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앰부시가 뭔가요” - 신문 기자의 뉴스타파 적응기

2015년 05월 21일 17시 00분

지난 4월부터 뉴스타파 탐사보도 전문 지역 언론인 육성 사업 대상자로 선정돼 뉴스타파에서 일을 배우고 있다. 원래 소속 매체는 울산의 시민언론인 울산저널, 방송과 인연이 없는 종이 신문사다.
뉴스타파에서 일을 배우면서 생소한 용어를 많이 접한다. ‘브릿지’. ‘온 마이크’ 같은 방송 용어에서부터 ‘와이어리스’, ‘ ENG’ 같은 방송 장비 용어까지 신문기자라면 별로 사용할 일 없는 용어가 꽤 있다.
이중 가장 많이 듣는 단어는 ‘앰부시’다. 앰부시는 다른 용어들과 성격이 조금 다르다. 우선 방송기자들 안에서도 흔히 통용되는 용어가 아니다. ‘브릿지’나 ‘온 마이크’ 등은 다른 방송기자들 사이에서도 일상적인 용어지만 앰부시는 유독 뉴스타파 기자들에게만 일상적이다.
▲ 최승호 PD가 이명박 전 대통령 퇴임일에 한 앰부시 인터뷰
뉴스타파 기자들은 자주 “000, 앰부시해야지”. “000, 앰부시하러 갑니다”라고 말한다. 앰부시 뒤에는 ‘인터뷰’라는 말이 생략돼 있다. 본래 앰부시의 의미는 ‘매복’이다. 풀어서 말하면 ‘매복해서 시도하는 인터뷰’쯤 된다.
주로 공식적으로 만날 수 없지만, 반드시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인물의 이동 경로에서 미리 기다리다가 인터뷰를 시도하는 취재 방식이다. 대부분 고위공직자, 그중에서도 모종의 의혹을 사고 있는 인물이 대상이다.
대개 이들은 공식적인 인터뷰 요청을 거부한다. 그럼에도 반드시 그들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아내고, 물어야 할 것을 묻는 것은 성역 없는 탐사보도를 지향하는 뉴스타파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취재 방식 중 하나다.
이번에 보도한 ‘풍문으로 들었소, 박근혜 정부의 총장 임명법’은 이런 앰부시들로 만들어진 방송이다. 한 선배는 “단일 리포트 중에 앰부시가 가장 많은 것 같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앰부시로 시작해서 앰부시로 끝난 리포트다. 바꿔 말하면 이 문제와 관련해 관계자들이 공식적인 인터뷰에 전혀 응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교육부는 국립대학 총장 후보자 본인들에게는 물론이고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후보 거부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교육공무원 인사위원회에서 심의했고, 그 결과가 부적합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인사위원회 참여 위원들을 만나보는 것이다. 교육부가 자료를 손아귀에 쥐고 놓지 않는 상황에서 사실상 이 방법 말고는 이유를 물어보기라도 할  방법이 없었다.
교육부 차관이 위원장을 맡고, 교육부 간부와 외부인사 등 전체 7명으로 구성되는 인사위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까. 당시 인사위원 중 5명을 확인하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하나같이 거부했다. 정당한 공무 상의 업무라면 굳이 인터뷰를 피할 이유도 없어 보였지만, 답변은 매번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과에 물어보라”였다.
남은 방법은 하나, 앰부시 뿐이었다. 초짜 방송기자의 앰부시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무례하다며 화를 냈고, 어떤 사람은 복불복 강의실 찾기를 해야 했고, 어떤 사람은 삼엄한 경호 때문에 가슴을 졸이게도 했다.
가장 먼저 나승일 전 차관을 찾았다. 그는 서울대학교에서 강의 중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뿐인 강의시간표를 확인하고 수업 종료 30분 전부터 강의실 앞에서 기다렸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그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고, 다시 인터뷰를 요청했다. 역시 거부했다. 어쩔 수 없이 복도에서 그를 붙잡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왜 이렇게 무례하냐”고 말했다. (나 차관이 임명 제청을 거부해 총장이 없는 대학교) 학생 수만 명에게 피해를 준 것은 무례하지 않으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무례함’을 무릅쓰고 이유가 도대체 뭐냐고 물었다. 그는 절대로 알려줄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두 번째로 김신호 전 차관을 찾아갔다. 대전의 한 대학에서 일주일에 한 번 교양수업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시간과 강의실 알아내는 길은 요원했다. 해당 과사무실을 통해 시간은 확인했지만, 강의실을 알아내진 못했다. 강의 종료 시각보다 4시간 일찍 학교를 찾았다. 다행히 강의동은 3개뿐이었다. 한 건물을 선택해 들어가 1층부터 강의실별 강의시간표를 확인했다. 운이 좋았다. 처음 들어간 강의동 3층에서 김 전 차관의 강의시간표를 찾았다. 수업이 끝나길 기다려 만난 그 역시 인터뷰는 거절했다.
마지막으로 황우여 장관을 찾았다. 5월 15일, 장관은 서울의 한 호텔에서 스승의 날 행사 참석이 예정돼 있었다. 20분 전에 행사장에 도착했다. 미리 파악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 대통령도 행사에 참석한다는 사실이다. 호텔 곳곳에 경호 인력이 배치됐고, 동선을 통제했다. 휴대폰도 먹통이 됐다.
행사장에 입장하는 장관과 대통령 근처에도 접근하지 못했다. 멀리서라도 모습을 담으려 카메라를 들었지만, 경호원들이 카메라 앞을 막아섰다. 첫 번째 기회를 놓치고 일정을 다시 파악했다. 다행히 대통령이 먼저 행사장을 나서고 장관은 점심까지 먹고 나간다는 이야길 들었다. 대통령이 떠나길 조용히 기다리기로 했다.
40분쯤 후 쉬고 있던 경호원들이 다시 분주해졌다. 대통령 퇴장 시간이 다가온 거였다. 한 경호원이 기자에게 다가왔다. 대통령을 찍으려는 거냐고 물어왔다. 냉큼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호원들은 그 말을 믿지 않는 듯했다. 대통령이 행사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경호원 10명 안팎이 기자를 반원으로 둘러쌌다. “안 찍는다니까요. 아이고, 용안도 못 뵙겠습니다”라는 기자의 볼멘소리에 같이 있던 호텔 투숙객은 웃었다. 대통령이 호텔을 완전히 벗어나자 경호원들도 물러났다. 대통령이 떠난 후 황우여 장관 앰부시는 순조로웠다.
초짜 방송기자의 첫 취재도 그렇게 마무리됐다. 방송기자를 배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하물며 성역없는 탐사보도를 지향하는 뉴스타파 기자라니…. 이제 겨우 앰부시를 배웠을 뿐이다. “대통령 앰부시도 같이 하지”라던 선배들의 농담 아닌 농담이 앞으로 주어질 미션도 그리 녹록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을 깊어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