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도 무죄 판결과 법무부 장관의 역할

2023년 02월 17일 10시 00분

곽상도 전 국회의원이 50억 원을 뇌물로 받았다는 공소사실에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판결에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일반 시민은 물론 일부 변호사까지 법원이 잘못했다고 공격하고 있다. 어느 시민단체는 무죄를 선고한 이 사건 재판부를 고위공직자수사처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판결의 원인은 검찰의 부실한 수사와 기존 대법원 판례의 한계라는 지적이 있다. 하급심 재판부가 대법원 판례를 뛰어넘어 유죄를 선고하기는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국회에서 “지금부터는 어떤 방식으로든 모든 역량을 투입해 수사하겠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 곽상도 전 의원에 대한 무죄 판결은 검찰의 수사 미진, 입증 부족과 함께 시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법률의 미비를 드러낸 것이라고 법학계는 설명한다. 법무부 장관이 유죄를 받아내겠다는 의지를 밝힐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형법 개정 필요성을 파악하고 국회에 협조를 요청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판결의 배경을 살펴본다.

이른바 경제공동체 논리가 곽상도에게 무죄를 주었나

뇌물죄는 공무원이 직접 금품 등을 받지 않은 사례에서도 유죄로 인정됐다. 다만 그런 판결이 나오려면 공무원이 아닌 사람이 받아도 공무원이 받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돈을 받으면 공무원이 뇌물죄 유죄가 되는지에 관한 오래된 대법원 판례(1998. 9. 22. 선고 98도1234)가 있다. ①공무원의 사자(使者) 혹은 대리인 ②공무원이 생활비를 부담해주는 사람 ③공무원이 빚을 지고 있는 사람 등이다. 이 가운데 ②사례는 공무원이 부담해온 생활비를 주지 않아도 되어 공무원이 그만치 이익을 볼 때다.
박근혜-최서원 뇌물 사건도 유죄가 나왔지만, 이유는 이른바 경제공동체, 즉 ②의 사례여서가 아니다. 이 사건(2019. 8. 29. 2018도13792)에서 대법원은 공무원 아닌 사람이 뇌물을 받은 것을 공무원이 직접 받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다른 기준을 제시했다. 새로운 판례에서는 ‘공무원 아닌 사람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본다고 했다. 즉 공무원 아닌 사람(최서원)이 공무원(박근혜)과 공모하고 기능적 행위지배를 한 것을, 유죄 이유로 밝혔다. 대법원이 새 판례를 내놓은 이유는 옛 판례로는 이 사건에서 유죄를 선고하기가 어려워서이다.
지난 2월 13일,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과 경북도당 대학생위원회·청년위원회 관계자들이 대구지방법원 입구에서 ‘곽상도 전 의원 50억 뇌물 수수 의혹 무죄 판결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뉴시스)

검찰, 뇌물죄 새 판례도 옛 판례도 공략하지 못했다

공무원 아닌 사람, 즉 아들이 관여한 곽상도 전 의원 뇌물 사건에서 검찰은 새 대법원 판례도, 옛 대법원 판례도 충족하지 못했다. 2019년 새 대법원 판례가 요구하는 공무원 아닌 사람과 공무원의 공모와 기능적 행위지배를 주장하지 않았다. 당장 아들을 뇌물죄의 공동정범으로 기소하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은 1998년 옛 대법원 판례가 요구하는 세 가지 유형에 곽상도 전 의원을 끌어넣어야 했다. 하지만 검찰은 여기에도 실패하면서 유죄를 받지 못한 것이다.
제1심 법원이 곽상도 전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이유를 요약하면 이렇다.
“(아들) 곽OO을 피고인 곽상도의 공동정범으로 볼 수 없는 이 사건에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곽OO가 사자(使者) 또는 대리인으로서 뇌물을 받았다거나, 평소에 곽상도가 곽OO의 생활비를 부담하고 있었다거나, 곽상도가 곽OO에게 채무가 있다는 등의 사정이 있어, 피고인 곽상도가 뇌물을 직접 받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관계라는 점이 증명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2019년 새 판례에 맞춰 기소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1998년 옛 판례에 나오는 것처럼 ‘아버지가 생활비를 주어야만 하는 관계’도 아니라는 것이다.

