사안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활력농촌운동본부’의 대표이사가 바로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비상임이사 김준봉 씨였다. 즉 김 씨는 AT의 비상임이사로 있으면서 동시에 활력농촌운동본부의  대표도 맡고 있는 일종의 ‘겸직’ 상태였다. AT는 비상임이사가 대표로 있는 단체에 기부금 수혜를 베푼 것이다. 
실제 공공기관 알리오(ALIO)에 나와 있는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김준봉 비상임이사의 주요 경력을 보면, ‘(사)활력농촌운동본부 대표이사’가 첫 번째 경력으로 적혀 있다. 더구나 AT가 활력농촌운동본부에 기부금을 준 것은 2016년 이때가 유일하다. 김 씨가 AT 비상임이사를 그만둔 2017년 이후엔 단 한 번도 지급하지 않았다. AT는 “2017년 이후 해당 단체로부터 후원 요청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지난 2012년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서울 강서구 KBS 88체육관에서 열린 '한농연(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대선후보 초청 농정대토론회'에서 김준봉 연합회장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은 연합뉴스.
이런 식의 비상임이사와 특수 관계인 단체의 기부금 집행은 공공 예산의 사유화뿐 아니라 비상임(사외이사)의 역할론, 즉 이해충돌의 문제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 비상임이사가 직무를 수행하면서 자신의 사적 이해관계가 관련된 기부금을 받을 경우, 공정하고 청렴한 직무 수행이 저해되거나 저해될 우려가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기부금 수혜를 받은 비상임이사가 경영 감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라는 합리적 의심으로 이어진다. 150만 원짜리 기부금 집행이 비상임이사의 직무 독립성과 공정성을 훼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취재진은 김 씨에게 연락해 이렇게 물었다. “기부금을 받는 행위가 비상임이사의 공직 수행을 방해하고, 자칫 이해충돌할 상황이 일어날 수 있어 기부금 수혜가 부적절한 것 아니냐?” 김 씨는 “보는 시각에 따라 오해할 여지는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또 “현재 활력농촌운동본부는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이어 “AT가 당시 여수에서 열린 농업 관련 정책 토론회에 쓰라고 기부금을 준 것으로 알고 있고, 사적으로 기부금을 쓴 사실이 없으며 기부금 지급 과정에 AT에 어떠한 영향력을 미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AT는 “향후 오해의 소지가 발생하지 않도록 (공공 기부금)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AT에 이어 농어촌공사에서도 이해충돌하는 기부금 집행 다수 확인 

농어촌 관련 주요 공공기관인 한국농어촌공사에서도 AT와 같은 이해 충돌이 정면으로 부딪칠 가능성이 농후한 부적절한 기부 행위가 확인됐다. 
성효용 씨는 2014년 3월부터 2017년 4월까지 한국농어촌공사 비상임이사를 지냈다. 그런데 농어촌공사는 성효용 이사의 재임 시기인 2015년 8월, ‘전국새농민회’라는 단체에 현금 500만 원을 기부했다. 기부 당시 성 이사는 전국새농민회의 회장을 맡고 있었다. 농어촌공사가 전국새농민회에 기부금을 준 것은 2015년이 마지막이었다. 
이 단체만이 아니다. 농어촌공사는 성효용 이사와 특수 관계인 또 다른 단체에도 기부금을 지급했다. 문제가 된 단체는 ‘네잎클로버협동조합’이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농어촌공사로부터 모두 2,000만 원의 후원금을 받았다. 후원 사유는 ‘농축산연합회 후원금’ 또는 ‘농축산연합회 행사 후원’으로 돼 있다. 그러니까 명목상 네잎클로버협동조합에 지급한 것이지만, 실제론 농축산연합회라는 단체에 기부금을 준 것이다. 