항소심에서 제3자 뇌물죄로 곽상도 잡을 수 있을까

이번 곽상도 전 의원 무죄 판결에 대한 가장 흔한 비판은, 제3자 뇌물죄로 기소하면 되는데 검찰이 그러지 않았고, 그 이유는 봐주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최근 범죄 경향과 판례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다. 오히려 검찰이 봐 줄 목적이었으면 처음부터 제3자 뇌물죄로 기소하는 게 맞았다. 제3자 뇌물은 유죄 입증이 애초 까다롭기 때문이다. 단순 뇌물죄와 달리 ‘부정한 청탁’이라는 구성요건을 추가로 입증해야 한다. 이른바 ‘법률을 잘 아는 사람들’이 벌이는 범죄 혐의여서 밝히기 힘들고, 기소해도 유죄를 받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검찰이 ‘부정한 청탁’을 입증하지 못해 뇌물죄로 기소한 것이지, 봐주려고 제3자 뇌물죄를 포기한 것은 아닌 것이다. 형사법 전문가인 이숙연 특허법원 판사도 제3자 뇌물 사건이 아주 까다롭다고 최근 논문에서 설명했다. 아래는 논문 내용 중 일부다.
“공무원은 자신과 내밀한 관계이거나 경제적으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공무원이 아닌) 비 신분범을 뇌물 범죄에 끌어들여 뇌물을 제공하도록 하는 경향이 있고, 비 신분범 역시 공무원의 지원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활용하고자 적극적으로 범행을 공모하고 뇌물공여자와 뇌물 수수행위를 분담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삼각뇌물 형태의 범행은 발각이 어렵고, 부정한 청탁이라는 추가적인 구성요건을 요하므로 악용되기도 한다.”

한국에만 있는 제3자 뇌물죄 곽상도 무죄로 이어져

검찰은 곽상도 전 의원 사건 항소심에서 제3자 뇌물죄로 공소장 변경을 신청할 가능성이 있다. 공소장 변경이 가능한지 논란이 있지만, 만약 된다면 항소심에서는 제3자 뇌물죄의 구성요건인 ‘부정한 청탁’을 입증해야 한다. 문제는 부정한 청탁이 매우 애매한 불확정 개념이라는 것이다. 법원이 느슨하게 판단하면 죄형법정주의가 무너지고, 반대로 엄격하게 적용하면 현행 제3자 뇌물죄가 사문화한다. 검찰이 곽상도 전 의원에 대한 유죄를 요구하는 여론을 등에 업고 별다른 입증 없이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렇게 선례를 만든다면 검찰은 어지간한 정치인은 쉽게 잡아넣을 수 있는 무기를 갖게 된다.
검찰이 항소심에서 부정한 청탁을 입증하지 못하고 재판부도 판례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충실하다 보면, 곽상도 전 의원은 제3자 뇌물죄도 무죄로 빠져나갈 수 있다. 이러한 부조리한 결과의 주요한 원인은 곽상도 전 의원 부자의 행위가 뇌물죄(형법 129조)와 제3자 뇌물죄(형법 130조)를 나눠놓은 현행 형법의 틈새를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곽상도 전 의원 사건은 불합리가 눈에 잘 띄는 사례다. 눈에 띄지 않는 유‧무형의 이익을 아들보다 훨씬 먼 제3자에게 주도록 하면서 공직을 오염시키는 사례가 현재 형사 법정에는 수두룩하다.

일본 프랑스 독일 미국에 없는 갈라파고스 형법 바꿔야

뇌물죄는 공무원 자신이 금품 등을 받거나, 받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달리 제3자 뇌물죄는 제3자가 금품 등을 수수하고 공무원은 부정한 청탁을 받아야 한다. 제3자 뇌물죄에 부정한 청탁이라는 구성요건을 추가한 이유는, 공무원이 직접 금품 등을 받은 건 아니니 처벌이라도 어렵게 만들자는 것이다. 하지만 뇌물죄든 제3자 뇌물죄든 직무의 청렴성과 결백성을 해친다는 점에서 불법성에 차이가 없다. 따라서 제3자 뇌물죄에만 부정한 청탁을 추가로 요구하는 현행 형법을 고쳐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뇌물죄와 제3자 뇌물죄를 나눈 현행 형법 조항은 1940년 일본 형법안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정작 현행 일본의 제3자 뇌물죄 구성요건에는 ‘부정한 청탁’이 없다. 다른 나라에서도 ‘뇌물’과 ‘제3자 뇌물’을 따로 구분해 공백을 만드는 입법례가 드물다. 프랑스 형법은 ‘직접 또는 간접으로 자신을 위해서건 타인을 위해서건 제의, 약속, 증여, 선물, 이익을 청하거나 받아들인 경우’라고, 독일 형법은 ‘자신 또는 제3자를 위하여 직무수행에 대한 이익을 요구하거나, 약속받거나 또는 수수한 때에는’ 이라고, 미국 연방 법률은 ‘공직자가 공무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한 대가로 가치 있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요구, 수수하거나 부당하게 공무에 영향을 미칠 의도로 공무원에게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제공 또는 약속하는 행위’라고 뇌물죄를 하나로 정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 판결이 나올 때마다, 언론과 여론은 눈에 보이는 재판부부터 때린다. 하지만 이런 판결로 이득을 보는 쪽이 누군지 생각하면 근본 원인을 짐작할 수 있다. 곽상도 전 의원 사건처럼 입증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죄가 선고된다면, 또 다른 사건에서 검찰은 더욱 쉽게 유죄를 받아낼 수 있다. 죄형법정주의는 국회가 먼저 법률을 만든 다음 이에 따라 검찰과 법원이 사람을 처벌해야 한다는 헌법 원칙이다. 일단 곽상도에게 유죄를 선고하라는 여론이나, 반드시 유죄를 받겠다는 법무부 장관의 선언이나, 법의 지배와는 거리가 있다고 법학계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제작진
취재이범준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