뉴스타파 확인 결과, 네잎클로버협동조합은 농축산연합회의 다른 이름이었다. 게다가 기부가 이뤄진 당시 이 단체는 농축산연합회의 홍보대행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런데, 2015년 당시 성효용 이사는 농축산연합회 2대 대표에 취임해 상임대표로 활동 중이었다. 결국 농어촌공사는 성효용 이사가 대표에 있던 단체에 기부금을 집행한 것이다. 이해충돌 소지가 있는 부적절한 ‘친정 단체’ 후원이다.
지난 2015년 국회 후생관 앞에서 농식품부, 전경련, 농협, 농촌사랑운동본부 등 주최로 열린 '다함께 농촌 가는 날' 캠페인 선포식에서 한국농축산연합회 성효용 상임대표(왼쪽)와 고향주부모임 중앙회 김순희 회장이 국민참여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은 연합뉴스.
더구나, 기부금 집행 시기가 성 씨의 비상임이사 임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2015년 12월 31일 1,000만 원, 2016년 6월 7일 500만 원, 2017년 4월 30일 500만 원 등이다. 이때 말고는 농어촌공사가 네잎클로버협동조합에 준 기부·후원금은 없다. 당시 기부 경위를 묻는 질문에 농어촌공사는 “부서 내부 방침을 통해 시행되었다”고 답했다.
취재팀은 성 씨에게 기부금 수령의 적절성 여부를 물었다. 그러나 성 씨는 “우선 네잎클로버협동조합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며 당시 기부 관련해 어떤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성 전 이사는 “오래전 일이라 기부금을 누가 줬고, 누가 받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기부금을 받는데) 내가 영향을 준 사실이 전혀 없고, (농어촌공사가) 왜 기부금을 줬는지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농어촌공사가 후원한 또 다른 단체인 ‘통일농수산정책연구원’도 위 두 사례와 마찬가지로 이해충돌 가능성이 큰 ‘부적절한 기부’인 것으로 확인됐다.
윤천영 씨는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지지 선언을 했다. 윤 씨는 2014년 1월부터 2017년 01월까지 농어촌공사 비상임이사를 지냈다. 그런데 윤 씨는 2013년 9월부터 2016년 9월까지 통일농수산정책연구원 이사장도 맡고 있었다. 통일농수산정책연구원은 주로 북한의 식량난 해결을 연구하는 민간단체다. 약 2년 9개월 동안, 윤 씨는 농어촌공사 비상임이사와 연구원 이사장을 겸직했다.
그런데, 겸직하던 시기인 2016년 9월 5일, 농어촌공사는 윤 이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연구원에 현금 500만 원을 후원했다. 농어촌공사가 이곳에 기부금을 지출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지난 2012년 오후 국회에서 새누리당 5천만행복본부 산하 지역발전공약단이 주최한 전국농어민단체 초청 `농어촌 대선공약 대토론회'에서 윤천영 통일농수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이 정부와 여당의 농업정책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다. 사진은 연합뉴스.
취재진은 윤 전 이사장의 해명을 들으려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농어촌공사는 이번에도 미흡한 제도 탓으로 돌렸다. 공사 측은 “기부심의위원회 설치 이전의 기부”였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비상임이사 임기 동안, '친정 단체에 기부금 수혜는 직무 수행과 '이해충돌'

사기업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공공기관도 경영진의 방만, 부실 경영을 감시하고 견제하라고 사외이사(비상임이사)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비상임이사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이사회에 참석해 경영 건전성을 살핀다. 그리고 많게는 수천만 원의 연봉을 받는다.
그런데 비상임이사와 관련한 단체에 기부금이 유독 임기 동안 집행된다. 마치 명절 선물처럼 임기를 마치면 지급이 끊긴다. 비상임이사를 관리하는 수단으로 기부·후원 예산을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일고 있다. 
이대로 방치했다간 심각한 이해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비상임이사의 독립성은 무너지게 된다. 견제와 감시가 본령인 비상임이사 제도가 뿌리째 흔들리는 것이다. 공적 업무 수행의 이해충돌을 막기 위해 기부금 집행 규정의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고작 몇 백만 원짜리 기부금이라고 대충 넘겨선 안 되는 이유다. 
제작진
취재강현석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